2회

소리와 진동(1)

수민이 집에서 신사역에 가려면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야 했다. 잠실역에서 2호선으로 한 번, 교대역에서 3호선으로 한 번. 게다가 수민의 아파트에서 가장 가까운 8호선 지하철역까지는 마을버스로 십 분가량이 걸렸다. 세 번이나 환승하는 것이 번거로워진 수민은 엊그제부터 삼십 분 일찍 집을 나서서 지하철역까지 도보로 갔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좋아서 견딜 만했다. 양쪽 주머니에 넣어둔 손난로를 쥐고 걸으면 좀더 힘이 났다. 어린 시절, 힘이 들수록 주먹을 꽉 쥐고 걸어보라던 아버지의 충고도 떠올랐다. 매일 아침 텀블러에 뜨거운 커피를 가득 채워 집을 나설 때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출퇴근의 감각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수민은 얼마 전부터 학원에 등록해 새로운 일을 배우고 있었다. 의아해할 주변 사람들을 위해 고용의 불안정성, 출판계의 암울한 전망 따위의 상식적인 이유도 준비해놓았다. 물론 누구도 수민의 준비된 대답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 같진 않았고, 대부분 수민이 뭐라도 하러 밖으로 나다닌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 극복해야지, 보란듯이 이겨내야지, 따위의 덕담도 으레 이어졌다. 수민은 ‘극복’이나 상대가 생략된 ‘보란듯이’라는 표현이 사실과 맞지 않다고 느꼈지만 내버려두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수민은 지난해 늦가을 수찬과 별거에 들어가면서부터 해가 바뀔 때까지 말 그대로 칩거했기 때문이었다. 1월 중순이 지나도록 수민은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냈다. 그 시기는 프리랜서 편집자라는 직업이 갖는 거의 유일한 장점인 비대면 업무의 특혜를 원 없이 누린 때이기도 했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진공 상태와 같은 나날들이었다. 떡이나 감자, 고구마 따위를 쪄두고 허기가 질 때마다 하나씩 집어먹는 것으로 끼니를 때웠더니 식비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밤엔 기계적으로 SNS 피드를 새로 고침 하거나 블록 쌓기 게임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한 해가 끝나는 날, 수민은 오래간만에 잘게 썬 오징어를 넣은 김치전을 잔뜩 부쳤다. 김치전에 막걸리를 마시며 리모컨을 누르다가 우연히 클래식 음악 채널에서 방영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신년 음악회를 보았다.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카메라가 한여름 밤 부드러운 어둠에 둘러싸인 오케스트라와 야외무대, 민소매 드레스를 입은 청중을 차례로 비췄다. 낭만적이네. 거실 한복판에 깔아둔 이불 위에 대자로 누운 수민은 등 전체에 전해지는 뜨끈한 온기를 느끼며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아주 낭만적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주변 사람들은 잊을 만하면 전화를 걸어와 이런 때일수록 바깥공기도 쐬고 사람도 만나야 한다고 채근해댔다. 추워 죽겠는데 어딜 나가. 수민은 퉁명스레 대답하면서도 사람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았다. 이를테면 수민이 집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통해 불화의 순간을 곱씹고, 자신을 학대하고, 그러다 세상을 원망하고, 급기야는 자아가 비뚤어진 채 고독하게 늙어가는 것. 계절이 바뀌는 동안 수민은 매일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를 내키는 대로 드문드문 받았다. 수민이 오랫동안 전화를 받지 않을 때면 엄마는 경비실에 갓김치나 굴전 따위를 맡겨두거나, 절 마당에 주렁주렁 달린 소원등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밑에는 ‘널 위해 늘 기도해’ ‘꼭꼭 씹어 먹어’ 같은 다정한 말들이 따라붙었다. 수민은 엄마의 문자 메시지를 읽을 때마다 평생 무덤덤했던 모녀 사이가 느닷없이 살가워진 기분에 목덜미가 간질거리곤 했다. 

