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두 사람이 걸어가


6월 12일

박솔뫼에게 이상우의 신작을 받으러 가지 않겠냐는 친절한 제안을 받았다. 오한기도 함께 가기로 했으나 안토니오 반데라스와의 약속 때문에 못 온다고 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 네. 한기씨는 회사에서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출연하는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연세 어학당에 다니는 아들이 실종된다. 아버지인 전직 기타리스트가 아들을 찾아 한국에 오고 신촌 LP바 사장 하정우와 콤비를 이뤄 사건을 해결한다.

―장르가 뭐예요?

―리얼리즘. 

―?? 어느 부분이……? 

―세상에는 온갖 시나리오가 다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기준으로 영화화가 결정되는지 알 수 없다는 거죠. 

한기씨가 말했다.

―그걸 알았다면 우리 삶이 조금 나아졌을까요?

―……

오한기와 나는 한 번도 판권을 팔아보지 못한 소설가들이고 그건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우리는 핸드폰을 부여잡고 잠시 눈물을 흘렸다. 

합정 콜마인에서 이상우의 신작을 담당한 조은혜 편집자를 만나 책을 받았다. 솔뫼씨와 나는 책을 만든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이상우 없는 이상우 북토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상우씨의 책은 표지와 구성이 독특했다. 한국의 공식 출판물, 특히 문단이라고 말해지는 곳에서는 처음 보는 형식이다. 제목이 나오는 타이밍, 판권면의 위치, 표4―즉 추천사―에 대한 적극적인(?) 거부…… 신인 작가가 이렇게 책을 내려고 했으면 출판사 대표나 편집위원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혔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문창과 선생님에게 책에서 제일 중요한 건 표지라고 했다가 된통 혼난 기억이 있다. 쓸데없는 데 신경쓰지 말고 소설이나 열심히 써.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거야. ……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꼽히는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책이 스스로를 대변해야 하는 거지요.” 물론 저자인 로렌스 스턴은 이 구절에 뒤에 작품에 대해 장장 10페이지 넘게 대변한다. 그러니까 문제는 작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는 말을 하지만 그 언어가 우리와 판이하게 달라서 알아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만드는 것,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주는 모든 과정과 그 과정의 요소들은 일종의 번역이다(가장 대표적인 번역은 보도자료 작성이고 이것 때문에 편집자 친구들의 곡소리가 트위터에 메아리친다). 『두 사람이 걸어가』는 천재 번역가 이상우의 데뷔작이다. 

은혜씨에게 같은 시기에 출간된 다른 책들도 받았다. 책 받는 버릇 하면 안 되는데. 출판사에서 가급적이면 책을 받지 않지만 문학과지성사의 경우는 기회가 되면 받는다. 내가 책에 쓰는 돈이 너무 많기 때문에 괜찮지 않을까? 호혜의 공동체? 증여, 바타유의 개념으로. 뭐 아무튼 그렇다. 이상우의 신작 외에 받은 책은 장현의 시집 『22: Chae Mi Hee』와 고지마 노부오의 『포옹가족』이다. 『22: Chae Mi Hee』를 펼쳤는데 다음 구절이 나왔다.

 

1. 박솔뫼 작가의 수상을 축하합니다.

2. 어쩌면 내가 아는 박솔뫼의 소설은 여기에 없다.

2-1. 혹은 너무 많거나.


『포옹가족』은 일본의 1960년대가 배경인 블랙코미디다. 첫 페이지를 읽었는데 가장인 남자가 가정부가 깨끗하지 않다고 투덜대면서 시작한다. 웃기지만 찝찝한 시작. 나에게 일본은 늘 그런 존재다. 예쁘지만 찝찝하고 멋있지만 찝찝하고 맛있지만 짜고……?(싱겁나?)

솔뫼씨와 잠깐 함께 걷다가 홍대입구역에서서 헤어졌다. 오래 있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횡단보도 앞에 있는 그를 찍었다. 베이지색 옷, 검은 배낭, 마스크. 솔뫼씨는 옷을 잘 입는다. 그리고 (이런 말은 실례지만) 언제나 귀여운 자세다. 사람에게 자세는 중요하다. 여담이지만 케빈 스페이시를 좋아하지 않는 건 그의 자세 때문이다. 서 있는 자세가 음습하다. 

