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회



뒤로 하는 다이빙이건 앞으로 하는 다이빙이건 다이빙을 할 줄 아는 것이 실제 삶에서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었는데달리기나 높이뛰기나 멀리뛰기나 수영이나 권투나 레슬링 같은 것은 잘할 경우 의외의 순간에 본인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다이빙은 살면서 거의 쓸모가 없다고 볼 수도 있었고실제로 다이빙은 물에서 하는 다이빙을 할 때나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 말고는 쓸모가 없을 것이었고누군가가 투신자살을 결심하고 다리 같은 데서 뛰어내릴 때에도 다이빙을 하며 투신하지는 않을 것이었고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는 다리에서 투신하는 데 그냥 뛰어내리지 앞으로 혹은 뒤로 하는 다이빙으로 두 바퀴 반 혹은 세 바퀴를 회전해 뛰어내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 사람에게도 당사자에게도 아주 이상하거나 어색한 일일 수도 있고그럴 수만 있다면 없던 것으로 해야 할 것 같을 수도 있을 테지만 다이빙을 특별히 잘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생각에가령그냥 투신하는 것이 맞지만 다이빙을 해 투신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하는 생각에다리의 좁은 난간에몸의 균형을 잘 잡고 서서그렇지 않으면 그냥 떨어지게 될 테니까그렇게 되면 꼴이 우습게 될 테니까두 발을 모으고양팔을 머리 위로 올려 두 손을 모으는 식으로 다이빙 포즈를 취하거나 취하지 않은 채로아래쪽 물을 바라보며 자신이 다이빙을 특별히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자신의 다이빙 솜씨를 마지막으로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나는 모든 영법을 잘했지만 접영은 인간이 그 이상으로 잘하기 어렵게그냥 돌고래처럼 잘한전설이 된 미국의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올림픽 메달 보유 기록을 깨기 전까지 남자 선수로서는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 보유 기록을 갖고 있던 소련의 니콜라이 안드리아노프에서부터 역시 소련의 올가 코르부트와코마네치라는 이름 자체가 너무나 체조 선수의 이름 같고그 이름을 가진 다음에는 체조를 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루마니아의 나디아 코마네치와 러시아의 스베틀라나 호르키나와 미국의 시몬 바일스에 이르기까지 여러 체조 선수들은 떠올랐지만 아쉽게도 다이빙 선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다이빙 선수로 여겨지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도약대에서 점프하다가 머리를 부딪혀 뇌진탕을 입고 여러 바늘 꿰맸지만 머리를 여러 바늘 꿰맨 것이 투혼을 발휘하는 데 확실한 도움이 된 듯 두 개의 금메달을 딴 미국의 그레그 루가니스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는데어쩌면 다이빙 자체가 너무나 순식간에 끝나 생각해볼 여지가 많지 않은 것이라 올림픽에서 다이빙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것을 따로 본 적은 거의 없어서였던 것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 투신해 삶을 끝낸 누군가 중에는 다이빙을 자신이 살면서 가장 잘했던 것 중 하나로 생각하는실제로 세계적이거나 그렇지는 않은 어느 다이빙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한 경력도 있는 다이빙 선수 출신으로투신자살 장소로 가장 이상적인 곳들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같은 곳에서 뒤로 하는 다이빙으로 무려 세 바퀴 반 혹은 네 바퀴를 회전해심지어는 몸을 비틀며 최고 수준의 난이도 동작으로 뛰어내린 사람도 있지만 아쉽게도 그것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지도 몰랐는데어쩌면 그는 살면서 거의 아무런 쓸모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다이빙이 쓸모가 있게 된 것에 기뻐해야 하는지를그전에 다이빙 실력이 쓸모가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를그리고 투신을 앞둔 마당에 기분이 좋을 리 없는 상태에서 다이빙을 해 투신하는 것으로 마지막으로 한번 기분을 내는 것이 맞는지를 생각한 후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에 다이빙을 해 투신해 떨어지는 동안 자신의 다이빙 솜씨가 완전히 어디 가지는 않았다고완전히 녹슬지는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워낙 순식간에 떨어져 그런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었다.