주변의 오지랖과는 상관없이 수민은 인내심 있게 일상을 이어나갔다. 그러는 동안, 꼭두새벽부터 ‘내 의로운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주리라’ 같은 성경 구절과 함께 교회 전도 메시지를 보내오는 작은이모에게도 적당히 장단을 맞춰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최근 몇 달간 수민은 습관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고 되뇌곤 했다. 그것은 매사 태도가 분명하고 좋고 싫은 것이 확실하던 수민에게 세상사의 모호함을 받아들이는 주문 같은 문장이었다.

당연하게도 수민을 붙들어준 것은 주님의 오른팔도 엄마의 소원등도 아니었다. 그 시기 수민의 일상을 지탱해준 것은 각종 고지서와 명세서,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업무 메일들이었다. 메일엔 출판사의 출간 일정들, 수민의 미정산 편집비 문의에 대한 답변들, 그리고 재교와 삼교 등 단계마다 매번 따라붙는 마감 기한들이 적혀 있었다. 세상이 자신의 실패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굴러가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 그런 자각이 아침마다 수민을 책상 앞으로 이끌었다. 수민은 나이가 들수록 단련되어가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내구력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버틴다고 생각하기 전에 이미 버티고 있는 것, 버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최악의 순간에도 이만하면 괜찮다고 믿게 하는 그런 항상성이 수민의 생활을 끌고 온 것이었다.


신사동 뒷골목의 아침은 늘 한산했다. 골목에 빼곡히 들어찬 가게의 대부분이 밤 장사를 하는 술집인 탓이었다. 드문드문 자리잡은 식당 몇 개만이 이른 점심 장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지난밤 유흥의 자취를 지우는 사람들, 가게명이 인쇄된 앞치마를 두르고 문 앞을 들락날락하거나 땅에 붙은 토사물에 뜨거운 물을 부어 녹이는 사람들 곁으로 식자재를 실은 오토바이들이 간간이 지나다녔다. 수민은 무리 지어 담배를 피우는 직장인들을 피해 골목을 크게 돌아서 걸었다. 닭갈비집 옆으로 난 유리문을 열자, 서늘한 기운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라 난방 기구랄 게 없어서인지, 볕이 좋은 날에는 바깥보다 건물 안이 더 춥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수민은 늘 얇은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다녔다. 뒷목에 부드럽고 따듯한 니트의 감촉이 느껴질 때면, 감기는 뒷목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라며 수시로 헤어드라이어의 따듯한 바람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데워주던 수찬의 건조한 손바닥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일층 계단 뒤쪽으로는 경비실이 있었다. 쪽문 너머로 낡은 금장 벽걸이 시계나 구형 텔레비전 따위가 얼핏 보였지만, 그간 경비원을 본 적은 없었다. 학원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층짜리 건물의 삼층에 있었는데,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원장이나 학원생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마주친 적이 없어서 수민은 나머지 층이 공실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긴, 처음 이 학원을 찾아왔을 때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학원 이름을 한자로 새겨놓은 현판 앞에서 몇 분이나 서성였는지 몰랐다. 수민은 미리 통화를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단단히 닫힌 철문 앞에서 오래 망설였다. 문이 열릴 것 같지 않아서였다. 실제로 문손잡이를 잡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수민은 문이 잠겨 있는 것 같다고, 휴원이나 폐업을 한 것 같다고 지레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살짝 쥐는 것만으로도 손잡이가 가볍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을 때, 수민은 자신이 한동안 문이란 것을 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원 문은 실습을 하는 수강생들을 위해 언제나 열려 있었다. 입구의 스위치를 올리자 어둠에 잠긴 내부가 일시에 밝아졌다. 밤사이 갇혀 있던 먼지 냄새가 한꺼번에 수민에게로 달려들었다. 문 왼쪽으로 난 원장실을 지나면 이론 수업을 진행하는 작은 홀이 나왔다. 반원 모양으로 놓인 열 개 남짓한 접이식 의자 맞은편엔 작업대와 칠판이, 그 옆엔 외장을 떼어낸 그랜드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수민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마다 이곳에 드나든 지 벌써 한 달째였다. 


뭐하러 오셨습니까?

