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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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역시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무렵 김태형 또한 이시봉을 찾기 위해 혼자 애쓰고 있었다.


그는 2019년 11월, 광주 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한 후 곧장 당진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배관 설비 기술을 배웠다. 당진에는 그가 이전에는 그 존재조차 몰랐던 하나뿐인 이모가 살고 있었다. 이모는 엄마보다 두 살 아래였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미술을 전공했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줄곧 입시학원 실기 강사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십일 년 전, 우연히 선배가 하던 당진의 초등 미술학원을 보증금만 내고 인수하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입점해 있던 작은 미술학원이었는데, 그의 이모가 운영을 맡게 된 이후 점점 수강생 수가 늘어났다. 이모의 미술학원은 삼 년 뒤엔 당진 원당동에 있는 오십 평짜리 상가로 확장 이전했다. 강사도 네 명을 새로 뽑았고, 수강생들의 통원을 돕는 승합차도 따로 세 대나 운영했다. 그의 이모는 그때부터 이혼한 이후 그 행방이 묘연해진 하나뿐인 언니를 찾기 시작했다. 사실 이모는 자신의 언니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언니는 졸업 후 광고 회사에 다니다가 부모님껜 그 어떤 의논도 없이 학교 선배 남자를 따라 훌쩍 프랑스로 떠나버렸다. 그곳에서 선배 남자와 함께 판화를 전공하겠다는 것이 언니의 계획이었다.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말았다. 중학교 화학 선생이었던 아버지는 어느 날 밤 술에 잔뜩 취해 돌아와선 마당에 심겨 있던 자두나무를 도끼로 베어버렸다. 그때 생긴 상처가 평생 왼손 손바닥에 남았다. 어머니는 신경쇠약에 당뇨까지 겹쳐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이모는 주말마다 아버지와 교대해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실의 보조 침대에서 잠을 잤는데, 그때마다 이런 질문을 받곤 했다.

“네 언니한테 편지 온 거 없었니?”

그 언니가 프랑스에서 돌아온 것은 1996년 9월의 일이었다. 언니는 파리에서 제대로 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돌아왔고, 선배 남자와 경기도 파주에 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이모는 그 사실을 언니가 보내온 편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모가 자신의 언니에게서 직접 전화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다시 이 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오백만원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키우는 강아지들과 함께 이사를 가야 하는데 계약한 집의 잔금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강아지……?”

“응…… 그래서 지방으로 가게 됐거든…… 넓은 마당이 좀 필요해서……”

이모는 처음엔 기가 막혔고 나중엔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그 말 말고도 꽤 길게 통화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래도 이모는 자신의 통장에 있던 삼백만원을 언니에게 부쳐주었다. 그리고 또 소식이 끊어졌다. 그 이백만원이 두고두고 생각났다. 조카도 한 명 태어났다고 했는데……

그 언니와 다시 연락이 된 것은 2017년 3월의 일이었다. 언니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정확히는 언니가 아닌, 정읍에 위치한 한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 보호사를 통해서였다. 사십대 초반의 그 요양 보호사는 구글링을 통해 미술학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며, 혹시 박유정씨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이모는 이십 년이 훨씬 지난 후, 다시 자신의 언니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언니는 이미 팔뚝에 근육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눈과 광대만 불룩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었지만, 정신만은 온전했다. 이모는 그런 자신의 언니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뭐가 다행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계속 그 말이 맴돌았다고 한다. 언니는 이모와 재회한 지 사십 일 만에 숨을 거뒀다. 마지막 보름 동안 이모는 언니의 병실을 지켰는데, 그래서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것 역시 이모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김태형은 그때 엄마와 살던 집에 들러 남아 있던 마지막 강아지 두 마리, 암수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를 처분한 뒤 잠적한 상태였다.


