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어디로도 향하지 않으며

서울의 강은 좋지만 너무 멀다. 서울의 산이나 공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게 서울의 문제다. 날씨 좋은 날 한강 공원에 가면 대부분의 사람이 알게 된다. 도시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시시하게 생각했던 63빌딩이 얼마나 밝게 빛나며 섬과 둔치의 식물들이 얼마나 짙게 우거져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면 한강은 너무 멀다. 나는 한강이 바로 옆인 상수에서 십사 년을 살았지만 한강으로 나갈 때마다 심리적인 장벽을 느꼈다. 한강과 생활공간 사이에 놓인 도로는 실제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 거리도 만든다. 서울의 자연은 생활 속에 있지 않다. 도심 속의 여행지다. 다시 말해, 여행을 간다는 생각으로 나서야 갈 수 있다. 조금 가까운 곳에 있는 양재천, 불광천, 청계천 등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운동을 위해, 소풍을 위해, 산책을 위해 결심을 하고 나서야 한다. 

한강의 다리는 모두 열여덟 개로 광진교를 제외한 모든 다리가 운전자를 위한 것이다. 대학 다닐 때 한 선배는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서울에서 운전하려면 다리를 알아야 해. 다리만 알면 서울 지리는 다 파악한 거야. 그렇다. 합정에서 여의도로 가려면 서강대교를 건널지 마포대교를 건널지, 장충동에서 코엑스로 가려면 한남대교를 건널지 동호대교를 건널지,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운전자에게는 핵심적인 문제다. 반면 걷는 사람들에게 다리는 무의미하다. 보행로는 좁고 자전거 도로와 구분이 없는데다 도시 고속도로에서 8차선으로 진입하는 차들은 속력을 늦추지 않는다. 양화대교 같은 곳을 걸어서 건너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강의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건 자살 행위다. 이건 비유가 아니다. 

한강 최초의 근대적 도로교인 한강 인도교는 1917년 10월 7일 정오에 통행을 시작했다. 지금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일반 사람들은 처음으로 걸어서 한강을 건널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경성전기는 트러스에 장식 전등을 달았고 밤만 되면 빛이 환했다. 다리 아래에는 조선 최초 보트 클럽의 보트들이 오갔으며 중지도에는 피서객이 가득했다. 식민지 조선에 진정한 모던이 도래한 걸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 사람들은 한강 인도교를 건너기도 했지만 한강 인도교에서 뛰어내리기도 했으니까. 자살자가 속출했고 이는 곧 사회문제가 되었다. 경찰은 다리 난간에 日寸待機(일촌대기)―잠시만 기다리시라―라는 입간판을 세우고 순찰을 하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일제강점기 통계에 따르면 1923년에서 1937년까지 십사 년 동안 한강에 투신한 사람은 모두 832명이었다. 1923년 6월 20일 자 동아일보는 이렇게 쓴다. 


철교 자살

이십이셰의 녀자


한강텰교에 또 사람이 빠젓다. 시내 계동 팔시사번디 신재영의 처 안성녀는 지난 십칠일 밤에 “자긔는 도모지 세상에 살 자미가 업서 텰교로 빠저 죽으러 나간다”는 간단한 유서를 써노코 나아가서 인하야 간 곳을 몰낫는대 작십구일에야 한강텰교 부근 풀 속에서 안성녀의 버서노흔 의복이 발견되야 자살한 것으로 인증케 되얏다 하며 자살한 원인은 아즉 모른다 하나 안성녀는 평시부터 정신이 다소가 착란된 의심이 잇섯다더라


미수도 이인

남자와 녀자 두 사람


죽음의 길을 인도하는 한강 인도교! 우에는 또다시 살기 실흔 세상을 떠나려한 늙은 남자 한 명과 졂믄 녀자 한 명이 잇섯다 재작일 오후 열한시경에 시내 의주통일뎡목 일백사십번디 황수연이란 백발이 성성한 늙은이는 슬하에 혈육도 업고 생계좃차 바이 업슴으로 드듸여 세상을 비관하고 집을 떠나 과부로 잇는 늙은 누이를 혼자 두고 물에 빠저 죽으려 하얏다가 마츰 지나가든 순사에게 발각되야 뜻을 일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갓스며 또 작일 새벽 한시 삼십분경에는 엇던 졂은 녀자가 한강 인도교 우에서 물에 빠지려 하는 것을 순사가 발견하고 즉시 경찰서에 다리고 가서 설유하는 동시에 그 녀자의 남편을 호줄하야 다리고 가라 하얏스나 그 녀자는 무슨 란처한 사정이 잇는지 조금도 듯지 안코 “살기 실타는데 웨 이래요?” 하면서 남편의 간절한 말도 거절하며 한동안 말성이 생기었는데 그 녀자는 본적을 파주군 와석면 당하동에 두고 부내 통동에 사는 신명운의 안해 윤씨인데 남편과 살기 실혀서 그와 가치 자살하려고 한 것인바 이가튼 자살 사건이 벌서 이 달만 하여도 십여 일 동안에 여덜 사람으로 그중 세 사람은 임의 황텬으로 갓더라.


