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달달거리며 셔터가 내려가고 마침내 쾅, 하고서 자물쇠 채워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잠근 사람은 접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 열쇠를 단단히 쥐고 걸어갔다. 언니와 나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걸었다. 잠시 후 그 사람은 주차되어 있던 트럭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사라졌다.

정말 외국 같아.

그래?

.

어디가 어떻게 외국 같다는 건지 얘기나 들어보자.

그냥 느낌이 그래.

어딜 다녀봤어야 알지! 맨날 <세계테마기행> 같은 거나 보고!

최애 프로그램이야!

그러니까 지금 기분이 좋다는 말이지? 그런 것 같네, 지금 네 말을 들어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걸었다. 땀이 조금 났고 언니 말대로 기분이 좋았다. 돌아보니 너무 오랜만이었다. 언니와 길을 걷는 것, 다만 걷는 일일 뿐인데도 이렇게 오랜만일 일인가, 몇 년간 그러질 못하고 지내왔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그러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우리는 조금 멀어졌던 것이었나, 생각할 때 언니가 방향을 틀었다. 나는 언니를 따라 몸을 돌려 걸었다. 커튼 사이로 노란 불빛이 비치는 집들이 늘어선 골목길엔 풀벌레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고요한 밤길이었다. 덥지? 조금. 내일은 항구에 가자고, 언니가 말했다. 거기에 뭐가 있는데? 별거 없어. 별거 없어? 바다와 배가 있지. 바다와 배? . 바닷바람과 배. 나는 내가 멀리 와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메로나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가게에서 샀다.

 

기억 나?

어떤 거?

어릴 때 말이야.

.

네가 나 죽으면 같이 죽겠다고 했던 거.

 

나는 기억이 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언니가 조금 웃었다.

 

섭섭해?

아니. 좋아.

좋아?

.

?

그냥 좋아.

 

요즘 사진에 취미가 생겼다는 형부가 사슴벌레처럼 생긴 카메라를 가져와 처제, 사진 찍어줄까? 하고 물었다. 나는 오, 아뇨, 하면서 메로나의 포장을 벗겼다. 형부는 그렇다면 이걸 한번, 하며 메로나를 찍었다. 우리는 마루에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게 메론이 아니라 참외맛이라잖아?

참외맛인 건 모르겠고, 맛있고, 메로나맛인 건 알겠다.

언니와 형부의 대화를 들으며 유리로 된 미닫이문 너머로 작은 마당의 풍경을 본다. 기하네 집에서 보던 풍경과 비슷한 풍경이다. 낮은 담 안으로 시멘트를 쌓아 분리한 수돗가와 몇 그루의 나무들. 다만 엄마와 내가 사는 곳과는 잎의 모양이 다른 나무들. 이곳의 날씨와 흙에 알맞은 나무들.

형부, 저 바깥을 한 장만 찍어주세요.

바깥?

.

언니와 나는 형부 곁으로 다가가 프레임 안에 담긴 밤 풍경을 들여다보았다. 형부가 내게 카메라를 넘겨주었고 나는 집과 마당을 오가며 얼마간 셔터를 눌렀다. 여보, 내일 카메라 잘 있나 확인해, ? 정인이가 훔쳐갈 것 같아. 처제, 훔쳐 가. 아닌 게 아니라 카메라라는 것을 좀 사고 싶다, 생각하고 있을 때 사실 훔친 것은 따로 있다며, 언니가 작은 방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훔칠 만할 정도의 것이라면서도 보관은 투명한 접착식 봉투에 넣어둔 것이 다였는데 그마저도 몇 번 붙였다 떼었다 했는지 접착력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투명한 봉투 안에 든 것은 우리의 사진이었다.

다 훔친 건 아니고.

다는 아니고 이중에서 훔친 것은, 하면서 언니가 사진을 우르르 쏟아내었다. 사오십 장은 되는 것 같았다. 우리집엔 카메라가 없었는데 이렇게 사진이 많았었나 싶어 조금 놀랐다. 모두 다른 사람이 찍어준 것이었고 그걸 우리가 받아두었고 그래서 이렇게 남겨져 있고 그래서 지금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또 새삼스럽니? 언니가 대답을 바라고 한 것 같지는 않은 질문을 던지며 사진 몇 장을 골라냈다.

결혼할 때 엄마한테 말하지 않고 가져왔어.

?

그냥. 보고 싶을 것 같아서.

언니가 골라낸 사진 속엔 어린 시절의 내가 있었고 가만히 그걸 보니 시기가 이어지지 않고 특별한 날뿐이었다. 일상은 없고 특별한 날, 특별한 걸 했을 때 찍힌 것들이었다.

지금 보면 그리 특별한 날들도 아닌데 그땐 다 처음이었을지도 몰라.

그러면 특별하지.

형부가 말했다.

1992 11 23. 이날 유치원에서 파김치를 담갔나봐.

모두들 팔까지 다 덮는 흰색 앞치마를 입고 있어.

아주 집중한 모습이군.

이때는 주의력이 있었나봐!

같은 해 12월엔 족두리를 쓰고 절을 하고 있고.

이것도 역시 1992 12. 유치원에서 그달에 태어난 친구들을 앞에 세우고 생일파티를 하고 있어. 다른 친구들은 먹을 것이 차려진 테이블에 앉아 있고. 여기 선생님을 보면 의자가 작아서 꼭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

, 의자가 작다.

모두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있는데 정인이 너만 몸을 앞으로 빼고는 눈을 뜨고 케이크를 보고 있어.

다행히 두 손은 기도중이고 자, 다음 사진.