나는 창밖으로 삭막한 풍경을 보며 투신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 정말로 뒤로 하는 다이빙으로 한 바퀴를 회전해 투신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 워낙 마음이 곤두박질친 나머지 뒤로 하는 다이빙으로 나의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정작 할 것도 아니면서 생각만 할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그것이 지루해졌고아마도 이제는 투신한다 하더라도 한 바퀴도 돌기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했고그 때문은 아니지만 투신하는 것은 포기한 사람처럼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가까스로 중단할 수 있었는데그러자 근처에 알링턴 국립묘지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기분전환을 위해 그곳에 가 무명용사나아니면 그곳에 묻혀 있는 누군가의 묘비에 헌화하거나 묵념하는 것을 생각했는데무명용사들을 포함해 기타 죽은 각종 사람들은 살아 있는 각종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든 자신들의 묘비에 와 헌화하거나 묵념하는 것에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개의치 않을 것이었고그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었고그 때문에 나는 죽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공동묘지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이 개의치 않는다고 해서 단지 기분전환을 위해 그들에게 가 헌화하거나 묵념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좋은 생각 같지 않았고그래서 1775년 독립전쟁을 벌여 1776년 독립한 후 이렇다 할 전쟁 없이 지내다가 마침 마땅한 구실이 생겨 1861년 남북전쟁을 치르며 전쟁에 대해서라면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그 전쟁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후 자신들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직간접적으로 끼어들지 않은 전쟁들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전 세계의 수많은 크고 작은 전쟁들에 개입했고그 덕분에 지금의 미국이 있게 되었고그 부산물로 많은 전몰자와 상이군인들을 배출하고 양성한 미국의 영혼을 상징하는 곳 중의 하나인 그곳에 가 그곳에 어울리거나 어울리지 않는 어떤 생각들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가지는 않았는데어쩐지 알링턴 국립묘지에 가더라도 특별히 생각할 것이 없어 다시 뒤로 하는 다이빙과 투신자살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 같았고알링턴 국립묘지에까지 가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였고그 이튿날 나는 산타페에 가서야 제인 폰다 때문에 하게 된 뒤로 하는 다이빙과 다이빙을 해 투신자살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더이상 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사막으로 둘러싸인 산타페에는 물이 없었고그것과는 상관없이다른 뭔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였는데 그것은 검은 헛간 그림과 검은 개에 관한 것이었다.

첫날 밤 저녁을 먹은 후 호텔로 돌아가며 작은 도시인 산타페의 시내 외곽 간선도로를 걷고 있는데 좁은 옆길의 어둠 속에서 마치 어둠이 어둠을 뭉쳐 만들어낸 것처럼 짙은 어둠 같은 검은 형체가 나타났고다리가 네 개 달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그 형체는 점점 내 쪽으로 다가왔고나는 그것이 로트바일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개는 세 번단호하게 공격적으로 크게 짖은 후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는데물론 개는 내게 겁을 주려고 짖은 것이었고나는 개가 겁을 주려고 한 것보다 훨씬 더 겁을 먹었고거의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는데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나는 개가 곧 달려와 나를 덮칠 것이 틀림없을 것 같았고마치 이미 개가 내 목을 문 것처럼 목에 깊은 상처가 나 피가 쏟아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물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거나 개를 향해 가거나 달아나거나 주저앉거나 드러눕거나 쓰러지거나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동작을 취하는 것은 좋은 생각 같지 않았고그 가운데서 드러눕거나 쓰러질 경우 개도 몹시 당황해 그냥 갈 것 같기도 했지만 드러눕는 것은 개 말고 다른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보기에 상당히 안 좋을 것 같았고, 사람이 일부러 쓰러질 수도 없었고, 대신 엎드려 죽은 척하는 것을 생각했지만 곰도 아닌 개 앞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역시 보기에도 안 좋고 어색할 뿐만 아니라 소용도 없을 것 같았고, 죽은 사람이라고 봐주지 않을 것 같았고, 마땅한 좋은 방법이 없는 것 같았고그래서 고개를 돌려 가던 길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개는 나름 그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 