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작별들

들판에는 청보랏빛 수레국화와 양귀비가 만발했다. 우리는 걸었다. 

질문이 있었다. 행복한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다음 질문: 지금 이 순간에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풀들이 많이 자라나 길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길과 길 아닌 곳을 구분하지 않고 걸었다. 아지랑이같이 반짝이는 풀벌레들이 주변을 날아다녔다. 도중에 들판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최근 나는 『작별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는 작별들에 대해서 말한다. 

이 책을 발견한 곳은 딩켈스뷜의 한 서점이다. 딩켈스뷜은 독일 남부 프랑켄 지방의 작은 도시인데 나는 그 이름을 이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남쪽을 여행하던 중이었고 안스바흐에 갔다가 지도에서 인근 도시 딩켈스뷜을 발견했다. 그러자 갑자기, 딩켈스뷜에 가야 한다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 말했다. 아마도 그건 내가 최근에 독일 로맨틱에 관심이 있다고 말해서일 것이다. 딩켈스뷜 구시가지는 전쟁의 파괴를 피한 덕분에 중세도시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이 카스파 하우저에 관한 영화를 찍은 장소로 알려지기도 했다. 세상에는 영원히 비밀로 남은, 신비한 사건들이 간혹 일어났는데 카스파 하우저 또한 거기에 속할 것이다. 딩켈스뷜 구시가지에 도착한 뒤, 자신은 오래전부터 이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었노라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말했다. 우리가 거기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한 책방이었다. 책방 입구는 아주 오래된 목조건물 일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감탄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둥그런 회전 책장에 주어캄프 출판사의 문고판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문고판이 그런 식으로 모여 있는 것은 드문 광경이었다. 거기에 FM의 『작별들』이 있었다. 나는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 책을 뽑아들었다. 우리의 등뒤에서 책방 주인이 말했다. “이층으로 가면 더 많은 것을 발견할 겁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은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졌으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층에 올라간 우리는 책방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수백 년 된 낡은 서가로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 앞뒤로 난 아치형 창을 통해 들어온 한낮의 환한 햇빛이 서가를 비추고 있었다. 책들은 책장뿐만 아니라 책상과 탁자 위에도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 공간은 책을 파는 상점이라기보다는 책벌레, 서가의 영혼, 책 애호가에게 바쳐진 장소 같았다. 아마도 그곳에 다른 손님은 하나도 없이 우리뿐이었고, 낡은 마룻바닥이 그대로 드러났으며, 전등이 아니라 자연광이 책을 비추고 있었고, 그래서 그늘의 책들은 자연스레 어둠 속에 머물렀기 때문이리라. 또한 거기 있는 책들이, 예를 들자면 1980년대 남한의 사회와 정치를 상세하게 취재한 보고서와 같이, 최근의 독서 트렌드와는 좀 거리가 있는 마치 개인적인 소장품처럼 독특한 발견의 느낌을 주는 종류라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강한 인상으로 기억하는 몇몇 서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몇 년 전 우연히 방문한 웰니스호텔인 엘마우의 구내 서점이다. G7 정상회담 장소이기도 한 그 호텔의 고풍스럽고 멋진 도서관을 잊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수영장이나 티 룸 등 호텔 내부 곳곳에 언제라도 읽을 수 있도록 책을 배치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책들은 대부분 장정이 크고 값비싼 예술 서적들이었다. 호텔 내부에 상점이라고는 단 하나 서점뿐이었고, 그곳 진열대 한가운데 왕좌처럼 높은 자리에는 묵직한 장정의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다른 서점은 네팔의 포카라에서 만난 서점들이다. 서가에는 수십 년 동안 각국의 여행자들이 가져온 다양한 언어의 낡은 중고 책들이 가득했으므로, 제1언어권의 히피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던 작가가 누구인지 시대별로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온 책을 팔 수도 있었고 한 권을 사서 읽은 다음 가지고 가면 반값에 다시 구입해주기도 했다.  

딩켈스뷜,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 서서 나는 바람에 저절로 펼쳐진 페이지를 읽었다. 그것은 1980년대 서울에서 일어난 분신 사건에 관한 글이었다. 흑백 사진들이 쏘는 듯이 강렬했는데, 그건 아픔과 낯섦,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오래전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던 몇몇 일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둔 장소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햇빛 속에 선 채 책을 몇 페이지 읽었다. 서가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낡은 일인용 가죽 소파가 놓여 있었다.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과 우리들의 그림자에 흔들리는 빛 이외에 모든 것이 고요했다. 경사진 지붕의 서까래가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종종 나는 독일에서 이런 서점을 발견할 때마다 어떻게 이런 곳이 가능한지 궁금해하곤 했다. 헌책방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서점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오래된 구간들이 있는 서점. 

