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회



<에필로그>

 


가을에 나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영어판이 나와 캐나다 토론토를 포함해 미국의 몇 개 도시에서 행사를 했는데, 늘 그런 행사들을 뭐하러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맥빠지는 행사들이었는데, 뉴멕시코의 앨버커키의 한 서점에서 한 행사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고, 그때가 제일 좋았는데, 대체로 행사에서 사람들은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들을 해 사람을 괴롭혔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 그런 질문들에 답하지 않을 수 있었고, 오지 않은 모두에게 고마웠지만 때로는 그런 질문들이 재미있게 여겨지기도 했고, 그래서 그런 행사를 하는 것도 상관없었고, 그런 일들이라도 있지 않으면 어디를 갈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 행사들 덕분에 간 몇 군데 장소에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있었고, 그것들로 이 소설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것을 쓸 수 있었다.

토론토에서는 토론토 국제 작가 축제에 참가했는데, 행사가 끝난 저녁에 열린, 캐나다의 한 대표적인 독립 출판사가 개최한, 캐나다의 비주류 작가들은 거의 다 온 것 같은 꽤 큰 파티에서 만난 캐나다 작가 두 명과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들 역시 소위 말하는 비주류 작가들이었고, 어쩌다가 우리는 엄밀하게 말하면,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각만 하며 사실은 아무 생각이 없고, 생각이라는 것을 할 때에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하기를 좋아하는, 책을 아예 읽지 않고 다른 뭔가를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는 대중들이 많이 보는 책을 쓰는 소설가의 경우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에 기분이 안 좋아지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없을 것이고, 어떤 책들은, 특히 읽는 사람들을 감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감상적인 책들은 읽는 것이 아예 읽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는 등의 쓸데없는 얘기들을 나누기도 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소위 말하는 비주류 작가들이어서였고, 젊은 캐나다 작가들은 많은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책을 읽는 사람들을 너무나 잘 사육해 누군가가 생각한 것을 책에서 말한 것을 그대로 생각하는 것 말고는 스스로 생각이라는 것을 전개할 줄 아는 독자가 없는 것과 자신들의 독자가 적은 것에 대해 불평했고, 그래서 내가 농담으로 한국에 내 소설 독자가 열 명 정도 된다고 자랑하자 독자가 나보다는 훨씬 많은 듯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나 역시 내가 한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야 할 것 같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랬고, 그것은 농담보다는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했고, 그 사실을 생각하면 재미있기도 했고, 독자가 그 정도인 것이 적당한 것 같기도 했는데, 우리는 캐나다와 미국의 소설가들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는데, 우리가 아는 한 미국의 문화에 시달리는 캐나다 소설가들이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는 편이며, 심지어는 한국에서도 한물간 작가들로 여겨지고, 그냥 다 옛날 사람들로 여겨지는 W. G. 제발트나 토마스 베른하르트나 로베르토 볼라뇨 같은 작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작가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미국은 소설에 있어서는 거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는 데 거의 생각을 같이했는데, 내 생각에는 캐나다 소설가들의 새로운 시도들 또한 미미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우리는 술을 마시면서 조금 친해졌고, 내가 농담으로, 여름에 밴쿠버에 머물다가 그곳에는 사람이 어느 기간 이상 지내기에는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이 있어 예정보다 일찍 떠났다고 하자 그들 역시 주로 은퇴자들이 사는 곳인 밴쿠버에서 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캐나다가 정말 재미없는 곳인 것은 국가적인 문제로 국가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그들 역시 그 문제가 심각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캐나다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걸로는 생각지 않으며, 그것이 캐나다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라고 했고, 그들 중 한 명은 더이상은 캐나다에 있을 수 없는 듯 곧 뉴욕으로 갈 생각이라고 했다.

삼 년 전 나는 어떻게 해서 토론토에 있는 다른 한 출판사의 초대로 출판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과거에 마차 보관소로 쓰인 건물을 거의 그대로 쓰고 있고, 시내에 있지만 시내에 그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름한 이층 건물에, 지금 어딘가에 그런 출판사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고, 그래서 상상 속 출판사처럼 하고 있으려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은, 실내가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1920년대에서 멈춘 것 같은, 나로서는 아주 마음에 들었지만 다소 불편하게 정신없게 쌓여 있는 책과 물건들로 인해 그것들을 쓰러뜨리지 않고는 걸어다니기도 어려운, 하지만 오십 년이 훨씬 넘은 캐나다의 대표적인 독립 출판사 중 한 곳인 그곳에서 캐나다의 대표적인 비주류 소설가들의 책을 한아름 안겨줘 받아와 몇 권 보다 말았는데, 그 책들에서도 미국에 시달리는 캐나다인들의 여러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중 한 권은, 그것에 대해 이런저런 사람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싶어하는 많은 작가들이 미국이건 캐나다건 뉴욕으로 가는 것에 대해 쓴 것도 있었다.

