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는 그 반대다―1

걷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금정연을 제외하면. 금정연은 걷는 걸 싫어했다. 그는 평생 걸어온 것처럼 몸이 가벼운 사람으로 보였지만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싫어했다(평생 말해온 사람처럼 말도 잘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싫어하는 건 아마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잘 산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그렇다. 

―지돈씨, 제가 언제요?

정연씨가 말했다. 걷는 걸 싫어하지 않았냐는 말에 대한 대답이다. 

―『아무튼, 택시』에도 썼잖아요. 걷기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제 신물이 난다.

―제가 그런 글을 썼어요? ……고마워요, 지돈씨. 덕분에 많은 걸 기억하게 되네요. 

정말 고마운지 모르겠지만 정연씨가 말했고 나는 정말 고마웠던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뭐든 내 위주로 생각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야지 하루하루 견딜 수 있다. 가까스로……

내 글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사람은 금정연과 오한기다. 한 사람은 서평가고 다른 한 사람은 소설가다. 끼리끼리 논다, 관심도 없는 너네들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어떤 편집자는 내게 글을 청탁하면서 이번에는 금정연과 오한기 이야기를 빼고 써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보기도 했다. 정지돈은 (장 뤽)고다르 없으면 글 못 쓸 듯.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금정연과 오한기가 없으면 글을 못 쓴다. 고다르는 없어도 상관이 없다. 늙은, 백인, 이성애자, 남성, 영화감독이 있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가. 그의 영화나 말이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그가 없는 다른 평행우주에서도 그와 유사한 무언가가 내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금정연과 오한기가 없는 평행우주는 상상할 수 없다. 그곳은 우주가 아니다. 그곳은 영혼을 잃은 빈껍데기, 앙꼬 없는 찐빵…… <기묘한 이야기>가 없는 넷플릭스와 마찬가지다(여담이지만 <기묘한 이야기> 시즌 3은 별로였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지인 이야기를 왜 하나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빼놓을 수 없는 친구, 글을 쓰건 일을 하건 뺄 수 없는 어떤 최종 심급과 같은 요소나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금정연과 오한기가 그런 존재다. 심지어 그들은 글에 등장하지 않을 때도 자신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글이 도통 써지지 않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그들에게 전화를 건다. 정연씨, 살려주세요/ 한기씨, 소설 한 편만 써줄래요?(금정연은 반나절에 에세이 육십 매를 쓴다. 오한기는 직장인이고 점심시간에 단편소설 초고를 다 쓴다―심지어 밥을 먹고!―두 글 모두 여지없는 걸작이다).

선량한 마음을 가진 두 사람은 할 수만 있다면 부탁을 들어줄 기세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모두 유부남이고 하나 있는 딸의 육아에 힘쓰는 아버지이다. 다시 말해 나 따위를 케어해줄 여력이 없다. 그러나 좋은 친구들이 그렇듯, 그들은 충고도 비판도 없이 묵묵히 내 말을 듣고 공감하고 위로해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연스럽게 최종 심급이 된다. 

하지만 글에서 그들에 대해 쓰는 게 점점 힘들다. 내가 쓰는 이야기가 소위 알탕 연합, 남성연대처럼 느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실제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함께 들기 때문이다.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통할 어떤 보편성이나 공감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그런 걸 상상하는 것 자체가 내가 주류의 위치에 있는 이성애자 남성이기 때문은 아닐까? 심지어 나는 대구에서 태어난 외아들인데!    

그러나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김수영도 시에서 말했다.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그가 이성애자 남성이었던 걸 생각하면 갑자기 기분이 좋지 않다……). 친구들은 본전도 못 건질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하지만, 하지 말라는 게 있으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게다가 나와 산책을 가장 자주 한 사람이 금정연과 오한기이므로 이야기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다시 말해 이것은 걷기에 대한 이야기다. 


