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참은 것: 친구들의 조언

참은 것: 친구들의 조언

 

1. 쩡찌야, 자니? 나는 살아보니까 그렇더라. 남들이 하는 것들 꼭 할 필요가 없다고. 남들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남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너는 네 행복을 찾으면 되는 거야. 초조하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어. 네 행복을 먼저 생각해야 해. 네 행복이 일 순위야. 주변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들리잖아. 누구는 이거 하고, 누구는 또 저거 했고. 그런데 남들이 하는 말들 그런 거 다 소용없어. 듣지 마. 그냥 안 들어도 돼. 자니? 너는 꼭 행복해야 해. 남들이 하는 말 듣지 마. 나는 진짜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쩡찌야. 행복해야 해. 우리 쩡찌.

 

2. 운동해. 운동 참 좋더라. 내가 요새 크게 참을 일이 있었거든.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단 말이야. 너도 알잖아, 그거. 자꾸 생각이 나는 거야.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무력감이 엄청 들었단 말이야. 운동하니까 그게 싹 없어져. 몸이 너무 개운하니까.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려면 결국에는 운동을 해야 해. 나도 살려고 운동 시작한 거야. 잘 살아보려고. 잘 살아보려고 운동하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네가 운동을 꼭 했으면 좋겠어. 너 이러다가 큰일날 것 같아. 진짜로 너 죽을까봐 걱정돼. 너 나 걱정시킬 거야? 운동 진짜 좋아. 내가 아는 운동 선생님이 있는데. 너무 잘해줘. 그냥 운동만 시키는 게 아니라 내 몸에 대해서 알려준단 말이야. 나는, 여기 보이지? 여기 허벅지 바깥 근육에 힘을 많이 준대. 골반도 좀 비뚜름하고. 쩡찌야. 나랑 같이 운동하자. 이렇게 그만 좀 누워 있고……

 

 

참지 않은 것: 마구잡이

 

 

중한 결정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고심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되레 너무 오래 마음을 쓴다. 합리를 재고 따지고. 손해를 덜고 이득을 더 볼 셈을 한다. 그렇게 질질 끌다보면 애초 무엇을 결정하려 했지? 가마득하고. 도무지 자력으로는 마음의 첫 자리로 돌아오지를 못하게 된다. 이미 생각을 더 해볼 기력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면 대강의 기분이나 충동에 결정을 떠맡기는 것이다. 그러고는 어떤 선택이어도 내 것이야, 그러면 된 거야, 미래의 내가 책임질 거야, 남은 힘을 기도하듯 모아본다. 비장한 마음을 하찮게 먹는다. 그러니까 이번 참은 것과 참지 않은 것의 목록도 어떤 호기를 가진 것은 아니다. 정확히는 가졌는데, 가지지 않게 됐습니다. 또다시 멀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것, 아주 마구잡이로 쓰기로 했어요.

 

어릴 때 수업이나 소풍에서 자유 시간을 가지면 마음이 힘들었어요. 도무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놀랍게도 다른 친구들은 각자의 일이 있어 보였어요. 삼삼오오 모이거나 흩어지면서요. 저는 늘 저에게 행동 명령이 주어지기를 바랐습니다. 취해야 하는 일이 없고서야.(,) 그러지 않고서는 도무지 쓸모가 없는 사람 같았거든요. 쓸모가 없는 것이 슬프지는 않았고요, 그냥 당황스러웠어요. 쓸모가 없는 순간의 공백은 너무 크고 저는 작았습니다. 뚜렷한 고통의 일이라도 주어졌으면. 그리고 고통에 불평하며 빈 시간을 채울 수 있기를 바랐어요. 생각을 해보면 그게 여유였던 것 같은데요. 그때의 저는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여유가 없었던 듯해요. 지금은 틈만 나면 누워 있고요, 자유 시간이 간절합니다. 누워야 하니까. 아무튼 지금은 저의 자유 시간이고 저는 마구잡이를 시작하려 해요. 그래도 읽어주신다면 큰 기쁨이겠습니다.

 

요 몇 주간은 몹시 고통스러웠다. 내내 고통이 이어진 것은 아니고 글을 쓰느라 책상에 붙잡혀 있을 때 그랬다. 그렇다고 내 고통에 잘 집중한 것도 아니었다. 소금이나 팥을 뿌리듯, 아무데나 눕고 나면 고통도 흩어졌다. 모래에서 바위를 짐작하는 일이 잘 안 됐다. 최초의 바위를 생각해. 최초의 바위는 아주 거대한 덩어리였을 거야. 몹시 뜨거웠을 거야. , , 바람, , 마음. 바위는 부서진다. 작게, 더 작게. 돌이 되었다가 자갈이 되었다가 마침내 모래가 돼. 바위는 모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흩어진 고통.

