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성적은 바닥이었지만 난 늘 성실했지.

약속 시간 오 분 전에 모습을 드러낸 성규가 말했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이래도 말이야, 모든 것에 다 성실하진 않거든. 공부라는 건 의외로 성실하고는 거리가 멀어. 아니, 멀다기보다는 별상관이 없다고 봐야겠지. 그때 난 공부에 흥미가 없었어. 그뿐이야.

성규가 일어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마침 잠시 졸 뻔했던 차였다. 나는 두 눈을 한 번 꽉 감았다가 떴다. 배가 고팠고 성규가 목적지가 있는 듯이 걷기에 따라 걸었다. 뭘 먹어도 상관없었다.

넌 학교 다닐 때도 맨날 졸더니 또 졸고 있네.

하필 졸 때 네가 나타난 거야. 선생들처럼.

맞아. 넌 꼭 걸렸었지.

너도.

맞아. 우린 뭘 하면 꼭 걸렸었어.

어떨 땐 뭔가를 하려고 할 때 미리 걸리고.

맞아. 하지도 않았는데 혼나고.

할 게 뻔하니까.

그건 그래.

근데 우리 어디 가?

춘천닭갈비.

진짜 춘천 가고 싶다.

우체국 근처에 오래된 닭갈비집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나이와 비슷한 나이의 상점들을 지났다. 무언가 사라지고 새로 생기는 것에 익숙해서인지 아직 그대로인 것들을 볼 때면 좀 이상하고 뭉클했다. 심지어는 내가 중학생 때부터 보았던 단란주점도 아직 그대로인 곳이 세 곳이나 있다. 오래된 거리나 상점은 텔레비전 같은 데선 흔한 일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아서 십수 년 만에 돌아온 나로서는 먼저 낯섦을 느낀 다음에야 다시 익숙해질 수 있었다.

식당 안쪽엔 좌식 테이블이 있었고 입구 쪽으론 입식 테이블이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맨 구석 자리에 앉았다. 둘 다 어릴 때부터 구석 자리를 좋아해서 여러 명이 모였을 때엔 늘 성규와 마주보고 앉게 되곤 했다. 나는 이쪽 구석, 성규는 맞은편 구석…… 아무튼 그렇게 구석 자리에 앉아 닭갈비와 소주와 사이다를 주문했다. 검은색 가방은 여섯 개의 옷을 걸 수 있는 나무로 된 옷걸이 아래에 놓았다.  

이따 밥 볶을 거지?

볶아야지.

그럼 사리 하나만 하자. 뭘로 할래.

당면.

쫄면 아니고 당면.

.

역시 잘 맞아.

짜증난다.

나도 너랑 잘 맞기 싫어.

어떻게 이렇게 서로를 싫어하는 마음도 잘 맞을까.

그럼 내가 좋아할까.

무슨 일 있어?

야채 먼저 드세요.

커다랗고 둥그런 철판에 나무주걱이 꽂힌 채로 반쯤 익은 닭갈비가 나왔다. 나는 성규와 내 잔에 술을 따랐고 성규도 두 개의 음료수 잔에 사이다를 따랐다. 가득찼던 기포가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상추와 깻잎과 고추, 단무지와 김치, 마카로니 샐러드가 있었다. 성규가 잔을 들기에 얼른 술잔을 들어 부딪쳤다. 우리는 야채를 먼저 먹었고 그뒤로도 몇 번, 익어가는 닭갈비 위에서 건배를 했다. 그나저나 괜찮으니까 마시겠지만 술을 마셔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십 개월 만에 처음 먹는 거라며 오늘은 마시고 싶다고 하였다. 성규와 나는 닭갈비가 타지 않도록 번갈아가며 나무주걱으로 철판을 뒤적였다. 성규는 내가 주걱을 들었을 때 깻잎을 손으로 찢어 철판 위에 뿌리며 고구마가 으깨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모양이었는데 으깨져도 맛있다고 하였다. 나는 검지손가락만한 고구마 조각 두 개를 으깼다.

여기서 진짜 춘천에 가는 거 말이야.