듯 약 이십오 미터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나를 따라왔고또다시 겁을 주며 공격적으로 크게 짖었고나는 이제는 달아나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할 경우 개가 백 미터를 9.58초에 달려 세계신기록을 세운 우사인 볼트를 가볍게 추월하는 속도로 달려와 나를 덮칠 것 같았고그래서 계속 천천히 걸어갔는데개가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내 목숨을 끊어놓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리가 후들거리기는 했지만 지금껏 살면서 내가 겪은 가장 경이로운 순간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고이런 일이 반드시 이렇게는 아니지만 비슷한 식으로 언젠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그런 생각을 몇 번 했던 적이 있는 것 같았고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할 것 같았지만 아직 그 순간은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조금 더 간 후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자 그때서야 개는 붉은 신호등 앞에서 무슨 생각에서인지어쩌면 붉은 신호등에는 길을 건너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횡단보도를 건너지는 않고 멈춰 서서 조용히 나를 지켜보았는데나를 그냥 보내주는 것이 맞는지그렇게 할 경우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지그냥 보내주더라도 좀더 겁을 준 후 보내주는 것이 낫지 않을지 생각해보는 것 같기도 했고개 스스로도 무슨 생각에 그렇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는지에 대해 자신이 없어하는손으로 머리를 긁는 듯한 모습을 보인 후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기 시작했는데산타페시에서 사람들에게 무료한 나날만 보내지 말고 어쩌다가 죽음의 공포도 느껴보라고 때로 맹견을 풀어놓기도 할 리는 없을 것 같았지만 산타페의 누군가는 그럴 생각으로 그렇게 하기도 하는 것 같았는데공포의 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공포 체험을 자주 하는 것은 안 좋지만 아주 어쩌다가 하는 것은 좋은 것은 아니지만 때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를 만나기 전 나는 산타페를 유명하게 만든 조지아 오키프의 컬렉션이 있는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에서 오키프의 작품들을 보았는데오키프를 유명하게 만든 꽃 그림들은 이전에 본 적이 있어서였는지 그것들보다도 뉴욕의 마천루들을 아래에서 부자연스러운 각도에서 압도적인 검정색으로 그린 초기작들이 더 인상적이었고별로 알려지지 않은 초기작으로위스콘신의 시골 출신으로 헛간에 대해 특별한 느낌을 갖고 있던 오키프가 시골의 어느 작은 헛간을 검정색으로 그린 작은 그림에 가장 마음이 끌렸고그래서 헛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나는 헛간에 대해 많이는 아니지만 약간의 특별한 느낌을 갖고 있었고그것은 저절로 갖게 된 것은 아니고 일종의 노력 끝에 갖게 된 것이었는데그 몇 년 전 텍사스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시골의 농장에 있는 헛간들을 수없이 많이 보았고그중에는 약간 눈길을 끄는 것들도 몇 개 있었고어쩌면 헛간에 대해 약간의 특별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고그것은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그래서 가져야겠다고 노력하던 중 어떤 헛간을 본 후 확실히 갖게 된 것이었다.

물론 다락방처럼 비밀스러운 곳을 좋아하는 어느 시기의 아이들이 헛간에 갔다가 몸을 나른하게 하는 좋은 냄새가 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건초 더미에서 잠이 들기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집을 두고 헛간에서 자거나 지내는 사람은 없을 테고집 대신 헛간을 지어 그곳에서 사는 사람도 없을 테지만나는 대체로 헛간에 있어야 하는 것들농기계나 건초나 사료나 비료그리고 말과 같은 가축들이 있는 대부분의 헛간들에서는 별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불에 타고 있는 어떤 헛간을 봤을 때에는 약간의 특별한 느낌을 확실하게 갖게 되었다.

어느 날 밤 나는 텍사스의 시골을 차로 지나가고 있었는데한 농장 위에 있는 상당히 큰 헛간이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있는 것이 보였고헛간은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른 둘과 아이 둘이 불을 끄려고 분주하게 움직이지는 않고 서서 불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그때 나는 텍사스의 친구와 함께 있었고우리는 차를 세우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는데어쩌면 불길을 잡기에는 이미 늦어서일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즐기는 것 같았고어쩌면 토네이도에 의해 부서졌거나 다른 이유로차라리 허물기로 한 헛간에 불을 질러 오래도록 그들 가족과 함께 한 헛간이 장엄한 최후를 맞게 했고헛간 역시도 자신이 원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처럼그리고 그 사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초원의 밤하늘 아래에서 환희에 찬 것처럼 환한 빛을 발하며 타고 있었다.

