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

인석이 하씨를 봤다. 용수는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려 그들에게 집중했지만 대화 내용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인석이 하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전날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되짚어보면 기억나는 게 별로 없었다. 실연의 상처로 내리 잠을 자고 있다는 이영만이 인상에 남았을 뿐이었다. 용수는 목에 건 펜던트를 만져보았다. 연수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자 연수와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일순 마음이 편안해졌다. 침실 쪽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주방 테이블 위에 크고 둥근 조명등 하나가 노르스름한 빛을 발할 뿐 게스트하우스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불빛 아래 여섯이 모여 있었는데 테이블 위에는 낮에 준엽이 계곡에서 가져온 제사 음식과 작은 털보가 내놓은 파전이 있었다. 난로 위 주전자에서 찻물이 끓는 소리가 들렸다. 그 옆에 고구마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움막 선생은 우리라네. 하씨가 말하고는 껄껄 웃었다. 

인석이 놀라 하씨를 쳐다봤다. 용수는 양쪽을 살폈다. 침묵이 이어졌다. 

설마 그게 답니까? 인석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다라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면 우리가 알려줄 수 있는 건 없다네. 스스로 알아가야 하는 것 아니겠나? 우리는 늘 자신이 영웅이 될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남이 영웅이 되길 바라지. 우리가 만든 영웅이 우리를 구원해주기를 바라지만 그런 건 없다네. 

저는, 아니, 우리 스터디 모임은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하는데요. 그리고 움막 선생은 굳이 따지자면 자유인이지 영웅이 아니고요. 

그런가? 하씨가 말을 이었다. 게스트하우스가 되기 전 이곳은 등산객을 위한 일종의 대피소였다네. 여기에 털보라는 인물이 살았지. 도로가 없을 때라서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네. 밖에서 보면 아름답지만 자연은 무자비하기도 하지. 아니 자비를 모른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군. 산에서 예측 가능한 건 없다네. 털보는 조난한 사람 몇을 구하고는 유명해졌어. 뉴스는 산을 넘어 도시까지 파다하게 퍼져나가서 등산객이나 여행객 중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네. 그의 기백이 하늘을 찌를수록 찾아오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지. 그는 은둔자, 아니 자유인의 모습을 모방하기 시작했네. 사람들이 그에게 원하는 모습이었지. 무주공산 안으로 사람을 불러들일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거라고 하면 말이 될까?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면 몸이 편하다네. 그런데 그 기대를 배신하면 곧바로 손가락질을 당하지.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환상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곧바로 배신감을 느끼지. 자기 착각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남을 질타하는 게 훨씬 쉬우면서도 재미있거든. 시간이 지나면서 털보는 잊혔어. 효용 가치가 사라진데다 때마침 도로가 놓이면서 쫓겨나버렸지. 그후로는 말해 무엇하겠나?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다름없었지. 눈빛에서 느껴지던 기백과 자부심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마른 얼굴에 박힌 탁한 눈이 한껏 든 주눅을 표현하고 있었다네. 그러다가 최근에는 산중에 작은 움막을 짓고 거기서 지낸다고 하더군.

그분은 제가 찾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들은 이야기는 그런 게 아니었거든요. 

원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움막 선생도 있다네. 요 아래 서울민박 사장도 부인이 죽고 난 후에 토굴에 들어갔어. 우리는 모두 그를 토굴 선생이라고 부른다네. 그는 일 년 뒤에 스스로 걸어나오겠다고 하고서는 빛 한줄기 들지 않는 굴에 홀로 들어갔어. 그리고 반년이 넘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없었어. 토굴에 들어가 명상을 하겠다는 사람이 드물기도 하거니와 들어가더라도 얼마 안 돼 신경 증세를 보이며 밖으로 나왔지. 그러니 어떤 일이 일어났겠나? 생불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네. 최근까지도 사람들이 토굴 앞에 서서 기도를 올린다더군. 이만하면 움막 선생이 아닌가? 