 연남동의 카페 연남장에서 이상우의 신작을 아이폰 카메라로 찍었다. 연남장은 샹들리에가 거슬리지만 공간이 넓어 작업하기 좋다. 나는 샹들리에가 싫다. 초등학교 때 새 아파트에 이사간 친구 집에 놀라간 적이 있다. 40평형대의 아파트였고 거실에는 샹들리에와 밝은 갈색 소파가 있었다. 소파에는 죽도가 놓여 있었고(친구는 방과 후에 검도를 배웠다) 나는 죽도를 들고 장난치다가 샹들리에를 깼다. 부엌에 있던 친구 어머니는 와장창 소리를 듣고 나왔는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쫓기듯 나왔고 그 친구의 집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 학교에서 만난 친구가 말했다. 첫 손절의 기억이다. 문득 금정연의 아내인 지은 과장님이 정연씨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 이상우, 오한기)와 가까워진 금정연이 어느 날 머리를 투블록으로 깎고 집에 갔다. 지은 과장님은 말했다. 나쁜 친구들이랑 놀더니 나쁜 물 들었네~~  

상우씨 책 사진이 꽤 잘 나온 거 같아서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하고 간만에 전체 공개로 돌렸다. 홍보! 해봄. 내 책은 안 올리면서…… 내 이야기보다 남 이야기 하는 게 좋다. 사실 좋다는 단어로는 표현이 안 된다. 거의 행복하다. 특히 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지어내서 하면 두 배로 더 행복해진다. 내 이야기는 지루하고 쑥쓰럽고 무의미하다. 나는 남 이야기 할 때의 내가 좋다. 무슨 말인지 앎? 


6월 13일

나는 소설은 쓰지 않을 수 없어 쓰지만, 비소설은 누가 강요해야만 쓴다. 보스니아 출신인 알렉산다르 헤몬의 『나의 삶이라는 책』 첫 문장이다. 밑줄을 긋고 사진을 찍었다.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 하고 “나는 둘 다”라고 코멘트를 달려고 했지만 뭔가 마음에 걸려 그만뒀다. 둘 다 강요해야만 쓰는 걸까 둘 다 쓰지 않을 수 없어 쓰는 걸까. 사실대로 말하면 둘 다 아니다. 


6월 15일

영등포 CGV에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4D를 봤다. 3D나 4D, 스크린X 따위는 퇴행적이다. 원근법의 시대가 끝난 듯 입체감은 착시에서 오는 게 아니며 극장은 놀이동산이 아니다. 근데…… <매드맥스> 4D는 왜 이렇게 실감나는지…… 모래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의자가 요동치고 물과 바람을 얼굴에 쏘아대는데 사막에 있는 줄. 함께 간 친구는 반쯤 넋이 나가 소리쳤다. 발할라! 유운성 평론가는 <매드맥스>가 디지털의 표면이라는 논리적 비장소에서 전개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놀런식의 노스탤지어가 없다고. 부녀/부자 관계에 집착하는 놀런의 영화와 그런 것 따위 관심도 없는 <매드맥스>를 대비하면 뭔가 선명해진다. 아날로그는 보수적인 기호다. 재밌는 건 그걸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매드맥스>는 다섯번째 봤고 한 번도 실망하지 않았다. 내게 <매드맥스>는 말없는 우정에 대한 영화다. 퓨리오사가 눈으로 말하고 맥스가 눈으로 말하고 다시 퓨리오사가 눈으로 말하고 맥스가 엄지를 든다. 소설에도 그런 게 있는지 생각해봤다. 다행히 있고 심지어 외우기까지 한다.

내장사실주의에 동참하지 않겠느냐는 친절한 제안을 받았다. 물론 나는 수락했다. 통과의례는 없었다. 그게 더 낫다. ……… 내장사실주의가 뭔지 잘 모르겠다. 

『야만스러운 탐정들』 역시 우정에 대한 작품이다. 다만 이쪽은 말이 많다.