그후 나는 뉴욕에서도 행사가 있어 갔지만, 그전에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뉴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후 행사가 있는 워싱턴 D. C.에 갔고, 사흘째 되는 날 백악관에서 의사당으로 이어지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의 인도를 지나가는데 맞은편 대로에 구호를 외치며 수백 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오고 있었고, 나는 시위대를 보는 순간, 어디서, 주로 프랑스에서 시위대를 봤을 때 때로 떠오르기도 했던,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대학 시절 잠시 어떤 점에서 대단히 그럴듯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당시 한국에서 상당히 유행하던 사회주의 프로파간다에 넘어가 사회주의자 행세를 하며 그 이름부터 근사한 느낌을 주고, 안에 든 가솔린 냄새도 좋고, 본래 알코올이 담겨 있던 술병으로 만들어져 던지기도 좋고, 술병으로 하여금 그것에 어울리는 최후를 맞게 해주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던지는 각도에 따라 불이 붙은 병이 검은 연기로 다양한 모양의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을 보는 것도 좋고, 땀도 흘릴 수 있어 좋고, 그래서인지 던지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그 자체가 많은 것들을 상징하는 동시에 상징의 힘을 무엇보다도 잘 보여주기도 하고, 그것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 그 이유만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면 심지에 불을 붙여 던지기도 했던, 본래 스페인 내전에서 공식적으로 데뷔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이차세계대전 중 1939년에서 1940년 사이에 일어난 겨울 전쟁 때 핀란드인들이 핀란드를 침공한 소련군의 탱크에 맞서 싸우며 던지면서 공식적인 이름이 없이 지내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좋은 이름을 생각해내려 했고, 결국 당시 소련의 외무 장관의 이름을 따 이름을 지어준, 가난한 사람의 수류탄 혹은 줄여서 몰리로도 불리는 몰로토프 칵테일로 누구를 다치게 하거나 뭔가에 불을 지르지는 않아 결과적으로 잘한 일 같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나간 어린 시절은 아니지만 어떤 시절을 떠올릴 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마들렌 과자처럼 떠오르기도 하는 몰로토프 칵테일도 마음대로 던질 수 없는 시대와 사회는 얼마나 무료한지를, 그리고 지나고 난 후 생각해보자 몰로토프 칵테일들을 던졌던 것은 사회주의 프로파간다에 넘어가서였다기보다는 무료해서였던 것 같았다는 것을 가끔 생각하곤 했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고, 다른 무엇도 다른 누구도 아닌, 몰로토프 칵테일과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아주 멀다고는 할 수 없을 수도 있는 제인 폰다가 떠올랐는데, 나는 그녀가 열렬한 환경 운동가로 워싱턴에서 열리는 많은 시위들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쩌면 아주 운이 좋으면 그녀를 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간해서는 그런 운이 나를 찾아와주지 않는데 운이 누군가를 잘못 찾아온 것처럼 나를 찾아와 아주 운이 좋게도, 마치 나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시위대의 선두에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제인 폰다가 마치 보란듯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마치 뭔가에 이끌린 사람처럼, 사람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손을 들어 허공을 망치처럼 내려치는 것처럼 흔들기도 하는 그녀가 시위대에 동참하라는 지시를 해 그것을 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걸음을 돌려 선두에 선 그녀와 나란히 걸어갔는데, 물론 그 시위에는 누구나 동참할 수 있었지만, 나는 어떤 경우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항상 나 스스로를 굳이 말하자면 비활동가로 생각하며 비활동가에 어울리게 처신하려 했고, 그래서 시위대에 합류하지는 않고 시위대와는 약간 거리를 두고 걸어갔는데 그 정도의 거리를 두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거의 여든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키가 크고,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의 모습을 그대로는 아니지만 약간 달리해 여전히 갖고 있는 그녀는 한눈에 보아도 제인 폰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활동가이자 영화배우인 그녀는 출연한 수많은 영화들에서 시위하는 장면을, 심지어는 몰로토프 칵테일을 던지는 장면 역시 찍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날은 영화 속 시위 장면을 찍고 있지 않았고, 사람들과 함께 시위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영화배우보다는 활동가에 더 가깝게 보였지만 역시 영화배우로도 보였고, 시위는 그녀가 출연한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반전시위가 유행했던 60년대에 미국의 어딘가에서 몰로토프 칵테일들을 던졌고 그것을 좋아했는지도 몰랐다.