또 있어요. 인석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리는 것을 본 준엽이 껴들었다. 바위를 타던 어린 부부는 한겨울에 꽝꽝 언 폭포를 타러 갔어요. 남자가 먼저 빙벽에 오르고 여자가 뒤이어 올랐는데, 남자가 그만 발을 헛디디면서 얼음덩어리가 아래로 떨어진 거예요. 남자가 낙석이라고 다급하게 외쳤지만 이미 떨어진 얼음덩어리가 여자의 머리를 치고 난 뒤였지요. 여자는 그대로 추락해 즉사했죠. 남자는 여자를 화장해서는 그 뼛가루의 일부를 펜던트에 넣어 목걸이로 만들었어요. 그걸 목에 걸고는 매일 산에 가서 암벽이든 빙벽이든 닥치는 대로 올랐어요. 마치 속죄의 의식을 치르는 듯 말이에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어요. 그들은 남자를 따라 겨울에는 얼어붙은 폭포를 기어오르고, 얼음이 녹으면 바위를 올랐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는 조금씩 밝아졌어요. 말도 늘었고요. 그런데 그가 밝아질수록 사람들이 하나둘 떠났죠. 사람들이 떠나가자 남자는 오랜 생각 끝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의 얼굴을 모방하기 시작했어요. 과거의 자기 슬픔을 복제하면서 목걸이든 고통이든 죄책감이든 슬픔을 전시하듯 다녔지요. 그러자 다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거예요. 

그 사람, 기억난다. 유튜버로도 유명해. 작은 털보가 말했다. 과거의 자기 우울을 스스로 복제하면서 우울 그 자체가 되었지. 

으이구, 저분들이 또 헛소리한다. 마이크가 웃었다. 

용수는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금도끼와 은도끼, 쇠도끼를 차례대로 내미는 산신령처럼 그들은 인석이 원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을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흐릿한 조명등 아래서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밤이 지나도록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았는데, 그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그러면서도 용수는 연수가 준 목걸이를 생각했다. 절반으로 잘린 하트 모양의 펜던트를 연수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그제야 의아하게 느껴졌다.

움막은 굴이라네. 굴이 비면 다른 동물이 들어와서 그전에 있던 동물을 대신하지. 굴은 사라지지 않는다네. 여기도 마찬가지고. 이 정도면 우리가 움막 선생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굴은 있어도 움막 선생은 없다네. 굴이 대물림되는 거지. 다시 말해 움막 선생은 너무 많다고도 할 수 있고 아예 없다고도 할 수 있지.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움막 선생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인석이 말했다. 말하고 나니 괜히 심통이 났다. 그래서 한층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스스로 알아야 한다면서 계속 가르치려 들고 있다고요. 뭔가 알려줄 듯 말 듯 이상한 분위기만 풍기면서 있다고 했다가 없다고 했다가 헷갈리게 말이에요. 그리고 움막 선생이 복제품입니까? 계속 늘어나게요?

허헛, 자네가 늘리고 있지 않나? 

제가요? 

인석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슬슬 화가 치밀었다. 아는 체하는 사람들치고 멀쩡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움막 선생을 팔아 신비감을 조성하려 든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런데도 쏘아붙이거나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화를 내는 것은 곧바로 자리를 파하는 것으로 연결될 거였다. 밖은 어두웠고, 산길은 무서웠다. 집에 가는 길이 고생길이 될 게 뻔했다.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 이곳에서 뛰쳐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소란을 피운 후에도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은 체면이 서지 않았다. 인석은 화를 낼까 말까 고민하며 옆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봤다. 왠지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누울 자리도, 다리를 뻗을 자리도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심통 난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심심해서 저러는 거니까 너무 신경쓰지 말아요. 마이크가 말했다.

맞아요. 이곳에서 기다리면 움막 선생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원하는 걸 그가 알려줄 거예요. 준엽이 웃으며 말했다. 

도로 쪽 문이 열렸다. 여자 하나가 발을 들여놓고는 안쪽을 기웃거리다가 그대로 안으로 들어왔다. 

아유, 추워라. 여자가 패딩 점퍼에 달린 모자를 벗고는 말했다. 

작은 털보가 무슨 일이냐는 듯 일어서자 여자가 주위를 살피고는 대뜸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전단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정수기를 들여놓으라고 권했다.

한 달에 만구천팔백원으로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어요. 

여기는 물이 나오지 않아서 정수할 물도 없는데요. 작은 털보가 퉁명스레 말했다. 

