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다행이려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더 일어나야 했을까? 그저 운이 좋길 바라는 건 욕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다행이길 바라는 건 전혀 다른 얘기라고 여겨졌다. 다행스러운 일이 생기고 다행이란 마음마저 없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역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때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함께 엄습해오곤 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 불안해하는 성규를 보면서 속으로 기적을 바라게 되었다. 닭갈비집에서 나와 나란히 길을 걸을 때 성규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면서 요즘엔 그거야말로 기적이 아닌가 싶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왜인지 일을 열심히 하게 됐어. 뭔가 해주지 못한 게 너무 많아서 그런 미안한 마음을 씻고 싶었는데,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 일을 열심히 하면 좋은 사람이 될 줄 알았어.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집하고 가게만 왔다 갔다 했거든. 정말 열심히 했어. 한집에 살면서 아버지랑 마주치기도 어려울 정도로 집에선 잠만 자고 가게에 나갔어. 술도 끊고 자연스럽게 친구도 안 만나고 정말 일만 열심히 했고……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 평범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 몇 년을 그렇게 달려오다가 어느 날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데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 먼 거야. 그날 그 길이 왜 그렇게 길었는지 도대체 집이 가까워지질 않더라. 집이, 너무 멀었어. 돌아가서 쉴 곳이 너무. 늘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여겨지는 법이니까 지나고 나면 뿌듯할 거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다, 그런 생각으로 버텼는데 너무 먼 거야. 영원히 갈 수 없는 곳인 것처럼 너무너무.

성규와 나는 무성한 나무들 아래 오래된 나무 벤치를 지났다. 도로에 근접한 벤치는 오랜 시간 쌓인 먼지와 새똥들로 지저분해 보였는데 두 사람이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올 때는 성규를 따랐으나 가게에서 나와서는 내가 걷고 싶은 쪽으로 걸었다. 나는 성규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수지 쪽으로 계속 걸었고 성규는 잠자코 나를 따랐다.

낮에 이러고 걸으니까 이상하다.

정말 오랜만이겠다.

. 좋다

다행이다.

잠시 아무 말이 없던 성규가 말을 이었다.

그날 겨우 집에 도착해서 씻다가 문득 거울을 봤는데 내 얼굴이 조금 이상해 보였어. 이상하더라고. 이상했어. 이상한 얼굴을 한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어. 아버지, 제 얼굴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모르겠는데. 제대로 보지도 않으시고선. 그러자 아버지는 내 얼굴 가까이로 다가오셨어. 한참을 보고도 모르겠다고 하시기에 며칠 곰곰 생각해보다가 오랜만에 재모를 만났거든. 그랬더니 걔가 나한테 고작 그거 가지고 힘들다고 하냐면서 너만 힘든 거 아니라고 다들 너보다 더 열심히 산다고 하더라고. 역시 그런가, 했더니 그렇다면서 이러더라고. 철 좀 들어라 병신 새끼야. 자랑은 아니지만 어릴 땐 뭐 맨날 서로 욕하고 살았으니까 무슨 욕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거든. 근데 그날은 이상하게 화가 났어. 화가 많이 났지만 화를 내진 않았는데.

않았는데.

지금도 가끔 그날의 재모가 떠올라서 화가 나. 화가 나고, 화가 날 때마다 재모 말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을버스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급하게 갈 곳이 있는지 내리자마자 걸음이 빨랐다. 두 사람은 금세 우리를 지나쳤다. 좀 뛰자. 뛸 수 있겠어? 들고 뛸 만한 무게가 아냐, 엄마. 내 허리 정도 오는 키의 남자아이와 엄마는 모두 커다란 짐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경보를 하듯 걸어 아이보다 앞서 있었으나 멈춰서 아이를 기다렸다. 가까워진 두 사람은 같이 걷기 시작했는데 보통의 걸음보단 빨랐다. 성규에게 여기서 마을버스를 타고 독서실로 돌아갈 건지 조금 더 걷고 싶은지 물었더니 독서실로 가야겠다고 했다. 성규가 마을버스를 타고 멀어지고 버스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걸어서 집에 갔다. 손을 씻고 방석을 꺼내 앉아서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성규에게 별다른 힘이 되어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들어줘서 고마워] 성규에게 메시지가 왔다. [듣는 것밖에 못했어]라고 하였더니 [니가 무슨 신이냐 충분히 큰 힘이 되었어]라고 하였다. 그래, 나는 신이 아니지. 신도 아니면서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네. 아주 잠깐, 또 아주 작은 힘이라도 되었다면 서로에게 다행인 것을.