돌이켜보면, 그건 아주 이상한 질문이었다. 어떻게 왔냐는 것도 아니고, 뭐하러 왔냐니. 

원장은 중년에서 노년을 향해 가는 나이대의 여성이었는데, 수민에게는 처음 만난 원장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유튜브에 올라온 조율 이론 강의 영상으로 먼저 보았기 때문이었다. 편집 원고에 등장하는 용어의 실제 용례를 확인하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알고리즘에 걸려든 것이었다. 동영상 속 원장은 손가락 두 마디만한 작은 나뭇조각을 이리저리 만지며 ‘액션’이나 ‘기능’, ‘작동’ 등의 표현을 썼다. 외장을 모두 제거해 골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피아노에서 역시나 나뭇조각에 불과해 보이는 부품을 드라이버로 떼었다 붙였다 하며 설명을 이어가는 동안, 맞은편에 앉은 수강생들은 원장의 손을 주시하며 쉼없이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었다. 내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피아노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은 부품 대부분이 나무쪼가리나 철선 따위의 유서 깊은 재료라는 점에서 해부학 강의 풍경을 묘사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의 그림처럼 고전적인 데가 있었다. 호기심에 학원 홈페이지를 찾던 도중, 수민은 원장의 이십여 년 전 인터뷰 기사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인터뷰의 마무리로 원장은 ‘피아노 조율사는 정년이 없고 시간 운용이 자유로워, 취업을 고민하는 주부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라고 말했는데, 원장은 ‘취업’을 ‘재취업’으로 바꾼 것 말고는 완벽히 똑같은 발언을 강의 영상에서도 했었다. 

이십 년간 변치 않은 기회. 

수민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학원에 문의 전화를 건 것은 그 뻔한 호객행위 같은 말이 나쁘지 않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즈음 수민은 사소한 이유로 일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노트북 화면 위에 물결처럼 일렁이는 빛에 주의가 흐려진다거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등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에 시선을 빼앗기는 경우도 많았다. 단순한 부사 하나 형용사 하나를 고치기 위해 끝없이 사전의 예문들을 확인하다 들이친 빛을 따라 창문으로 고개를 돌릴 때면,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유리창 창틀 가장자리에서부터 기어오르는 성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너무 오랫동안 잠들어버려서 여기가 어딘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지난 세기의 냉동 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그런 수민이 원장의 강의 영상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만질 수 있는 것을, 손으로 만져서 고치는 기분은 어떤 걸까?


홀을 지나면 조율 실습을 할 수 있는 연습실들이 나타났다. 피아노 한 대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작은 방 여덟 개가 긴 통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수민은 그중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연습실 문을 열면, 앞판을 제거한 업라이트피아노 위에 놓인 노란색 소형 선풍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음료를 피아노 위에 올려두지 마시오’라고 인쇄된 A4용지가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진 채 위쪽 벽에 붙어 있는 것도 보였다. 수민은 보온병이 담긴 에코 백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패딩 점퍼 주머니에 장갑을 욱여넣고는 점퍼를 벗어 스툴 위에 개어놓았다. 학원에는 냉기가 흘렀지만, 점퍼를 입고 있으면 움직임이 둔해지고 바스락대는 소리가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수민은 이 주 전부터 이론 수업과 함께 기초적인 동음 조율 실습을 병행하고 있었다. 건반을 누르면 건반 끝에 달린 해머가 그 건반에 해당하는 현을 때려 소리를 내게 되는데, 보통은 하나의 건반을 세 줄의 현이 담당했다. 현들은 처음엔 조율 핀에 단단히 잠겨 있지만, 철선들이 유연한데다 온도와 습도에 영향을 받아 쉽게 느슨해지곤 했다. 음은 현이 팽팽할수록 높아지고 느슨할수록 낮아지는데, 그래서 피아노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음정이 낮아졌다. 원장은 실제 음을 조율하기 이전에 세 현이 동일한 장력을 갖추어 깨끗한 소리가 나오도록 손의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민이 세 철선이 같은 장력이 되도록 조율 핀을 조이는 연습을 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설명과 달리 귀와 손끝의 감각만으로 정확한 타이밍을 찾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너무 많이 손을 탄 탓인지 튜닝 핀의 구멍이 헐거워져 있어서 튜닝 해머로 아무리 핀을 조여도 금방 풀어지기 일쑤였다. 반복해서 듣다보니 소리가 높아지는 중인지 낮아지고 있는 것인지도 분간이 되질 않았다. 어느 날엔가는 원장이 불쑥 방으로 들어와 핀잔을 주기도 했다. 수민씨, 그렇게 뚫어져라 바라보면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울림은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잘 들리는 법입니다. 