구석구석의 그늘에는 다양한 농담의 어둠이 고여 있었다. 마치 글쓰는 자의 서재처럼, 창을 등지고 자리잡은 커다란 작업용 책상. 나중에 우리는 그 서점이 있는 건물이 13, 14세기에 지어진, 중세도시 딩켈스뷜에서도 가장 오래된 집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마도 최초에는 부유한 귀족의 집이었겠지만 이후 식당과 여관, 정육점 등으로 활용되던 도시 중심부의 상업 건물에 서점이 입주한 것은 1960년대라고 한다.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서점 이층은 처음에는 주인 가족들이 살았던 공간이었다. 당신은 분명 뭔가를 발견할 겁니다, 하고 등뒤에서 책방 주인은 말했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 딩켈스뷜에서 살고 싶어한 것은 헤어초크 감독의 영화 때문일 것이다. 나는 딩켈스뷜이란 이름의 어원이 궁금했다. ‘뷜’이란 중세 독일어 단어로 언덕을 의미한다. 그것은 ‘딩켈’밀(스펠트밀)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딩켈밀이 자라는 언덕들.  

  

얼마 전 우리는 북쪽 정원 울타리 근처의 풀을 뽑고 땅을 고른 뒤에 잔디 씨앗을 뿌렸다. 지금껏 우리는 항상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려 했고, 실제로 여행을 떠나 있었고, 그래서 정원에 지속적으로 머무는 기간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많은 것이 바뀌었고, 우리 자신도 바뀌었다. 우리는 올해 정원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칩거하듯이 살게 될 것이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화단을 손실하고 갈퀴처럼 생긴 도구로 흙을 갈았다. 이 지역의 토양은 모래흙이다. 재와 퇴비를 조금 섞어 뿌린 뒤 부엌 찬장 서랍에서 발견한 파프리카와 딜 씨앗을 뿌렸다. (얼마나 오래된 씨앗인지는 알지 못한다. 씨앗은 내가 이 집에 처음 온 날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씨앗을 뿌리면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고 새순이 돋으면 달팽이와 애벌레의 먹이가 된다는 것을, 게다가 작물이 충분히 성장할 만큼 비옥한 토양이 아님을 잘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정원 일 자체가 우리를 즐겁게 했다. 정원 펌프 위로 길게 뻗어나 일을 방해하는 나뭇가지를 베어냈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정원 장미나무 주변에 무성하게 우거진 어린 단풍나무 덤불을 잘라냈다. 올해 장미는 햇빛을 더 많이 받고 피어날 것이다. 매년 5월 화려하게 피어나 봄의 절정을 알리는 로우더덴드런은 이제 시들어간다. 로우더덴드런 꽃이 사라지면 작약이 피고 파리나 모기와 같은 곤충이, 그리고 이어서 벌들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다음에 정원도구 마켓에 가서 사올 물건으로 커다란 물뿌리개를 메모해둔다. 햇빛이 잘 드는 테라스 앞 화단에는 물망초 씨앗을 뿌리고 북쪽 정원에는 화원에서 사온 보라색 루핀을 심었다. 꽃이 가득 달린 루핀 줄기는 쓰러질 듯 기우뚱했다. 아마도 루핀은 얼마 안 가서 죽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산책길에 꽃술이 뱀의 혀처럼 길게 나온 푸른 꽃을 발견하고 꺾어 와 화병에 꽂았다. 독일어로 ‘독사의 대가리Natternköpfe’라고 불리는 꽃이다. 초여름. 부드럽고 온화한 날들이 이어졌다.    

