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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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알바 공작부인의 방에서 베로와 그의 후손 비숑 프리제 두 마리를 데리고 나온 마누엘 데 고도이는 마요르 광장 근처 자신의 집으로 가지 않고, 곧장 그의 또다른 연인인 페피타 투도의 저택이 있는 살라망카 쪽으로 향했다(마누엘 데 고도이는 1797년 9월 왕비의 명에 따라 왕의 사촌여동생인 마리아 테레사와 결혼했다. 왕비는 자신과 고도이 사이의 불륜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거의 고아에 가까운, 산속 별궁에서만 살았던 마리아 테레사를 이용했다. 한편으로 그 결혼은 고도이의 난잡한 여성 편력을 잠재우기 위한 왕비 나름의 고육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고도이는 결혼 이후에도 계속 알바 공작부인에게 연정을 품었고, 안달루시아 출신의 배우였던 페피타 투도와는 아예 대놓고 살림을 차렸다. 말하자면 당시 스페인 총리였던 이 카스투에라 출신의 젊은이는 한꺼번에 세 명의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이제 막 목숨을 잃은 한 여인을 떠올리며 더 깊은 사랑에 빠진 참이었다! 그러니, 왕비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녀는 더 집요하게 마누엘 데 고도이를 원하고 또 원했다). 자정이 넘은 거리는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어둠만이 마치 잔뜩 적의를 품은 짐승처럼 골목마다 웅크리고 있었다. 마누엘 데 고도이는 걸으면서도 자주 새끼 비숑 프리제 두 마리가 엎드려 있는 바구니를 들여다보았다. 태어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암수 두 마리 새끼 강아지들은 그 와중에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오직 베로만이 조용히, 꼬리를 허리보다 약간 내린 채, 마누엘 데 고도이와 발을 맞추며 걸어갔다. 베로는 어느덧 열 살이 되어 있었다. 개의 일 년은 사람으로 치자면 칠 년. 그 이론이 맞는다면 베로는 이미 칠순에 가까운 할머니였다. 그동안 베로는 모두 스물여섯 마리의 손녀손자를 보았고, 그 대부분을 눈앞에서 잃었다. 화마에 휩쓸리기도 했고, 연기에 질식사하기도 했다. 어떤 강아지들은 정원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기도 했고, 또 몇 마리는 태어나자마자 숨을 거두기도 했다. 그때마다 베로는 묵묵히 그 옆을 지켰다. 죽은 아이들의 몸을 혀로 깨끗이 핥아주기도 했다. 베로의 시력은 이미 현저히 나빠져 있었지만, 후각만은 여전했다. 베로는 냄새로 자신의 후손과 다른 동물들을 구분했고, 낯선 자의 호의와 위협을 알아챘다. 그 후각이 베로를 여전히 의연하고 위엄을 지닌 개로 만들어주었다.

“웬 개예요?”

페피타 투도는 막 잠에서 깬 모습으로 마누엘 데 고도이를 맞았다.

“신분이 높은 개지. 당신보다 훨씬 더.”

마누엘 데 고도이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무렵, 궁정에서는 페피타 투도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귀족도 아닌 주제에 왜 저렇게 당당하지? 고도이의 집무실을 뻔질나게 드나든다는군. 그 안에서 뭔 짓을 하는지 누가 아나? 왕비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떠들고 웃고 한대. 저러다 또 사달이 나지. 독약 제조업자들만 신나게 돈을 벌겠군(실제로 왕비는 후에 마누엘 데 고도이와 페피타 투도의 불륜 관계를 심판해달라고 로마에 있는 종교재판소에 투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 투서를 가지고 가던 밀사를 로마 인근에서 체포한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은 파리에 앉아서 마드리드 왕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마치 남의 일기장 훔쳐보듯 훤히 꿰뚫고 있었다. 왕비의 투서를 읽은 나폴레옹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여자 낯짝이 정말 두껍군! 이건 자기 자신을 고발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럼 신분이 높으신 나리들께서는 같은 방을 쓰시고, 미천한 저는 헛간으로 사라져드리지요.”

페피타 투도는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그녀는 새끼 강아지들이 들어 있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마누엘 데 고도이가 그런 그녀의 팔을 잡았다.

“잘 들어. 신분이 높아지려면 신분에 걸맞은 걸 갖춰야 해.”

“그래서 총리 나리께선 왕비의 품에서 놀아나시는 거군요.”

페피타 투도는 비아냥댔다.