 

『주간 문학동네』의 글은 다 쓰고 나면 편집자 선생님께 먼저 전달한다. 선생님은 내 글에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는다. 틀린 맞춤법을 교정하는 정도이다(몹시 부끄러움). 그게 가끔 미치도록 불안할 때가 있다. 나는 늘 잘못을 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제 글에 정말 문제가 없나요? 너무 무서워요. 세상의 모두가 친절하고 다정하지 않으니까. 선생님처럼 헤아려주지 않으니까. 다들 나를 봐주면서 살지는 않으니까. 선의는 귀하고 벗기가 쉽지요. 보석으로 만든 목걸이처럼.

 

내 그림 밑으로 악플이 달린 일 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잘 까먹음.) 열은 받아서 다른 계정으로 접속해 욕을 되갚아주려 했다. (내 이름을 걸고 욕을 하면 품위가 떨어지니까.) 너는 죽었다. 내가 문예창작학과 왜 나온 줄 아냐? 너한테 욕하려고 나온 거다. 너는 내 등록금 삼천만원어치의 욕을 먹게 될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되갚지 않았다. 마음을 고쳐먹어서는 아니고, 내 다른 계정의 이름 때문이었다. 쩡찌를 뒤집은 찌쩡. 손쉽게 쩡찌의 다른 계정임을 유추할 수 있어 그렇게 못 했다. 왜 나는 인터넷 실명제를 하고 있을까? 계정을 새로 만드는 방법이 있지만 나는 늘 성의가 부족하고 그러고는 말았다.

 

나는 문제가 있다. 문제가 많다. 문제를 나열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그게 약점이 되니까. 세상에는 남의 약점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그게 별로야. 다정으로 돌려줄 마음이라고 해도. 약점을 보살피기보다 강함을 찾아주었으면 한다. 나의 약점을 함부로 수집 및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의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렇게 산문을 연재하면서 나는 내 문제를 드러내게 된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감추는 일보다 드러내는 일에 가까우니까. 그리고 그것은 드러내는 일이 나에게 더 쉽기 때문이다. 감추는 일의 성의는 감춘 것을 기억하는 일이고, 나는 기억력이 나쁘고 성의가 없다. 기억력이 나쁘고 성의가 없는 것도 내 문제이다. 문제 이야기는 이제 그만할게요. 어차피 계속하게 될 것 같아서요. 부디 저의 강함을 찾아낼 수 있기를.

 

지난 〈참은 것과 참지 않은 것의 목록〉 연재에 편집자 선생님이라고 쓴 것을 편집자가라고 선생님이 고쳤다. 나는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그것을 선생님이 고치도록 둔 것은 조금 후회가 된다. 물론 선생님이 현명하게 판단한 것이겠지만. 『주간 문학동네』의 글은 불특정의 모두가 보는 것인데, ‘선생님편집자보다 더 내밀하고 각별한 관계를 포함한 호칭이어서 글을 읽는 독자를 소외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문법에 맞기 때문도 같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이 선생님을 안 고쳤으면 좋겠다. 그냥 그게 제 마음입니다. 많이 이상하지 않다면요. 저는 좀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듣기는 하지만 늘 이상한 것을 무서워합니다. 많이 듣는다고 무서움이 줄어들지는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저는 제가 별로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저는 저의 대부분이 이해가 가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불가해로 이해가 갑니다. 가끔은 저 혼자 보지 못하는 귀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내가 귀신인 건가?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이상한 사람의 법칙처럼요. 사람이 모이면 이상한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고, 만약에 없다면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이상한 보존의 법칙이 있다고요.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바람이 많이 분다. 스스, 웅웅. 지상에서 달리는 소리. 떼가 아니면서 여러 개의 소리. 바람은 한 개일까? 그런 것에 골몰하곤 한다. 바람이 한 개라면, 몸이 하나인 나도 이렇게 여러 겹의 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스스, 웅웅. 바람 장난 아니야. 메시지를 받았어. 그런데 나는 지금이 오히려 장난 같다. 장난할 때는 흥분에 정신과 기분이 높이 올라가고 그러다가 정도를 넘을 때가 많으니까. 꼭 지금 부는 바람처럼.