그날의 시위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문제와 관련된 시위였고, 나 역시 그 시위의 주장에 공감했고, 그것을 지지하고 응원했고, 모두가 생각지 않을 수 없는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했지만 내가 시위대를 따라가며 주로 생각한 것은, 그것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제인 폰다와 뭔가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베트남전쟁이 한창일 때 미군 장병들을 위로해주러 베트남에 가, 당시 미국의 반역자로 낙인찍히고 싶어했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반미적인 발언을 해 미국 정부의 미움을 산 일에 대해서도, 그후 활동가로서 활동하며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여러 번 체포된 일(그후 나는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플라스틱 끈에 손목이 묶인 채로 환하게 웃으며, 원하던 바를 이룬 사람처럼 행복해하고 있는, 빨간 코트를 입은 그녀의 사진도 인터넷에서 보았는데, 그녀는 시위를 할 때면 가장 눈에 띄는 색인 그 빨간 코트를 항상 입지는 않지만 자주 입는 것 같았고, 그녀가 시위에 참가한 사실만으로도 뉴스가 되지만 경찰에 체포되면 더 큰 뉴스가 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녀는 경찰에 체포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고, 체포되면 원하던 것을 이룬 사람의 표정을 짓는 것 같았는데, 경찰 역시 밤에 술을 마시면서 누군가에게 얘기하기에 좋은 것이어서 그녀를 체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녀를 체포하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에 대해서도 아닌, 뒤로 하는 다이빙과 연못 혹은 호수에 관한 것이었다.