“이 개들이 당신 신분을 높여줄 거야.”

베로가 그들 사이에서 킁킁, 냄새를 맡았다.

“이 개들이 뭔데요?”

“프랑스 왕가의 개들이지. 에스파냐에선 보기 드문……”

마누엘 데 고도이는 베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뭐예요? 그럼 선물인 거야?”

페피타 투도의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졌다.

“당장 옷부터 갈아입어야겠어요. 얘들한테 정식으로 인사를 해야죠. 머리도 좀 만지고.”

그녀는 갑자기 마누엘 데 고도이의 팔짱을 끼곤 말했다. 그러곤 다시 혼자 부산스럽게 방 밖으로 나갔다.

마누엘 데 고도이는 베로를 안고 의자에 앉았다. 베로는 얌전히 그에게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마누엘 데 고도이는 베로가 그 옛날 자신이 처음 알바 공작부인에게 보낸 바로 그 강아지인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편지와 함께 산루카르성으로 보내진 새끼 강아지 중 한 마리. 세월이 흘러 그때 함께 간 수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선물을 받은 연인도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그 마음만이 낯선 방에 남아서 촛불과 함께 타들어가고 있었다. 마누엘 데 고도이는 뜻하지 않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왜 그랬던 것일까? 

따지고 보면 알바 공작부인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은 마누엘 데 고도이, 그 자신이었다. 알바 공작부인이 나폴레옹에게 띄운 편지를 가로채 왕비에게 밀고하지 않았다면, 분노에 사로잡혀 왕비에게 ‘알바 공작부인과 그 일당을 심연에 묻어버리라’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녀의 운명은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 편지를 조용히 불태우고 죽을 때까지 침묵할 수도 있었다. 말이 새어나올 인간들은 모조리 죽여 묻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만한 권력이 그에겐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한때 짝사랑했던 여자였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을 때마다 떠올렸던 그녀였지만, 자신의 사랑으로 인해 여러 차례 방화의 위협까지 겪게 만들었지만…… 그런데도 그는 그녀를 죽게 내버려두었다. 도대체 왜……?

마누엘 데 고도이는 자기 자신에게 분노했고, 죄책감을 느꼈다. 스스로가 끔찍하게 여겨지기도 했고, 자기 몸속에 어떤 병균이 깃든 것은 아닐까, 두려워지기도 했다. 모든 드러난 사실이 그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자기 대신 비난을 받을 만한 대상을 찾았고, 이윽고 그 분노와 치욕을 다시 알바 공작부인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말았다.

‘나폴레옹이라니, 한심하군……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도 없나? 그 시골 촌뜨기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잘 모르지. 누가 포병 출신 아니랄까봐 대포부터 쏘고 보는 잔인한 인간인데…… 그런 인간에게 편지라니, 스페인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친구에게…… 이건 명백한 반역이 아닌가? 나는 조국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잘못은 그녀에게 있다고……’

마누엘 데 고도이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난데없이 베로를 안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베로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자신을 배신하지 않은 것은 오직 품안에 있는 이 강아지뿐인 것만 같았다. 그는 관대한 눈으로 베로를 바라보았다. 푸석하고 힘없는 털과 얇은 다리, 생기를 잃은 코와 눈물이 잔뜩 고인 눈, 꾹 다물고 있지만 금세라도 끙끙 앓는 소리가 새어나올 것만 같은 입…… 그 늙고 가엾은 얼굴을 보자 마누엘 데 고도이의 마음은 한결 더 너그러워졌고, 애틋해졌다. 베로가 불쌍하고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베로의 얼굴에 자신의 뺨을 부비면서 속삭였다.

“죽을 때까지 내가 널 지켜줄게.”    

