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처음 김태형을 본 것은 내가 아니라 시현이었다.

“내일부턴 독서실 앞으로 나 데리러 나와줘.”

새벽 한시, 집으로 돌아온 시현이 말했다. 시현이 다니는 독서실은 아파트 단지에서 걸어서 십오 분 거리에 있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시현이 나한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제부터 계속 같은 사람이 아파트 단지 앞을 서성거리고 있어.”

“남자가? 수상한 사람인 거 같아?”

나는 시현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면서 물었다.

“확실한 건 아니야.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만약이라는 거.”

시현은 그 말만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시현의 방문 앞까지 따라가 “그 남자 혼자야? 차는? 차도 타고 온 거 같아?” 계속 물었다. 하지만 시현은 더이상 말이 없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연거푸 두 잔 마셨다.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었다. 이시봉이 내 발 아래로 걸어오더니 얌전히 앞발을 세우고 앉았다. 혼자만 뭘 먹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시봉, 지금 그런 상황 아니야…… 나는 이시봉을 내려다보며 한 잔 더 마셨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앙시앙 하우스 사람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나는 자정이 되기도 전에 나갈 채비를 마쳤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나가다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다시 추리닝에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휴대폰도 챙겼다. 현관 앞에서 나는 잠깐 이시봉과 대치했다. 이시봉은 산책을 나가는 줄 알고 나보다 먼저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꼬리를 흔들면서 툭툭, 앞발로 현관문을 치기도 했다. 나는 이시봉을 데리고 나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정말 앙시앙 하우스 사람들이 맞는다면, 되레 이시봉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나는 잠깐 이시봉과 시현이 동시에 위기에 빠졌을 때 누구를 먼저 구할지 상상해보았다. 아마도 나는…… 시현을 먼저 구하려 들 것이다. 몇 번을 상상해봐도 답은 같았다. 그러니 나는 이시봉을 데리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게 이시봉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의 한계였다.

하지만…… 나는 결국 이시봉에게 하네스를 입히고 리드 줄을 채워주었다. 이시봉이 낑낑거리는 소리까지 내면서 물러나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순 없는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앙시앙 하우스에 다녀온 이후 나는 이시봉과 새벽 산책도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이시봉이 시큰둥해했고(하지만 사실은 내가 삐진 게 맞았다), 그뒤로는 내가 겁을 집어먹고 말았다(이시봉은 산책을 나가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자, 배변 패드가 아닌 현관문 앞 내 신발 근처에 소변을 보고 똥을 쌌다. 이시봉은 그런 식으로 시위를 했다). 이시봉의 과거를 알면 알수록 이상하게도 이시봉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하나둘씩 들춰내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이시봉은 없었다. 이시봉은 없는데 사람들만 서로 얼굴을 찡그리고 비난하고 있는 듯한 느낌. 어느덧 나 역시 그 안에 발을 내디딘 기분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예전처럼 이시봉과 함께 목줄도 없이 아파트 후문 쪽에 있는 야산으로 야간 산책을 나가는 것. 야산 중턱 쉼터 벤치에 앉아 나는 맥주를 마시고, 이시봉은 잡목 사이 땅을 파헤치는 것. 그러다가 해가 뜨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 나란히 소파 위에서 잠드는 것. 나는 그것을 바랐고, 이시봉도 그걸 원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게 이시봉과 내가 나누는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왜 피해야 하나? 나는 이시봉의 리드 줄을 느슨하게 잡았다. 이시봉도 화가 나면 계속해서 중음으로 짖곤 하니까, 이시봉이 나와 시현을 지켜줄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있으니까……


잔뜩 긴장한 채 나갔지만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엔 그 어떤 사람도 서성거리고 있지 않았다. 도로에 수상쩍게 주차된 차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수아가 일하는 편의점 간판만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수아는 알바 끝났겠지. 이시봉과 나는 한동안 멀거니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이시봉은 킁킁 정문 바로 옆 가로등 냄새를 맡다가 소심하게 영역 표시를 했다. 우리는 천천히 독서실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독서실에서 나온 시현을 보자마자 한쪽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안심해, 오빠가 왔어.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시봉도 꼬리를 흔들며 중음으로 두 번 짖었다. 하지만 시현은 우리를 보고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시현 뒤를 따라 독서실 계단을 내려오던 두 명의 학생만이 나와 이시봉을 보고 흠칫 놀랐을 뿐이었다. 그 친구들은 서둘러 우리 반대편 방향으로 걸어갔다.