여자는 그럴 줄 알았다며 가방에서 또다른 전단을 꺼내 조금 전 올려놓은 전단 위에 겹쳐놨다. 

생수 말통도 있어요. 한 달에 육천원짜리 생수 다섯 통을 마시면 정수기를 무료로 대여해드려요. 

준엽이 관심을 보이며 전단을 살폈다. 그걸 본 작은 털보가 짜증을 내며 여자에게 말했다. 

우리가 마실 물을 끌어가서는 우리에게 되파는 겁니까? 

여자는 작은 털보의 말에 아랑곳없이 자기 할말을 했다. 

18.9리터의 대용량 생수통 하나가 원래 육천원인데 매달 네 통씩 삼 년 약정에 이만구백원에 드릴게요. 그럼 통당 오천이백이십오원인 셈이에요. 한 통에 칠백칠십오원씩, 그러니까 네 통이면 매달 삼천백원 더 저렴하게 드리는 거예요.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대도시, 중소도시의 경우, 다시 말해 이동 경로가 짧은 지역은 매달 세 통에서 네 통이 기본 통수이고 냉온수기도 무료로 대여해드린답니다. 그러나 이곳은 이동 경로도 길고 언덕을 오르는 것도 만만치 않아서 매달 다섯 통에서 여섯 통은 기본으로 드셔야 해요. 즉 생수를 배달하는 사업도 사업인지라 인건비와 유류비 발생에 비례하여 기준 통수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제가 특별히 한 달에 말통 생수 네 통에 냉온수기까지 무료로 대여해드릴게요. 우리 회사는 계약 조건이 까다로운 관공서 등의 기관과 계약 체결을 많이 해서 믿을 수 있답니다. 견적서와 세금계산서 등 행정 서류도 잘 갖춰져 있는데다 업무 진행 능력도 좋고요.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이 신뢰하는 회사니까 더 말해 무엇하겠어요.

필요 없습니다. 작은 털보가 말했다. 

물이 필요 없다니요. 여자가 놀랐다. 물은 생명이에요. 기본 중에서 기본이라는 말입니다. 

두고 가세요. 나중에 살펴볼게요. 여자가 나갈 생각을 하지 않자 작은 털보가 한층 누그러진 소리로 말했다. 

아유, 퉁명하기도 하셔라. 필요할 때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성심껏 도와드릴게요. 

여자는 전단 위에 명함을 올려두고는 밖으로 나갔다. 남자 둘이 밖에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물을 팔려 들다니, 참 무서운 사람들이야. 작은 털보가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게 다 변하고 있어. 우리에게는 더 좋지 않은 쪽으로 말이야. 준엽이 말했다. 

침묵이 이어졌다. 

주렴 소리가 났다. 주렴이 갈라지는 소리는 파도 소리 같았다. 이영이 스르르 걸어나와 준엽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주위를 훑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희미한 미소가 얼굴에 살포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대로야. 이영이 말했다. 늙지를 않아. 모든 게 변하는데 그 사람만 변하지 않지.

죽은 사람은 늙지를 않지. 하씨가 수긍했다. 사진 속의 사람도 마찬가지라네. 변하지를 않아. 사진 속에서 과거의 아들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네. 그게 슬퍼. 나는 아들과 함께 살고 싶었다네. 그러나 결국 그러지 못했지. 떠돌아다니느라 아들과 추억을 만들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나중에라도 함께 살고 싶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으나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다네. 그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네. 희한하지 뭔가? 그렇게 일을 했는데도 말이야. 아들은 이제 없네. 여자가 되었다네. 

그 사람은 그대로예요. 옆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상태로요. 

좀더 쉬어. 작은 털보가 걱정했다. 