베로는 그 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마누엘 데 고도이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이 너무 슬퍼서 뚝뚝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알바 공작부인이 죽은 이후, 마누엘 데 고도이는 달라졌다. 그는 왕비의 총애를 받아 총리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었지만, 확실히 다른 귀족 가문 자제들에겐 없는 투쟁심과 권력욕이 있었다. 자신이 시골의 볼품없는 가문 출신이라는 열등감도 있었고, 그 열등감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는 인내심도 갖추고 있었다. 그런 복잡한 내면이 순간적으로 얼굴에 드러날 때도 있었는데,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했다. 당시 유럽의 패권자는 누가 봐도 명백히 프랑스였다. 스페인 귀족도, 러시아 귀족도, 베네치아 사람들도, 프로이센의 왕도 모두 프랑스어를 썼다. 프랑스어를 한두 마디 섞지 않으면 저급한 사람 취급을 당했으며, 스페인 귀족 부인들은 늘 파리의 유행을 따라가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군대는? 군대는 더 말할 나위 없었다. 이전까지 유럽 각국의 군대는 왕과 영주에게 고용된 용병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용병의 형태로 운영된 군대는 적을 미워하지 않았다. 용병은 군사이기 이전에 직업의 성격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처음으로 국민에게 징집령을 내린 국가였다. 말하자면 국민군의 창시자가 바로 프랑스였다. 그래서 이 군대는 직업이 아닌 신성한 의무와 명예로 적과 싸워나갔다(그렇게 국민을 세뇌하며 국민국가의 틀을 만들었다). 직업은 그만두면 일자리를 잃는 것이었지만, 의무와 명예를 저버리면 남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었다(그 반대편에 ‘명예로운 죽음’이 있었다). 그러니, 전쟁의 결과는 늘 한결같았다. 거기에다가 나폴레옹의 군대는 현지에서 보급품을 조달하고 자급자족하는 원칙을 세우고 있었다. 그 어떤 군대보다도 약탈에 능하고, 살인에 거리낌없다는 오명, 그 오명이 하나의 무기가 되었다. 유럽의 다른 모든 나라들은 프랑스 군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마누엘 데 고도이는 그동안 프랑스를 마치 마리아 루이사 왕비 다루듯 대해왔다. 적절히 기분을 맞춰주었고, 또 고분고분 머리를 숙였다. 절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오해를 살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프랑스가 영국에 대한 대륙 봉쇄를 선언하면 그에 얌전히 따랐으며, 말을 듣지 않는 포르투갈에 군대를 보내라고 지시하면 또 군말 없이 이행했다. 나폴레옹은 그런 마누엘 데 고도이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비슷한 연배이고(고도이가 나폴레옹보다 두 살 더 많은 형님이었다), 출신 성분이 비슷하다는 영향도 컸던 듯하다. 거기에다가 마누엘 데 고도이는 나폴레옹에게 늘 깍듯했다. 스페인이 한동안 프랑스의 위협으로부터 그나마 안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누구보다 마누엘 데 고도이의 공이 컸다.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누엘 데 고도이는 그런 모든 줄타기가 지겨워졌다. 누구의 눈치를 보고, 정세를 파악하고, 속뜻을 헤아리면서 마음을 졸여야 하는 그 모든 순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졌다. 거만한 프랑스의 전권대사가 불쑥불쑥 찾아오는 집무실에 출근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고, 왕비의 속이 뻔히 보이는 질문에 그럴듯한 표정 연기로 대하는 것도 더는 하고 싶지 않아졌다. 어느새 그도 총리만 벌써 십 년째였다. 그는 자주 처음 왕궁의 경비를 맡았을 때를 떠올렸고, 그때 돌봤던 왕궁의 비숑 프리제들을 생각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경이로웠던 순간들. 작은 구름 같은 새끼 강아지들이 졸졸 그의 뒤를 따라다녔던 오후의 복도들. 그때 거기엔 그 어떤 거짓도, 위선도, 맹목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적절했고, 모든 것이 느긋하기만 했다. 마누엘 데 고도이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는 집무실 대신 페피타 투도의 집으로 찾아가는 날들이 늘어났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또다른 애인에게 빠져 국사를 소홀히 한다고 비난했다. 왕비가 종교재판소에 그와 페피타 투도를 불륜 혐의로 고발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하지만 페피타 투도 역시 억울하긴 마찬가지였다. 마누엘 데 고도이는 자신의 집으로 찾아왔지만,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프랑스 왕가의 개들하고만 시간을 보냈고, 그 개들에게만 정성을 쏟았다.

“프랑스를 상대하실 분께서 프랑스 개들하고만 놀고 계시니, 스페인도 곧 포르투갈 꼴이 나겠군요.”

페피타 투도는 문가에 기대선 채 이죽거렸다.

“얘들이 프랑스 인간들보단 훨씬 더 다정하거든.”

“당신도 나한테 더 다정해보지 그래요?”

마누엘 데 고도이는 그 말에 두 마리의 새끼 강아지들을 들어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 강아지들이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잊지 말라고.”

