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회

여러 날 아이들은 오지 않았고 퇴근 무렵 준섭이 찾아왔다. 일곱시가 지나도록 무더위가 꺾이지 않아 삼십오 도가 넘는 날이었다. 더 외곽으로 나가면 민물매운탕이니 장어니 하는 것들을 파는 식당들이 줄지어 문을 열어두고 있었지만 날이 너무 더워 간단한 것을 먹기로 했다. 시내로 나가기엔 배가 너무 고프다고 해서 환희네 집 근처에 있는 치킨집으로 정했다. 매장 공터에 차를 주차해두고 걸어서 가려고 했을 때 사장님이 창고 안에 세워진 자전거를 끌고 나오며 타고 가라고 했다. 오래된 거지만 문제없어요. 잘 달립니다. 나는 준섭의 뒤에 앉아 그의 티셔츠를 잡았다. 자전거는 이미 고요해진 마을길을 달렸다. 품이 큰 체크셔츠를 입은 노인 한 명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지나쳐갔다. 나는 처음에 준섭의 등만 바라보고 있다가 얼마간 지난 뒤부터는 그의 뒤통수를, 그다음엔 멀리 한여름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치킨집 앞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엔 우리 말곤 아무도 없었으나 계속해서 배달 주문을 하는 전화벨이 울렸다. 가게는 부부 둘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홀을, 아주머니가 작은 자동차로 배달을 담당하고 있었다. 치킨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나만 병맥주 한 명을 마셨다. 자전거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준섭이 자전거를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물어 조금 놀랐다. 케첩을 뿌린 양배추를 먼저 먹었고 뜨거운 치킨을 불어가며 먹었다.

치킨 맛이 뭔가 다르다.

무도 너무 맛있어.

어릴 적에 먹던 맛 같다고 이야기하며 두 조각쯤 먹었을 때 아저씨가 다가와 정말 죄송한데 너무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가게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급한 표정이었고 우리는 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가 남은 치킨을 빠르게 포장해주었다.

조금 걸을까?

그래.

우리집에 가서 먹자.

그래.

자고 갈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저렇게 큰 개구리가 있다니!       

자전거를 끌고 가던 준섭이 멈춰 섰다. 농수로에 커다란 개구리 한 마리가 엎드려 있었다. 가까이 고개를 숙여보니 환희의 개구리 장난감이었다. 주워주고 싶었으나 애매하게 위험해 보였다. 망설이다가 그냥 가기로 해놓고도 몇 번을 뒤돌아보았다. 차를 세워둔 매장에 거의 다 와갈 무렵 고요한 풍경 속에 들릴락 말락 한 작고 낯선 소리가 더해져 뒤를 돌아보았더니 작고 하얀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코다리 식당에 자주 나타난다던 개인 것 같았다.

주인 없는 개야. 우리를 따라왔나봐.

이거. 치킨을 따라온 것 같아.

걸음을 멈추자 하얀 개가 치킨이 담긴 봉투에 코를 가져다댔다.

주면 안 되겠지.

안 되겠지.

 

시내에 있는 준섭의 집에 가는 길엔 그 집이 언제 지어졌는지 얘기가 나왔다. 둘 다 기억이 가물가물했으나 이십 년쯤 되었다는 것에 동의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살았으니 그쯤 될 것이었다. 준영은 다른 도시로 가기 전까지 준섭과 함께 그 원룸에서 살았다. 그 건물이 지어진 땅은 논이었으나 우리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모두 다 사라졌다. 몇 년 전부터는 중심지가 옮겨가며 여기 있던 것들은 다시 사라졌다. 진짜 사라진 것은 아니고 옮겨간 것이지만 마치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골랐다. 내일은 우리 둘 다 쉬는 날이니까, 하면서 평소보다 많은 술을 샀다.

선풍기 리모컨이랑 회사 보조열쇠, 그리고 설탕을 잃어버렸어.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며 준섭이 말했다.

설탕이 떨어지기 전에 분명히 미리 사두었는데 사라지고 없는 거야.

준섭은 믹스커피를 마실 때 설탕을 아주 조금 더 넣는 습관이 있었다. 사온 것들을 내려두고 손을 씻으며 그렇게 세 가지가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그것들은 일주일 전쯤 사라졌고 하루에 한 번씩 시간을 들여 다시 찾아봐도 없는데, 이 좁은 곳에서 없어지기도 힘든 거라 도통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준섭이 이인용 식탁에 치킨을 꺼내놓는 동안 그가 리모컨과 열쇠와 설탕을 둘 만한 곳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없네.

없어.

어디 갔지?

내가 둘 만한 곳 말고 네 생각에 있을 만한 곳도 봐줄래?

준섭의 말에 나는 옷장을 열어보았고 준섭이 지금 뭐해? 하고 딱히 대답은 바라지 않는 것처럼 물으며 웃었다.

혹시 모르잖아.

너무 찾아주고 싶어?

나는 대답 없이 식탁으로 돌아왔다.

해줄 게 없으니까.

?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그럼 찾아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마운데 일단 먹자고 하였다. 식은 치킨은 또 식은 치킨 나름대로 맛있다고 하며 맥주와 함께 치킨을 먹었다. 너무 배가 고팠던 것인지 오히려 평소보다 덜 먹고도 배가 불렀다. 나는 기름이 묻은 손을 씻고 다시 준섭과 마주앉았다. 식탁 유리 아래에 우리가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좀 바라보다가 캔맥주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닦던 휴지를 사진 위에 올려두었다.

회사 열쇠는 어쩌면 회사에 있을 수도 있겠다고 하자 준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몸을 숙여 침대 밑이며 책상 밑을 살펴보았으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한참 그의 방을 수색하다가 돌아왔을 때까지 준섭은 기름이 묻은 손을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그대로 있었다. 팔꿈치를 식탁에 괴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불편해 보이기에 손을 씻고 편하게 있으라고 했더니 이따가 씻겠다며 계속 그 자세를 하는 것이 좀 좋았다. 불편한 마음보다 귀찮은 마음이 더 큰가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실 꽤 불편한 자세지만 귀찮아서 말이야, 라고 준섭이 말했다.

그런데 정인아.

.

일주일 전쯤에 송부장님한테 연락이 왔거든.

.

베트남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하는…… 그런 연락이었거든.

.

그래서, 라고 하면서 준섭이 말을 잇지 않아서 나는 천장을 향한 채 손가락 사이사이를 한껏 벌리고 있는 그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그가 말을 잇지 않은 그 순간은 실은 아주 짧았을 것이라고, 그 순간에는 그거 하나만을 알 것 같았다.

우루과이는 한국의 정반대편으로, 그런 지점을 대척점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우루과이 남동 해상이래.

우리는 그해 여름, 베트남의 바닷가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본섬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마을이었고 나로서는 그런 풍경은 처음이라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어서 앞으로 자주 와야겠다고, 이런 것도 자주 봐야 편하게 즐기고 쉴 수 있겠다고 낯선 기분으로 다짐했었다. 그러니까 언젠가의 나는 그런 다짐을 하긴 했었던 것 같다고, 내게 그런 날이 있었다는 걸 다시 인정하기까지가 너무 오래 걸렸거나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가만히 멈춰 있는 그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