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3

여름 초입, 주말 오후에 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그때 집안에서 발견한 거미를 빳빳한 광고지로 떠 집밖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길에서 받은 대형 어학원의 광고지였다. 며칠 전 연립 입구 쪽에서 커다란 거미줄을 발견한 참이었다. 거미줄은 101호의 에어컨 실외기부터 연립의 담벼락까지 이어져있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그걸 없애는 사람은 없어서 날벌레들과 나뭇잎, 둥글게 뭉쳐진 먼지덩이 같은 것이 더해지는 모습을 보았다.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른 거미를 세 마리째 내보냈을 때 전화가 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끊기면 다시 걸 요량으로 다른 거미는 또 없나, 현관 주위를 끝까지 둘러보고서야 전화를 받았다. 

언니가 전화를 다 했네.

그래. 전화를 다 했지.

어쩐 일이야. 

여기 며칠 좀 내려올 수 있니. 

……

나는 순식간에 불안해졌다. 언니는 침묵을 택하는 편이지 에둘러서 말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므로 왜냐고 묻지 못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대답을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갑자기. 갑자기였고, 지금껏 이런 용건의 전화는 처음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고. 

거절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별일 아니야. 

언니가 말했다. 언니에게 별일이 아닌 건지 내게도 별일이 아닐 거란 건지는 몰라도 큰일은 아닐 거란 뜻인가 하였다.  

전화를 끊고서 거실로 갔다. 엄마는 거실 바닥에 지역광고지를 여러 장 깔고 총각무를 다듬고 있었다. 바닥에 웬 벼가 있나 했더니 총각무를 한 단씩 묶을 때 지난해 추수 후 남은 볏짚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나는 작은 칼을 쥐고 손을 보탰다. 일 년 전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두 개씩이 되어버린 가재도구들의 대부분을 버리고 남긴 것 중 하나였다. 왼손으로 무를 쥐고 돌려가며 긁어낸 뒤엔 흙이 잔뜩 묻은 총각무의 이파리를 삼등분하여 빨간색 김장용 고무통에 던졌다. 흙이 너무 많이 묻어 있어서 이게 씻는다고 완전히 씻어질까, 씻으려면 고생 좀 하겠다 말했더니 사실 흙은 조금 먹더라도 괜찮지 뭐, 엄마가 말했다. 나는 그런가, 하였지만 이파리를 모두 다듬은 후엔 여러 번 씻고 또 씻었다. 씻은 무를 굵은 소금에 절여두고도 도통 소란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욕실 청소를 하였다. 배수구 덮개를 걷어내고 거름망을 꺼내 물때를 벗겨낸 다음엔 연달아 바닥과 벽의 타일 사이를, 거울을, 주름진 세탁기 호스를 닦았다. 내가 아주 싫어하던 일이었다. 시간이 많아진 뒤로는 싫어하던 일……이 좋아지는 적이 있다. 좋아하던 일이 싫어진 뒤로 허망했던 마음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인가 생각하곤 하였다. 좋아하던 일이었는데 이젠 정말 싫어졌어요. 정말 많이요. 그것을 알아차렸나요. 네. 무슨 징후 같은 게 있나요. 말해줄까요? 네. ……그것을 느끼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냥 그만두면 돼요. 정인씨 여기서 몇 년 일하셨죠? 구 년이요. 구 년이면…… 정말 그만두나요? 그럼요.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거든요. 큰일이요. 네. 어떤 큰일이요. 그냥 큰일이요. 작은 일 아니고 큰일. 남 얘기하듯 담담하게 속삭이던 동료에게 일어난 일을 퇴사 후에 건너들었다.  

한차례 양념을 만든 엄마가 김치를 버무리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총각무를 김치라고 부르고 있었다. 빨간 양념이 하얀 총각무에 골고루 입혀진 뒤엔 차례로 맛을 보았고 설탕과 매실액을 추가해 다시 버무렸다. 

김치통, 얼마 전에 산 거.

응.

나는 베란다에서 김치통을 가져왔다. 