실제로 사람들도 불길도 헛간도 그 순간을 모두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 같았고마침내 헛간을 지탱하는 벽이 무너지며 헛간이 소리를 내며 붕괴되자 사람들과 불길과 헛간 모두가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고내 텍사스 친구는오늘이 그 농장에 있는 집의 한 아이의 생일인 모양이고텍사스의 시골에서는 저런 식으로 헛간에 불을 질러 아이의 생일을 축하해주기도 한다고 했는데불타는 헛간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좋은 선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고어쩌면 마음을 많이 두근거리게 하는 그런 선물을 받은 아이는 불길에 휩싸인 헛간과 마침내 허물어져 재가 된 헛간을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며그후 살면서 힘든 때에 그것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기도 하고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때에가령 누군가와 헤어지기로 결정할 때에 그것들에 대한 기억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었고아니면 결과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었고어떤 경우에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더라도 그 특별한 생일 선물은 평생 변함없이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간직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맹견과 조우해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일은 아주 드물게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산타페에서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고어둠 속에서 어둠이 만들어낸 것 같은 검은 맹견을 조우한 경험은 강렬했고개가 빛 속에서는 어떤 모습을 갖추는지 궁금했고 대낮에 그 개를 다시 한번 보고 싶기도 했지만 나는 개와 마주친 길은 피해 다녔는데개에게 물려 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고개에게 물려 죽는 것은 피넛 버터를 먹다 목이 막혀 죽는 것과 어느 것이 더 창피한 것인지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창피한 일일 것이었고나는 필요한 경우 다이빙을 해 투신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개에게 물려 창피한 모습으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후 며칠 산타페에 있는 동안 나는 그 개에 대한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는데그것은 그 개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기보다는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어쩐지 그 개가 오키프의 작은 헛간 그림 속 헛간에서 뛰쳐나온 것만 같았고그것은 헛간에 대해 약간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던 내가 그 그림 속 헛간 앞에 너무 오래도록 서서 그 헛간을 바라보았고그 헛간 안에서 생각지 못한 뭔가가 뛰쳐나올 수도 있다거나 뛰쳐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던 것 같았는데그것은 말이 안 되는 생각이지만 말이 안 되는 말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보는 것이기도 한 이 소설에서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될 수가 없었고나는 너무나 말이 되는 말은 소설에서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개도 헛간도 압도적이고도 위협적인 검은색이었는데어쩌면 나로서는 앞으로 조지아 오키프 하면 그녀의 작고 검은 헛간 그림과 그 헛간에서 뛰쳐나온 검은 개가 먼저 떠오르게 될 것 같았다.

산타페의 서점에서 열린 행사에서 나는 개와 헛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그것이 헛소리로 들릴 것 같아서는 아니었고그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였고산타페 역시 약간 은퇴자들의 도시이고행사에는 자신들이 은퇴자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다른 할일이 없어 그런 행사가 있으면 늘 오는 것 같은지팡이를 짚고 온 사람들이 주로 왔고어쩐지 세어봐야 할 것 같은 지팡이를 세어보자 사람과 지팡이의 개수가 거의 비슷했는데나는 어떤 이유로든 지팡이에 의지해 다니는 사람들을 좋아했고지팡이를 짚고 있거나 의자에 걸쳐놓은 채로 앉아 있는 사람들과 다른 무엇보다도 지팡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나 자신이 지팡이를 짚고 온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아 하지 않았는데 그 점이 약간 아쉬웠다.

그후 나는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에 있는 한 독립 서점에서 행사를 한 후 청중으로 온 한 젊은 누군가와 같이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그는 텍사스 휴스턴 출신으로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영어판을 읽었다고 했고그날 밤 둘 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우리는 함께 근처 태국식당에 갔는데우리가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자마자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아시아계 젊은 여자 넷이서 식당 한쪽 구석에 있는 가라오케 시설 앞으로 달려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물론 우리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었고그들은 이미 술에 많이 취한 듯 비틀거리며 악을 쓰며 노래했다.