정원 일을 마친 우리는 스파게티 국수를 삶아 청어 통조림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마지막 국수였다. 이제 부엌 선반에는 통잡곡빵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는 청어 통조림을 좋아한다. 그래서 늘 많이 사다놓는 편이다. 나는 딩켈밀 빵도 좋아하지만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딩켈, 통곡물, 호밀 등 잡곡으로 만든 빵을 즐기지 않는다. 그의 입맛에는 고급 밀가루에 대한 향수가 있다. 신선한 생선이나 해물은 구할 수도 없고 또 요리하는 법도 모른다. 달걀이나 구운 야채, 감자샐러드, 오트밀 등이 우리가 즐겨 먹는 메뉴이다. 가끔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을 때, 우리는 금식을 해보려고 시도한다. 마을의 기차역 앞에 베트남 음식점이 생긴 이후에는 그곳에서 몇 번 식사하기도 했다.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지만 맛이 좋고 아주 널찍한 야외 테라스가 있어서 전염병이 한창일 때도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거의 항상 닭고기를 곁들인 샐러드를 주문한다. 하지만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 가장 좋아하는 식당은 근처 고린 호숫가 마을의 그리스 식당이다. 이 근처 호수들은 넓은 모래사장이 있는데다 물이 깊지 않아 수영하기에 좋다. 호수 바닥에는 검은 해초가 숲을 이루었고 모래흙은 크림처럼 부드러워서 디디면 몸이 절반이나 움푹 가라앉는다. 언젠가 한번은 수면 아래의 섬처럼 거무스름한 덩어리 한가운데로 들어갔는데, 해초인 줄 알았던 그것이 검은 올챙이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무리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고린 호숫가의 해변, 커다란 티베트 개를 데리곤 온 한 여자가 개와 함께 물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에서 막 나온 우리는 타월을 몸에 두른 채 앉아 책을 읽는다. 흐릿한 태양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제비가 모래에 닿을 듯이 낮게 날았다. 공기 중에는 물비린내가 떠 있었다. 내 일생의 나날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들, 기차를 타고 불안하게 떠났던 여행, 수많은 편지, 기나긴 기다림, 망각한 이름들, 그 모두의 배경에서 물속의 수초처럼 흘러가는 연두색 풍경들. 나는 비밀스럽게 소스라친다. 나는 종종 어떤 감정의 절정 상태를 기억처럼 겪는데, 그것이 행복인지 아니면 정반대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행복한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느낌은 빠르게 휘발되어버리고, 나는 한 마리 티베트의 개처럼 그 자리에 홀로 남는다.  


나는 『작별들』을 계속해서 읽는다. 그동안 조금씩 읽고 있던 클로드 시몽을 잠시 밀쳐둔다. 클로드 시몽의 묘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라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자주 말했다. “그는 화가였고 그래서 그의 글에는 아주 상세하고 생생한 그림과 같은 묘사가 등장한다. 그의 묘사는 그 자체로 대다수의 스토리보다 더 매혹적이다.” 나는 클로드 시몽의 책을 두 권이나 시도해보았으나 한 번도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묘사와 스타일에 놀라고 감탄했으나 거기에서 ‘매혹’을 발견한 것은 세번째 책을 읽기 시작한 다음이었다. (정교하게 계산된 테크닉으로서의 언어에 거리감을 느끼는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클로드 시몽의 애독자이고 거의 모든 작품을 읽었지만, 텍스트의 콜라주로 특징되는 FM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 FM은 자크 데리다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그리고 FM의 단어 조어 방식은 예를 들면 아르노 슈미트 같은 천재 작가들이 이미 시도한 것이야. 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때로, 결국은 핏속에 간직된 취향의 요소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문제로 다르다. 그가 높이 평가하는 몇몇 작가들을 나는 좀 지루하다고 여긴다. 반면에 내가 좋아하는 몇몇 작가들을 그는 살짝 폄하하는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그는 제발트를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개 우리가 사랑하는 문학은 상당한 부분에서 겹친다. 

토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마을 소방서의 사이렌이 길게 울린다. 의용소방대의 훈련을 위해서라고 한다. 만약 다른 때에 사이렌이 울린다면 그건 정말로 어디선가 불이 났거나 사고가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 저녁이면 교회에서 6시 종소리가 들려왔다. 들판에서 일하던 농부 부부가 일손을 놓고 경건한 자세로 신에게 감사를 올리는 저녁 기도의 종소리이다. 그러나 이제 들판에서 직접 쟁기질을 하는 농부는 그 어디에도 없다. 