그 이모가 김태형의 자취방과 직업교육 학원을 알아봐주었다. 이모는 그가 출소하기 반년 전에 처음 면회를 왔고, 그때부터 영치금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출소한 이후에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지만, 그건 그가 거절했다. 김태형은 당진 경찰서 정문이 정면으로 보이는 읍내동 원룸 촌에 거처를 정했다. 그게 그의 의지였다. 그는 교도소에서 나온 이후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고, TV도 보지 않았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짜증이 나거나 동정심이 생기거나, 감정의 높낮이가 커지면 저절로 약 생각이 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김태형은 한동안 휴대전화도 갖고 다니지 않았다. 그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하면 귀신처럼 알고 상선(딜러)들이 연락을 해왔다. 그는 직업교육 학원을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엔 매일 수영장에 들러 한 시간씩 자유 수영을 했고, 분식집에 들러 국수와 김밥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그러곤 다시 당진 경찰서 바로 옆 공원을 만 보 이상 걸은 후, 자취방으로 돌아와 밤 열시 이전에 자리에 누웠다.

몇 번 위기도 있었다. 신정 연휴 마지막 날 오후에 공원을 걷고 있을 때였다. 갈색 푸들 한 마리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일흔 정도 되어 보이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나온 푸들이었는데, 꼬리를 흔들며 그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모른 척 지나가려고 했다.

“한 번 쓰다듬어주고 가구려. 우리 모찌가 친해지고 싶은가본데.”

할머니가 그를 보며 말했다. 김태형은 그 말에 어정쩡한 자세로 쪼그려앉아 강아지와 눈을 맞췄다. 그러곤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때부터 무언가 자꾸 목 아래에서 울컥 올라오는 것 같았는데, 그는 애써 그것을 모른 척하려고 노력했다.

“총각도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나 봐요? 우리 모찌가 그런 사람들은 족집게처럼 알아채는데.”

김태형은 할머니의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와 강아지의 반대편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는 한 손으로 연신 입을 막은 채 걸었는데,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론 빨리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재촉했다. 이상하게도 슬픈 감정이 찾아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벅찬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그것이 약을 하고 싶다는 신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자취방으로 돌아갔다가는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피시방으로 달려갈 게 뻔했다. 그곳에서 트위터 계정에 접속만 하면 금세 상선들이 디엠을 보내올 것이다. 자취방이 아닌 곳, 내가 나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곳, 나를 가둘 곳이 필요하다…… 그는 그날 바로 당진 버스 터미널로 가서 부천행 직행버스를 탔다. 부천행이 가장 빨리 출발하는 버스였다. 짧은 연휴 마지막 날이어서 그의 예상대로 서해안고속도로 상행선은 당진 IC 부근부터 길게 정체되어 있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고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직행버스 맨 뒷좌석에 꼬박 다섯 시간 가까이 앉아 있었다. 평소라면 한 시간 반이면 넉넉하게 도착할 거리였다. 그 정체와 지체가 그에겐 도움이 되었다. 버스가 부천 버스 터미널에 도착할 때쯤엔 김태형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후였다. 그는 버스에서 내려 국수와 김밥으로 식사를 해결했고 곧장 다시 당진행 버스에 올라탔다.


2020년 4월부터 그는 한 하청 업체의 배관팀에 조공으로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직업교육 학원으로 인력을 뽑으러 온 팀장이 그를 찍었고, 김태형도 거절하지 않았다. 배관팀엔 그를 포함해 총 여섯 명이 있었다. 배관공인 육십대 팀장이 있었고, 그 아래로 또다른 배관공 한 명과 용접공이 두 명, 조공이 두 명이었다. 그가 팀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맡은 일이 백령도 군부대 장교 숙소 설비 공사였다. 공사 기간만 총 백이십 일짜리였고, 숙식도 모두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일이었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공사 현장이어서 김태형은 실수가 잦았다. 그는 주로 배관공을 도와 작업에 쓸 배관을 나르거나 와이어 브러시로 녹 제거 작업을 했는데, 자재를 자주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팀원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번은 체인 호이스트로 배관을 들어올리다가 손에 힘이 풀려 모두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바로 옆에서 작업하던 용접공이 다칠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팀원들은 그에게 야박하게 굴지 않았다.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 거야.”

