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참지 않은 것: 시작

참지 않은 것: 시작


나는 다시 시작하고 싶어. 

 

내가 시작한 것에 대해서 적어보겠다. 최근의 것으로. 태어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으니까. 너무 멀지 않게. 


지난달. 새 산문집 계약, 새 프로젝트(비밀임), 미숫가루 먹기, 사랑. 

이번 달. 유튜브, 사랑. 


적고 보니 몇 되지 않아 당황스럽네. 참지 않은 것을 많은 시작이라고 적지 않아서 다행이다. 시작을 좋아하지는 않아. 마음을 먹어야 하니까. 그렇다고 큰 긴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무섭기도 해. 하지만 기대도 돼. 작정은 있으면 좋겠지. 없어도 가능할 거야. 이렇듯 시작을 두고 아무 생각이 없기도 하고, 너무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깊은 생각은 잘 안 된다. 생각을 깊이 끌고 가려는 순간 감각이 둔해지고 정신이 흐려진다. 생각이 생각 사이로 빠져나간다.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나지 않는 소설의 제목처럼, 중학교 그 아이의 이름처럼. 생각은 붙들수록 훼손된다. 마침내 거의 전부를 잃게 된다. 가끔은 너무 아무것도 남지를 않아서 꿈을 꾸는 것 같아. 우울을 오래 겪으면서 그렇게 됐다. 상담 선생님은 자연스러운 증상 중 하나라고 하는데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불편함이 크다.


내가 시작을 참지 않는 것은 미루는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미루고 또 미루면서 살아왔으니까. 지금도 미루고 있으니까(누워 있으려고). 미루는 일은 인과를 가지고 돌아와 나에게 대가를 요구했다. 받아 마땅한 벌처럼. 사과와 자책을 반복했다. 대가를 치르는 일은 몹시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됐다. 두려움이 원동력이 된다는 거 너무 짜증나고 싫다. 나는 시작을 기쁨으로 하고 싶다. 등을 미는 기쁨의 손바닥으로부터 따뜻한 기운을 얻고 싶다. 내 시작의 대부분은 시작하지 않기를 견디지 못함인 게 아쉬워. 그게 기쁨이면 얼마나 좋을까?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가지고 싶다. 시작은 미래로 가는 일이고 때로 미래가 우리의 불안이 되는 일 있지요. 동시에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면 불안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오지 않을 미래에 불안하지는 않으니까. 미래는 있다고, 미래에 내가 있다고 낙관하는 사람만이 불안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또 불안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는 것 같다. 미래는 오니까. 오고 있으니까. 새 불안이 끊임없이 생기기야 하겠지만 미래가 도착함으로 끝장을 내줄 것이다. 그게 든든하게 느껴질 때 있다. 멸망마저 미래라는 것이. 

 

불안이 허물어지는 순간은 왜 기억나지 않을까? 잘 기억이 난다면 여러 번 재생을 하면서 용기를 얻을 수도 있을 텐데.


시작이라고 여기는 것과 시작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반복과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여러 번 겪은 일을 시작이라고 잘 여기지 않는 것 같아. 일상 같은 것. 보다 새로운 것, 미지로 출발하는 일을 시작이라고 명명하는 듯하다. 


어렸을 때 나는 또 시작,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조심성 없이 움직이고, 부주의하고 태만하고. 해괴 엉뚱한 소리를 하고. 그러다 너무 질문을 많이 쏟아서 그랬다. 정정한다. 최근에도 많이 듣는다. 나는 거듭해서 나이네. 그렇다면 반복과는 상관이 없는 걸까? 어렵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앞선 생각이 지워지고 막 떠오르려던 의식이 허물어진다. 또 시작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은 오전 6시 14분이고 날이 밝기 시작한다. 나는 몸을 뒤척이면서 서서히 이불을 밀어낸다.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팔을 천장으로 닿을 듯 뻗어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창을 열고 바람을 들이기 시작한다. 시작이 너무 많다.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면 너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몸 위의 점처럼, 동네의 국밥집처럼.(면적 당 국밥집 개수 되게 많지 않나요? 우리 동네만 그런가.) 최근 서울에서는 ‘사랑벌레’라는 날벌레 개채수가 많아서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환경 정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까 우리 모두 너그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살지도 못한다고 하니까. 


어떻게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마하듯 살아갈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저지른 잘못과 허물을 무마하면서. 언제까지고 수습을 하며 꼬리를 쫓고 있어. 그러다가 끝이 날 것 같았다. 시작도 못 해봤는데요.