집 앞 풀밭의 풀들이 크게 자랐다. 연두색 풀줄기 위로 황금색과 자주색 보라색 알갱이가 영글고 있었다. 바람에 풀밭이 일렁이는 풍경은 경작지의 밀밭이 일렁이는 풍경과는 좀 다르다. 일정한 종이 균일하게 심어진 밀밭과는 달리 풀밭의 풀들은 여러 종이 섞여 있어서 키나 색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풀 사이사이에 아름다운 수레국화가 피고 보라색 초롱꽃이나 노란색 앵초 등이 섬처럼 군락을 이루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풀밭은 은은하게 변하는 색채의 물결로 파도쳤고 산산조각난 빛들이 오색으로 잘게 부서지며 허공에 흩어졌다. 들판 가장자리는 메꽃과 캐모마일, 클로버가 만발했다. 6월, 첫번째 건초 수확기 직전인 이 시기 절정을 이루는 풀밭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겨야 한다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말했다. 풀의 씨앗이 여무는 이때 베어내 말린 건초가 영양이 가장 풍부하다. 너무 늦으면 질긴 줄기만 남는다. 하지만 반대로 가축의 먹이가 아니라 연료용이라면 늦게 베어내 말린 건초일수록 더 좋다. 그의 고향에서는 대개 일 년에 두 번 풀베기를 하는데, 놀랍게도 수확 시기에 따라, 그리고 베어낸 장소에 따라 건초의 명칭이 달라진다고 했다. 풀의 수확을 위해서는 비가 내리지 않는 맑은 날씨가 중요하다. 어린 시절, 그는 6월이면 집에서 기르는 개를 데리고 자신의 키를 넘게 훌쩍 자라난 풀밭을 헤치며 다녀야 했다고 한다. 기계가 풀을 베어내기 전에 풀 사이에 숨어 있는 새끼 노루를 미리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지 않으면 노루들은 기계에 다리가 잘리고 만다. 베어낸 풀은 들판에 눕혀 며칠 동안 말린다. 한쪽이 충분히 건조되면 다시 뒤집어주면서 골고루 말린 다음 압축해서 둥글게 말아 겨울 가축의 먹이로 저장된다. 건초를 말리는 건 아주 중요한데, 습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지 않은 건초는 상할 위험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연발화가 더욱 큰 문제이다. 건초에 함유된 미생물의 호흡으로 열기가 발생하고 그 열기가 높은 압력으로 응축된 환경에서 외부로 해소되지 못하면 결국 건초에 저절로 불이 붙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농가에 발생하는 화재는 큰 위험이다. 농가에는 사람과 건초 창고 이외에도 많은 수의 가축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 갇히거나 매여 있는 가축들에게 화재는 치명적이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언젠가 친척의 농가에서 건초 화재가 발생했을 때 결국 그의 사촌이 총을 가져와 상처 입은 가축들의 고통을 직접 덜어주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이제 곧 우리의 오두막 앞 들판의 풀은 베어내질 것이다. 온 들판에 퍼지는 향긋하고 촉촉하고 씁쓸하고 진한 풀냄새, 그것은 곧 자신의 어린 시절 냄새라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말했다. 커다란 기계가 며칠 동안 들판을 오가며 풀을 뒤집어 말리다가 어느 날 마침내 거짓말처럼 앙상하게 깎인 들판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커다란 건초 뭉치들만이 독일 농촌 특유의 풍경을 만들어내다가, 집채만한 트랙터가 건초를 싣고 가버릴 것이다. 그리고 다시 들판에는 캐모마일 꽃송이들과 함께 여린 풀들이 자라나기 시작하리라. 그리고 8월이 되면 건초 만드는 일련의 과정들이 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들판을 산책하면서 수레국화와 양귀비, 그리고 보라색 들풀을 꺾어 풍성하게 꽃다발을 만들었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들꽃과 풀로 커다란 다발을 만들어 테라스 기둥에 매달아놓았다. 테라스 뒤편 투야나무 울타리로 해가 지는 저녁마다 풀꽃다발은 불그스름한 석양빛 속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반짝였는지. 그 시기 새들이 종종 우리의 테라스로 찾아왔다. 꽃다발 속 알갱이가 여문 싱싱한 풀씨를 먹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 만든 풀꽃다발을 기둥에 걸고 이전의 다발은 화로 속으로 던져넣었다.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마른 풀줄기가 들어가자 화르르 소리와 함께 뜨거운 불길이 엄청난 기세로 높이 솟아올랐다. 동시에 어떤 기억이 함께 불처럼 솟아올랐다. 나는 소스라치며 뒷걸음쳤다. 오래전 어느 날 당신으로부터 온 편지…… 그 순간 문득 작별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특정 시기에만 국한된 개별 사건이 아니라, 삶의 시간 내내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비밀의 의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일생은 그것을 위해 바쳐진 제물이었다. 우리가 평화롭게 정원의 흙 위로 몸을 기울인 동안, 당신의 몸 위로 빛과 그늘이 어지럽게 얼룩지는 그 순간에도. 작별은 바로 지금, 우리의 내부─숲안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궁극의 사건이었다. 배추흰나비의 애벌레가 몸을 구부리면서 당신의 목덜미 위를 느리게 기어간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집어올린다. 평화와 고요. 오직 빛과 호흡만이 있는 순간. 지금 당신이 불타고 있다는 증거인가? 글쓰기는 작별이 저절로 발화되는 현장이다. 그 아래 아직 당신의 발자국이 움푹 팬 채로 남아 있는 죽은 딱총나무가 내 눈앞에서 저절로 불타기 시작한다. 우리는 우리의 내부─숲안쪽─로 간다. 당신의 정원용 장갑은 나무 울타리 위에, 그리고 흙 묻은 장화는 테라스 앞에 있다. 당신의 정원 가위는 펌프 옆에 둔 채로 잊혔고 나는 당신을 잊고 있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던 중이라는 사실을,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지! 나는 서둘러 장화를 벗고 집안으로 들어가 오래전에 중단했던 편지를 이어서 쓰려 한다. 편지는 서가의 두번째 칸, 일기장과 엽서와 메모지들이 쌓인 곳에 있을 것이다. 어둑한 집안의 그늘 속에서 나는 분주하게 서가를 뒤진다. 언제인가의 겨울, 내가 당신에게 쓰다가 멈추어버린 편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책상 위를 더듬어 펜을 찾아내려고 한다. 침실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 사뮈엘 베케트의 라디오극. 나는 편지에 이어서 쓸 것이다. 나는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고, 방금 내 정원에 배추흰나비 애벌레의 몸으로 찾아온 당신을 알아보았노라고.   


