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참지 않은 것: 죽고 싶다는 말

참지 않은 것: 죽고 싶다는 말


죽어가고 싶은데 이미 진행중이다. 하는 수 없이 죽어가면서 누워 이 글을 쓴다. 죽어가고 있다. 죽음은 느려서 터져가는 중이다. 할머니들은 곧잘 이제 죽어야지 하는데 나는 그 할머니들 말이 다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참지 않는 것뿐이라고. 그러고 나서 돈 챙기고 약이니 즙이니 삼키고 하는 그거 다 진실이고 진심이다. 내가 먹는 영양제는 선물을 받은 것인데 자양과 강장의 효과가 뛰어나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다. 사람들은 똥 얘기는 웃는데 죽는 얘기는 안 웃는다.

하나는 진짜로 하고 있고 하나는 결국 그렇게 되기야 하겠지마는 당장은 어쩔지 모르는 건데. 그치. 그러니 불확실성 때문에 웃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확실할수록 웃지 않는다. 확실시될수록 불안해하고 침묵한다. 죽음이라는 거. 이 산문은 내가 지금 혼자 쓰고 있는 거니까 죽고 싶다고 쓸 수 있고 참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나를 위해서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말을 별로 안 참았다 내가 너한테 사랑한다고 하지? 그거 다 죽어가면서 하는 말이야. 우리 오래 살자고 말하는 것도. 나 죽어가는 거 보면서 하는 얘기야. 그런 말 듣기 싫지. 근데 나는 가끔 그걸 소리 내서 말하고 싶다.

정원은 무성하다. 가끔 내가 내 자살 사고를 돌보아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활력은 죽어 없고 무성하기만 한 덤불을 가꾼다. 그러면 정원은 빚덩이처럼 불어나고 나는 꼬박꼬박 약을 먹는다. 나는 이 마음을 영영 키워가면서 훼손되지 않는 감정을 진짜라고 믿지 않기로 했다.

가끔 나는 내가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는 게 안타까워. 나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좋은 것들을 만나고 좋은 것들을 많이 얻었지만 마음이 아픔에도 끝끝내 남아서 좋은 것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아프기 이전 것들이 있다. 그것들까지 다 한데로 묶여버릴까봐. 내가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는 게 나의 너무 큰 정체성이어서. 내 작고 소중하고 오래된 것들, 아니면 불시에 발견하게 된 반짝이는 것들이 함부로 읽힐까봐 걱정을 한다. 그게 전부 같은 진주 귀걸이인 줄 알까봐. 그게 다 같지가 않다고. 몇 개는 내가 부수고 만 어금니 조각이라고.

 

참은 것: 친구의 애인 이야기

 

남의 연애 얘기 재미없다. 그게 재밌다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하나도 재미가 없다. 애초에 남에게 큰 관심이 없는데 남의 남에게 관심이 생길 리 없다. 그저 내 친구에게 해코지는 안 할까, 사랑에 빠진 친구가 눈치채지 못하는 유리조각을 골라내려고 지켜보는 거지 듣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게 잠자코 있다보니 여기가 다리 뻗을 자리구나 점점 더 친구는 애인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 사랑하는 친구의 앞에서 시늉을 하지 않으려고 애써 귀를 기울이다가 마침내 가슴이 아파지고 말았다.

지금 만나는 애인은 하는 일이나 하려는 일이 훤히 보인다고 한다. 그게 끔찍할 수도 있지 않니 하자 걔는 빤한 게 좋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걔가 빤하지 않은 세계에서 살아온 것 같아서. 그래서 빤한 것에 끌리는 것 같아서. 인간은 자꾸 자기가 가지지 못한 거, 거치지 못한 수풀의 수북함을 동경하고 좋아하니까. 복잡 다난한 세계에서 영영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얼마나 영원 같은지 영원에 가까운 고통을 주는지는 아니까. 그런 세계를 겪어온 것 같아서 마음이 쓰렸다. 하지만 사랑하는 친구를 쉽게 가여워하는 것도 내가 자주 저지르는 잘못 중의 하나이고 또 죄를 지은 나는 가만히 있기로 했다. 친구의 애인이 음식을 얼마나 남기는지, 그가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이는 돈과 시간이 지구 환경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사실, 수집하고 싶지 않은 정보를 겸손한 자세로 들었다.