멀리 있어야 잘 들린다는 말이 마음에 남은 수민은 며칠 전 수찬에게도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먼저 전화를 걸어와 뻔히 아는 법원 출석 일자를 운운하다가 입을 다물어버린 수찬 때문에 생각나는 대로 늘어놓게 된 것이었다. 맨날 원고만 들여다봤더니 소리도 보려고 하더라. 수민이 소리에 집중하다보면 금방 목뒤가 뜨끈해진다고 말을 잇자, 가만히 듣고 있던 수찬이 입을 열었다. 

애쓴다.

통화가 종료된 휴대폰 액정을 가만히 바라보던 수민은 곧바로 사전 앱을 켰다. 애쓰다.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 아무래도 수찬은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수민은 요즘 어느 것에도 애를 쓴 적이 없었다. 수민이 오랜 시간 동안 유일하게 이루려고 노력한 것은 수찬과의 관계뿐이었다. 


수민은 공구를 가지러 원장실로 향했다. 원장실 역시 따로 잠금장치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모든 문을 잠가두지 않는 것이 이 학원의 일관된 운영 방침인 것 같았다. 기역자로 이어붙인 오래된 철제 책상 두 개와 구식 라디오, 접대용 인조가죽 소파와 낮은 탁자, 그 뒤편에 놓인 캐비닛이 원장실에 있는 전부였다. 집기들이 하나같이 낡고 손때가 묻어 있어, 수민은 원장실에 올 때마다 남의 집 안방에 몰래 들어온 듯 겸연쩍어졌다. 

캐비닛 안, 켜켜이 쌓인 수십 개의 파우치 중에 수민의 것도 있었다. 수강생들은 집에 피아노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로 무거운 조율 공구를 학원에 두고 다녔다. 수민도 조율 실습을 시작하면서 조율 도구가 구비된 파우치를 삼십만원에 구입했었다. 그 안에는 튜닝 해머와 현의 울림을 막는 고무 팁 여러 개, 펜치와 특수 드라이버, 건반 높이를 재는 수평자까지 실제 조율에서 쓰일 법한 공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는데, 수민은 그중 두어 가지 정도만을 사용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표가 달린 두툼한 파우치를 꺼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론 수업까지는 한 시간가량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낮에 은희를 만나기로 했기에 연습할 시간이 빠듯했다. 함께 전시도 보고 느긋하게 식사도 할 생각이었다. 원장은 대체로 수업시간보다 삼사십 분 일찍 출근했지만,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하면 사라지고 없었고 어느 틈엔가 나타나 라디오를 듣거나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불쑥 연습실로 들어와 조율된 건반을 눌러보며 진도를 체크했다. 수강생들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연습하고 돌아갔다. 처음 수민은 자신이 원하는, 혹은 자신에게 필요한 연습량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지 못했기에 다른 수강생들의 눈치를 살폈다. 보통은 ‘원하는 만큼’이라고 하더라도 암묵적인 규칙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수강생의 수가 적은데다가 그나마도 중구난방이라, 수민 역시 내키는 대로 오가게 되었다. 그리고 학원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지금은 가장 먼저 학원 문을 여는 수강생이 되어 있었다.

옥타브 하나를 간신히 손본 수민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도에서 시까지의 건반을 주의깊게 눌러보고 있을 무렵, 원장이 출근했는지 멀찍이서 히터를 트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방의 누군가가 피아노 위에 파우치를 내려놓는 소리가, 이내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내는 여린 소리들이 점진적으로 학원을 채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