.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

막히지만 않는다면 세 시간도 안 걸리는데.

.

갈 수가 없네.

시험 붙으면 갈 거야?

.

진짜 춘천 가고 싶다.

넌 가면 되잖아.

나도 못 가.

?

바빠.

네가 뭐가 바빠.

차를 잘 못 타게 됐어.

?

그렇게 됐어.

갑자기 차를 못 타게 되는 게 말이 돼?

되던데.

춘천 못 가는 사람들 모임이라도 되는 건가, 하면서 성규는 술을 마셨다. 가게 안엔 우리 말고도 반주를 하는 테이블이 둘 있었다. 다들 둘씩이었고 크지 않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어서 다 해봐야 테이블 여덟 개가 전부인 가게인데도 서로의 이야기가 들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시험 준비를 시작한 이래 친구를 만나는 게 처음이라는 성규처럼 나로서도 이곳에 돌아와 친구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춘천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선 내가 회장을 하고 성규가 부회장을 하기로 하였다. 삼성 건은 어떻게 됐어. 좀 기다려봐야지. 현대건설 쪽은.

에잇. 뭘 알아야 농담도 하지.

반포 재개발은 어디 정도 진행이 됐나.

그만해.

비트코인……

그만하라구.

갈 수 있는데 안 가는 거랑 갈 수가 없는 건 너무 다르네.

갈 수 있는데 안 가는 거라고 생각이 되질 않는다.

아니니까.

아니니까, 라고 반복하면서 성규는 닭갈비 조각을 집어 깻잎장아찌에 싸먹었다. 아우 짜, 하면서도 맛있다고 하였다. 고향의 맛, 이라고 하면서 성규는 입대 전 상황과 춘천에서의 군시절 이야기, 당시 사귀던 사람과의 이별 이야기와 그후로부터 십 년 가까이가 지나서야 다시 춘천엘 갔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여름이었고, 로 시작하는 가족여행 이야기였다.

여름이었고, 그날의 가족여행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는데 물론 그때는 몰랐어. 모를 수밖에. 미리 알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지. 처음이라는 건 알았어도 마지막이 될 줄은 그러니까 그때는 몰랐고…… 여름이었고…… 원래는 강릉에 가려고 했었거든. 산책도 아니고 여행이라 함은 왜인지 바다를 좀 봐줘야 하지 않겠어? 그땐 나한테 차가 있었어. 가려면 어디든 갈 수 있었지.

숙소로는 호텔을 예약했는데 그렇게 비싼 곳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나로서는 삼십 년 만, 부모님은 육십 년 만에 처음으로 호텔이란 곳엘 가보게 된 거야. 아침에 근처 빵집에서 빵하고 우유를 사서 부모님과 함께 차에 올라탔는데 한 시간쯤 지났을까, 벌써 허리가 아프신지 바로 앉아 있질 못하고 몸을 자꾸 움직이시더라고. 차를 오래 타기 힘드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로는 몰랐기 때문에 나는 조금만 참으시라고 곧 도착한다고 하면서 운전을 계속했거든. 곧 도착이 아니잖아? 아픈 거 뻔히 알면서 내가 아픈 게 아니니까 강릉 여행을 시켜드린다는 사실에 심취해서는 꼭 강릉엘 가야겠는 거야. 휴게소에 들렀다가 다시 출발했는데 어머니가 모자를 잃어버렸다는 걸 알았어. 강릉에 가면 새 모자를 사드린다고 말했지. 모자 정도야, 라고 생각했지.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으셨고,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어디서 훌쩍이는 소리가 나지 않겠어?

혹시.

글쎄 어머니가 울고 계시는 거야.

.

아끼는 모자였어요? 차를 돌릴까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셨는데.

저으셨는데.

. 일단 고개는 저으셨는데 계속 우시더라구. 아무래도 엄청 아끼는 모자인가보다, 생각했거든. 난 사실 아침부터 쓰고 있었을 그 모자의 생김새도 잘 기억이 안 났지만.

모자라는 것은 소중하지.

. 모자라는 건……

 

모자 두 개, 아니 세 개 사드릴게요.

아니야. 하나면 돼.