식당에 우리 말고 다른 손님은 없었고그들은 우리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우리는 그들을 온통 아랑곳해야 했고우리는 그들이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를 때마다 악을 쓰며 말을 할 수는 없어 얘기를 멈춰야 했지만 주로 텍사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했는데나는 왜 그런 것이 기억에 남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그 얼마 전 휴스턴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행사를 하고 난 후 나를 안내한 누군가가 캠퍼스에 있는 고층 빌딩의 야외 정원에 데려가, 2017년 텍사스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휴스턴에 오백 년 혹은 천년에 한 번 날 대홍수가 나 노아의 방주가 필요했을 때 근처에 있는 브레이스 바이우 강이 범람해 앞쪽에 보이는 건물들이 어느 높이까지 물에 잠겼는지마치 그것을 틀리지 않게 얘기해주는 것이 그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인 것처럼마치 뭔가를 측량하는 사람처럼자신이 쌓고 있는 벽의 높이에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정확한 기억을 해내려고 애를 쓰며자신이 한 말을 수정하며 거듭 확인을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켜줘 나 역시 여러 번에 걸쳐 머릿속으로 수위를 수정해야 했는데당시 옆에 있던미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무척 비관적인사회주의자쯤 되는 듯한 누군가가 홍수에 대한 이야기 틈틈이 미국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미국이 정신을 차릴 거라고국가가 정신을 차리는 데는 혁명만한 것이 없다고 계속해서 말했고그래서 홍수와 미국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뒤섞여 내게는 미국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홍수가 정신을 차릴 거라는 혹은 홍수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미국이 정신을 차릴 거라는 이야기로 일단 정리가 되었지만 그것이 홍수에게 혹은 미국에게 좋은 일일 수 있는지까지는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 기억에 남았고그래서 내가 미국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 휴스턴의 대홍수에 대해 내 앞에 앉은 텍사스 친구에게 얘기하자 그는 당시 휴스턴에 있었고성경 속에 나올 것 같은 대홍수에 휴스턴의 많은 것들이 떠내려갔고자신은 대홍수에 떠내려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떠내려가더라도 그냥 떠내려가지는 않고 보트에 실려 떠내려가고 싶어 약간 저지대에 있는 자신의 집에 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리며 거실에서 작은 고무보트에 바람을 넣어 보트 안에서 빗물이 지붕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창밖을 보며카리브해의 휴양지나 무인도까지 떠내려갈 각오로 노 젓는 연습을 하고 있기도 했지만 그의 집까지는 물이 차오르지 않아 아쉽게도 못 떠내려갔고 고무보트의 바람을 빼며 카리브해까지 가려면 좀더 큰 고무보트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나는 두 번 간 휴스턴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었는데휴스턴에 갔을 때 마침 숙소 근처에 있어 갔던하필이면 호박의 나라인 라트비아의 유대계 혈통으로아브라함의 직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방계일 수는 있고그리스신화와 니체와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그런 주제와 초현실주의 그림들을 그리다가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우크라이나 출신의 카지미르 말레비치를 비롯한 절대주의 미술가들의 영향을 포함해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내 생각에는 헛것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주로 아무것도 말하는 것이 없는자신이 보게 된 헛것들을 그린무제오렌지색과 노란색검정색 위의 적갈색, 1무제오렌지색과 붉은색과 노란색붉은색 속의 네 개의 어둠, 5무제적갈색 위의 붉은색진한 붉은색 속의 검정색, 14무제파란색과 오렌지색과 붉은색붉은색 위의 파란색, 61무제그리고 죽기 얼마 전에는 누가 봐도 우울해 보이고 우울해지게 하는 색들로 그린유서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것들 자체가 유서였다고 사람들이 해석하기도 하는 그림 시리즈로 회색 위의 검정색 등의 제목을 붙인 직사각형의 색채 그림들을 그렸지만벽화들을 위한 그림들도 그렸고뉴욕 시그램 빌딩의 포시즌스 레스토랑을 장식할 벽화들을 위해 그린 그림들이 그곳에서 식사하는 부자들에게 식욕을 더 나게 하고 기분도 좋게 해주는 좋은 장식품이 될 거라는 생각이 하필이면 식사를 하던 중 머릿속을 스치며 기분이 나빠져 식욕을 잃게 되면서 한동안 완전히 식욕을 잃어버렸고기분이 나쁜 것에 더해 식욕 또한 