1980년대 초반에 나온 <황금 연못>이라는 영화에는 실제로 아버지와 딸 사이인, 내게는 톨스토이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흑백영화 <전쟁과 평화>에서 지독한 허무주의자 귀족 피에르 베주호프 백작으로 영화 후반부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에서 심한 고초를 겪어 영혼이 나간 사람을 인상적으로 연기한 배우로 가장 기억되는 헨리 폰다와 제인 폰다가 서로 많은 것이 맞지 않아 사이가 멀어진 아버지와 딸로 등장하는데, 제인 폰다가 약혼자와 그의 아들과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가 여름을 보내는 뉴잉글랜드의 별장을 찾아갔을 때, 집 근처에 있는 황금 연못이라고 불리는 호수에서 사람이 웃는 것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아비새들이 우는 것에 대해 어머니가 새들이 사람들을 환영하고 있다고 말하자, 가능하면 뭐든 좋지 않게 보기를 좋아하는 괴팍한 노인이 된 아버지가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잘 들리는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그 영화에서, 제인과 약혼자가 한 달간 유럽 여행을 가며 맡기고 간 아이와 아버지가 월터라는 이름의 굉장히 머리가 좋아 여간해서 잡히지 않는 물고기를 잡다가 보트 사고를 겪고, 그후 여행에서 돌아온 제인이 자신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뒤로 하는 다이빙을 아이가 하는 것을 보고 뒤로 하는 다이빙을 시도해 성공하고, 그후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 뒤로 하는 다이빙은 아주 중요한 모티프로 나오고,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뒤로 하는 다이빙을 해본 적이 있는지, 있다면 어디까지 해보았는지 생각해보았을 수도 있는데, 그중에는,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혹은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해볼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 혹은 나는 아직까지 앞으로 하는 다이빙도 해본 적이 없어, 혹은 나는 한 바퀴까지는 해보았지, 혹은 나는 세 바퀴 반까지 하는 게 목표인데 무려 두 바퀴까지 해보았지, 혹은 나는 한 바퀴까지밖에 못했지만 높은 절벽에서 세 바퀴까지 하는 사람도 본 적 있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제인 폰다와 약간 거리를 두고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데 마치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거리에서 그와 비슷한 사람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문득 제인 폰다와는 그다지 가까운 사이는 아닐 것 같은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생각났는데, 왜 문득 슈워제네거가 생각났을까 생각해보자 그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로, 폰다만큼 활동적이지는 않은 것 같지만 활동가로도 활동하고 있었고, 아마도 그래서 그가 생각난 것 같았는데, 슈워제네거는 폰다와는 달리 어디서 시위를 하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았고, 어디서 시위를 하거나 하는 것은 그에게 아주 안 어울릴 것 같았고, 보기에도 보기에 따라 별로 혹은 상당히 안 좋을 것 같았고, 그래서 시위는 하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슈워제네거를 생각하면 폰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뒤로 하는 다이빙과 같은 어떤 것이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나는 할리우드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젊은 시절 보디빌더로 세계를 제패했고 <터미네이터>에도 출연한 배우이기도 한 그를 어디에선가 달려온, 단신이지만 무예에 능한, 브루스 리 같은 누군가가 자신의 무예를 자랑하려고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몸을 날려 얼굴을 발로 걷어차 얼굴이 부분적으로 일시적으로 마비된 것처럼 말이 잘 안 나오는 상태에서 말하는 것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독일어 발음이 남아 있는 그의 상당히 어눌한 독특한 발음을 좋아했는데, 특히 그 독특하게 어눌한 발음이 끝내 어떤 끝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터미네이터에게 잘 어울리는 <터미네이터> 영화 시리즈에서 그가 터미네이터로 말할 때의 발음을 좋아했고,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가 터미네이터로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 말고 딱히 그에 대해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과거에, 아주 순식간이지만 허공에 떠 있다가 물위로 떨어져 물속으로 가라앉는 다이빙에 대해 약간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이빙을 했는데, 그때마다 원숭이나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유인원들이 다이빙을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인간이 다이빙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여러 가지 신체적 능력들 가운데서 어쩌면 가장 하찮은 것일 수도 있지만 유인원들은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을 주는 어떤 것 같았는데, 마찬가지로 인간이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잃게 된 여러 가지 신체적 능력들 가운데서 하찮지 않은 것으로 아쉬운 것은 나무를 타거나 오르거나 나무들 사이를 건너뛰는 능력인 것 같았는데, 물론 나무를 타거나 오르거나 나무들 사이를 건너뛰는 능력을 잃게 되면서 다이빙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테지만 다이빙을 하며 공중에서 회전할 수 있는 능력은 날개로 하늘을 나는 새들의 능력과 지느러미로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물고기들의 능력에는 비할 바 못 되지만 그 자체로 좋은 능력 같았다.

그런데 물을 등진 채로 물을 보지 않고 하는 뒤로 하는 다이빙은 앞으로 하는 다이빙과 원리는 비슷하지만 좀더 어려웠고, 좀더 긴장하게 했고, 좀더 특별한 느낌을 주었고, 뒤로 하는 다이빙을 할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나는 살면서 뒤로 하는 다이빙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었고, 한 바퀴 반을 돌아 입수한 것이 최고 기록이었고, 그 일이 있었던 날과 장소도 또렷하게 기억했는데, 그것은 어느 여름날 프랑스 마르세유 근처, 마을 사람들 외에 관광객들은 오지 않는, 주로 십대 아이들이 꽤 높은 절벽에서 다이빙을 하는 지중해 바다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나는 그런 일이라면 그것을 기념해 특별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따로 뭘 하지는 않았고, 그냥 앞으로 하는 다이빙으로 한 바퀴 반을 회전해 입수하는 것으로 그것을 자축했다.

나는 육상에서 하는 운동, 가령 달리기나 구기 종목 운동 등은 잘 못했지만 수영은 잘했는데, 내가 오믈렛을 만드는 것을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수영을 잘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육상에서 하는 운동들보다는 잘했고, 물속에 있으면 너무나 편안했고, 그래서 물속에 있을 때면 물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물에서 살 수는 없었고, 그래서 가급적이면 원할 때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는 물이 가까운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런 적은 없었다.