6월 16일

박솔뫼에게 ‘이상우 없는 이상우 북토크’를 6월 29일 저녁 8시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진행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참여자는 박솔뫼, 오한기, 강동호, 정지돈. 금정연은 가족 여행 때문에 불참. 


6월 18일 

“나는 일종의 정신 나간 저널리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캐시 애커의 말이다. 그녀는 196, 70년대 뉴욕 펑크신과 아방가르드 문학이 낳은 포스트모던 바이섹슈얼 소설가로 국내에 아직 번역된 바 없다. 어쩌다보니 그녀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됐고 사실 강연이라기보다 이야기였다. 그것도 그녀에 대한 게 아닌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그게 곧 그녀에 대한 이야기다. 

캐시 애커는 정신 나간 저널리스트답게 수많은 텍스트를 허락 없이 가져다 쓰고 찢고 변형하고 파손했다. 거짓말을 했고 허세도 부렸고 평생 명성이나 욕망을 추구했지만 속물적인 느낌은 없다. 집이 부자라는 걸 알았을 때 살짝 실망했지만(할머니에게 유산을 받았다나), 사실 나도 미국 삼촌에게 유산을 받게 된다면 거절할 생각은 없다. 정연씨와 나는 서른여섯 살 이후 돈 생각 아닌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최근에야 우리가 돈을 벌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돈이 왜 없지, 라는 생각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한 번이라도 노력한 적 있나요? 내가 정연씨에게 물었다. 정연씨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라! 뉴저널리즘의 대표자 중 한 명인 톰 울프는 입체파의 창시자인 피카소와 브라크를 비교하며 피카소가 성공을 하자 곧 속물이 되었다고 말했다. 본드 스트리트에서 맞춘 정장을 입고 키드 가죽 장갑, 실크 셔츠를 입고 상류층 속물들과 파티장에서 잡담을 나눴다고. 브라크는 그런 옛 동료를 보고 한숨을 쉬며 피카소가 곧 파멸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장 고약한 일이 일어났다. 피카소는 성공의 사다리를 계속 올라 ‘20세기의 화가 피카소’가 된 데 반해 브라크는 한때의 작가로 남은 것이다. 우리 꼴이 딱 브라크 같지 않나요? 나는 정연씨에게 말했고 정연씨가 대답했다. 지돈씨, 브라크가 누구예요?


6월 19일

약속이 세 개나 있는 믿을 수 없는 날이었다. 


[첫번째 약속]

카페 프히베에서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동료는 팔로마 울에서 산 가방과 옷을 자랑했고 나는 지인과 트레이드한 이스트백 가방을 자랑했다. 동료는 요즘 돈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어요. 어떻게? …… 우리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고 많은 돈은 어느 정도인지(한국인의 35.7%가 총자산 10억 원 이상이 부자라고 답한 설문조사가 있다), 그 정도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따위의 이야기를 나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 생각만 해야 한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오로지 돈 그 자체. 사람들이 돈을 못 버는 것은 돈으로 시간이나 여유, 안정 따위를 사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돈을 벌 수 없지! 내가 말했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동료가 말했다. 나한테 하는 말이에요…… 내가 말했다. 우리는 당이 떨어짐을 느꼈고 두번째 음료를 주문했다……


[두번째 약속]

김대중도서관 근처의 카페에서 박솔뫼와 홍상희와 금정연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상희씨는 오토바이에 빠져 있었고 골목에는 정말 좋아 보이는 인도산 오토바이가 있었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유럽인에 가까운 사람이다. 물론 진짜 유럽인이 아니라 유럽인의 이데아와 가까운 사람으로 한때, 20세기 초반이나 중반 광속으로 반짝이며 지나간 교양 있고 고전적이지만 진보적인 그런 유럽인, 보부아르와 뒤라스와 사강을 섞은 것 같은 그런 사람. 상희씨의 취미는 바이올린 연주와 초콜릿 베이킹이며 시간이 나면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지방의 한적한 단독 주택에서 고양이들과 함께 살며 휴가철에는 시칠리아로 한 달간 여행을 떠나 렌터카를 타고 섬을 돌며 담배를 물고 수영을 한다. 이 모든 이야기에는 조금의 과장도 없지만 이렇게 말하면 상희씨는 부끄러워한다. 사실이지만 모아놓고 보니 좀…… 멋있네? 

