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무언가가 내게서 멀다. 너무 멀고, 또 많은 것들이 내게서 너무 멀리에 있다. 그렇지만 멀다고 생각할 때 가까이 있는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걸 알게 되고 그런 뒤엔 마음을 쓸어내리곤 했다. 가까이 있기 위해서 계속 걸어야만 했으나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땐 슬펐지?

그땐 슬펐지. 많이 슬펐고.

그래서 어떻게 했냐.

슬프면 그냥 슬퍼한다.

다른 생각 없이.

다른 생각 없이.

슬퍼도 괜찮은가?

슬프지만 또 괜찮기도 하니까.

오늘의 내 기분이군.

집에 가는 길이야?

조금 전에 잘 도착했어. 잘했어. 도착이란 걸 잘 했어.

종종 성규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성규가 집에 잘 도착했다던 날엔 이미 나도 잘 도착했으나 이상하게 며칠 동안 잔 실수를 많이 하였다. 벌레인 줄 알고 손등을 내리치고 보니 점이었고(유월 이후 벌레가 많아졌다), 왜인지 잔뜩 뻗친 머리를 뜨거운 기구로 말다가 손잡이를 놓쳐 가슴팍에 화상을 입었고, 하루 사이에 유리컵 두 개를 깼다. 나는 병원에 가서 가벼운 치료를 받은 다음 연고를 바르거나 식사 후에 약을 먹었고 신문지와 물티슈로 깨진 유리조각들을 치웠다.

성규가 자전거를 두는 상가 주차장엔 묘하게도 차는 늘지 않았는데 빨간색 플라스틱 간이의자가 두 개 더 늘었고 간간이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빈 의자에 띄엄띄엄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일어나서 천천히 걸어간다고 한다. 지나는 길에 쉬어간다기보다는 거기에 앉기 위해 오는 사람이 있어. 그곳에 의자가 있다는 걸 알거든.   

 

4

[저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주일간 가게 문을 닫게 되었어요. 갑자기라 미안하고, 잘 쉬다가 오길 바랍니다.] 가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사장님에게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고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라 내리지 않았다. 곧바로 내려서 반대편으로 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달리는 버스에 그대로 실려 가다가 가게에서 내렸다. 아침부터 삼십 도를 웃도는 온도로, 약간 불안해하며 또다시 여름이 왔다, 여름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 여름이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게 앞에 당도하고 나서야 돌아가야지,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공사가 진행중인 걸 볼 수 있었다. 가마솥으로 끓이는 곰탕이나 빨간 양념을 얹은 코다리를 파는 식당이 들어올 거라 예상한다던 사장님의 말을 상기하고 있을 때 문득 항아리를 팔고 싶어 하는 고객에게 월요일에 전화를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해동중고인데요, 지금 통화 가능하신가요.

, 말씀하세요.

죄송하지만 가게에 일이 있어서 다음주에나 다시 전화를 드릴 수가 있어요.

지금 전화를 주셨는데요.

, 전화를 걸긴 했는데 항아리를 살 수 있는지는 다음주에나 알 수가 있어요.

다음주에는 확실한가요.

.

. 감사합니다

, 아니요. 거의 확실하지만 백 프로 장담은 못해요. 아무래도 제가 장담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유를 알고 싶은데요.

, 제 가게가 아니에요.

아 네, 이것들 정말 좋은 항아리예요.

, 다시 전화드릴게요.

나는 가게 문을 닫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가 근처 슈퍼에 가서 바나나우유를 사 마셨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이것은 정말 바나나 맛인가. 왜인지 바나나의 맛이란 게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바나나로 만든 우유를 마시고 있음에도 낯설기만 할 뿐, 바나나의 맛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서 골똘히 생각하며 열심히 마셨다. 바나나의 맛은 모르겠고 바나나우유 맛이라는 것만 확실하였다.

 

이박 삼일짜리 짐을 쌌다. 특별한 건 없었다. 기차표는 나도 예매할 수 있었으나 언니가 예매해서 전달해주었다. 한동안, 아니 꽤 오래 나는 그 일이 있던 근방을 지날 수 없었고 버스나 차를 타면 시속 삼십 킬로만 넘어도 심장이 조여오곤 했는데 언니에게 가보고자 결심했다. 엄마에게는 친구와 여행을 간다고 말해두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주먹밥을 사 먹었다. 몇몇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주먹밥이나 도넛을 커피와 함께 먹고 있었다.

창가 쪽 좌석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뒤로는 창밖만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긴장을 하였는지 내릴 때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서야 턱과 어깨와 엉덩이 같은 곳이 아프다는 것을 자각했다. 나는 작게 턱을 벌렸다 오므리기를 반복하며 몇 사람과 함께 기차역을 빠져나왔다. 눈앞엔 한갓져 보이는 넓은 주차장이 있었다. 언니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여기야!