전혀 없는 것에 더 기분이 나빠져 계약을 취소해버리고 그것들을 테이트 모던을 비롯한 미술관들에 기증해버리는 등 평소 많은 것들에 기분이 안 좋았고 불만이 많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쌓은 불만의 탑이 하늘을 찌를 정도여서였다기보다는 결국 우울병 때문이기도 하지만 뭔가를 해버리는 것을 좋아하고 잘해 마지막으로 해버리기에 그것만큼 적절하고 확실한 것도 없어 자살해버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끝내버린자신의 출신인 라트비아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던 듯 더 근사한 느낌을 주는 본래 이름인 마르쿠스 로스코비츠라는 이름도 버려버린 마크 로스코가 한 건축가와 설계한예배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작은넓은 기준으로는 미국 동북부의 뉴저지와 뉴햄프셔와 코네티컷 같은 작은 주들 다섯 개를 합친 크기로누군가와 오스틴에서 그곳에 차로는 처음 갔을 때 가도 가도 휴스턴이고 끝없이 휴스턴이고 한참이 지나서야 마치 양파의 가장 안쪽에 있는 최종적인 둥근 속처럼 진짜 휴스턴이 나타난도시 자체로도 상당히 크고 근사한 도시이기도 한 것 같은 휴스턴보다는 라트비아의 작은 읍에 더 어울릴 것 같은완공되었을 때 내가 과거에 좋아했던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모턴 펠드먼이 그 예배당을 위해 특별히 작곡한 ‘로스코 예배당이 연주되기도 한 로스코 예배당의 외관은 작은 크기 때문은 아니고아마도 건물 자체는 건축가가 거의 설계해서인 듯 그의 회화 작품들에 있는 로스코적인 요소가 부족하게 느껴져서였을 수도 있지만 특별한 느낌은 없었는데당시 예배당은 보수공사중이라 내부를 볼 수 없었지만 내부는 로스코적인 요소들로 가득하고특히 벽화들은 역시 무제, 81검정색 속의 자주색검정색 속으로 파고드는 자주색검정색 아래로 가라앉는 자주색검정색 위로 떠오르는 자주색검정색 속에 떠 있는 자주색검정색 속을 떠다니는 자주색검정색 속을 떠내려가는 자주색어둠 속의 어둠 속의 어둠 속의 끝없는 어둠 등의 제목을 붙여도 좋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몰랐는데나는 헛것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헛것처럼 보이는 것들은 보이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의 다른 모습이기도 한 것 같은 헛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보이면서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지는 않았는데열 살 무렵 어머니로 여겨지는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물방울무늬 같은 둥근 점들로 뒤덮이며 사라지는 환영을 본 후 정신과적인 문제로 헛것을 보기 시작해 평생을 강박증과 편집증과 불안증에 시달렸고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고 제이차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군수공장에서 낙하산을 만들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붉은 꽃무늬 식탁보에서 발견한 반복되는 둥근 점들과강가에 역시 무수하게 반복되는 모습으로 널려 있는 하얀 조약돌들을 비롯해주로 반복되는 형태들로 이루어진 사로잡힐 수 있는 모든 것들에 기꺼이 사로잡혀 그것들을 중요한 모티프로 해 회화와 설치 작품들을 만들었고일본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다가 봉건적인 사회인 일본에 답답함을 느껴 미국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도움을 청할 생각에 자신이 화집으로 보고 좋아한 조지아 오키프에게 용기를 내 편지를 썼는데 오키프가 친절하게도 답장을 해 뉴욕으로 가라고 해 뉴욕으로 가 1960년대에 뉴욕에서 활동할 때 누드를 좋아해 누드 퍼포먼스를 하고물방울무늬가 들어간 기모노를 입고 역시 물방울무늬로 모습을 꾸민 말을 물방울무늬를 전도하는 사제처럼 타고 가고 나무와 고양이는 물론 개구리도 물방울무늬로 교화할 생각으로 개구리가 사는 연못에 들어가 붓으로 캔버스와 물에 물방울무늬를 그리지만 교화될 준비가 되지 않은 개구리가 저항하며 계속해서 공중으로 뛰어오르게 하고, 60년대에 유행하던 것으로개구리와는 달리 쉽게 교화된 사람들이 난교를 하는 것으로 끝나는, <자아 말소Self-Obliteration>라는 비디오 작품을 만들기도 했지만 뭔가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에 좌절해 퍼포먼스를 하듯 가볍거나 무거운 마음으로 자살을 시도했고나로서는 읽지 않았고 읽고 싶지 않고 읽지 않아도 자살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녀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다분히 선정적인 제목의 『맨해튼 자살 중독자』라는 소설을 무겁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썼고놀이에 심취해 있는 어린아이처럼 베트남전쟁에 심하게 빠져 있는 닉슨의 주의를 딴 데로 돌려볼 생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그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전쟁을 중단할 경우 그와 섹스를 해주는 호의를 베풀겠다고 일방적으로 제안하기도 했지만 전쟁에 너무 빠진 나머지 