*


금정연, 오한기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9년 12월 30일이다. 우리는 그날 광화문에서 만났다. 왜 만났는지 묻는다면 할말이 없다. 연말이라서? 그럴 리가. 우리는 송년회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이다. 신년회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건 질겁하고 사교 관계를 만들거나 지속하는 일에도 질겁한다. 다만 금정연은 가끔 그런 일을 잘 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송년회, 신년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의 요령은 다음과 같다. 

1. 술을 마신다.  

2. 취한다.

3. 아무 말이나 한다.

나와 오한기는 술이 받지 않고 취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은 방법이다. 

그게 가능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돈씨?

그러나 금정연에게도 이제 더이상 이런 일은 없고 우리는 모든 사람이 바빠 보이는 연말에도 약속 하나 없이 광화문 거리를 쓸쓸히 걷는다(이 말은 모순이다. 우리에겐 약속이 있다. 우리와……).

우리는 종종 광화문에서 만나는데 그건 거리상의 이점 때문이다. 오한기의 직장은 도산공원 맞은편이며 집은 군자역 근처다. 금정연의 집은 응암역에서 가깝고 직장은 없다. 나는 상수역에서 살았고 역시 직장은 없다. 

한때 광화문을 좋아했던 적도 있다.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학부생 시절이었다. 서울의 모든 게 신기했다기보단 서울이란 곳을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다. 학교는 장충동과 충무로에 걸쳐 있었고 그래서 동대문과 충무로, 명동에 자주 갔다. 서울의 구조에 처음 놀란 건 명동에서 시청이 지척이라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시청에서 광화문도 지척이었다. 그러면 명동에서 광화문까지 걸어갈 수 있단 말이야!? 충격……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들은 말했다. 그걸 몰랐단 말이야? 충격…… 물론 서울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라고 그런 사실을 다 아는 건 아니다. 금정연은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성인이 되기 전까지 강남에는 한 번도 안 가봤다고 했다(그는 마포구 출신이다). 그는 강남에는 뿔 달린 괴물들이 사는 것처럼 말한다.

―거기 사람들은 다들 인스타그램 하지 않아요?

―거기가 어딘데요?

―강남……

―???(무슨 맥락인지……)

강남이 힘든 건 나도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농담 삼아 강을 건널 때 자기장을 통과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위로 건너나 아래로 건너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 모두 철 지난 얘기다. 강남 강북 사이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지만 이제 둘 사이를 놓고 차별적인 얘기를 하거나 그걸 담론의 중심에 두는 것은 망상처럼 들린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내가 광화문을 좋아했던 건 그곳이 너무나 서울 같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사 전광판에서 뉴스가 나오면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쳐다볼 것 같았다. 웅성거리면서, 손가락질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갑자기 화면이 바뀌어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급한 모습으로 걸어나오고 트렌치코트를 입은 기자들이 옆에 따라붙으면서…… 

기억에 처음 남아 있는 서울의 모습도 광화문이다. 나는 유년 시절 기억이 별로 없는데 서울에 왔던 것만은 선명히 기억한다. 어머니와 함께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에 왔다. 목적지는 세종대로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 뉴욕에 사는 외삼촌이 하와이로 휴가를 가면서 한국의 친척들을 초대했다. 이모 둘과 어머니, 그리고 나를 포함한 외사촌 동생들. 1996년이었고 미국 여행을 가려면 비자가 필요했다. 이모와 외사촌들은 모두 비자를 발급받았다. 서울에 사는 이모가 광화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대사관에 가기 전에 광화문의 교보문고에 갔다. 구체적인 건 모르겠지만 천장이 유리처럼 반사되는 재질이었던 건 기억난다. 운동장처럼 크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이모는 책을 골라보라고 했고 나는 한나래출판사에서 나온 수잔 헤이워드의 『영화 사전–이론 비평』을 골랐다. 이모와 엄마는 영화감독 새싹이라도 보는 것처럼 기특하게 나를 봤고 나는 꽤 의기양양해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정도 똑똑한 아이라구, 이러면서 말이다(그때나 지금이나 이해 안 되는 책을 보는 건 여전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미국대사관에 들어가기 위해 한참 줄을 섰다. 비자를 발급해주는 담당 직원은 유리 칸막이 뒤에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 모자가 불법체류자가 될 일은 절대 없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다. 직원은 어머니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서류만 봤다. 어머니가 제출한 서류는 소득증명서와 재산세 내역 등으로 거기엔 빈민층에 가까운 액수가 찍혀 있었다. 아버지는 무직이었고 소득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정직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직원의 표정이 안 좋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어머니가 최후통첩을 날리듯 말했다. 사실은…… 제가 돈놀이를 좀 합니다. 나로서는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중학교 1학년이었지만 돈놀이가 뭔지는 알았다. 돈놀이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집에 돈이 있나? 직원은 반응이 없었다. 사실 무반응이 아니라 노골적인 무시였다. 어머니는 서류의 숫자는 믿지 말라고 했다. 사실은 내가 돈이 좀 있다…… 우리는 하와이의 고급 리조트에 가는 것이다… 뒷 문장은 사실이었다. 돈은 외삼촌에게 있었지만 어쨌든 하와이의 고급 리조트에 가려는 건 맞으니까. 