“출출하진 않니? 편의점 들렀다가 갈래?”

나와 이시봉은 시현보다 한 발짝 앞서 걸으면서 주변을 살폈다. 시현은 내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시현의 손에는 영어 단어장이 들려 있었다.

다시 아파트 단지 정문 앞까지 왔는데도 별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긴장이 좀 풀렸다. 914동 앞에 서서 공용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는데, 시현이 툭툭, 팔꿈치로 내 허리를 쳤다.

“저 사람이야.”

시현이 고갯짓으로 경비실 바로 뒤쪽 재활용장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이시봉도 그쪽을 바라보았다. 야구 모자를 쓴 남자가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색 면 티에 청바지를 입은, 얼핏 봐도 키가 꽤 커 보이는 남자였다.

“그냥 모른 척하고 들어가.”

시현이 내 팔짱을 끼면서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럴 작정이었다. 그래도 시현이 그 말을 해주니까 고마웠다.

집으로 들어와 이시봉의 발을 씻긴 후, 나는 정용에게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면서도 계속 거실 유리창을 통해 재활용장 쪽을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재활용장 쪽에 없었다. 어느새 914동 공용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지금 와줄 수 있어?

정용에게서 바로 답신이 왔다.

—왜?

—우리집을 노리는 사람이 있는 거 같아.

—십 분이면 도착해.

나는 정용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이번엔 이시봉 없이 나 혼자 나갔다. 그 사람이 914동 앞까지 온 것을 보자마자 나는 이상하게도 겁이 없어졌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고, 서늘해지기까지 했다. 어떤 것이 더 분명해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내려갔다. 층계참에 내려설 때마다 유리창으로 그 남자의 위치를 확인했다. 머릿속에선 계속 권성희 수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 대표님은 원하는 건 다 갖고 마는 사람이에요.”

씨발,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원하는 걸 다 가져선 안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 남자와 나는 잠깐 공용 현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았다. 야구 모자 아래 숱 많은 눈썹이 보였다. 얼굴 피부가 흰, 기껏해야 나보다 두세 살 더 많아 보이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고, 다시 재활용장 쪽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남자의 얼굴에서 어떤 낯익은 표정 하나를 봤다. 뭐지? 왜 낯익지?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공용 현관 밖으로 그를 쫓아 나갔다.

때마침 정용이 오토바이를 몰고 도착했다. 정용은 정말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급하게 나왔는지 잠잘 때 입는 형광색 짧은 반바지에 감청색 언더아머 슬리브리스, 검은색 헬멧을 쓴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정용의 그런 모습이 조금 창피하게 느껴졌다.

“이 사람이야?”

정용은 오토바이를 세우며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기요, 잠깐만요.”

정용이 남자를 불러 세웠다. 정용은 오토바이 짐칸에서 삼단봉도 꺼내 들었다. 남자는 정용을 외면하고 계속 아파트 정문 쪽으로 가려고 했다.

“아니, 잠깐 얘기 좀 하자구요.”

정용이 그 남자의 팔을 잡았다. 나도 정용 뒤에 섰다. 남자는 앙시앙 하우스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헌데, 왜 낯익지?