나는 계속 쉬고 있어. 그 사람과 함께. 하지만 괴로운 건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진정하면 진정할수록 그 사람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야.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사람의 얼굴이 지워지는 걸까? 내가 본 그 사람의 얼굴은 사라지고 사진 속 얼굴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아. 변화도 없이, 오 년이 지나도록 똑같은 얼굴로. 나는 괴로워서 죽을 것 같아서 죽지 않으려고 그 사람의 메일에 편지를 써보려고 했어. 글을 쓰면 쓸수록 쓰레기 같은 말만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늘어놓을수록 그 사람과는 상관없는 말들만 장황하게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는데 이상하게 말을 하면 할수록 나는 조금씩 더 편안해지는 것 같았어. 하지만 만약 그 사람이 내 얘기를 듣는다면 어떨까? 들을수록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말들이지. 정말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진정한 이야기를 하는데 진정할수록 더 멀어지다니, 쓰레기만 울컥울컥 내뱉는 입이 그 사람을 하수구로 만들고 있어.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지. 사랑하는 법도 기억하는 법도 슬픔을 극복하는 법도 모두 배워서 하는 거니까. 작은 털보가 말했다. 그래서 진정하면 진정할수록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거지. 그러니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감정을 말할 때는 특히 그런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 거지. 

모든 게 다 유형에 속하는데 슬픔의 유형이 있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지. 하씨가 말했다. 

하지만 불쾌한 건 그 전형이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라는 거예요. 이영이 말했다. 

효과적이니까 전형이 된 거 아닐까요? 마이크가 말했다. 

사실 나는 고통을 처리하는 방식을 알고 있어. 슬픔에도 유형이 있고, 극복하는 방법에도 유형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걸 알고 그렇게 하는 내게 화가 나. 여기도 마찬가지야. 여기 모인 사람들도 그렇고 끝이 보여. 우린 결국 쫓겨날 거야. 그럼 각자 제자리로 돌아가면 되지만 제자리가 여기인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그 사람도 그랬어. 그 사람의 무덤이 될 줄 모르고 내가 도시로 가자고 했지. 여긴 비상구가 없어. 있다고 하더라도 계단이 없어서 비상문을 열면 그대로 허공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는 구조야. 예전에 한 식당에 간 적이 있었어. 복잡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건물 삼층으로 올라갔는데 갑자기 머리가 아픈 거야. 나는 어지러워서 비상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 그런데 비상문 앞에 경비원이 문지기처럼 앉아 있는 거야.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문지기 같은 경비원이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하더라고. 따지기에는 너무 어지러워서 그냥 거기 주저앉았지. 경비원도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게 다였어. 그게 끝이었지. 나와서 건물을 보니까 비상문과 연결된 비상계단은 없었지. 비상문을 열면 그대로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고. 그 사람도 그렇게 죽어버렸지. 

비상계단도 없이 식당을 운영한다는 말이야? 그러다가 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마이크가 외쳤다. 

여기도 마찬가지야. 아니 어디나 마찬가지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비상구 따위는 없다고. 

움막 선생이 오면 방법을 알려주지 않을까요? 인석이 물었다. 

노크 소리가 났다. 준엽이 정원 쪽 문으로 다가갔다. 밖에서 문이 열리고 턱수염이 얼굴의 절반을 뒤덮은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그는 비쩍 말라서 볼품없었다. 등에 짊어진 커다란 배낭 탓에 앙상한 몸이 더 앙상해 보였다. 

움막 선생이외다. 남자가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준엽이 말했다. 

지나다가 들렀어.

움막 선생이 안으로 들어와 테이블 위를 훑었다. 

움막 선생입니까? 인석이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제 앞에 앉으라고 손짓하고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세상을 공짜로 산다고 들었습니다.  

자네가 움막 선생이라고 하면 나는 움막 선생이고 토굴 선생이라고 하면 토굴 선생이지. 자네는 누군가? 

내면의 변신을 꾀하려고 움막을 짓고서는 홀로 살아가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궁금한 게 참 많아서 좀 여쭙고 싶은데요. 

내면의 변신을 꾀하려다가 내면이 병신이 되었다오. 움막 선생이 말했다. 여긴 먹을 게 많구려.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도록 좀 나누어줄 수 있겠는가? 

그간 어디에 계셨어요? 마이크가 수저와 그릇, 술잔을 가져다 움막 선생 앞에 놓았다. 