그날 나는 몇 가지 이유로 자칫 성규에게 내 이야기를 꺼낼 뻔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내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왜 성규였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잊지 않을 거란 말은 반쯤은 거짓말이었다. 여러 날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하고 엄마와 준섭과 이야길 나누고 밥을 먹는 와중에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해동중고는 일요일에는 문을 닫고 토요일에는 조금 유동적으로 오픈을 한다. 사장님과 나는 토요일에 격주로 출근을 한다. 출근을 하는 토요일에는 이른 시간부터 주차장과 이어진 공터에 하나둘씩 어린이들이 모여든다. 인구가 많은 동네가 아니고 아이들이라고 모두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나도 어릴 적엔 나오지 않는 어린이였다) 모여든 아이들은 다 해봐야 넷뿐이지만 하나였던 사람이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넷이 되는 걸 지켜보면 묘한 기분이 된다. 자전거를 타고 모여든 아이들은 어느 동네에나 하나쯤 있는 바람 빠진 공을 차기도 하고 근처 슈퍼에서 과자를 사와 먹기도 한다. 각자 다른 과자를 사와서는 다 먹어갈 때쯤에 하나씩 나눠먹기도 한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 뭐 좀 물어볼게요.

, 물어보세요.

제가 항아리가 많아서요.

, 죄송하지만 저희는 항아리는 취급하지 않는데요.

그런가요.

.

그래도 한번 생각해봐주실 수 없나요. 갖다 두면 항아리를 사려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

좋은 항아리예요.

아무래도 항아리를 둬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 알 수가 없어요.

좋은 항아리예요.

그럼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연락처를 받아두고 점심으로 싸온 토마토를 먹었다. 영애 이모의 집 앞에 심어둔 방울토마토는 열렸을까 모르겠다. 독서실 일을 그만두고서 별일도 아닌데 정신이 없어 그쪽으로 가본 적이 없다. 이모는 여전히 종종 집에 들르지만 나의 퇴근이 늦기도 했고 세나를 더 유심히 돌보는 중이라 오래 머물지 않아 얼굴만 겨우 마주치는 식이 되었다. 다행히 세나는 약을 먹으며 숨을 쉬며 살아 있다.

설탕을 뿌린 토마토가 담긴 네모난 통에는 단물이 생겨 있었다. 나는 바깥으로 지나는 차들을 바라보며 토마토를 씹어먹고 단물을 마셨다. 주말이라 통행량이 많았다. 다들 어디론가 간다. 살던 곳을 떠나온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그해 여름엔 무언가를 먹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았다. 어느 날엔 사둔 토마토에 곰팡이가 핀 것을 보았다. 곰팡이다. 버려야 하나, 라고 생각만 하고서 또 하루인가 이틀을 그대로 두었다. 이제 진짜 버려야 하나보다 하면서도 곰팡이가 핀 곳만 잘라낸 뒤 설탕을 뿌렸고 이래도 되나 생각하면서도 꾸역꾸역 토마토를 먹었다. 왜 그랬던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으나 곰팡이는 잘라내고 없는데도 마치 눈앞에 곰팡이가 피어 있는 듯한 기분으로 토마토를 먹었었다

가게는 좀 어때요.

선풍기와 빙수기를 팔았어요.

다른 별일은 없죠?

어떤 분이 전화로 항아리를 받느냐고 물었어요.

항아리라.

좋은 항아리라고……

좋은 항아리라…… 알겠어요.

일이 아주 익숙하진 않은 때라 나 혼자 나와 있을 땐 사장님이 한번씩 전화를 건다. 급히 물어볼 것이 있을 땐 내 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기도 한다. 가끔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은 상품이 있는데 컴퓨터상에도 가격이 매겨져 있지 않은 경우가 있었고 물건을 들여온 가격보다도 더 낮은 가격을 부르는 손님들도 있었다.