언니는 축구 심판처럼 팔을 들어 귀에 붙이고 소리쳤다. 나는 언니가 있는 쪽으로 조금 뛰면서 팔을 든 언니 뒤로 노을이 지는 것을 보았다.

웃긴 거 말해줄까.

.

지난주엔 먹을 걸 많이 해놨었거든.

.

오늘은 아무것도 없다.

일주일 동안 너 주려고 만든 음식들을 먹고 살았거든.

.

그러니까 네 생각이 더 났고.

그랬고.

어제 갑자기 네가 온다고 하니까 왜인지 들떠서 요리를 할 수가 없더라.

그게 또 그렇게 되나.

그렇게 되더라.

하지만 형부가 하나쯤은 하고 있을 거라고 말하며 운전을 하는 언니의 옆모습을 조수석에서 바라봤다. 늙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웃음이 났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크게 웃은 건 아니고 작게 웃었으나 잠깐 눈을 마주친 언니가 왜 웃느냐고 묻기에 늙어 보여서 웃었다고 대답하였다.

내 얼굴이 웃긴가.

웃기다기보다는.

.

, 설명하기 어렵다.

좋은 건가.

. 좋은 거야.

싱겁네.

언니, 여긴 바닷가잖아.

바닷가지.

그런데 난 왜 바다 냄새가 나지 않지.

언니는 말없이 옅은 미소만 보였다. 우리는 경화역 인근에 위치한 국숫집으로 들어갔다. 가게 앞에 주차를 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통유리로 된 창문 밖으로 어둑한 풍경이 흐르고 있었다. 언니는 잔치국수를, 나는 방앗잎이 올라간 장어국수를 주문했고 음식을 기다리며 준섭에게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퇴근길 도로 위인데 왜인지 보고 싶네, 라고 하였다. 휴대폰 화면을 보며 웃었는지 언니가 이번엔 휴대폰이 웃긴가, 하였다. 나는 좋아서, 라고 대답했다. 식당은 국수를 먹는 손님들로 가득차 있었다. 방앗잎인지 장어국수는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한 그릇을 다 비워냈다. 술 생각이 난다고 하였더니 조금만 참으세요. 집에 술상이 차려져 있어요. 언니가 말했다. 형부를 본 지 정말 오래되었다.

곧게 뻗은 기찻길을 걸어 언니의 집을 향해 걸었다. 벚꽃은 다 지고 없었으나 풍경이 낯설어 놀라던 중이었다.

식물들이 다르다 언니.

다르지?

, 외국 같아.

외국 어디?

플로리다.

외국에는 어디도 가본 적이 없었으나 아무데나 나오는 대로 말을 했다. 언니는 계속 여기 살아보니 모르겠더니 가끔 올라가면 알겠더라고 말했다. 언니의 집까지 걷는 동안 적당하게 소화가 되었다. 빨간 지붕을 얹은 두 사람의 집 안엔 언니의 취향과 형부의 취향이 섞여 있었으나 생각처럼 낯설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군더더기 없이 산뜻하고 간결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새것은 없고 결혼할 때 장만한 것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언니가 결혼을 한 해에 엄마와 준섭과 함께 와본 적이 있었다. 두 평쯤 되려나 싶은 작은 마당. 이 작은 마당이 좋았다. 그리고 그때 셋이 이 동네를 함께 걷다가 발견한 살고 싶은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이 아직 있는지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회는 굉장한 곳에서 떠왔고, 이건 내가 끓여봤어.

형부가 나를 반기며 말했다. 돼지고기가 푸짐하게 들어간 김치찜이었다. 우리는 차례로 손을 씻고 끝이 매끈하게 처리된 사각 상에 앉았다. 언니가 방석을 꺼내려 다시 일어섰을 땐 같이 일어나 방석을 내왔다. 안 쓰는 천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직접 만든 방석이었다. 천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은 한때 언니의 취미였다. 이쪽 지방에서만 판다는 소주를 한 잔씩 따르고 건배를 했다. 김치찜에 들어간 김치는 형부 친구의 고모가 한 것이라고 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정성들여 만든 김치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 채소와 양념이었던 것들이 누군가로 인해 모여 김치가 되고 그것을 내가 씹어서 그 음식이 내 몸으로 들어온다는 것. 이상했고 이상하지만 맛있는 것.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이 해준 음식을 먹을 때 드는 묘한 기분이 좋았다.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네?

그런 생각까지 하고 살면 너무 바쁘지는 않고?

아뇨, 재밌어요.

