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이건 하나의 종이 아닌 것 같아. 여러 종의 새소리다. 생각하며 눈을 떠 푸른빛이 들어오고 있구나, 하고 있을 때 언니가 내 배에 손을 올리며 정인이 일어났니, 말을 걸어왔다. 나 너무 잘 잤어, 하였더니 다행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언니는 매일 잘 자?

그냥 잘 자지.

벌써 밝다.

여름이잖아.

그렇지, 여름이구나. 여긴 더 여름 같구나, 하며 눈만 뜬 채로 가만히 언니의 집 천장을 바라다본다. 이 시간까지 안 자면 안 잤지 일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스며들어오는 하늘빛은 밝다면 밝고 어둡다면 어두운 것 같았다. 전날 밤엔 오단짜리 책장을 비추는 전구 뒤로 쭉 이어진 그림자를 보다 잠들었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책들과 작은 소품들이 만들어낸 그림자는 전등을 끄자 순식간에 모두 어둠이 되었다. 나는 언니와 마루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다. 살짝 열려 있는 안방에서 새어나온 빛이 니은 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잠들었다.

이불을 개키고 문을 열자 청개구리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어릴 적에 개구리를 만지고 눈을 비볐다가 된통 당했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보면 당한 게 아닌데 그때는 또 당했다, 하면서 억울해하곤 했다. 어쩌면 개구리를 만지면서 괴롭혔던 게 우리니까 당한 건 개구리 쪽이었을 텐데. 그치? 언니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왜인지 그때는 눈을 참 많이 비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벌하였네. 벌인 줄도 모르고. 언니는 그렇게 말하며 전기포트에 수돗물을 받아 끓였다.

으르렁, 으르렁. 두어 번 일정한 간격으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오려는 것 같았지만 금세 내리지는 않고 뜸을 들이고 있었다. 하늘이 다시 으르렁거렸을 때 이런 날엔 따뜻한 것을 먼저 마셔서 몸속을 풀어줘야 한다며 언니가 뜨거운 보리차를 내왔다. 보리차를 마시자 배가 고팠고 부엌으로 가서 달걀물에 설탕을 넣고 식빵을 구웠다. 잠에서 깬 형부는 구운 식빵에 다시 설탕을 뿌렸다. 처제, 토스트 가게 안 하기엔 아까운데. 형부가 말했고 나는 잠시 이곳에서 종일 토스트를 굽는 상상을 했다.

여기 와서 살자고 하면 엄마가 올까?

안 올 것 같은데.

언니가 고개를 갸우뚱하기에 지난번에 엄마가 제주도인가 해남인가 아무튼 다른 데서도 살아보고 싶댔어, 했더니 엄마가? 하며 놀라워하고는 그동안 엄마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군, 하고 혼잣말로 덧붙였다.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한 뒤에 언니가 매생이굴국밥을 먹자기에 알겠다고 하고 따라나섰다. 내 발보다 15 사이즈 큰 언니의 슬리퍼를 꿰어 신었다. 우산을 단단히 챙겼으나 버스를 타고 이십 분쯤을 가는 동안에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단층 주택이 늘어선 마을 중앙에 식당이 있었다. 높은 건물은 눈에 띄지 않고 하늘이 어찌나 넓던지 엄청난 도심에 사는 것도 아닌데 그 풍경이 몹시도 낯설었다. 식당 입구엔 족히 마흔 개는 되어 보이는, 각기 키가 다른 화분들이 있었고 뒷마당과 이어지는 좁은 통로 앞쪽엔 작은 연못이 있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연못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식당 안 카운터에는 선풍기 한 대가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 연못 앞을 어슬렁거리던 남자가 주인이었는지 우리를 따라 들어와 메뉴판을 올려두고 갔다. 언니가 메뉴판을 보는 동안 나는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았다. 어차피 매생이굴국밥을 먹으러 오긴 했지만 그래도 메뉴판을 보았다. 국밥 두 개를 주문하고 물을 따라 마셨다. 구수한 차였다. 주택을 개조한 식당이었으므로 우리가 앉은 곳은 안방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주문을 한 뒤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들은 네 개의 테이블을 이어붙인 거실에 자리잡았다. 테이블마다 주먹만한 작고 둥근 꽃병이 놓여 있었고 식당 입구에 있던 화분에서 자란 꽃들을 꺾어온 듯, 한두 줄기의 파스텔빛 꽃들이 물을 먹으며 여름을 나는 중이었다.