1992 4 19. 소풍을 갔군. 사진 속에 무려 열다섯 명이 있어. 반쯤은 이제 막 도시락을 펼치는 모습이고 나머지 반쯤은 과자 포장을 벗기고 있고 그중 세 명은 몸을 돌려서 한쪽을 바라보고 있어. 그쪽에 선생님이 앉아 있는데 아무래도 선생님께서 무슨 말이라도 한 모양이야. 그런데.

그런데 정인이 너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고 네 양볼은 이미 김밥으로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있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쯤을 넣은 모양이야. 엄마가 김밥을 크게 싸는 사람은 아니거든. 두 개를 넣은 것 같아.

머리는 늘 반만 양갈래로 묶었어. 앞머리는 늘 있고. 한결 같았던 헤어스타일 덕분에 절을 하는 사진에서도 처제를 찾을 수 있어.

카메라를 든 사람이 널 불렀나봐. 너만 카메라를 보고 있잖아. 열다섯 중에 너만.

그래서 이 사진이 처제한테 왔나봐.

그런가봐요. 그런데 언니, 내 사진을 왜 이렇게 많이 가져온 거야? , 제일 친했던 친구다! 유치원에서 키가 제일 컸고, 부산에서 와서 친구들이 신기해했었어. 어릴 땐 사투리가 신기했거든.

빨간 티셔츠에 킹덤이라고 쓰여 있다.

킹덤.

킹덤이라고 쓰여 있는데, 제일 친했는데,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네.

그것 참 신기하네.

신기해.

1993년엔 방송국 견학도 가고 놀이공원에도 갔었다. 사진을 보고, 그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갔던 날엔 비가 왔었는데 그래서 슬펐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러니까 이 정도면 다행이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고.

유치원에 다닌 덕분이라는 생각도 들고.

의외로 아주 많이 웃으며 자랐고.

하지만 봐. 이때부터는 왜인지 그늘이 드리워졌다.

정말이네.

가만있어보자, 이때가……

나는 그 당시를 전혀 기억할 수 없었지만 두 장의 사진으로, 그해에 내가 무엇을 하긴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학급에서 외다리 거위라는 연극 한 편을 했고, 운동회 때는 풍물패에 소속되어 장구를 쳤다. 외다리 거위의 스토리는 역시 전혀 기억에 없고 다만 사진 속 네 사람이 칠판 앞에 서 있는 것으로 등장인물이 넷인가, 까지 추측이 되었다. 왜인지 넷 중 셋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흰 종이로 만든 요리사 모자를 쓰고 있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직접 그리고 칠하고 오린 왕관을 쓰고 있었다.

정인이가 왕관을 쓰고 있어.

1995 11 13.

왕자인데 너무도 슬퍼 보인다.

외다리 거위라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왕자가 슬픈 왕자인가?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도 연기를 한 것인가?

형부는 휴대폰으로 외다리 거위를 검색했다.

하지만 이렇게 장구를 칠 때도 같은 표정이야. 연극은 끝났는데 스토리 안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슬픈 왕자의 표정.

그게 아니라면 우리 가락이란 게 한이라는 정서가 있고 해서 몰입을 한 걸까?

가락.

정서.

.

그걸 알았을까 궁금하지만 전혀 알 수 없고,

언니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사람 수를 세기 시작했다.

무려 스물일곱 명이 꽹과리와 장구와 북과 소고를 함께 연주했어. 선생님까지 하면 스물여덟 명.

선생님과 네가 특별히 슬픈 표정이고.

허참, 왜 그랬을까.

이렇게 남을 줄 모르고.

알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어린아이였으니까.

어린아이.

장구를 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짚어보자면 어쩐지 슬퍼지지만.

기분을 표정으로 드러냈다는 게 좋고.

그런 기분을 누군가 알아주지 않았던 것 같지만 좋고 장구를 치고 싶다. 가능하다면, 장구라는 걸 다시 쳐보고 싶고, 아무려나 지금은 슬픈 표정을 지을 것 같지는 않다는 예감을 했고 다행히도 일 년이 지난 후에 찍힌 몇 장의 사진 속에서 나는 웃고 있었다. 엄마의 삐삐를 허리춤에 차고 교회 친구들과 환하게 웃었고 소풍을 가서는 반 아이들과 함께 입을 크게 벌려가며 노래를 불렀다. 봉사활동을 하러 가서 죽상을 하고 찍힌 사진만 아니었다면 어느 정도 즐거운 여행이었다. 과거라는 것을 사진으로 보았을 때 이 정도라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고……

가져가.

가져갈 생각은 없었는데 언니가 사진을 가져가라고 하였다.

이제 주인을 찾아가야지.

주인?

. 줄 수 있다면 내게 두 장만 줘.

어떤……

우리 둘이 찍은 거 두 장 중에 한 장이랑……

언니와 내가 각각 두 살이고 한 살일 때 부침개가 든 양푼을 앞에 두고 찍힌 사진 한 장과 내가 미취학 아동이었던 시절에 63빌딩에 있는 수족관은 아니지만 횟집 앞 횟감용 생선들이 담겨 있던 수족관 앞에서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하고 찍힌 사진 중에 한 장하고,

?

라고 물었더니

네가 양볼 가득히 김밥 오물거리고 있는 사진. 이건 부탁이야. 종종 너의 어린 시절을, 네가 저 모습으로 밥을 먹는 모습이 보고 싶을 것 같거든. 솔직히 말하자면 지칠 때 저 사진을 보면 힘이 날 것 같거든.

언니가 말했다.

부탁이구나.

. 부탁.

부탁이란 걸 오랜만에 받아보네.

부탁합니다.

반환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나는 바닥에 늘어선 사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사진을 언니 앞으로 밀었다. 가만히 그렇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