내가 아무리 치워도 너저분한 책상 같았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열을 맞추고 펼친 것은 곱게 접고 서랍을 비우고 걸레로 상판을 훔치고 나서야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책상. 정확히는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책상을 치우다가 지난 친구들의 편지를 읽고 일기장도 읽고 꽂아둔 학습지의 배열이 마음에 안 들어 줄을 여러 번 바꿔 세우다가 결국 지쳐 침대로 나자빠졌다. 지금이 22분이니까. 딱 38분만 자고 일어나서 공부를 시작하는 거야. 진짜야. 이제 시작만 남은 거야. 잠에 들었다 일어나면 거의 끝장이 나 있었다. 


나는 더 나아짐과 덜 보잘것없어짐 중에 덜 보잘것없어짐을 택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은 보잘것없음이 내 발목을 잡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아진다 한들. 내 지난 보잘것없음을 조금이라도 닦고 깨끗이 한 다음에야 진정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을 잘 정돈하고, 깨끗이 시작하고 싶어. 시작은 깨끗한 것이야. 깨끗한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야. 그게 제대로야. 그런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제대로 나아간다는 것은? 그건 결과론적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다시 시작하고 싶어. 

 

오늘은 병원에 가야 한다. 정기적으로 받는 상담 진료 때문이다. 

집을 나서자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됐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가는 내내 시작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5번 출구로 나간다는 것이 1번 출구와 2번 출구 앞에서 서성이게 됐고(계속 시작을 생각하느라 5번이 아닌 것을 보면서도 그랬다) 병원 대기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작을 생각하느라 정작 진료 시작 시간을 잊는 바람에 선생님이 나를 찾으러 오게 만들었다. 시작과 작별의 ‘작’은 같은 ‘작’일까요, 선생님? 상담 끝나고 제가 찾아볼게요.


상담실에서 나는 삼인용 소파에, 선생님은 검은색 일인용 의자에 앉는다. 착석을 마치면 선생님은 부드러운 얼굴로 나를 응시한다. 선생님의 머리뼈도 나와 비슷한 강도를 가지고 있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딱딱한 뼈 위로 부드러운 표정이 떠오를 수 있을까? 믿을 수 없는 상태로 질문을 주고받는다. 오늘은 무슨 얘기로 시작을 하게 될까? 


상담은 늘 내가 먼저 시작한다. 시작 전에 가지게 되는 약간의 침묵을 견디지를 못하고 입을 열고 만다. 침묵이 어려운 것은 아니고 성미가 급하기 때문이다. 나는 성질을 죽일 필요가 없을 거야. 가만히 놔두면 저를 못 이기고 알아서 숨이 넘어갈 테니까. 갈치가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갈치는 성질이 급해 뭍으로 올라오면 바로 죽기를 시작한다고. 그러고 보니 살아 있는 갈치를 만나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상담은 아무래도 내 이야기를 하는 자리이니까.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할 것도 같고. 빨리 상담을 끝내고 집에 가서 눕고 싶기도 했다. 아무튼 오늘은 선생님이 먼저 시작하도록 가만히 있을 작정을 해본다.

*

선생님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다가 또 참지를 못하고 내가 먼저 선생님, 건강히 지내셨어요? 시작을 해버렸다.

*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를 반대편으로 밀어낸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고 끝을 생각하다가 과연 시작의 반대는 끝인 걸까? 시작하지 않음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다. 시작은 하는 것이고 끝은 보는 것이니까. 반으로 접었을 때 꼭 매치가 안 된다. 시작함과 시작하지 않음은 나란히 두는 게 더 좋아 보인다. 


시작을 참지 않는 이야기가 이렇게 길고 장황해질 줄은 시작 전에는 몰랐고요. 끝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역시 시작의 반대가 끝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참지 않은 시작에 관해 더 써야 하는데. 시작은 취소할 수 있지만, 시작하지 않는 것은 취소할 수 없음에 대해서 쓰고 싶은데. 후회조차 할 수 없음이 깊고 검어서. 후회조차 하지 않는다면 내가 망가질 것 같았던 마음에 대해 쓰고 싶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무튼 나는 미루기에 대한 두려움, 급한 성질로 말미암아 시작을 참지 않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시작의 ‘작’과 작별의 ‘작’은 같은 한자를 썼어요. ‘만들 작’을 쓰더라고요. 시작은 비로소 만드는 것이고 작별은 헤어짐을 만들고요. 둘 다 무언가를 만들어 이루는 일이었어요. 