밑반찬으로 나온 땅콩조림을 집어먹는데 언니가 술을 한잔 하겠느냐고 물었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그러고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는 운영하는 카페의 오픈을 직원에게 맡겼다며 같이 마시겠다고 했다. 나는 쌉쌀한 흙맛이 나는 채소를 고추장 양념에 버무린 반찬과 넓은 잎으로 만든 장아찌를 안주로 첫 잔을 하였다.

주인 남자가 국밥을 가져다주면서 무척이나 뜨거우니 조금 있다가 먹으라고 말했다. 언니와 나는 수저로 매생이를 휘휘 젓다가 술을 마시고 또 젓는 것을 반복했다. 갑자기 쾅하는 큰 소리가 난 뒤엔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거실의 사람들은 통유리로 된 바깥을 한 번씩 바라보며 먼저 나온 밑반찬을 먹거나 물을 마시고 있었다. 빗속이었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계속 비가 내리더라도 항구에 갈 터인지 묻기에 그러고 싶다고 대답했다.

매생이굴국밥이란 것이 무척이나 입맛에 맞아서 순식간에 절반을 비워냈다. 여러 번 식힌다고 식혔는데도 뜨거워서 밥그릇 뚜껑에 덜어먹던 중이었다. 주인 남자가 조금 멀찍이 떨어져 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신문을 뒤적였다. 어느새 거실은 손님으로 가득찼고 방안은 다섯 테이블 중 두 테이블만 찬 상태였다. 나로서는 바깥 상황이 바쁜 듯 보였는데 왜인지 주문을 받을 때 한 번, 음식을 나를 때 한 번 말고는 더 움직일 필요가 없어 주인 남자는 한가해보이기까지 했고 오픈형인 주방도 큰 소리가 나거나 하지 않았다. 매생이란 것이 흐물흐물하니 부드러운 데다 하나로 엉겨 있어 천천히 식혀 먹어야 하는 것처럼 식당 안의 시간도 그런 속도로 흐르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하면서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주인 남자를 향해 뛰어왔다. 그는 별다른 말이 없었으나 신문을 내려놓고 아이의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주었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그의 무릎에 앉자 그는 고개를 숙여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그의 무릎에 앉은 채로 손에 쥔 부채를 엉망으로 부치면서 식당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몇 번 아이의 부채가 그의 얼굴을 찔렀고 그럴 때마다 그는 읍읍, 하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언니와 나는 이따금씩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국밥과 술을 마저 먹었다.

주인 남자와 아이의 가위바위보가 한창이었으므로 언니와 나는 퍼붓던 비가 그치고 또 식사를 마치고도 바로 일어서지 못했다. 발가락양말을 신은 그가 아이와 발가락으로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사뭇 진지한데다 몇 번이고 그가 이기고 있었으므로 아이가 한 번 이길 때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거실에 있던 손님들이 먼저 일어나 계산을 해달라고 요청하고 나서야 주인 남자는 일어났다. 아이는 잠시 시무룩했으나 금세 그를 따라갔다.

처음 먹어본 매생이굴국밥이 맛있어서 평소보다 많은 양을 먹었더니 더 걷기 힘들 정도로 배가 불렀다. 언니와 나는 계산을 마치고 식당 앞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공원은 폭은 좁았으나 아주 길어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몇 가지 체력단련 기구들이 있었고 나무 평상이 깔린 정자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늘 거기 있었던 것처럼, 그림처럼 몸을 돌려가며 기구를 이용하고 정자에 앉아 종이컵에 든 것을 홀짝이고 있었다. 공원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노인이었고 그들은 젖은 운동기구에 맺힌 물기를 손으로 툭툭 털어내거나 정자에 돗자리를 깔고 걸터앉아 있었다.