다리는 머물거나 멈출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다리의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이동중이다. 다리 아래 사는 사람은 집이 없는 사람이며 다리 위에 머무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이다. 이동을 위해 존재하는 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모두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다. 버스 터미널, 공항, 기차역, 다리. 도시가 정비되면서 이들은 다른 쉼터로 쫓겨나거나 옮겨졌다. 도시는 이 사람들을 배제하고 숨기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어쩌면 이들은 단지 사회에서 요구하는 선택과 의무를 포기한 것뿐이다. 그리고 동일한 욕망이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 이것을 낭만화하거나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다. 모른 척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포기하거나 멈추는 것, 길을 잃고자 하는 욕망은 목적과 선택, 계획과 미래가 과잉된 현대사회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반작용이다.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말했다. “현기증이란 무엇일까. 추락을 두려워하는 마음? 아니다. 현기증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꾀는 공허의 목소리다. 그것은 추락하고자 하는 욕망이고, 우리는 그 욕망에 대해 겁이 나서 스스로를 보호한다.” 발레리아 루이셀리: “나 자신이 유령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도 없었다.” 클레망 카두의 묘비명: “나는 여러 가구가 되겠다는 헛된 시도를 했지만 그것마저도 내게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평생 하나의 가구로만 살았다. 어찌되었든, 남아 있는 것은 침묵뿐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이는 상당한 성과다.” 겉으로는 모두 건실한 시민인 양 굴지만 내면에는 다른 욕망이 존재한다.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사라지고 싶은 마음,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드러눕고 싶은 마음(특히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나 시험, 마감이 있을 때). 아무것도 정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미결정 상태,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 유예된 공간에 기거하고 싶은 욕망. 반사회적이고 무가치하고 때로는 위험하게 느껴지는 이러한 상태는 그러나 사실은 동물에 불과한 우리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계획은 모두 망상에 불과하지 않은가. 산책은 이럴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어디로도 향하지 않으며 걷고 머무는 것.  

리베카 솔닛은 여러 책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 거리 헤매기』의 구절을 인용한다. “저녁 시간 또한 우리에게 어둠과 램프 불빛이 제공하는 무책임함을 선사한다. 우리는 더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다. 날이 좋은 저녁 네시에서 여섯시 사이에 집을 나설 때, 우리는 친구들이 아는 우리의 자아를 벗어둔 채 익명의 보행자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화국 군대의 일부가 된다.” 이 글에서 울프는 해가 지는 어느 저녁 겨울날, 연필을 사기 위해 런던 거리로 나섰다가 산책을 하게 된다. 리베카 솔닛은 그러나 사실 이 산책이 “어둠을, 방랑을, 창조성을, 정체성의 소멸을, 육체가 일상적인 경로를 거니는 동안 머릿속에서 대단한 모험을 경험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솔닛/울프가 찬양하는 것은 수동성이자 불확실성이고 정체성으로부터의 탈출이다. 훌륭한 시민, 단일한 자아, 사회로부터 주어진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 비환원적이고 주관적인 상태로 돌입하는 것, 책임을 방기하고 의미를 지연시키는 것. 이러한 행위는 불확실함과 모호함의 반란으로 우리를 잠시나마 일종의 무한 속으로 밀어넣는다.

가히 산책에 미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베르트 발저 역시 이러한 실천의 일인자다. 말년에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팔십 번 넘게 이사를 하며 갖은 직업을 전전했던 그가 죽는 날까지 유일하게 지속했던 건 산책뿐이었다. 발저의 산책은 전설적이다. 이십대에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스위스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걸었고 이후에는 베른에서 제네바까지 백칠십 킬로미터를 걸었으며 베른에서 빌까지 이십오 킬로미터를 밤새도록 걷기도 했다. 결국 그는 1956년 12월 25일 요양원 부근의 눈 쌓인 숲속을 산책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산책중 죽음은 또다른 의미로 전설적인데, 그는 이미 데뷔작인 장편소설 『타너가의 남매들』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 “전나무숲에서 동사한 채로 발견된 젊은 남자의 시들. 가능하다면 출판 요망.”