  

1805년 10월, 스페인 남서해안의 트라팔가르에서 영국 해군과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 사이의 교전이 벌어졌다. 영국에선 그 유명한 넬슨 제독이 나섰고,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의 사령관엔 나폴레옹의 총애를 받던 빌뇌브 제독이 임명됐다(본래 나폴레옹은 연합 함대의 사령관에 마누엘 데 고도이가 나서줄 것을 바랐으나, 마누엘 데 고도이는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전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해전에 참여해본 적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누엘 데 고도이가 나폴레옹의 지시를 거부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국에선 스물일곱 척의 함선이,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에선 서른세 척의 함선이 교전에 나섰다. 결과는 참혹했다. 그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는 모두 스물두 척의 함선을 잃었고, 삼천이백 명이 전사했으며, 칠천 명에 가까운 해군이 포로로 잡혔다(사령관인 빌뇌브 제독도 포로가 되었다. 그는 후에 석방되었으나, 나폴레옹의 총애를 잃은 것에 상심해 어느 허름한 여관에서 자살로 생을 마쳤다). 영국 함선은 단 한 척도 침몰되지 않았다. 전장 상황을 보고받은 나폴레옹은 크게 분노했고, 그 모든 패배의 원인을 스페인으로 돌렸다(스페인 제독들이 빌뇌브의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저대로 놔둬선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스페인이 지리멸렬하면 포르투갈은 계속 영국 편에 설 것이고, 그러면 프랑스가 위험에 빠진다. 스페인이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왕이 저렇게 사냥에만 열중해 있으니…… 나폴레옹은 결단을 내릴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누엘 데 고도이는 계속 페피타 투도의 집에서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알바 공작부인의 집에서 데려온 새끼 강아지 두 마리는 1804년 모두 여섯 마리의 새끼 비숑 프레제들의 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1806년에는 다시 다섯 마리의 새끼들을 더 낳았다(우리는 이미 마누엘 데 고도이가 훌륭한 집사 출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누엘 데 고도이는 그 한 마리 한 마리 새끼 강아지들에게 직접 이름을 지어줬으며, 그들을 전담할 하인을 따로 고용하기도 했다. 그는 집무실에 나갈 때도 그 강아지들 중 두 마리를 번갈아 가며 데리고 가기도 했다. 왕비와의 관계는 자연 소홀해졌고(왕비는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왕은 사냥개에게, 총리는 비숑 프리제에게! 도무지 내가 이길 수가 없구나!’ 그래서 그녀는 근위대에서 또다른 젊은 정부를 골라오기도 했다), 국사도 다른 장관들에게 떠넘기기 일쑤였다. 페피타 투도는 처음엔 자신의 집이 개똥으로 어지럽혀지는 것을 보며 미간을 구겼지만, 결국엔 그녀 역시 충실한 집사 역할을 수행해나가기 시작했다(누군들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새끼 비숑 프리제 열한 마리가 뛰노는 모습을 보고 있다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베로가 걱정이에요.”

어느 날 밤, 페피타 투도는 마누엘 데 고도이에게 말했다. 그들은 같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제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계속 발작을 하더라구요…… 발작을 하다가 지치면 그제야 잠들고…… 잠에서 깨면 또 발작을 하고…… 저러느니 차라리……”

“차라리 뭐?”

마누엘 데 고도이가 차갑게 물었다.

“약이 있대요. 고통 없이 눈감을 수 있는……”

베로는 어느새 열다섯 살이 되어 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백 살을 넘긴 나이. 마드리드에서 베로보다 더 오래 산 강아지는 아마도 없을 것이었다. 베로는 이제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으며, 청력도 사라진 듯 보였다. 혼자 힘으론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한 번에 네댓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했다(탁자 다리나 기둥에 부딪혀 그대로 넘어지곤 했다). 거기에다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발작까지…… 베로의 운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약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마누엘 데 고도이는 모로 누우며 말했다.

“죽는 날까지 내가 지켜주기로 했어.”

페피타 투도는 그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곤 물었다.

“나는요? 나도 죽는 날까지 지켜줄 거예요?”

그 말에 마누엘 데 고도이는 쓸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약속은…… 당신이 내게 해줘야 할 거 같은데?”