처음 독립을 했을 때에는 매주 엄마에게 가서 반찬을 얻어왔다. 그리고 몇 년 뒤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되어 걸음이 뜸해졌을 땐 엄마가 반찬을 보내왔다.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데 가지 못하고 엄마가 거기서 만든 반찬들을 받아보았다. 퇴근을 하면 반투명 유리문 앞에 택배 박스와 와 있었다. 이십 년 동안 같이 밥을 먹고 살았는데, 왜인지 어두운 밤, 여기까지 스스로 왔다는 듯 지친 모습으로 놓여 있는 박스를 들여와 뜯은 다음 그것으로 늦은 저녁을 먹을 때의 기분은 달랐다.

, 고모 김치 정말 맛있어. 이걸 먹을 때면 고모 이야기를 꼭 한 번은 하게 되고 안부가 궁금해진다.

언니가 말했고 형부는 그녀가 한때 식당을 하셨다고 했다. 형부의 친구는 부모님보다도 고모와 각별한 사이로 지내왔다고도 했다.

식당 안 하실 수 없는 맛이지?

.

나는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내 언니와는 가까운 사람의 소식을 들으며 열심히 먹고 마셨다.

그런가 하면 난 깨를 보면 네 생각이 나거든.

언니가 간장에 찍은 회 한 점을 입안에 넣고 말했다.

네 깨를 본 건 엄마고, 나는 그걸 전해들었을 뿐이지만 깨를 보면 네 생각이 나. 한데 난 깨를 자주 보거든.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다 깨를 자주 보잖아.

? 내 깨라니?

네가 반 년 넘게 집엘 들르지 않아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네가 사는 집으로 엄마가 찾아갔을 때였어. 오지 않는 것엔 이유가 있다, 네가 오지 않는 것이라면 엄마가 가는 것도 싫어할 수 있겠다 싶어서 몇 달을 고민한 후에 간 거지. 아니나 다를까 역시 넌 몹시 지치고 힘들어 보이더래. 그냥 지친 것도 슬프지만 또다른 일이라도 있나 싶었는데 차마 묻지는 못했고.

빨래는 쌓여 있고 청소도 하지 않고 지내는 듯한데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엄마가 보낸 반찬들이 그대로 쌓여 있었대. 밥을 먹긴 먹는지 밥통엔 밥도 없었고. 그걸 증명하듯 넌 전에 없이 살이 빠져 있었고 말이야. 청소 안 한 지는 얼마나 됐어, 물었더니 일주일밖에 안 됐어, 라는 대답을 들었고 도통 입맛이 없는 거니 했더니 아니야, 다이어트 중이야, 라고 했대. 엄마는 알겠다고, 엄마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했더니 다행히 네가 응, 이라고 하기에 더 자라고 말한 뒤에 일어나려다 문득 바닥에 떨어진 깨를 발견했는데.     

.

그 깨가 눈에 들어온 순간에 겨우 안도감이 들었다는 거야. 네가 일주일 안에 깨를 뿌린 음식을 한 번은 먹었구나. 깨라는 건 가만히 생각해보면 안 뿌리려면 안 뿌릴 수 있는데, 깨를 뿌릴 마음이 남아 있구나. 그도 아니라면 네가 뿌렸든 남이 뿌렸든 어쨌든 깨를 뿌린 음식을 먹긴 했구나. 잠시나마 안도했다는 거야. 그러면서도 물론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네 방 한구석에 떨어진 깨를 생각하며 너무 걱정하지 않으려고, 아니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대. 그 얘길 전해들으면서 참 시시하다 생각했고 참 슬펐다. 나는 시시한 것들을 사랑하고 시시한 것은 대체로 슬프니까.

그 말을 끝으로는 갑자기 주어진 휴가가 의심스럽다며 내가 일주일 후에 해고를 당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걱정이 오갔고 형부 친구의 고모의 김치로 형부와 언니가 김치찜 식당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떤가 하는 대화를 나눴다. 이 회도 봐. 식당 안 할 수 없는 맛 아냐? 이 김치찜. 식당 안 할 수 없는 맛 아냐? 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웃다가도 언니가 지금 하는 일을 접을 순 없다거나 식당을 차리기 위한 자금이 얼마나 들 것인가 하는 얘기를 할 땐 사뭇 진지해졌다. 그사이 준섭에게 전화가 걸려와 언니와 형부와 함께 간단하게 영상통화를 하였다.

언니, 난 사실 영상통화를 엄청 싫어해.

그런데 했네.

. 했어.

언니와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나오기 전에 서로 뒷정리를 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였으나 산책을 좀 하고 돌아오는 길에 메로나를 사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다. 근방에도 슈퍼와 편의점이 있었으나 언니와 나는 기차가 서지 않는 역까지 걸었다. 어느 집의 담벼락 위에 앉아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보았고 근처 상점들은 하나둘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