이것은 오래전에 쓰다가 중단한 편지이다: 해 질 무렵 빛은 테라스의 호둣빛 탁자에 머문다. 기나긴 여운을 가진 하루의 짧은 순간, 당신은 테라스에서 스케치에 열중하고 있었다. 당신의 입에서 뿜어져나온 하얀 입김이 보였다. 당신이 콜라주 작업을 위해 잡지와 신문 광고지와 팸플릿 등에서 오려낸 사진 더미가 탁자 위에 있었다. 가장 위에 놓인 것은 손가락처럼 작은, 납작하게 얼어 죽은 뱀이었다. 오늘 나는 양동이에 물을 데워 빨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쥐가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는 벌어진 문틈에 판자를 덧대놓았다. 거실에 산더미처럼 쌓인 당신의 그림들을 치우자 그 아래에서 감자 바구니를 발견했다. 나는 상한 감자를 골라냈고 당신은 그것을 정원 한구석 퇴비 더미에 파묻었다.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욕망으로, 우리는 금식을 시도했다. 침실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 사뮈엘 베케트의 라디오극. 

겨울 내내, 우리는 거의 매일 숲과 호수로 산책을 나섰다. 호수의 물은 모랫바닥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투명하지만 나날이 검게 어두워졌다. 물속에는 황금색 갈대풀들이 섬처럼 무리지어 있었고 숲의 나무들은 잎을 잃었다. 이제 숲에 들어선 사람은 멀리 호수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호수의 수면은 안개가 덮였다. 짧은 햇빛이 비치는 날이면 호수의 물은 맑고 푸른색으로 변하며 흰 구름과 호수 건너편의 풍경이 그대로 선명하게 물속에 담겼다. 저녁이 되자 머리 위로 야생 오리떼가 커다란 V자 형태를 이루며 하늘을 날아갔다. 오리떼들이 사라진 뒤에도 목쉰 울부짖음은 오래오래 우리의 귀에 남았다. 때로 우리는 겨울 호밀밭이 펼쳐진 숲 가장자리까지 갔다. 아주 멀리 호밀밭 가운데 노란색 노루 세 마리가 서 있었다. 노루들과 우리는 멀리서 서로를 지켜보았다. 묽은 잉크와 같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숲 뒤편으로 석양빛이 섞인 어두운 구름이 덮여 있었다. 들판 가장자리 사냥꾼의 감시대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듯 흐릿해져갔다. 풍경은 고요히 얼어붙은 그림 같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모두 정물이었다.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노루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둠에 섞여든 안개가 호밀밭 위로 번져갔다. 우리가 안개의 베일을 걸치고 걷는 동안, 노루들은 숲안쪽으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숲안쪽에 있었다. 내가 계속해서 쓰기를 바란다고 당신이 말하는 것이 오래오래 내 귀에 남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영영 작별하는 건 아니겠지요! 하고 내가 외치듯이 말했다. 갑작스러운 정적이 우리를 둘러쌌다. 우리는 숲안쪽에 있었다. 우리는 발목이 없다. 나무들은 안개의 베일을 걸친 뼈들이었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