그후로도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다이빙을 한 그날은 내가 보낸 어떤 날보다도 선명한 하루로 기억되었는데, 꽤 높은 절벽과 그 위쪽의 하얀 석회암 산들의 모습을 기억했고, 그날의 구름들이 어떤 모양들로 어떻게 흘러갔는지까지 기억이 난다고 하면 좋을 테지만 그것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날 구름들이 어떤 모양들로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아무래도 좋았던 날이었고, 뒤로 하는 다이빙을 하면서 영화 <황금 연못>과 제인 폰다를 생각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나는 뒤로 하는 다이빙을 할 때면 항상 제인 폰다를 생각했었는데, 물론 그것은 제인 폰다가 출연한 영화 <황금 연못>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다시 뒤로 하는 다이빙을 하게 되면 몇 바퀴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어쩌면 한 바퀴 이상 하지는 못할 것 같았는데, 제인 폰다는 실제 삶에서 처음으로 뒤로 하는 다이빙을 한 게 언제였는지, 몇 바퀴까지 해보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였는지 궁금했고 그것을 제인 폰다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로 시위로 바쁜 사람에게 다가가 그것을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뒤로 하는 다이빙을 할 때마다 제인 폰다를 떠올렸던 내가 워싱턴에서 그녀와 나란히 걸어가며 뒤로 하는 다이빙에 관해 그녀에게 질문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것이라면 그녀에게 물어봐도 좋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기도 했다.

내가 시위를 끝낸 후 잠시 시간을 내주는 호의를 베푼 제인 폰다와 뒤로 하는 다이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이 글은 그야말로 소설이 되겠지만 애초에 이 글은 소설이었고, 제인 폰다와 뒤로 하는 다이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더 소설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그녀에게 가 양해를 구하고 영화 <황금 연못>과 뒤로 하는 다이빙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면 유명한 사람이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서라면 기꺼이 잠시 모르는 누군가와 얘기하기도 할 정도로 그녀는 좋은 사람처럼 여겨졌고, 어려서부터 여름이면 가족의 호숫가 별장 같은 곳에 가 호수에서 수영과 함께 다이빙을 많이 했고, 아주 잘했을 것 같은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와 출연한 그 영화에 대해, 그 영화 속에서 자신이 뒤로 하는 다이빙을 한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거라고, 그리고 누군가와 뒤로 하는 다이빙과 호숫가에서 보낸 시간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고, 아마도 세상의 여러 바다와 호수와 강에서 수없이 많은 다이빙을 했을 그녀라면 다이빙에 관해서라면 할말이 아주 많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나는 다이빙에 관해서라면 언제든 누군가와 얘기하기를 좋아했고, 예전에 처음 알게 된 사람에게 다소 두서없이 다이빙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적도 있었는데, 대체로 다이빙을 재미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그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과는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그 사람이 다이빙에 아무런 관심이 없을 경우 이 사람과는 할 이야기가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대체로 그 생각이 맞았다.