좋아 보여.

뭐가?

여기 풍경이. 사람들이.

겉으로 보면 대부분 좋아 보이지.

그런가.

요즘엔 너도 좋아 보여.

언니와 나는 얼마간 정자 근처에 서 있었다. 정자에 앉아 있던 세 사람은 이제 마호병의 뚜껑을 닫고 종이컵을 겹쳐 쌓으며 갈 준비를 하는 듯했다. 언니와 나는 그쪽으로 아주 천천히 걸었다. 우리 때문에 서둘러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걸었음에도 한 할머니가 짐을 챙기다 말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여기 앉을 거예요?

?

여기 앉을 거예요?

.

그럼 여기 앉아요.

아뇨, 괜찮아요.

이거 내 건데, 이천원밖에 안 해요.

할머니는 챙이 넓은 모자를 단단히 쓴 뒤 돗자리를 남겨두고 친구들과 함께 정자를 떠났다. 인사를 하지 못한 채로 멀어져가기에, 돗자리 감사합니다! 하고 소리쳤더니 웬일로 우렁찼다? 언니가 놀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빛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어릴 적엔 우렁차기는커녕 발표자로 지목되면 까만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옆자리에 앉은 짝조차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우물거리곤 했고 혼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지금도 종종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한다. 대체 왜 그랬을까. . 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건가 하면 역시 모르겠는 것이었다. 답을 알고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도 못했던 것에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모르겠다. 뭐 어때, 대충 살아! 언니가 말하면 또 속으로만 되뇌곤 했다. 안 그래도 사는 건 대충 살고 있단 말야…… 중학교에 입학하고 조금 컸다고 느꼈을 무렵엔 언니, 난 더 괴롭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고 여기서 더 대충 살면 큰일나는 거 아니야?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하교 후에 쌀을 씻던 언니는 곰곰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밥을 지어 나눠먹을 때까지도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일가족이 우울증이군. 언니가 말했고 나는 슬금슬금 언니의 눈치를 보며 설거지를 했다. 퇴근한 엄마가 언니가 해놓은 밥을 먹고 잠든 후부터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대충이란 것에 대해 밤새 토론을 해야 했다. 언니는 토론을 좋아했다.

제비다.

, 제비 가족.

새소리에 위를 올려다보니 정자 지붕에 제비집이 있었다. 우리가 오래 산 그 집에도 때가 되면 늘 제비들이 날아와 처마 아래 집을 짓곤 했었다. 제비들은 우리가 그 집을 떠날 때까지 매년 우리집을 찾아왔고 언니와 나는 제비가 집을 짓는 모습을 마당에 앉아 지켜보곤 했다. 제비는 근처에서 물어온 젖은 흙이나 마른 풀들을 간혹 떨어뜨리곤 했는데 가만히 두면 다시 땅으로 내려와 주워 물고 올라갔다. 흙과 풀들은 아래부터 층층이 쌓여 마침내 집이 되었고 그러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삐약삐약, 짹짹 같은 새끼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제비는 작은 입을 벌리는 새끼들에게 먹을 걸 물어다주었는데 지천이 논밭이어서 집 지을 재료나 먹이는 차고 넘쳤다. 계절이 바뀌고 떠날 때가 되면 제비들은 바삭하게 마른 집을 두고 날아갔다. 모두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웃기다.

뭐가?

제비집이 생각나.

제비집?

. 지금은 하나도 없어.

웃긴 거 맞아?

다 어디로 갔을까.

다 어디로 갔겠지.

갔겠지.

언니와 나는 돗자리를 접어두고서 이걸 가져가야 하는지 두고 가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우리가 이곳을 떠난 뒤에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앉을 수도 있었고 날아가지 않게 해둔다면 내일 다시 이곳에 올 것만 같은 세 사람이 다시 돌려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전에 쓰레기로 오인되어 버려지게 될 수도 있었다. 돗자리에 대한 토론…… 밤새 할 건 아니지? 물었더니 딱히 대답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