우리는 결국 비자를 받지 못했고 여행은 다른 친척들만 갔다. 어머니는 그 일을 두고 아버지를 맹비난했다. 나는 아버지를 옹호했다. 엄마, 돈이 없는 건 죄가 아니야! 아빠한테 그러지 마. 어린 나는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잘못이라고 믿었고 내가 기특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 하와이에 가지 못했고 아버지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금정연은 약속 시간보다 좀 늦는다고 했다. 나는 정시에 도착해서 교보문고에 들어갔다. 오한기도 곧 올 예정이었다. 

많은 사람이 교보문고를 약속 장소로 이용한다. 교보문고에는 더이상 어린 시절과 같은 거대함이나 두근거림이 남아 있지 않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동료 작가 중 한 사람은 첫 책이 나왔을 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광화문 교보문고의 평대에 놓인 자신의 책을 봤다고 했다. 누가 책을 펼쳐보는지, 누가 사는지도 관찰하고.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전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책이 나오고 몇 달간 대형 서점에는 얼씬도 안 했다. 왜? 내가 반응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힙스터라서? 전혀 아니다. 책이 나와도 서점에 가지 않는 건 예전에 출판사에서 영업부 직원으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의 평대를 보면 광고비가 CG처럼 허공에 쓰여진다. 중앙 통로는 이백, 기둥은 오십, 카운터 앞은 백, 화장실 통로 광고는 이천?(액수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니 너무 다큐로 받아들이지 말기를). 게다가 대형 서점 직원들은 영업사원들에게 얼마나 불친절한지. 나는 영업사원이 되기 전까지 한 번도 영업사원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심지어 출판사에 지원할 때조차(신입 공고에는 홍보 마케팅이라고 쓰여 있었다). 영업사원이 된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런 의미일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 되었다. 이런 사실을 말한다는 사실이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적절치 않기 때문에, 또는 스스로 그렇게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싫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다. 물론 진심으로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회가 영업사원을 대하는 태도를 직접 체험하게 되면 그런 생각은 씻은듯이 사라진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영업부라는 사실을 한동안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다시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영업부에서 일했던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웬 자수성가형 발언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영업부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아마 문학에 대한 터무니없는 환상을 지금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의 환상이든(심지어 비판도) 허약한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그렇게 교보문고에서 오한기를 기다리며 감상에 젖어 있었다, 곤 할 수 없다. 위의 얘기들은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 예전의 경험과 생각을 떠올린 것뿐이다. 나는 별생각 없이 화장실에 들렀다가 잡지 코너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단행본 코너에는 안 간다, 특히 문학은 절대……). 그때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오한기가 등장했다. 나도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삼십 분 후에 도착할 금정연 역시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한겨울에 흔히 있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삼인의 한국 남성 문학인.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우리의 만남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그러나 약간의 과장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