 

바위는, 바람은 왜 시작됐을까? 절대로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바람도 바위도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왜 자꾸 묻게 될까? 답을 기다리지 않는 물음이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답이 주는 위로가 있는 것 같다. 돌아오지 않는 것이 답이므로. 마구잡이로. 짐작하면서 선의를 건네게 되는 것 같다.

 

내 시작이 궁금해. 나는 왜 시작됐을까? 무엇을 바라고 시작한 것일까? 내가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면서. 무엇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고 가야 한다는 것이 억울할 때가 있다. 무섭다. 내가 많이 드러나게 될 것 같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를 뺀 모두가 알게 될 것 같다. 화가 날 것 같다. 화가 나는 것은 무서우니까. 무서울 때 해야 하는 일을 모르니까. 그게 자유 시간 같아서. 화로 도무지 어쩌면 좋은지 알 수 없는 마음을 채우려 한다. 무서울 때 기쁨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걸까? 검은 곳을 지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렇게나 콧노래를 하면서. 사랑의 가사를 붙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근데 그렇게 안 할 거 같다. 살려달라 악이라도 지르면 다행 같다. 목구멍에 숨만 간신히 붙어 있을 것 같다. 숨소리. 숨소리. 스스.

 

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포항에 갔습니다. 저는 포항은 바다에 근접하니까 포항의 항이 당연히 항구의 항인 줄로 알았는데요, 아니더라고요. 포항시청 홈페이지에서는 이렇게 적혀 있어요.포항이라는 동네 이름은 18세기 초 통양포만호영의 남쪽에 자리를 잡은 대흥산(현재는 대안골짜기)에 뿌리를 둔 형산강 북쪽 하구인 포항강(현재 칠성천) 부근이 이전에 갯미기라고 불린데서 유래했다고 추정된다. , 갯미기는 갯목을 뜻하는데, 갯은 개울, 목은 머리에 해당된다. 이를 한자로 옮기면 개울포()와 목 항()이 된다.” 아무튼 항구의 항은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친구들은 물회를, 저는 죽을 먹고 영일대로 갔어요. 영일은 포항의 옛 지명이라고 하네요. 그러면 대는 뭐지? 저는 영의 일대라고 생각했는데요. 아무튼 영일대 앞으로는 사람이 지날 수 있도록 큰길이 있고요, 아무데나 앉을 수 있게 돌출된 구조물이 많았어요.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 다시 찾아 앉았더니 멀리 전광판을 틀어놓았더라고요. 어디서도 볼 수 있도록 크게 만든 전광판이었어요. 전광판은 사연을 따로 받는 것인지, ××모임 파이팅이라고 적혀 있었는데요, 저도 속으로 작게 파이팅! 따라 해보았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사체를 생각했어요. 바다에는 사체가 많겠지. 너무 많겠지 하고요. 꼭 사람 아니더라도 죽은 성게의 껍데기 같은 것 있잖아요. (방패연잎성게의 표백된 외골격을 인어의 동전이라 하는 것이 나는 너무 가증스럽다. 내 뼈 보면서도 그러면 어떡해. 너무 싫을 것 같다.) 파이팅!을 외면서 동시에 바다의 사체를 생각하는 것이 저의 이상한 점일 수도 있겠어요. 스스로는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데 사체가 바다에만 많은 것은 아니고요. 포항에 간 이야기는 또 산문에 써야 하니까 여기서 그만할게요. 그때는 사체 말고요, 친구들 이야기를 하게 될 듯해요. 살아 있는 나의 친구들. 정말로 인어의 동전이 존재한다면, 저는 제 친구들이 아닐까 해요. 우연으로 만났고 귀합니다. 동시에 잃을 수 있어 조심해야 하고요. 인어가 흘리고 찾지 못한 것처럼.

 

바다는 크고 나는 작았다. 할일은 딱히 없었어요. 바다를 바라보는 일 말고는요. 물속에 들어가자니 갈아입을 옷을 따로 챙긴 것도 아니고. 그냥 모두가 바라만 보는 바다가 있잖아요. 헤엄치는 바다 말고요. 쓰다보니 좀 이상하네요. 그런 바다가 어딨어? 아무튼 저는 좀 심심하고 눕고 싶었는데요. 바위와 모래가 사방에 많아 눕지 못했거든요. 아주 샅샅이 흩어져서요. 누울 틈이 없었어요. 친구는 한적하고 좋다고 그랬어요. 이상한 기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