팀장은 저녁을 먹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한 민박집을 통째로 빌려 그곳에서 식사도 해결하고 있었다.

“한 달만 버텨. 그러면 좀 나아질 거야. 정 못 버티겠으면 미리 말하고. 말도 없이 도망치지만 마. 그러면 나중에 일당 계산하기 복잡해져.”

팀장이 말하자, 오십대 중반의 용접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형님, 여기선 도망도 마음대로 못 쳐요. 우리 주민등록증, 형님이 모두 갖고 있잖아요? 그거 없으면 배 못 타요. 도망쳤다가 괜히 망신만 당하지.”

김태형은 그곳에서 백이십 일 공사 기간을 모두 채웠다. 

팀장의 말처럼 한 달을 조금 넘기면서부터 그는 자신의 몸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에 깰 때마다 여전히 관절의 마디마디에 바늘 하나가 깊숙이 박혀 있는 것처럼 통증이 느껴졌지만, 머리를 감고 나면 이내 괜찮아졌다. 손가락 감각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손가락이 기계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그는 능숙하게 슬링 벨트로 배관들을 고정시켰고, 연마석을 장착한 그라인더로 배관을 다듬는 작업도 맡게 되었다.

그해 6월엔 장마가 조금 일찍 시작되었다. 그 바람에 공사 현장 자체도 자주 멈춰 섰다. 팀장은 회사에 일주일 휴가를 신청했고, 팀원들 모두 뭍으로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김태형은 민박집에 그대로 남겠다고 했다.

“왜? 휴가 끝나면 다시 들어올 자신이 없을 거 같아?”

팀장이 묻자, 김태형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게 더 피곤한 일인 거 같아서요.”

“휴가 땐 민박집 따로 계산해야 하는데? 밥값도? 회사가 내주지 않아.”

“휴가 왔다고 생각할게요.”

김태형은 휴가 기간 내내 그라인더에 절단석을 장착하고 폐 배관들을 자르는 연습을 했다. 오후엔 사곶해변까지 나가 산책을 했고, 밤엔 평상시와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휴가 사흘째 되는 날이던가, 그는 점심을 먹으려고 민박집 쪽으로 걸어가다가 검은색 털을 가진 믹스견 한 마리를 만났다. 야트막한 산과 산 사이로 난 비포장도로, 그 중간쯤에서였다.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강아지였다. 가슴과 발목 부근에 갈색 털이 섞인 강아지. 그 강아지는 김태형을 보자마자 달려와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흔들었다. 엉덩이까지 실룩거리면서 반가워했다. 그는 그 강아지를 보자 고개를 돌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되돌아갈까? 그는 망설였다. 주위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인 없는 개처럼 보였다. 안개비가 잘게 흩뿌리고 있었고, 바람은 해안가 쪽에서부터 약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불안했다. 하지만 강아지는 김태형의 마음 따윈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아예 그 자리에 배를 보여주며 드러누웠다. 그러면서도 계속 꼬리를 흔들었다. 김태형은 그런 강아지를 곁눈질로 훔쳐보다가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강아지의 배를 쓰다듬어주었다. 강아지가 자꾸 고개를 숙여 그의 손을 핥으려고 해서, 턱 아래도 긁어주었다. 슬픔이 찾아오진 않았다. 벅찬 감정이나 조급한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갑자기 바람이 멈춘 것처럼, 주변이 조용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한참 동안 쪼그리고 앉아 강아지의 이곳저곳을 쓰다듬어주었다. 강아지는 그를 따라 비포장도로를 걸었고, 그도 모른 척해주었다. 민박집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야 김태형은 강아지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알아챘다. 그는 그 사실에도 별다른 마음의 동요가 일지 않았다.


백령도 공사가 끝난 후, 그는 일주일 동안 당진에서 지냈다. 오랜만에 이모를 만나서 같이 식사를 했고, 술도 조금 마셨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모는 자기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를 그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그는 말없이 그것을 받았다. 그런 후 다시 같은 팀을 따라 시흥의 자원 재생 공장의 배관 설비 작업을 했다. 시흥 일이 마무리된 후에는 바로 천안의 신축빌라 공사장으로 내려갔고, 그뒤로도 청주의 한 대학교 신축 건물 공사, 수원의 호텔 리모델링 공사를 계속 이어나갔다.