육아와 마감에 지친 금정연은 늘 그렇듯 조금 넋이 나간 표정으로(솔뫼의 표현에 따르면 정신없는 아기의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이며 앉아 있었다. 솔뫼씨는 정연아, 내 말 좀 들어봐봐, 라며 말했다. 

―제가요, 누워서 생각을 해봤거든요. 나윤이(정연씨 딸)와 저의 공통점을요. 나윤이도 언젠가 그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무슨 생각이요?

―한 달 동안 한 가지 음식만 먹는다면 뭘 먹어야 할까.

―?? 왜 그런 생각을 해요?

왜 안 해요! 솔뫼가 말했다. 자기 전에 생각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김밥이겠죠?  

우리는 각자 생각에 빠졌다. 한 달 동안 한 가지 음식만 먹는다면 뭘 먹어야 할까. 왜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지 모른 채……


[세번째 약속]

책방서로에서 금정연과 북토크를 했다. 토크의 제목은 ‘담배와 영화와 시와 나윤이’. 이틀 연속 하는 토크라 지쳐있었지만 나윤이 얘기를 하고 나윤이 사진을 보여주니 시간이 금방 갔다. 

토크가 끝나고 금정연과 근처 술집에서 모쓰나베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오랜만에 이 시간에 연남동에서 술을 마시니…… 지옥 같네요. 정연씨가 말했다. 지돈씨, 글쓰기 너무 힘든 것 같아요. 

―늘 그러시잖아요.

―갈수록 힘든 정도가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동력이 사라진 것 같은데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독자가 없는 것 같아요.

―지돈씨는 인기 많잖아요.

그럴 리가…… 근데 여기서 독자는 진짜 독자 말고 다른 의미에서의 독잔데, 저는 언제나 저 자신이 제1의 독자 였거든요. 제가 읽고 싶은 글을 쓰는데 어느 순간 그 제1의 독자를 잃어버린 느낌이에요. 

인터뷰에서 글을 쓰는 것은 곧 읽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글을 읽는 것은 곧 쓰는 것이다. 상우씨는 이번에 쓴 신작의 몇몇 부분을 여러분을 생각하면서 썼다고 말했다. 특히 여러분들의 아기. 그러므로 앞으로 내가 쓸 소설의 독자 역시 어떤 아기들이며 작가 역시 그 아기들이다.  


6월 20일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디가웰 셔츠를 샀다.


6월 23일

어제 이충민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고 오늘 빈소에 다녀왔다. 솔뫼씨와 워크룸의 김뉘연씨를 통해 소식을 전달받았고 장례식장에 가야 할지 고민했다. 가도 되는 걸까? 이충민 선생님과 어떤 사이인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어떤 사이라고 할 만큼 교류가 있진 않았다. 선생님을 정식으로 본 건 한 번뿐이고 이후에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친 게 다였다. 가끔 SNS로 소식을 전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선생님에 대해 생각할수록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는 동안 여러 기억이 떠올랐다. 내 소설의 독자로 이충민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됐다. 불문학 전공자이시고 번역잔데 지돈씨 작품을 좋아한데요. 이충민 선생님에 대해 알려준 사람이 상희씨였나? 선생님은 수줍음이 많았지만 작품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아까지 않았다. 연재중인 장편소설을 읽고 코멘트를 남기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의 평가를 기대하기도 했다. 한 번은 나를 비판하는 비평에 선생님이 직설적인 코멘트를 달았다. 진짜 짜증나네요. 개념을 마구 혼동하고 있으니. 나도 진짜 짜증이 나는 비평이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짜증이 즐거움으로 변했다. 악취미지만 나는 싫은 것을 공유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진다. 세상에는 싫거나 어이없는 게 너무 많다. 그런 걸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성인군자인 양 구는 사람과는 대화할 기분이 들지 않는다. 넌 왜 이렇게 부정적이니? 같은 말을 하면 영원히 안녕이다. 

