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참지 않은 것: 사랑한다고 말해─2

참지 않은 것: 사랑한다고 말해



창과 방패


어느 날 내가 참지를 못하고 사랑한다고 말해봐, 사랑한다고 말해봐, 졸랐다. 보채고 또 보챘다. 다그치기도 해봤다. 사랑한다고 말해! 무시로 일관하던 얼굴이 내가 순순히 물러서지 않자 나무껍질처럼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확 곤혹과 짜증이 피었다. 걔는 꼭 그랬다. 곤란이 깊어지다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짜증을 냈다. 짜증? 지금 나한테 짜증냈냐? 장작으로 만들어버릴까? 진짜 몽둥이로 패고 싶다! 


그래 나도 알아. 어떤 사람은 곤혹이 깊어지면 그게 짜증이 되는 거. 그게 너인 거. 친구니까 알아. 근데 열 받잖아. 사랑도 그래. 너 나 사랑하잖아. 나는 네가 나 사랑하는 거 알아. 너 만두 세 개 남으면 두 개는 나 주잖아. 너희 집 가면 비싼 딸기 씻어주잖아. 내가 달이 예쁘다 그러면 너도 결국엔 하늘을 보잖아.

근데. 왜 말을 안 해주냐? 알면서 확인 좀 받고 싶어하면 안 되냐? 네 입으로 들으면 좋을 거 같은 거 그거 잘못됐냐? 그거 안 되냐? 나는 좋은 거 좀 좋아하면 안 되냐? 야, 야박하다. 얘 너무 야박하다 싶었다. 그깟 말이 뭐라고. 장난으로라도 그냥 하면 안 되냐. 


걔한테는 그게 장난이 아닌 거 안다. 걔한테는 사랑이 장난이 될 수 없다. 사랑은 너무…… 너무나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사랑이기 때문에. 나는 왜 얘를 사랑해서 하필 다 아는 것처럼 느껴질까. 알면서도 나는 왜 이럴까. 왜 나는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을까. 근데 너는 왜 도무지 이야기해주지 않는 걸까. 어색하게 말 안 하고 있다가 대강 가게에 들어가 밥을 먹고 밥 먹다가 또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고 풀어지듯 스르륵 헤어졌다. 근데 짜증이 가득한 걔 얼굴이 안 잊혔다.


안 잊은 거는 하나 더 있다. ○○는 내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것을 아는 친구다. 비밀로 하는 친구도 있다. 특히 내가 좀 잘못한 것 같은 친구들한테는 비밀로 하고 있다. 자의식 과잉 때문이다. 걔네가 어린 날 벗어놓고 도망친 내 허물을 가지 끝에 끼우고 달려올 것 같다. 이 똥 좀 보라면서. 쟤 똥싸개라고. 똥 이야기를 제발 그만둬야 한다. 아무튼 걔는 내 글이나 그림 좋다는 소리를 한 번을 안 했다. 야 대박이지, 내 거 좋지. 완전 좋지. 찌르고 보채고 해도 암말을 안 했다. 그렇구나 하다가도 가끔 속으로 또 열받아서 여러 번 글과 그림을 풀어 보냈다. 나의 근성에 ○○는 전혀 감복하지 않았다. 본 건지 만 건지 도통 반응은 없었고 걔가 아무 말 없으니 나도 덩달아 보내고 나서 잊었다. 


나는 내 글이 그림이 너무 좋은데 가끔 너무 자신이 없고 별로인 거 같고 근데 좋은 거 같기도 하고 아니 근데 나쁜 건 아니지만 아무튼 나는 못하는 거 같고 그러면서 갈팡질팡 반쯤 정신이 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은 눈물이 뚝뚝 났다. 그러다 다 버려야지. 다 버려버려야지. 다 때려치워야지 하고서는 썼던 글을 박박 밀고 있는데 걔가 쓱 지나가면서 그랬다. 나 그 글 좋던데. 시 같고.


그 순간 그 글이 너무너무 귀하게 느껴졌다. 너무 귀해서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고 몹시 사랑스러운 글이 됐다. 그날은 하늘을 보고도 별을 안 찾았다. 별 생각이 안 났다. 그 말이 내 별이라서. 나 그 글 좋던데. 시 같고. 그게 내 가슴의 별이야. 


별이야, 나의 별이야. 사랑이야. 사랑이 나의 별이야. ○○야, 니가 그날 말했던 그거 저기 하늘에 있다. 별 돼서 있다. 나한테는 별이 저렇게 작게 수없이 빛나는 것인데, 너한테는 그게 가슴에 입에 담기에 너무 큰 빛이구나.


대체 왜 사랑한다고 말을 못 하는 걸까? 묻자 △△가 대답한 적 있다. 그렇구나. 말차 케이크가 달고 썼다.


○○는 여전히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 안 한다. 나는 ○○한테 사랑한다고 계속 말한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한테 사랑한다는 말은 죽으면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한테 죽어서라도 들으려면 내가 먼저 죽어야 하지만. 아무튼 사는 동안에는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게 가끔 열받지만 참아볼게. 왜냐하면 너를 사랑하니까. 네 사랑도 사랑할게. 나는 접혀서도 수천 번의 사랑해를, 펼치면 수억 번의 사랑해를 말하고 들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별은 있다. 별은 보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으며 있다. 사랑해, ○○의 사랑아. 사랑한다고 말하는 창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방패가 만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