전국에 지인이 깔려 있어도 돈이 없어 나는 다른 지역으로는 못 간다오. 내가 원한 건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이었는데 돈이 없어 그것도 어렵게 되었다오. 산밑에 천막을 치고 막걸리를 팔았으나 파는 건 고사하고 내가 먹는 게 다요. 여기까지 걸어오는 것도 꽤 힘들었다오. 이 나라 어디에도, 심지어 내가 머물던 자연 안에도 나를 위한 공간은 없소이다. 나는 배가 고프오. 먹을 것을 좀 내주시지 않겠소? 나는 언제나 지금 먹는 게 마지막 식사라고 생각한다오. 

움막 선생이 제 앞에 놓인 음식을 허겁지겁 먹으면서 동시에 말했다. 입안에서 침과 음식물이 계속 튀어나와 테이블을 더럽혔다. 도시에 오면 술을 한잔 사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못 가오. 차비가 없어 못 가오. 나는 지쳤다오. 지쳐서 그런지 오랜만에 라면이라도 하나 먹고 싶은데 끓여주시겠는가? 

라면 한 그릇에 이천원이에요. 작은 털보가 일어났다. 

예끼, 이 사람아! 내가 돈이 어디 있다고 그러나? 그러지 말고 맛있게 좀 끓여보시게. 라면이 하나라도 정성을 기울여서 말일세. 라면의 생명력은 면발이니까. 면이란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라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나? 말하자면 면발이 생명이라는 뜻이라오. 면발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온도가 제일 중요한 거야. 계속 휘적거려야 하지. 그리고 참고로 나는 라면에 달걀을 넣는 것도 자제한다오. 김치도 마찬가지고. 라면 그대로의 맛을 느껴야 하지. 천천히 씹어보면서 라면의 맛이 어디에서 오는지 느껴보는 거라오. 언제 느낄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먹을 수 있을 때 충분히 느껴야 하지. 근데 내가 하나 얘기할 게 있는데 대파도 풍풍풍 크게 썰어 넣어야 대파 본연의 맛 그대로가 느껴진다오. 그래야 파 국물이 우러나 국물맛을 좋게 하면서 면발에도 맛이 배어들거든. 움막 선생이 말했다. 

작은 털보는 투덜거리면서도 움막 선생이 말하는 대로 라면을 끓였다. 라면 냄새가 퍼지자 다들 침을 삼켰다. 그걸 본 작은 털보는 라면을 더 끓였다. 마이크가 일어나 라면 그릇을 내왔다. 김치도 썰어왔다. 테이블 중앙에 커다란 냄비가 놓였다. 마이크가 각자 접시에 라면을 덜어줬다. 움막 선생이 허둥거리며 그릇을 비웠다. 턱수염에 음식물이 튀었다. 수염 끝에 김칫국물이 매달려 있었는데 움막 선생은 신경쓰지 않았다. 

나이들면 먹는 것 외에 다른 즐거움이 없다오. 늙고 병들어도 미각은 병들지 않는 법이라오. 게다가 최근에 먹은 게 너무 없어서 더 그렇다오. 

땀이 차올라 은빛 수염이 반짝반짝 빛났다.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자른 듯한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더벅머리였는데 며칠은 감지 않은 것 같았다. 게스트하우스에 정적이 감돌았다. 움막 선생이 배낭에서 책을 몇 권 꺼냈다. 움막 선생은 자신의 움막 생활을 담은 책이라며 나눠줬다. 

한 권에 삼만원이라네. 내 형편이 이러니 그냥 줄 수는 없고 한 권당 이만원에 주겠네. 

우리가 그런 돈이 어디에 있어요. 그냥 한 권 두고 가세요. 작은 털보가 만원을 내밀었다. 

망할 놈의 생존 욕구 때문에 주체와 타자 사이의 틈새를 메울 수가 없었습니까? 그래서 내면의 변신을 꾀할 수가 없었느냐고요? 인석은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을 지껄였다. 그러고는 떠오르는 말을 혼잣말하듯 읊었다. 그렇다면 거지들이 실체이고, 왕들과 허세 부리는 영웅들은 거지들의 그림자란 말이군. 인석이 야속하다는 표정으로 움막 선생을 봤다. 

여기는 막장이에요. 절벽이죠. 이곳에 왔다는 건 곧 끝이 난다는 거죠. 우리를 받아줄 곳은 아무데도 없으니까요. 이영이 얼음 서린 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