다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닉슨의 일방적인 거부로 둘 사이의 섹스도 성사되지 않고 그로 인해 베트남전쟁이 중단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게 했고앤디 워홀을 비롯해 당시 가장 유명한 몇 명의 남자 미술가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것에 환멸을 느꼈고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무엇보다도 좋아해 관심을 끌기에 좋은 해프닝들을 벌여 뉴욕에서 명성과 함께 악명을 얻게 되기도 했지만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다른 계획이 있어역시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었고 사막에 사로잡혀 뉴멕시코의 사막에 살고 있던 오키프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한 제안도 뿌리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계획대로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한 후로 확실하게 예술가로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등 삶 자체를 퍼포먼스 아트로 만드느라 힘들기는 했지만 재미있기도 하고 상당히 정신없기도 한 삶을 살았지만젊은 시절 상태가 아주 안 좋았을 때 수프로 만든 호박을 먹고 나은 후 호박에 치유력이 있다고 믿게 되면서 호박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었고평생에 걸쳐 호박을 무한히 사랑했고, “호박의 영혼과 마주하고 다른 모든 것은 잊고 내 앞에 있는 형태에 전적으로 마음을 집중하고자 하고…… 단 하나의 호박과 마주하고 한 달을 보내기도 했다는 말까지 할 생각을 해내 했고실제로 호박과 말을 나눴고호박이 자신이 하는 말을 듣고 따르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녀 자신은 호박이 하는 말을 듣고 따르기도 했고크기와 더불어 호박의 진정한 놀라운 점인 무한한 용도에 대해서까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호박을 영적인 존재로 생각하며 숭배해 호박에 대한 어설픈 시를 쓰기도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숭배가 지나쳐 우상숭배로까지 나아간 것 같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좋은 것을 깊이 생각한 끝에 자신을 살려준 호박에 해답이 있다는 것을 계시처럼 깨달아 호박을 모티프로 한 수많은 작품들을 만든호박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인물인 일본의 미술가 구사마 야요이와는 달리 로스코가 호박의 나라 출신임에도 혹은 그 때문에 호박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던 듯 내가 알기로 호박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인 것 같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같았고아흔에 이른 구사마가 더 늦기 전에 일본 나오시마의 방파제에 설치한사다리를 놓거나 암벽등반을 해 그 위에 올라갈 수도 있지만 영영 안 내려올 것이 아니라면 올라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은섬유 유리로 강화한 플라스틱으로 만든검은 점들이 있는 노란색의 거대한 호박 같은 것을 호박의 용도에서 착안한 어떤 요소들을 더하면 좋을 테지만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더라도작은 것은 작거나 큰 실물 호박 크기이지만 큰 것은 작은 섬만한 압도적인 크기의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비밀리에 여러 개 만들어 물에 떠다니기를 좋아하는 모든 것들의 상징으로 혹은 평화의 상징으로 혹은 그녀가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무한한 우주의 상징으로 혹은 아무것도 상징하지 않는 것의 상징으로 오대양을 떠다니게 해 그것들을 발견한 사람들이 처음에는 바다에 불시착한 호박 모양의 유에프오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호박이라는 것을 알고는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이 아닐까하는 의혹을 갖고 제기하게 하고그것에 대해 인정하고 싶겠지만그리고 그녀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자신을 향한 모든 관심을 외면하고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끝내 부인하고사람들이 큰 것은 작은 섬만한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호박들이 바다에 떠다니는 것은 남극과 북극의 빙하에서 떨어져나온 크고 작은 빙산들이 떠다니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어쩐지 행운을 가져다줄 것 같은지나가거나 어딘가에 떠밀려온 호박들에게 안녕을 빌 수 있게 해도 좋을 것 같았는데 그렇게 할 경우 그것은 그녀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그녀의 일생일대의 작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