 


참지 않은 것: 고양이 빠빠

 

사람 속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럼 사람 속 아닌 것은? 나는 나무 속도 모르겠고(전날까지 천방지축 뻗던 잎을 갑자기 떨구고 죽는다) 금붕어 속도 모르겠고(돌출한 눈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고양이 속도 모르겠다(진짜). 고양이 속은 정말 모르겠다. 특히 친구의 고양이, 빠빠의 속은. 빠빠는 아가 때 길에서 친구의 집으로 왔다. 빠빠는 작고 뜨거웠다. 몹시 뜨거워서 빠빠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운 순간 내 가슴이 펄펄 끓게 됐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주먹만한 것이 내 몸 위를 밟고 구르고 난리를 하더니 조금 자란 뒤로는 나와 슬슬 내외를 하였다. 성격이 바뀌기도 하는 걸까. 곧잘 장난을 걸고 주먹을 날리던 고양이가 예사로움을 넘어서 영 모르는 척을 했다. 사람도 변하니까. 괜찮아. 나도 많이 변했다, 빠빠야.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빠빠가 성묘가 된 이후로는 좀 심각해졌다. 심각해진 건 내 쪽뿐이다. 빠빠가 나를 모르는 척이 아니라 정말로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뒤였다. 생각의 증거. 빠빠는 일단 내가 오면 뭐가 왔나 살펴보기는 한다. 그런데 반응이 택배 상자만 못하다. 일단 얼굴을 빤히 본 뒤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전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다가가면 일단 가만히는 있지만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면 몸을 슬슬 뒤로 뺀다. 그러다 아주 자리를 옮겨버린다. 먼저 다가오는 일은 처음 현관문을 열고 나타날 때를 제외하고는 몹시 드물다. 그마저도 내가 오든 비닐봉지가 오든 상관이 없어 보인다.

괜찮아, 빠빠야.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고양이라면 어떨까? 아무래도 자기보다 엄청 덩치가 큰 생물이 어둑어둑 다가오면 무섭겠지. 그리고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고 들었으니까.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것도 싫을 거야. 두꺼운 바지를 입고 있어 항문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빠빠가 마음을 열고 다가와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 방향으로만 조심스럽게 저을게 펄펄 끓는 마음이 식을 때까지 아주 얌전히 손을 데우고 있을게 네가 놀라지 않도록 쉿이라고 말할게 은어를 가질게 아주 은근한 우리의 언어를

만드는 것을 법이라고 하자 그런 법이 어디에? 우리에 있는 것으로 여기고 지킬게 나의 아기 고양이

 

나는 몹시 뭉근하기로 했다. 꼭 인사를 하고 싶을 때는 빠빠보다 몸이 작아 보이도록 낮은 포복으로 기어서 다가갔다. 몸가짐을 조신하게 했다. 몇 년이 납작하고 느리게 지나갔다. 고양이 빠빠가 마음을 연 건지 안 연 건지 여전히 모를 때, 나와 다른 친구가 빠빠의 집에서 모이게 됐다. 다른 친구는 강아지를 기르던 친구였는데, 고양이를 보자마자 성큼성큼 다가갔다. 빠빠가 큰 눈을 껌뻑이며 얼어붙은 듯 자리에 섰다. 예뻐라! 예쁜이, 안녕?! 예쁜이 이름이 뭐야? 빠빠야.