“아닙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정용의 팔을 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정용은 놔주지 않았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양반아. 남의 집 앞을 서성거리고 있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정용이 그렇게 말하자, 남자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러니까…… 이시봉 아저씨가 알려줘서…… 잠깐 온 건데……”

남자의 말에 정용이 ‘하!’ 소리를 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너, 이 사람 얘기하는 거 들었지? 이시봉보고 아저씨란다.”

정용은 이시봉 아저씨를 만난 적이 없었다. 당연 이시봉의 이름이 왜 이시봉인지도 알지 못했다.

“이시봉이 당신 아저씨야? 그럼 당신은 뭐, 당신도 강아지야? 당신도 개냐구!”

나는 정용을 말리며 그 남자의 얼굴을 더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제야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이 왜 낯익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정채민 대표가 보여준 사진 한 장, 1996년 파리에서 찍은 사진 속 세 사람 중 한 명의 얼굴과 남자는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나는 그 남자의 이름을 이시봉 아저씨에게서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김태형. 김상우와 박유정의 아들.

“뭐! 영역 표시하러 온 거냐구!”

정용은 계속 소리쳤고, 이번엔 내가 정용의 입을 막았다.


우리는 편의점 파라솔 의자에 마주앉았다.

김태형은 파라솔 의자에 앉자마자 잠깐 야구 모자를 벗고 머리를 쓸어넘겼는데, 편의점 간판 불빛에 비친 이마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다시 야구 모자를 쓰고 무언가 골몰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고집스럽게 아파트 단지 정문 앞 신호등을 바라보기도 했다.

김태형을 따라 편의점 앞까지 오긴 왔지만, 막상 그와 마주앉고 나니 조금 겁이 나는 게 사실이었다. 이시봉 아저씨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김태형은 마약 사범으로 구속된 적 있는 전과자였다. 열다섯 살 때부터 본드를 불기 시작했고, 그 상태에서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이시봉의 부모 비숑 프리제 또한 훔친 거나 다름없었다. 그 개들을 개 농장에 판 장본인. 그 사람이 바로 김태형이었다. 아마도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서 강아지들을 팔아버린 것이겠지…… 그런 그가 다시 이시봉을 찾아온 것이었다.

“이시봉 아저씨가 며칠 뒤에 같이 가보자고 했는데…… 제가 먼저 와본 거예요.”

김태형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태형은 무작정 타이어 공장으로 찾아갔고, 때마침 퇴근하던 압연 공정 2라인 노조원에게 이시봉 아저씨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노조원이 친절하게도 자신의 핸드폰으로 직접 이시봉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주었다. 김태형은 그렇게 몇 년 만에 이시봉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시봉 아저씨는 그를 반갑게 대해 주었고, 그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 그리고 무심코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 이름을 대며 일주일 후 거기 호수공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시봉 아저씨는 그때 서울에 있었다. 서울에서 산별 노조 지도자 교육을 받고 있는데, 그게 일주일 후에 끝난다고 했다.

“근데, 왜 그렇게 우리를 보려고 하는 거죠?”

나는 가급적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자주 정용 쪽을 바라보았다. 정용은 내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냥 궁금했어요.”

“뭐가요?”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그러곤 또 바로 겁을 집어먹었다.

“강아지가 여기 잘 있나, 해서요.”

나는 그의 말에 조금 화가 났다. 뭐지? 이 사람, 지금도 약을 한 걸까? 나는 속으로 그를 욕했다. 그러지 않고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기가 판 강아지인데, 그 강아지를 판 돈으로 영치금을 받았으면서…… 혹시 돈을 더 달라고 찾아온 건 아닐까? 나는 아무래도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땐 돈이 급해서 오십만원밖에 받지 못한 것이라고, 아무래도 그 돈으론 부족하다고……

“이시봉은 여기 잘 있어요.”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는 더 용기를 낼 필요가 있었다. 김태형은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시선을 피했다.

“그럼 이제 된 건가요?”

내 말에 그제야 정용도 고개를 들어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저는 그냥…… 확인만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김태형은 그렇게 말했다.