카프카보다 훨씬 덜 알려졌지만 카프카의 문학적 쌍둥이로 여겨지는 발저는(실제로 당시 어떤 편집자는 프란츠 카프카를 발저의 가명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사회와 세계의 그림자 속으로 숨기를 원했다. 발저의 지인인 칼 실리그는 발저가 말년에 입원한 정신병원에 종종 찾아갔고 그때 있었던 일을 『순간의 초상』이라는 글에 남겼다. “발저와 내가 아주 짙은 안개를 뚫고 토이펜에서 슈파이헨까지 걸어간 그 가을날 아침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나는 발저에게 아마도 그의 작품이 고트프리트 켈러의 작품처럼 오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저는 아주 심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자신과의 우정을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그런 의례적인 인사치레는 하지 말라고 했다. 발저는 자신이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잊히기를 원했던 것이다.”    

발저의 소설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보잘것없고 하찮은 인간이 되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학교 이야기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인이 되기 위해,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실제로 오버슐레지엔 지방의 담브라우 성에서 하인으로 일했던 발저는 소설에서 말한다. “나는 발전하지 않는다.” 다른 단편소설인 「헬블링의 이야기」에서는 이렇게 쓴다. “사무실에 서 있으면 나의 팔다리는 서서히 나무토막으로 변하는데, 나는 정말 나무토막이 되길 바란다. 그러면 불을 붙여서 태워버릴 수라도 있으니까.” 헬블링이 원하는 건 어떤 생명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사는 것이다. “나는 더이상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불안도 없고 의문도 없고, 더이상 지각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영원히 침대에 누워 있는 거라고. 어쩌면 그게 가장 멋질 것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발저의 행위를 ‘무위’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위의 가장 실천적인 행위가 산책이다. 그러므로 발저는 (아감벤에 의하면) 무위를 실천하기 위해 산책을 하는 것이다. 아감벤이 말하는 무위란 뭘까? 무위(argia, Inaktivität)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에서 따온 말이다(아리스토텔레스가 ‘소요’ 학파의 창시자임을 기억하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무위는 실현되어야 할 어떤 본질이 주어져 있지 않은 상태, 특정한 본성이나 소명이 부과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무능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일종의 잠재성으로 1)할 수 있는 가능성과 2)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 모두를 포함하는 가능성이고 이는 아감벤의 정치철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삶-의-형태Form-of-Life와 연결된다. 쉽게 말해(쉽지 않을지도……) 이는 존재를 규정하지 않고 임의로 열어두는 것이며 동시에 종교적이고 목적론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순전한 인간의 삶”이 시작될 수 있는 잠재성이다. 


아마 발저가 아감벤의 이야기를 들으면 비명을 지르며 숨어버렸을 것이다. 발저는 한때 사회주의에 빠졌고 열성적으로 그 가능성을 믿었지만 작품에서는 직접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수행적이지 설명적이지 않다. 아니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는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산책은 거창한 의미 이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세련된 숍과 산책로가 없어도 우리는 걸을 수 있다. 돈이 없고 친구가 없고 연인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은 걷는 것이다. 막차가 끊긴 서울 시내를 걷고, 가끔은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기도 하고 퇴근 후에 집에 가기 싫어 정처 없이 쏘다니기도 한다. 울프와 발저의 산책이 좋은 이유는 그들이 걷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않았고 우울해하지도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의 산책은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것이었지만 멜랑콜리해지거나 심각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걸을 때만 진정으로 쾌활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산책과 글쓰기가 가진 유일한 공통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거나 결말을 맺어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상실한 어느 지점에서, 주제와 의도, 인과와 의무를 망각한 지점에서만 진정한 글쓰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의 로베르트 발저인 오한기 역시 산책을 좋아한다(그의 소설 『가정법』은 부활한 『벤야멘타 하인학교』다. 『가정법』에는 ‘산책’이라는 챕터가 있다. 스스로를 병든 소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동물원과 하천변을 네발로 걷는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고 말을 건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음매, 음매”).

한기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재택근무를 하게 됐고 그래서 산책을 할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어쩌면 영원히 재택근무를 할지도 몰라요.

―잘된 거 아니에요?

―그렇죠.

월급은 줄었지만 잘된 일이다. 아내가 출근하면 한기씨는 정원이(한기씨 딸)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산책을 나선다. 며칠 전에는 석관동까지 걸어갔다고 했다. 그의 집은 군자역 근처다. 걸어서 한 시간 삼십 분이 걸리는 거리다. 

―좋네요.

―그렇죠.

―돌아올 때도 걸어오나요?

―아니요. 지하철을 타죠. 

우리는 조만간 함께 걷기로 했다. 더 더워지기 전에, 가능하면 평일 오후 다섯시에서 일곱시 사이에 광진교를 건널 생각이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