2021년 5월, 그는 퇴근길에 팀장에게 말했다.

“이번 공사 끝나면 몇 달 좀 쉴까, 해서요.”

그의 팀은 그때 평택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을 맡고 있었다. 그 공사가 끝나면 바로 충주로 넘어가 리조트 공사를 같이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왜? 무슨 일 있나?”

“아니요. 그냥 찾아볼 게 좀 있어서요.”

팀장은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곤 다시 물었다.

“오래 걸리는 일이야?”

“잘 모르겠어요. 몇 달이 걸릴지……”

팀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꼭 다시 와. 다른 데 가지 말고.”

그는 그 말에 슬쩍 웃었다.

“몸조심하고…… 현장 밖이 더 위험한 법이야. 그래도 여기선 헬멧이라도 쓰고 있잖아.”

팀장은 장갑으로 툭툭 자신의 바지를 털어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때 그의 통장에는 대략 이천만원 정도가 모여 있었다. 그는 이정도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태형은 평택 공사 일을 마치자마자 자신이 구치소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암수 두 마리의 강아지를 넘긴 개 농장주의 아들에게 연락해보았다. 예전 그의 휴대폰에 그 친구의 연락처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통화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태형은 나주에 있는 개 농장으로 직접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는 그 개 농장을 가본 적이 있었다. 당시엔 늘 약에 취해 있었는데, 그런데도 개 농장의 위치가 선명하게 기억났다. 눈이 제법 많이 내린 2월 중순, 김태형은 그곳까지 두 마리의 강아지를 데리고 갔었다. 집에 있던 켄넬 하나에 두 마리의 강아지를 넣은 채였다. 예비군 모자를 쓴, 작고 마른 체구의 개 농장주는 힐끔 그가 데려온 강아지들을 보고 나서는 ‘새끼 뱄네’, 그 말부터 던졌다. 김태형은 그때까지도 자신이 데려간 강아지가 임신한 줄 모르고 있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쟤가 자주 오줌을 싸고 그렇게 잠만 잤구나. 김태형은 켄넬 안에 웅크리고 있는 암컷을 바라보았다. 축사 쪽에서는 다른 개들이 악을 쓰며 짖어대고 있었다. 개 농장주는 한 마리당 이십만원을 불렀다. 그나마 아들 친구라서 넉넉하게 값을 쳐준 것이라고 했다. 김태형이 그 말에 가타부타 말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개 농장주는 차비 명목으로 십만원을 더 쥐어주었다. 새끼를 낳으면 그중 한 마리를 돌려주겠다는 말도 했다. 김태형은 그제야 뒤돌아섰다. 그는 그냥 좀 짜증이 났다. 못해도 백만원은 손에 넣을 줄 알았다. 개 농장주는 그의 등뒤에 대고 툭 한마디 했다.

“죄짓지 말고 살아, 이놈아. 부모가 뭔 죄야.”

김태형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면서 다시 비포장도로와 연결된 시멘트 길로 내려갔다. 눈은 그때까지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는 빨리 약을 하고 엄마에게 가보고 싶었다. 불쌍한 엄마, 그 곁을 지켜주고 싶었다.


근 사 년 만에 다시 찾은 개 농장이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사람을 만날 순 없었다. 개 농장은 이미 폐쇄된 상태였다. 컨테이너 박스 유리창은 모두 깨져 있었고, 축사 지붕도 한쪽으로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김태형은 고민하다가 나주 터미널에서 다시 광주 시내로 나갔다. 거기에 있는 모텔방을 잡고 들어가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김태형은 이시봉 아저씨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광주에 있는 한 타이어 공장에 다녔다고 했으니까, 거길 가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동료들이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도 있었으니까…… 


김태형은 그런 과정들을 거쳐 우리 집 앞으로 찾아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