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참지 않은 것: 사랑한다고 말해─1

참지 않은 것: 사랑한다고 말해





저 별은 너의 별 아니고 나의 별 


여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것을 다 합하면 일억 번은 될 것 같다. 일억 번이 뭐야. 오천억 번은 될 것 같다. 내가 들은 사랑한다는 말이, 그게 다 별이 되면 세상에는 가로등이 불필요할 것이다. 밤이 아주 없어질 수도 있다. 너무너무 빛이 나서. 빛이 너무 많아서. 별로 하늘이 꽉 차서. 서로 밀치고 부딪고 깨지다가 더 많은 별이 만들어질 것이다. 하늘이 비좁아 지상으로 주저앉은 별에 깔려 죽을 수도 있다. 그러면 죽기 전에 또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자랐으니까. 과학 잡지에 부록으로 붙어 있던 은하의 접지 포스터처럼. 접혀서도 수천 번의 사랑해를, 펼치면 수억 번의 사랑해를 말하고 들으며 살아왔으니까. 별로 의심이 없다. 그런데 하늘의 별이 몇 개지? 


몰라.


○○는 하늘을 보는 척도 안 한다. 그럴 줄 알았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별을 찾는다. 

겨우 두 개 보인다. 대기의 공해와 인공 불빛 때문이다. 도시의 밝은 불이 별의 빛을 지우고 보이지 않게 한다. 교외로 나간다면 더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별은 있다. 별은 보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으며 있다. 우리 저녁 뭐 먹어. 


국수 먹을래? 좋아. 

돈가스 먹을래? 좋아. 

야,  만두 먹자. 좋아. 


나는? 

나는 좋아? 그건 안 묻는다. 왜냐하면 나는 안다. ○○는 절대로 대답하지 않는다. 바로 대답할 수는 있는데 절대 나를 좋아한다고는 안 할 거다. 이제는 확실히 안다. 몇 년 전 생일까지는 몰랐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기야."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이 모였고, 내가 받고 싶은 선물(사랑한다고 말하기)을 발표하자 다들 잠깐 왁 웃었다. 그러고 나서 모두가 순순히 돌아가면서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했다. 쩡찌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한다! 그런데 ○○ 차례가 되어서는 사랑이 끊겼다. ○○는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그랬다. 생일 축하해. 그때 깨달았다. 얘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걸 한 번도 못 봤구나!


세상에는 절대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건 알겠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사랑을 말하거나 말하지 않으며 살고 있으니까. △△도 자기는 사랑한다는 말 잘 안 한다고 했다. 그리고 ○○는 절대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에게 캄캄한 하늘에 전파를 쏘는 일이나 다름없다. 돌아올 수도 있지만 일단은 안 돌아오는 빛이다. 유에프오에 보내는 신호다. 유에프오가 신호를 받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가능성은 적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유에프오가 있다고 믿는단 것이고, 내 신호가 닿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속으로 휘파람을 불어. 그러면 그게 외계로 닿는 거야. 어쩌면 평행 우주의 나를 부를지도 모른다. ××를 부를 수도 있다. 그래도 ○○의 사랑한다는 말은 들을 수 없다.


××는 사랑해, 사랑해. 자주 말해주었다. 나도 ××를 사랑했다. ××야 사랑해, 사랑해 말했다. 우리는 다섯 살 때부터 사랑을 알아서 일곱 살 때까지 사랑했다. 일곱 살에 ××는 이사를 갔다. ××는 이사를 가기 전까지 유리병에 천 개의 별을 접어주었다. 별을 보면서 내 생각을 하기야. 걔가 그런 말을 하고서 이사를 간 바람에 별을 볼 때마다 나는 슬프게 됐다. 종이 별을 봐도, 진짜 별을 봐도 슬펐다. 슬픈 것이 싫은 나는 별을 잘 안 보려고 했는데, 밤은 매일 찾아오고 하늘은 나보다 훨씬 커서 별을 안 보면서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별을 보면서 그애 생각을 하는 것을 그만두는 방향으로 노력했다. 편지라도 주고받을 수 있었다면 사랑한다고 또 말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둘 다 한글을 몰랐다. 한글을 알게 된 이후에는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일은 너무 바빠서 나는 그애를 사랑했던 것을 잊게 됐다.(나는 좀 잘 잊는다) 그래서 일곱 살 이후로 나는 그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사람이 됐다. 알았냐? 사랑한다고 말해야 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기 전에.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야 돼. 알았냐고.


갑자기 열받았다. 야, 너는 돈가스는 만두는 국수는 좋아하면서 왜 나는 좋다고 안 해주냐? 씩씩대면서 입에 넣은 만두가 따뜻하고 맛있었다. 그래서 깜박 잊었다. 야, 이건 기계가 아니라 손으루 빚은 거네. 제대루다. 맛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난 만두 안 좋아하거든? 김치만두 세 갠데 너 두 개 먹어. 응. 야, 김치만두 맵기만 하고 맛있긴 쉽지 않은데. 그치. 응, 이 집 만두 참 좋다. 나두. 


