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참지 않은 것: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하기

참지 않은 것: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하기


“밤 열한시 오십삼분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창을 열었다 이차선 도로, 차 다섯 대. 불 켜진 간판이 하나둘셋넷다섯. 지나가는 오토바이 둘. 가까이에 일곱. 멀리 수십의 빌딩. 일방통행의 골목. 선명해서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시시한 나도 좋다. 하지만 좋으면서 괴로울 때도 있는 거잖아. 가끔은 자신이 없다. 밥 먹는 거 빼고 다. 그냥 다 못난 거 같고 못하는 거 같고”


나는 자주 다 때려치우고 싶어진다. 인터넷에 올린 내 글과 그림 모두를 삭제하고 팔로워는 아까우니까 두고 잠적하고 싶다. 메일에 답장은 해야 한다. 확 죽어버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이 끊기면 곤란하니까. 책임져야 하는 한 사람 몫의 생계가 있으니까. 나를 기르는 데에는 비용이 든다.


가끔 눈을 감았다가 뜨면 오백 년이 지나 있었으면 좋겠어. 시간은 늘 어찌할 수 없는 힘으로 지나버리지. 거기에서 견딤을 지우고 싶다.


내가 견디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고 그뒤가 기대된다. 기대되는 게 이상하지? 그런데 너도 하려고 해봐. 진짜 기대된다. 공짜로 뭐가 생기는 거 같다니까. 그리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원숭이의 손.

나는 손도 빠르고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그런데 그냥 갑자기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있다. 콱 죽어버리면 되지 그런 생각도 한다. 그림 안 그려도 글 안 써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는 게으름이 지금 나를 그리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절대로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내 글과 그림을 읽는 독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불안정과는 관계없이 내 작품을 온전히 그들의 기쁨으로 느끼기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참는 것도 업무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하는 거 참는 거. 그게 목구멍 아래까지 올라와도 꾹꾹 누르는 거. 정말 못 견딜 것 같으면 안 보이는 데서 외치고 삭제하고 비벼 끄고 마는 거, 그런 거. 

근데 처음으로 말해봤다. 공개적인 SNS에. 나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사라져버리고 싶다고.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고. 그러나 어째서 그동안 말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세상에는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이 있지만 타인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또 굳이 말 못할 것은 뭔가 싶은 것들도 많다 여기며. 속이 시원했다. 좀 걱정이 되기는 했다.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내 의도를 선하게 받아들여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말 때려치우고 싶은 건 아니다. 그건 기분일 뿐이야. 오늘 기분이 나빴어. 기분이 나쁘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기분이었어. 내 기분을 달래달라고 말하는 건 아니고 그냥 내 기분이 그랬다고. 그 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봐. 



참은 것: 월요일


정확히 말하자면 월요일의 화가 될 것이다. 월요일은 나의 의지와 관계가 없다. 그래서 월요일을 참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참지 않은 것인가? 그래도 참았다고 할게. 참았으니까. 여러 번 생각해도 참은 게 맞으니까. 나는 일주일에 꼭 한 번은 낙담을 느끼고 월요일이 그렇다. 모든 시작이 그런 것 같다. 시작 앞에서 나는 일단 낙담한다. 꼭 떨어져야 기어올라갈 수 있다는 듯이. 바닥부터 기는 것만이 시작인 듯이. 실제로는 월요일이 나를 참아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주에서 가장 버벅거리고 게으른 나를. 느릿느릿 움직이고 뭐든 하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 나를. 

일요일, 이르면 토요일 밤부터 사람들은 월요일에 욕지기를 한다. 외국에도 월요일을 욕하는 관습이 있을까? 구글에 영어로 검색을 해본다. ‘먼데이’를 새긴 이미지는 슬프고 괴상하다. 총을 들고 있는 토끼, 코로 범벅이 된 아기, 울부짖는 강아지, 그런 것이다. 아무튼 월요일은 세계적으로 개운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다.  

월요일이 억울해서 다른 요일과 자리를 바꾸자고 해도 아무도 안 바꿔줄 것 같다. 욕받이 해야 하니까. 그런데 나는 가끔씩 바꿔줬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도 욕 싫은데. 말뚝박기에서 맨 앞자리를 자처하거나, 선생님의 싫은 소리를 제일 먼저 전달하고 아무도 원치 않는 사실을 앞장서서 알렸다. 단체 접종에서 주사를 무서워하는 친구와 자리를 바꿔 앞에 섰다. 모두가 고개를 숙일 때 잘못을 시인하는 건 나였다. 호구가 되려던 건 아닌데. 그냥 그게 마음이 편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대단한 보상이 없더라도. 지금도 그렇다. 늘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지만 착한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내 몫을 잘 챙기지를 못하고 뻔뻔하지 못한 것 같다. 남의 고통마저 견디지를 못하는 약한 성질 때문 같다.


이번 월요일에 화가 난 것은 친구 키티의 얼굴 때문이다. 월요일이야. 어떡해. 내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다. 키티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다. 키티의 검은 얼굴. 움푹 눌러놓은 듯 납작하고 어두운 얼굴. 월요일을 앞둔 그 얼굴. 마음이 애달파지다가 월요일에 화가 난다. 그것은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업무를 개시하는 키티의 직장에 화를 낼 수 없기 때문이고 가만히 있는 월요일에 미움을 돌려 화를 내는 내가 싫다. 또 화가 난다. 월요일의 괴로움은 주말의 편안함 때문이야. 주말을 원망하려고도 해봤는데 잘 안 됐다. 월요일을 미워하는 건 잘 된다. 



참지 않은 것: 눕기


눕기를 참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다. 침대가 있는 작업실에서 일하는 나에게는 그렇다. 몇 초 후에 일어나게 되더라도 일단 눕는다. 편안해지고 싶다. 간절하게 편안해지고 싶다. 그렇지만 어렵게는 말고 쉬이 편안해지고 싶다. 

누운 자세가 늘 편안한 것은 아니다. 팔다리를 빵 사이의 고기처럼 이불에 끼워보고 빼보고 덮었다가 펼쳤다가 난리를 한다. 그럴 땐 딱 오 분만 누울 수 있다고 상상을 한다. 그러면 몸이 알아서 힘을 빼고 가능한 넓은 면적이 매트리스에 닿도록 뿌리내릴 자세를 찾는다. 대개 그 자세는 편안하다. 

누워 있을 때는 기억을 안 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기억하지 않는 것은 다르고, 기억하지 않는 것은 기억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천장은 비슷한 풍경이고 때로 얼굴을 비스듬히 할 뿐이다. 

원하는 만큼 눕고 싶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하는 것도 그 정도도 모를 때가 많고 그러면 알 수 있을 때까지 누워야 하는데 영영이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