이제 나는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다. 계속 시작하고 싶다. 꾸준히 만들면서 미래로 가고 싶다. 그러면 비로소 나는 만들어질 것 같다. 


마음을 다 잃게 된다고 해도.

 

참은 것: 재미없는 대화 


감염병 시대. 사람을 새롭게 만나는 일이 귀하다. 드물게 만남의 일이 있어 대화를 나눴다. 모든 대화가 즐겁거나 유익할 수는 없다. 사람의 성품이나 언어에 문제가 있기도 하고. 어울리기에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번 만남은 재미가 조금도 없었다. 나는 재미있는 것이 좋아. 재미없는 일은 안 귀하고 내 시간은 귀하다.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도 참고 대화를 이어간 것은 인간을 면으로 만났을 때의 예의도 물론 있겠지만 상대에 관해 마침내 무엇이라도 얻게 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지리멸렬한 영화의 반전을 기다리는 것처럼. 책을 완독하려는 것처럼. 기대를 동반한 의무감이 있다. 최근에는 그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못했다. 그게 또 자책이 되어 재미없는 대화를 참게 됐다. 그러나 기운만 다 소비하고 말았다.



참지 않은 것: 아픔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더운데 몸 관리 잘해. 


나는 어디가 아팠다. 어디도 아프고 어디도 더해 아팠다. 그렇게 몹시 몸이 아픈 상태로 메시지를 받았고 웃음이 푹 났다. 


몸이 아프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 어디를 특정하기 힘들다. 속이 메스껍고 현기증도 있다. 이렇게는 못 견뎌. 침대에 누웠다. 누워도 거북스럽고 영 편안하지를 않다. 자세를 바꿔본다. 돌아눕는 데에도 한참이 걸린다. 바위에 걸린 듯 잘 되지 않는다. 눕는 것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인데. 너무 슬퍼. 몸을 가진 것이 슬프다. 몸을 없애고 싶다. 제일 처음에는 목을 뽑아야지. 그다음에 어깨를 던지고 등을 도려내. 내장을 싹 걷어내고 사뿐해지는 상상을 한다. 그러고 나면 나는 몸이 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도 몸을 잃지는 말자. 얼마 안 되는 내 것이니까. 몸의 아픔에 집중해본다. 몸이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던데. 나는 입을 다문 것처럼 근육이 답답하고 어깨가 내려앉는다. 묵직한 통증이 가라앉을 곳이 없어 온몸을 돌며 서성인다. 귓속은 뜨겁고 손발은 싸늘하다. 아플 때 아픔을 제일 잘 묘사할 수 있는 것 같아. 기쁠 때 기쁨을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듯이. 기억 말고 감각하는 거. 나는 밖에도 잘 나가지를 않고 사람도 잘 만나지를 않고 별로 직접 감각을 할 일이 없다. 그러면 자꾸 먼 기억을 끌어와 만지려 하게 되고 기억은 왜곡이 쉬워 끊임없이 의심을 하는 상태에 놓인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이게 참 귀한 기회 같은데요. 그래도 나는 아픔 안 참는다. 바로 약 먹었다.


나는 아픔을 안 참는다. 기미만 보여도 약을 먹고 아픔이 일정 수준 이상(기준이 몹시 낮음)에 닿으면 곧바로 병원에 간다. 겁이 많고 성질이 급해 그런 것 같다. 편리에 몸을 잘 맡기는 불성실도 한몫하는 듯하다. 약은 삼키면 되고 병원은 전문 의료인이 돌봐주니까. 현대 의학 최고. 


△△는 곧 죽어도 약을 안 먹었다. 병원도 안 갔다. 밤새 머리통을, 배를 움켜쥐고 끙끙댔다. 약을 왜 안 먹는 거야? 내성이 겁나서 그러는 거야? 요즘 약들은 잘 나와서 내성도 안 생긴대. 그거 다 거짓말이래. 현대 의학을 좀 믿어봐.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듣지를 않는다. 나는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미련스러워 보여 속이 상한다. 병원이 싫은 것은 아니고 견딜 만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왜 견디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프면서 성장을 한대. 성장하려면 아파야 한대. 성장통, 알지? 그래서 수행을 하잖아. 부러 아픈 상황에 자신을 넣고 견디는 일을 하잖아. 나는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안 아팠으면 좋겠다. 왜 아파? 안 아프고 잘 사는 사람들은 그럼 성장이 없나? 나는 아픔 없이 살고 싶은데. 그게 안 돼서. 지난날에 아팠던 것들도 다 뜯어내고 없던 일로 하고 싶었는데. 나는 자주 아프고 앞으로도 아프겠지만. 아픈 후에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겠지만 그것은 아픔 때문이 아니고 나의 밝은 눈과 마음이 배움을 찾아낸 덕이다. 