이충민 선생님이 시니컬한 타입인지는 모르겠지만 번역한 책과 쓴 글들을 보면 엄숙하거나 점잖 빼는 타입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거침없었고 동시에 철저하고 성실했다. 왜 돌아가시기 전에 좀더 뵈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최근 그는 앙투안 볼로딘이라는 프랑스 소설가의 선집을 번역중이었다. 나는 그의 청탁으로 두번째로 나온 책 『메블리도의 꿈』의 후기를 썼다. 책이 나오고 서로 감사 인사를 전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뵙진 못했다. 그를 친구나 동료라고 하면 너무 유난 떠는 것 같았고 내 작품을 칭찬하면 쑥쓰러워 빼기만 했다. 나이와 위치, 상황과 무관하게 선생님을 믿고 있고 동료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돌아가신 뒤에야 알았다. 웹에서 그의 동료들, 그의 책을 따라 읽던 사람들이 남긴 글을 봤다. 선생님의 연구가 이대로 사라지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담화의 놀이들』 번역은 거의 인류애적 봉사라는 말도 있었다. 나 역시 『담화의 놀이들』로 그의 글을 처음 접했다. 남미 문학 번역가인 박세형씨가 홍상희와 박솔뫼에게 『담화의 놀이들』을 추천했고 상희씨가 다시 나에게 추천했던 책이다. 『담화의 놀이들』 첫 문장은 언제나 기억할 수 있다. 태초에 억지가 있었다. 늦었지만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6월 25일

나는 거절 못하는 병에 걸렸다. 강연이나 북토크가 너무 많다. 안 하겠다고 결심하면 꼭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 온다. 내가 하는 행사 소식들을 본 사람들은 가끔 말한다.  

―부자 되겠어요.

―아파트 사셨다면서요?

관계자들은 알 것이다. 이 일이 얼마나 돈과 상관없는지. 내가 받는 돈은 재난지원금 정도랄까? 행사를 일종의 재난으로 생각한다면…… 하지만 독자들을 만나는 건 언제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라고 말하는 그런 종류의 작가가 되고 싶다. 물론 독자들을 만나는 건 언제나 고맙고 감사하다. 그런데 굳이 북토크로 만나야 하는 걸까. 유튜브로 뵐까요? 아니면 다른 수단은 없을까. 독자들이 정말 작가를 보는 걸 기뻐할까요. 만일 그렇다면 나도 기쁘다……


6월 28일

행복할 때에는 축하하는 의미에서 단 것을 먹는다. 속상할 때는 위로하는 의미에서 단 것을 먹는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마약도 하지 않는다. 그저 설탕을 먹는다. 어마어마하게 많이.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내가 쓴 줄 알았다. 친구는 말했다. 정지돈을 죽이면 피에서 콜라와 아이스크림이 나올 거라고. 나는 그건 오해라고 말했다. 나는 콜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는 거야. 영화를 볼 때가 아니면 콜라는 마시지 않거든. 심지어 오한기는 콜라에 얼음을 넣지 않고 마신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내가 마시는 건 콜라라는 이미지고 얼음을 가득 채운 잔에 콜라를 부었을 때 나는 소리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아니라 책을 읽는 거야. 책을 읽을 때가 아니면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 건 아니지만, 잘 안 먹으니까. 문제는 책과 영화를 보지 않는 날이 없다는 사실이다. 


6월 29일

2013년, 2014년은 시간적으로 6, 7년 전이지만 훨씬 멀게 느껴진다. 반면 2018년은 엊그제 같다. 2016년 말에서 2017년? 어떤 결정적인 단절이 있었다. 그전에 있었던 일은 전생이나 다른 삶에서 있었던 일 같고 현실이 아닌 소설 속에서 있었던 일 같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있었던 일은 현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끔 데자뷰와 건망증을 동시에 겪는다고 누군가 말했다. 이 일을 잊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같아. 


6월 30일

링은 낮잠을 자다 도시에 핵폭탄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며, 죽음보다 죽음을 기다리던 눈꺼풀로의 밝음이 훨씬 강렬했다고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해변의 아틀리에에서 이렇게 유리창을 등지고서 말했었다. 쟤네 누구야?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