내가 대신 대답했다. 다른 친구는 적극적인 인사를 마치고 고양이를 푹푹 쓰다듬었다. 무법자! 빠빠는 몸과 머리를 뒤로 빼며 슬금 피했다. 다른 친구의 손을 앙 물어보기도 했다. 애가 불편해하나봐. 무서워하는 거 아냐?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런데 정작 빠빠의 반려 인간인 친구는 가만히 있어서 나도 말을 얹지 않고 불안해하며 있었다. 십수 분을 야만의 손에 볶이던 빠빠는 다른 방으로 도망가는가 싶더니 슬쩍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예쁜이 나왔네~ 다른 친구가 몹시 반겼다. 물론 나도 반겼지만 평소대로 얌전히 속으로만 인사했다. 빠빠야…… 마음속의 인사가 들린 것일까? 빠빠가 내 쪽으로 발을 옮겼다. 빠빠가? 내 쪽으로? 빠빠야, 빠빠야! 마음으로 지르는 소리도 고양이는 들을 수 있는 건가? 내가 너무 크게 불렀니? 마음속이었는데? 순간 빠빠가 방향을 훅 바꿔 다른 친구의 다리에 몸을 비비고 고롱대기 시작했다. 어머, 신기하네. 얘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러는 애가 아닌데. 네가 정말 좋은가봐. 빠빠야, 그렇게 좋아? 어이고, 어이고. 빠빠의 반려 인간이 박수를 짝짝 쳤다.

! 나 이제 안 괜찮아. 이럴 수는 없다! 빠빠야! 내가 너를 몇 년을 사랑했는데, 쟨 처음 보는데?! 추악한 질투가 거세게 일었다. 너무 거세서 원망까지 솟았다.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내가 어떻게 배로 너한테 기어갔는데. 은근히, 너무 은근하다 싶긴 했지만 우리 나름 우리만의 언어로 교감하는 거 아니었냐? ? 근데 그게 빠빠한테는 별로 안 닿았나보다. 나는 나도 위하고 빠빠도 위한답시고 빠빠의 마음을 함부로 짐작하다가 내 마음을 주지도 못하고 빠빠의 마음을 얻지도 못한 것이다. 게다가 내 속이 문제였다. 내 속을 내가 알 거 같았다. 나는 빠빠를 위해서가 아니고 나를 위해서 얌전히 굴었다. 빠빠한테 상처 안 받으려고. 빠빠가 나를 저딴 야만의 잡것보다 못하게 대해도 실망하지 않으려고…… 잡것…… 다른 친구는 빠빠의 털 속을 거칠게 헤치고 귀 뒤를 벅벅 긁었다. 빠빠는 다른 친구의 무릎에 올라가 아주 자리를 잡고 손길을 받아냈다.

 

나는 이후로 빠빠에게 다가가는 것을 안 참게 됐다. 빠빠야, 언니 왔다! 빠빠야, 빠빠야! 부지런히 말도 걸고 빠빠가 약간 허락하는 듯 몸짓을 주면 나도 열심히 비벼봤다. 적극적으로 코를 박았다. 목을 긁어주고 장난감을 들고 설쳤다. 내 몸 내 목소리 살피는 거 아니고 빠빠를 더 살폈다. 빠빠야, 놀고 싶구나. 빠빠야, 배가 고프구나. 빠빠한테 자꾸 말 걸었다. 지금은 확실히 빠빠가 나를 안다. 왜냐하면, 아무튼 그렇다. 빠빠가 나를 안다는 것은 빠빠의 반려인 친구가 전해준 이야기지만, 아무튼 안다. 우리는 이제 통하는 게 있다.

 

 

참은 것: 추위

 

겨울을 좋아한다. 겨울에 겨울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추위를 참았다.

좋아하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더 자주 외출했다. 추위를 느끼려고. 겨울을 좋아하니까.

 

한겨울이다. 계절은 누구에게나 한가운데를 내어준다. 그게 좋다.

 

가장자리를 서성이곤 했어

비켜 있었어……

 

갈기갈기 찢어지는 추위를 원했지. 새로 태어나고 싶으니까. 새로 태어나기 싫으니까. 기분만 가지고 싶으니까. 겨울에 걸으면 살 속에 살이 또 있는 것 같아. 가슴속에 가슴이 있을 것 같아. 추위는 가운데가 있는 것 같아. 그게 좋다. 계절은 내가 가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중앙이다. 진입이 가능한 중심이다. 통과가 되는 힘이다. 계절이 영원히 훼손되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