다 내 덕이다.



참은 것: 선물


내가 선물을 한다면 가능한 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고 싶다. 그게 내 사랑의 방식 같다. 원하는 것을 주는 것. 또한 내 편리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쉽고 좋은 것이 좋고, 묻지 않고 선물을 고르는 일은 짐작이 필요하니까. 짐작은 어려운 일이니까. 빗겨나감, 벗어남에 대한 두려움이나 답답함이 싫다. 애를 써 짐작이 사실에 근접하더라도, 그것이 최선은 아닐 것 같다. 준최선에 다가가는 일 같다. 


친구에게 빈티지 그릇 한 점과 유리로 된 잔 한 조를 선물 받았다. 잔은 물컵 같기도 하고, 커피잔 같기도 한 것이 무슨 보증도 있고, 수십 년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릇은 더 오래되었다고 했다. 구하기 어려웠다는 말은 붙이지 않았지만 몹시 소중한 것을 다루는 눈, 그 눈 속의 안도에서 애를 썼구나 싶었다. 친구는 손에 들린 그릇과 내 안색을 살핀다. 네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긴 했는데…… 


안 좋아한다. 나는 빈티지에 대한 지식이 없고 관심도 없다. 되레 낡은 것에 대한 거리낌이 있다. 귀신이 붙어 있을까봐는 아니고, 남이 쓰던 것을 자꾸 물려받던 가난한 기억 때문이다. 그런 기억이라면 충분히 가지고 있으니까. 수집과는 전혀 다르지만. 역사 같은 것도 잘 와닿지 않는다. 나와 나를 둘러싼 것들. 심지어 부모님과 내가 역사로 만들어졌고, 그래서 나 자신이 역사의 증거에 다름없음에도.


무엇이든 최신의 것을 좋아한다. 늘 과거보다는 미래가 더 좋다. 나빠짐에 대한 절망보다 더 나아짐에 대한 기대가 있은 후로부터 그래. 곧잘 실망하게 되면서도. 과거가 나에게 별다른 위안을 주지 않기 때문 같다. 솔직히 말하면 과거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게 중요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너무 끔찍해서 외면하는 중인지도 몰라. 그러면서 돌아가서 살아보고 싶어 한다. 이상한 일이면서 이해가 된다.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은 계속 미래를 가지고 싶기 때문 같아서. 타임머신을 탄다면 미래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미래를 가능한 한 전부 겪고 싶다. 빈티지 그릇에 큰 감흥이 없다는 것을 쓰려다가 멀리 와버렸다. 


선물을 받은 것 중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선물을 준 상대에게 물어보고 버린다. 버리기에 아깝다 싶으면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도 좋은지 묻고 넘긴다. 필요가 충분하지 않은 물건을 버리거나 양도하는 일에 나는 미련이 없다. 그러나 나의 미련과는 관계없이 선물은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선물에는 마음이 담겨있을 수 있으니까. 나도 가끔 담곤 하니까. 그게 그냥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 때로 거추장스럽다.


선물에 담긴 마음을 짐작해야 해. 그애가 선물을 고르며 나를 짐작했듯이. 그런데 나는 짐작이 어렵고 어려워서 싫네. 짐작은 내가 가진 정보의 총합을 대입해야 하는, 정교하면서 하나도 안 정교한 계산법이다. 틀리기가 쉽고 빗나감을 각오하는 일이다. 최선에 명중할 수 없다. 준최선에 닿도록 애쓰는 일은 서글퍼. 그러나 준최선임을 알면서 계속 다가가려는 마음을 다정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 그것이 꼭 최선일 필요는 없겠지. 참 서글픈 다정함이다. 


빈티지 그릇은 여태 가지고 있다. 자주 꺼내 쓴다. 친구의 다정함이 서글프기 때문은 아니고, 딱 그 한마디 때문에 그랬다. “네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기는 했는데……” 그렇다면 네 눈에는 참 좋았다는 말이구나. 네 마음에 꼭 들었다는 말이구나. 네가 마음을 줬구나. 그러니까 내가 가진 것은 그릇이 아니고, 네 마음이네. 네 사랑의 방식은 네 마음을 주는 것이구나. 그것이라면 두고 보겠다. 귀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