1808년에 접어들자,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그 전해인 1807년, 프랑스는 포르투갈을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스페인에게 길을 내달라고, 영토 통과 협정을 체결하자고 요구해왔다. 마누엘 데 고도이의 치명적인 정책 실수는 바로 그때 벌어졌다. 그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때 그는 베로의 병간호에 모든 정성을 쏟고 있었다!). 거절한 명분도 딱히 없었다. 나폴레옹은 포르투갈을 점령한 후, 프랑스와 스페인이 공동으로 영토를 관리하자는 제안도 해왔다. 그러니, 뭐…… 마누엘 데 고도이는 나폴레옹을 믿었다. 하지만 1808년 2월, 포르투갈을 완전히 손에 넣은 프랑스 총사령관 뮈라 장군은 그 이후에도 스페인에 진주해 있던 프랑스군을 철수시키지 않았다. 철수시키기는커녕 새로 일만오천 명이 넘는 군대를 증파시켜 마드리드에서 가까운 비트라고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마누엘 데 고도이는 나폴레옹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르투갈 다음은 스페인이었다는 것을, 그도 왕도, 왕비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 프랑스 총사령관이었던 뮈라 장군 또한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나폴레옹이 지시하면 움직이는 사람일 뿐이었다.

1808년 3월, 왕과 왕비와 마누엘 데 고도이는 아란후에스 별궁으로 몸을 피했다. 프랑스군이 언제 어느 때 마드리드 왕궁으로 진격해올지 알 수 없기도 했지만, 더 큰 문제는 스페인 민중이었다. 마드리드에는 이미 나폴레옹이 카를로스 4세를 폐위시키고 그 자리에 아들인 왕세자 페르난도 7세를 앉힌다는 소문이 쫙 퍼져 있었다(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왕비의 첫째 아들인 페르난도 왕세자는 마누엘 데 고도이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누엘 데 고도이는 자기 엄마와 불륜을 저지른 남자가 아니던가! 그런 남자가 16년째 총리 자리에 앉아 있다니…… 그 문제 하나만으로도 왕세자는 아버지인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왕비에게 늘 불만을 갖고 있었고, 사춘기 소년처럼 반항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왕세자의 능력은 바로 그 부모에 대한 반항심, 오직 그 한 가지가 전부였다는 것이다. 그 한 가지 능력으로 호시탐탐 왕의 자리를 노렸다). 스페인 민중은 마누엘 데 고도이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가 스물다섯 살에 총리에 오른 것도, 알바 공작부인을 죽게 만든 것도, 그러고도 왕비와 계속 불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페피타 투도와 살림을 차린 것도,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프랑스군이 페르난도 왕세자를 도와 마누엘 데 고도이를 물리치고, 새 시대를 열 것이라고 믿었다(이런 순진한 사람들을 봤나!). 어떤 사람들은 스페인 민중의 손으로 마드리드 왕궁에 쳐들어가 직접 마누엘 데 고도이의 목을 베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 뒤엔 든든한 프랑스군이 있지 않은가! 우리도 프랑스 혁명처럼 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유행은 돌고 도는 법이니까(사실, 나폴레옹은 그 유행을 몹시 두려워했다).

마누엘 데 고도이는 아란후에스 별궁으로 떠나기 전, 황급히 페피타 투도의 집으로 향했다.

“당신은 일단 당신 오빠네 집에 숨어 있어. 강아지들 챙기는 거 잊지 말고.”

마누엘 데 고도이는 그 순간에도 후에스카르 비숑 프리제의 충실한 집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혁명이 일어나고 전쟁의 참화가 이어질 때, 강아지들이 어떤 운명에 처해지는지(프랑스 혁명 당시 왕가와 귀족 가문에서 키우던 강아지들은 그들 주인들에 앞서 대부분 참수당했다). 강아지들은 가장 먼저 바닥으로 떨어지고, 가장 먼저 짓밟힌다. 그게 바로 인간이 개들과 맺고 있는 관계의 본질이다. 본질은 늘 뜻하지 않은 사건과 사고 속에서 드러나는 법. 개들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희생되어왔다.

“그건 할 수 있는데…… 베로가 문제예요.”

페피타 투도가 피아노 의자 아래 부르르, 제 몸을 떨고 있는 베로를 보면서 말했다. 베로의 눈은 가늘게 떠져 있었지만, 검은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고, 오직 흰자위만 남아 있었다.

“베로는 내가 챙길 테니까…… 다른 강아지들부터 어서……”

마누엘 데 고도이는 붉은 천으로 베로를 감싸안았다. 베로의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듬성듬성 빠진 털 사이로 주름진 피부가 다 드러나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 있는 건 분명했다. 마누엘 데 고도이는 그런 베로를 품에 안고 아란후에스 별궁으로 향했다.

‘내가 널 죽을 때까지 지켜준다고 약속했잖니.’

걱정 마렴, 걱정 마렴. 마누엘 데 고도이는 계속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마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