나는 실제로 처음 보게 되었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될 수도 있는 제인 폰다가 가까운 미래에 어쩌면 그녀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뒤로 하는 다이빙을 한번 더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는데, 어쩌면 그렇게 할 경우 마지막으로 뒤로 하는 다이빙을 했을 때와 영화 속에서 했을 때 혹은 그 훨씬 전에 어려서 처음 했을 때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를 생각할 수도, 혹은 그 모든 일들이 최초의 뒤로 하는 다이빙과 마지막으로 하는 뒤로 하는 다이빙 사이에 일어난 일들처럼 여겨진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 이튿날 워싱턴을 떠날 예정이었지만 워싱턴에서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고, 그래서 가능하다면 제인 폰다가 선두에 서 있는 시위대와 함께하며 계속해서 뒤로 하는 다이빙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지만 시위대는 내가 보기에는 다분히 시위를 하다 마는 것처럼 하며 얼마 후 집회를 끝내고 해산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날따라 경찰은 그녀를 체포하지 않았는데, 그냥 자진해서 해산하는 시위대 속의 제인 폰다를 핀셋으로 집어내듯 끄집어내 체포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았고, 그럼에도 그녀도 경찰도 아쉬워할 것 같았고, 나도 아쉬웠는데, 시위 때마다 그녀를 체포하게 되면 경찰의 이미지도 안 좋아질 수도 있어 어쩔 수 없는 일 같았지만 실제로 그녀도 경찰도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아쉬움을 표현하며 다음에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속으로 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혼자 아쉬움을 표현했는데,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딘가로 갔고, 나는 끝내 뒤로 하는 다이빙에 대해 얘기를 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애초에 그런 것으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 리 없었고 단지 그것을 생각했을 뿐이고 생각한 것으로 충분했지만, 내 생각에 역시 대단한 사람인 제인 폰다는 대단한 사람일수록 대단히 친절해 그러기도 하는 것처럼, 시위를 막 끝낸 자신에게 양해를 구하고 뒤로 하는 다이빙에 대해 얘기하는 누군가에게, 어쩐지 보기에도 정상이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이 사람이 제정신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웃으며, 언제 어디에서 한 뒤로 하는 다이빙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와 몇 바퀴를 돈 것이 최고 기록인지 같은 것 정도에 대해서는 얘기를 해주었을 수도 있었고, 그전에, 기후변화 같은 것에 관심을 갖는 것도 필요하지만 뒤로 하는 다이빙 같은 것에 대해 약간 특별한 감정을 갖고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시위대가 해산한 후 그날 하루를 워싱턴에서 별로 하는 일 없이 보내는 동안에도, 그 이튿날 공항에서 항공사의 잘못으로 뉴멕시코의 산타페에 가는 비행 편이 취소되어 항공사에서 호텔을 잡아준, 워싱턴 인근 펜타곤 시티에서 하루를 머물면서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뒤로 하는 다이빙에 대한 생각으로 보냈는데, 펜타곤이 있는 펜타곤 시티는,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약간 외곽에 있는 호텔에서 멀리까지 나가보지는 않아 다른 곳은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껏 내가 가본 곳들 중 가장 우울한 곳 중 하나였고, 11월의 좋지 않은 날씨 탓도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곳의 기운 자체가 거의 예사롭지 않게 좋지 않게 느껴졌는데, 전 세계를 대상으로 주로 좋지 않은 일들을, 때로는 아주 안 좋은 일들을 꾸미는 펜타곤이 있어 기운이 좋을 리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았고, 아무튼 좋지 않은 일들을 꾸미는 곳이 있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 같은 느낌을 주었고, 심지어 나는 며칠 더 머물며 그 좋지 않은 기운의 정체를 알아보고 싶기도 했지만, 점심 무렵 잠시 시내를 산책했을 뿐인데도 라틴아메리카의 작은 나라에서 펜타곤이 백악관이나 CIA 등과 꾸며 반군을 지원했지만 완전히 실패로 끝난 쿠데타에서 아주 보잘것없지만 가장 힘든 어떤 역할을 한 후 버림받아 밀림 속을 며칠 헤맨 것처럼 무척 피로했고, 결국 호텔방에 돌아와 십층 창밖으로 보이는 삭막한 풍경을 보고 있자 또다시 다이빙 생각이 났다.

그런데 바깥 풍경 때문은 아니었지만 무척 우울했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졌고, 때로 그토록 무의미하게 여겨지는데도 계속해서 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지만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어서는 아니었고, 그냥 어떤 건물의 고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투신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쉽고도 확실하게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인지,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투신해서든 다른 식으로든 본인의 의지로 삶을 끝내는 사람들 모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등을 생각하며, 약간 고집스럽게 십층 아래로 투신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내가 투숙은 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이십사층 객실에서 투신했고, 주로 은퇴자들이 사는 곳이기는 하지만 은퇴자들이 살기에 좋은 다른 곳들을 두고 그가 이주하는 홍콩인들의 무리에 섞여 물살에 흘러간 것처럼 가, 항구도시로 중국인들이 많이 살아 약간 작은 홍콩 느낌도 나는 밴쿠버에 살 때 자주 가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이 약간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 밴쿠버 시내 스탠리 공원에 있는 그를 기리는 벤치에 앉아 잠시 마음속으로 그를 기리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뒤에서 누군가가 내 목을 조르지는 않았지만 목을 조를 것처럼 손을 목덜미에 대려고 하는 것 같아 한순간 소름이 끼쳐 뒤를 돌아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기도 하는 것과 같은 일이 실제로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 상상을 하기도 해 내게는 이상할 정도로 약간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 장국영에 대해 생각하며 그가 죽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우울병을 앓던 그가 유서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 후 살면서 나는 나쁜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왜 이래야 하지?”라고 쓴 부분에 대해 잠시 생각했지만,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검은 콜타르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가라앉는 것처럼 어두워졌고, 그래서 더이상 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순간 문득 십층에서 그냥 뛰어내리지 말고 다이빙을 해 투신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