밥은 ○○가 샀다. 내가 계산한다고 했더니 너보다 내가 더 잘 벌어, 그러면서 신용카드를 쑥 꺼냈다. ○○야 잘 먹었어, 사랑해.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가게 밖은 완전히 밤. 별은 여전히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지상의 불이 밝은 까닭이다. 게다가 오늘은 달도 둥글고 크다. ○○야, 무엇이 너를 밝히고 있는 건데. 사랑 말고 너를 희게 밝히고 있는 게 무엇인데. 묻는 대신 말해본다. 달이 아름답네요? 또 대답 안 한다. 그게 사랑한다는 말의 비유인 줄을 아는 거다.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달이 아름답네요月が綺麗ですね”라고 번역한 것에서 유래.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의 은유로 쓰인다.)

2003년 사이언스타임스에 의하면 호주국립대학의 천문학자들이 별의 총수를 7 곱하기 10의 22승개라고 발표했다고 한다. 가늠이 안 되는 숫자다. 내가 졌다. 지금은. 그러나 살면서 이겨볼 일도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열어본 휴대전화 속 ○○의 SNS에는 달 사진이 올라와 있다. 야, 누구 놀리냐? 진짜 열받는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4-5 KRV

 

처음에는 얘 가정환경을 의심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건 알았는데. 사랑을 말하는 데에도 엄격한 집인가? 그런데 얘 엄마 아빠는 사랑한다는 말 너무 잘하던데? 내가 빵에 치즈를 끼우고 있을 때 ○○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다 들렸다. 사랑해, 우리 딸. . 나한테만 사랑한다고 대답 안 하는 건 아니구나. 그런데 야, 내가 우리집 오는 사람 중에 네 빵에만 치즈 두 개 넣어주는 건 아냐? 그게 사랑한다는 말 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너는 왜 나 사랑한다고 안 하는데?

 

그거 너희 나라 법칙이라도 되냐?(우리는 같은 나라에 산다) , 그거 지켜서 뭐 할 건데?(딱히 지킨다고 안 했다) 그게 그렇게 어렵냐?(어렵다고도 안 했다) 내 마음 다 찢어놔도 어렵냐?(마음이 찢어지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돈이라도 줘볼까 했다. 첨에 삼만 원 부르고 안 된다고 하면 오만 원. 그다음엔 팔만 원. 그 이상은 안 돼. 오천 원만 내면 키스도 해주는 세상에서(오천 원에 키스해주는 녀석. 그런 소설 제목을 본 것 같음) 팔만 원에 사랑해 한 번이면 대박 아니냐? 그렇게 설득할 자신도 있었다. 사랑? 돈으로 살게. 근데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냐. 매매애愛? 근데 실제로는 먹고 죽을 만 원도 늘 모자라 발발 떠는 삶이라 그렇게는 못 했다.(했으면 됐을지도 모름)

 

발발. 떨리니? 사랑을 말하는 게? ○○야, 너는 사랑이 무섭니? , 사랑이 귀신이냐? 뭐가 무섭냐? 네가 그럴수록 사랑이 더 무시무시해지는 거야, 너 그거 알어?

사실은 안다. 걔도 아는 거. 다는 모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아는 거.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거. 걔도 걔를 어쩌지 못하는 거. 어떻게 내가 그걸 아느냐면 나는 걔 친구니까. 걔를 사랑하니까. 그래서 알 것 같다. 근데 자꾸 열받는단 말이야. 자꾸만 열이 받는단 말이야. 네가 사랑한다고 말해도 세상 안 무너져. 오히려 나는 기운이 솟겠지. 그깟 말이 뭐라고 한 번을 안 해주니?

 

생활이 단정하지 못하고 반지성적 태도를 가진 나는 주변인들에게 자주 혼이 나고는 하는데 걔한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대거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없다시피 했다. 그러니까 없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딱 하나 있었다. 깜박 무언가를 잊은 것에서 시작해 인생 전반을 훑으며 나를 혼내는 ○○에게 나는 숙였던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위풍당당하게 걔를 다그쳤다. , 근데 너 나 사랑하냐? 하는 거 같은데 왜 말 못하냐? 걔가 꿀 먹은 사람처럼 입을 다무는 게 통쾌하지는 않았다. 더 열받았다. 씩씩대다가 또 둘이 밥을 먹고 잊는 그런 일을 반복했다.

 

근데 어느 날에는 안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항상 깜박 잊어서 혼이 났고 잊는 게 문제인 줄 알았는데. 안 잊는 게 문제가 될 줄이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