평일에 사장님은 물건을 함께 운반하는 후배가 가고 세척을 하거나 흠집을 때우는 작업이 끝나 한가로운 때마다 이쑤시개로 탑을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것을 반복한다. 이 정도는 해줘야 반복이라 할 수 있다며 반복하는 것을 반복한다고 전해왔다. 사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냥 반복이라고만 말하기엔 너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성냥으로 했으나 너무 쉬워서 이쑤시개로 바꿨습니다. 뭐랄까 너무 쉬우니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언젠가 성냥이 모자랄 때까지 하고 나니까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요. 그럴 리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말하자면 꼭 꿈을 꾸는 것처럼 현실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쑤시개는 좀 낫나요?

보세요. 이쑤시개는 좀 어려울 줄 알았는데 막상 이것도 잘 됩니다. 매끈한 원형인데도 말이에요. 나는 이게 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계속합니다. 일단 반복하는 것을 반복합니다. 왜인지 멈출 수가 없거든요. 정인씨도 한번 해보겠어요?

.

기분이 이상해질 수 있다는 점 유념하고요.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 기분은 이상해지지 않았고 그러자 아쉬웠다. 왜 아쉬웠을까? 내가 묻자 준섭은 글쎄, 이상하고 싶어? 라고 물었다. 늦은 저녁에 만나 산책을 하고 저수지를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있던 날이었다.

이상하고 싶어. 이상하고 싶은 것 같아.

.

알 때까지 계속 해볼까.

그러다보면 이상해질 수도 있고 아쉽지 않아질 수도 있고.

또다른 마음이 생길 수도 있나.

어차피 마음이란 건 항상 변하잖아.

그 얘길 들으니까 궁금해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드네.

그래도 궁금해해도 되지. 변하더라도 지금은 궁금하니까.

탑 쌓기 왕이 되어서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서 섭외 전화가……

섭외 전화가 올 수도 있지.

언니한테 전화가 왔었어.

언니한테?

. 주말에 내려오래.

같이 갈까?

혼자 오래.

? 무슨 일이 있으시대?

모르겠어. 안 물어봤어. 아니 못 물어봤어.

.

띄엄띄엄 서 있는 가로등만으로는 어두운 밤이었다. 준섭은 흠, 하면서 저수지로 시선을 던졌다. 물결은 고요하였고 우리의 대화 사이사이로 거기 사는 생물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던 것이 조금 더 크게 번져 들리는 듯했다. 어두운 밤이었으나 저수지 중간에 선 오래된 나무가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날벌레를 손으로 쫓으며 그때 나는 내가 이상하고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쪽이 아닌 다른 쪽으로.

토요일은 출근과 퇴근이 한 시간씩 늦다. 오후엔 육인용 전기밥솥과 책이 서른 권쯤 들어가는 연두색 책장을 팔았다. 퇴근 전에 가게 안을 청소하고 손을 씻고 나왔더니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길게 울렸는지 받기 직전에 끊어졌다. 나는 전화기를 바라보며 다시 전화가 걸려오길 기다렸다. 퇴근시간이 될 때까지 전화는 오지 않았고 왜인지 오 분만 있다가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토마토를 담은 종이가방을 든 채로 오 분이 지나고 또 오 분이 지나 가게를 나가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 해동중고입니다.

여보세요.

, 말씀하세요.

혹시 항아리도 사시나요.

아까 전화주셨던 분이신가요.

.

뚜껑이 있나요.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수량은요.

사주시는 만큼 팔고 싶습니다. 아주 많거든요.

다음주 월요일에 전화를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가게 밖 공터에서 놀던 아이들은 저녁을 먹으러 갔는지 다 떠나고 없었다.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한 대를 지나쳐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 건너편을 바라다본다. 작은 상점 몇 개가 정류장 쪽으로 몰려 있고 그 뒤로는 논과 밭과 주택들이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여 있다. 길어진 해 아래로 펼쳐진 고요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주말엔 배차 간격이 이십 분인 이층 버스 두 대를 보낼 동안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늘 온다더니] 언니에게 메시지가 왔다. [출근을 하게 되었어] [너 좋아하는 거 해놨는데] 나는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가 생각하였다. [다음주엔 올 수 있어?] [언니, 그런데 무슨 일이야?] [지금 말해?] [] [그냥 보고 싶어서] 거짓말이란 걸 알았지만 문득 버럭버럭 화를 내는 언니가 보고 싶었다. 언니가 너무 멀리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