세 개 사드릴게요.

하나를 잃어버렸으니 하나면 된다고 이 새끼야…… 하시고는 또 훌쩍이는 소리가 나기에 모자가 뭐라고 이렇게 좋은 날 왜 자꾸 우세요, 했더니

좋아서.

라고 말한 뒤엔 마음을 놓고 우셨다.

그러니까 결국 좋아서, 라고 어머니는 말하고 말았고 그때까지 영 말이 없으시던 아버지가 성규야, 그럼 나도 모자를 하나 사줘라, 라고 하고 나서야 울음을 그치셨는데.

 

성규는 울지는 않았고 눈알이 새빨개져서는 그렁그렁 눈물만 달고 있었다. 사이다 좀 마셔.

성규 앞으로 맥주 회사 로고가 새겨진 음료수 잔을 밀어두자 성규가 사이다를 마셨다. 나는 성규의 낯선 눈을 바라보며 술을 한잔 마셨다. 뭘 봐. 성규가 말했다. 성규의 어머니는 사 년 전에 돌아가셨다. 형제나 친척이 없어 친구들이 장례를 도왔다. 성규는 내 빈 술잔에 술을 따르며 오늘 뉴스를 잠깐 보았는데 강원도에 폭설이 내렸다고 말했다. 여긴 이렇게 날이 좋고 한데 거긴 폭설이 내렸다는 게 도통 믿기질 않더라고 하였다. 우리는 같이 스마트폰으로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그 뉴스를 다시 보았다.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 것은 왜인가 하며 아무래도 우리는 좀 모자란 것인가 하였다. 한회장, 마음을 좀 열란 말이야. 쯧쯧. 정신 좀 차려야겠어. 평창에도 올림픽 전에 사둔 땅이 꽤 있잖아? 성규가 말했으나 역시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사이 닭갈비가 타버릴 지경이 되어 가스 불을 껐다. 추가했던 당면은 철판의 바닥에 달라붙어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는 고추를 쌈장에 찍어먹다가 벽에 등을 기댔다.

아 좋다.

성규가 저쪽에 있는 테이블과 유리문 밖으로 비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풍경이라고 해봐야 간간이 지나는 차들과 이차선 도로와 육차선 도로 사이에 조성된 나무들뿐이었지만 매일 책상 앞을 풍경으로 두고 지내고 있으므로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고 하였다. 배를 채우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랑 이렇게 친구랑 앉아서 좋아하는 당면을 앞에 두고도 태워가며 보는 풍경은 아주 달라, 몹시 달라. 그럴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 모자 하나 사줄까.

성규가 울었다. 좋다면서 왜 우느냐고 했더니 이상해서,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은 평안하였다. 성규는 막 우는 것은 아니었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는데 조금 많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래 흘렸다. 건넨 휴지를 쥐고 있다가 눈물을 닦아낸 성규가 나 너무 불안하네, 라고 말하였다. 방금 전까지 너무 좋았는데 곧바로 너무 불안해지네. 불안하네……

나는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한참을 그러다 눈을 떴는데 성규가 벽에서 등을 떼고 자세를 고쳐 앉은 뒤 나를 바라보았다.

뭐해?

대답을 못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밥 볶으실 거예요?

카운터에 앉아 있던 사장님이 물었고

.

하나?

, 라고 대답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규는 소주 한 병 더요, 라고 말한 뒤에 나를 따라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자주 가는 사이트 있니.

사이트?

모자 사야지.

농담 아니었어?

이번 개발 건만 해결되면 모자가 아니라 모자 회사를 차려주지.

아닌 게 아니라 이제 곧 여름이니까 모자를 하나 사야지 했었거든.

나는 스무 살 무렵 성규에게 한 스포츠 브랜드의 남색 모자를 선물받은 적이 있었는데 성규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떤 일들은 왜인지 사라지고 기억에 없는데 이상하게 소소한 기억들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잊고 살고 있었는데 자꾸만 모자, 모자, 하니까 결국 생각이 나는구나. 나는 성규와 볶음밥을 안주로 술을 한 병 더 마셨다. 이상하지만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