“아까 보셨잖아요? 이시봉은 저랑 잘 지내고 있어요.”

나는 정용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

“들었죠, 아저씨? 이제 오지 마세요.”

정용이 우두둑, 손가락 관절을 꺾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나는 그 모습도 좀 창피했다.

우리는 그를 파라솔 의자에 남겨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정용과 함께 아파트 쪽을 걸어가면서도 계속 긴장했다. 그가 다시 우리 쪽으로 다가올까봐, 걱정이 되었다. 아파트 정문까지 걸어와 힐끔 뒤돌아보니, 그는 그때까지도 계속 그곳에 앉아 있었다. 호수공원 쪽을 바라보면서 굳은 듯 거기 머물러 있었다.


다음날 오전, 나는 이시봉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는 교육중이라며 바로 전화를 끊더니,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연락을 해왔다.

“걔가 거기를 혼자 찾아갔다고?”

나는 이시봉 아저씨에게도 좀 화가 나 있었다. 김태형에게 우리집 위치를 알려준 건, 분명 아저씨의 잘못이었다.

“아이 참, 걔가 왜 그랬을까……? 나랑 만나서 같이 가기로 약속한 건데…… 네가 많이 놀랐겠구나.”

나는 이시봉 아저씨에게 최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 사람이 왜 그러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그래.”

이시봉 아저씨 주변에서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저씨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나도 정확한 건 잘 모르겠는데, 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냥 많이 미안해하는 거 같더라구. 걔 엄마한테도, 걔가 판 강아지들한테도…… 그게 자꾸 생각나니까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봐. 애는 괜찮아진 거 같아. 일 년 넘게 배관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배관 공사라는 게 그게 좀 힘든 일이 아니거든. 약을 하면 그런 일을 아예 할 수도 없고……”

나는 이시봉 아저씨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나는 그렇게 묻고 싶었다.

“내가 걔한테 따로 전화할게. 너도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바로 전화하고. 심성은 착한 애야. 별일 없을 거야.”

이시봉 아저씨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괜히 전화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마트에서 이시봉의 배변 패드를 사서 돌아오다가 아파트 단지 주차장 벤치에 앉아 있는 김태형을 발견했다. 그는 어제와 똑같은 차림으로 거기에 앉아 있었는데, 마치 유치원에 간 아이를 기다리는 아빠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다리가 더 길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 멈춰 서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벤치 쪽으로 다가갔다. 어제처럼 겁이 나거나 긴장이 되진 않았다.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좀 성가신 느낌이 들었다.

나는 벤치에 소리나게 배변 패드를 내려놓고 앉았다. 그제야 나를 발견한 그는 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우리 사이에는 배변 패드가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중얼거리면서 속으로 실없이 웃었다. 원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지 않나?

김태형도 나도,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시봉, 데리고 나올까요?”

“네? 아, 아니에요……”

그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그 상태에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확인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계속 찾아오는 거 아니었어요?”

나는 그가 이시봉을 보고 싶다고 말할까봐, 걱정했다. 사실, 나는 이시봉을 데리고 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곤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강아지 이름이 이시봉이에요?”

나는 그에게 그 사정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의 시작은 그로부터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이시봉 아저씨랑 같이 오세요. 그때 이시봉이랑 같이 나갈게요.”

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까 그때 와서 확인하고……”

“저는 그걸 확인하려는 게 아니에요.”

김태형이 처음으로 내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눈을 보자 나는 다시 긴장이 되었다.

“그럼 뭘……?”

내가 묻자, 그는 또다시 머뭇거렸다. 김태형은 정문 쪽을 바라보며 모자를 고쳐 쓰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강아지를 찾아오진 않나, 해서요.”

“다른 사람들이요?”

그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혹시 누가 강아지를 팔라고 찾아오진 않았나요?”

나는 그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멀거니 그의 숱 많은 눈썹을 바라보며 앉아 있기만 했다.


저 눈썹은 이상하게도 정채민 대표를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