오, 김치통 많은데 잘 찾아왔네. 

그냥 바로 있던데.

하여튼 어릴 때부터 말도 잘 알아듣고, 심부름도 잘하고. 

김치통을 잘 찾아왔단 이유로 칭찬을 듣고 보니 지금껏 단 한 번도 엄마에게 혼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가 차곡차곡 김치를 옮겨 담는 동안 나는 주변에 놓였던 것들을 정리하고 바닥을 닦아냈다. 

난 네가 발명가가 될 줄 알았지.

내성적이고 개성이 없는 발명가. 

응? 

난 그걸 괜히 했다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 

엄만 좋았는데. 

돈만 버렸는데.

난 좋았고 재밌었다.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구체적이지 않은 질문을 해보았다. 

엄마는 나한테 왜 뭐라고 하지 않아. 

뭐라고 할 게 뭐가 있나. 

바라는 거.

바라는 거 없는데.

있지 않아? 

모르겠는데. 

다들 있지 않나. 

……잔소리 해줄까.  

응.

진짜 해줄까.

아니.

엄마는 위생장갑을 벗으며 일어났고 나는 그것을 받아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침부터 김치를 담그느냐 마느냐 상의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대로변 마트에 나가 총각무 세 단을 사서 들어와 다듬고 씻고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 버무린 것치고는 소박한 양의 김치 한 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김치 한 통이 되기 위한 많은 것들. 이렇게 하여 밥을 먹고 김치를 먹고 사는 것이로구나 하였다. 하루가 다 간 느낌이었는데 하루가 다 갔다고 엄마가 말했다. 나는 하루가 다 갔다고 느꼈지만 괜히 아직 여섯시밖에 안 되었는데? 라고 말해보았고 엄마는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다 간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올해도 거의 다 간 거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나지 않았으나 다 지나가버린 거라고 생각하는 하루하루를 살면 조금 가벼워지는 것인가 생각하며 초록색 둥근 컵에 믹스커피 봉지를 뜯어 쏟았다. 내용물은 두꺼운 잔 바닥에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떨어져내렸다. 

다음주. 

다음주에 갈게 언니.

메시지를 보냈다. 


두 달 전부터 해동중고라는 상점에서 일을 하고 있다. 시의 외곽에서 중고물품을 파는 곳이었다. 나는 거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거나 들어온 물품들을 세척하고 세척한 물품들을 팔고 있다. 직원은 나 하나뿐이고, 사장님이 오전에 후배라는 사람과 물품을 들여오면 손님이 없는 틈에 씻고 닦고 흠집 난 곳을 떼운다. 그리고 품목에 맞춰 정해진 자리에 진열하면 되는 일이었다. 세척을 끝낸 물품들은 웬만하면 내가 들 수 있어 층계를 오르기에 문제가 없다. 상점의 입구는 진입로 쪽에서 보면 일층이고, 반대편에서 보면 이층이었다. 침대나 냉장고 등 대형 가구와 가전이 진열된 지하는 공터와 이어진 주차장과 세척장 쪽에서 보면 일층이었다. 상점의 주변엔 작은 가게와 부동산, 가정식 백반집과 공구상가가 있는데 어디도 가본 적은 없다. 

집에서 해동중고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반쯤이 걸린다. 이곳까지 올 줄은 나도 몰랐다. 엄마나 준섭이 같이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마을버스도 못 타던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이층버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었다. 정류장에 말없이 앉아 있었으므로 겉으로는 나 역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버스가 오면 버스를 탈 사람. 그래서 거기 앉아 있는 사람. 나는 가방 없이 빈손으로 집을 나선다. 포장된 도로를 달리면서도 왜인지 그쪽으로 가는 버스는 자주 덜컹댄다. 

이곳에 오게 되면서 독서실 청소 일은 성규가 하게 되었다. 성규와는 한창 봄이 절정일 때 만났다. 오가며 출입구에서 간단한 대화를 하는 것을 제외하면 긴 대화를 하기론 십여 년 만이었다. 이십대 초반까지는 종종 어울려 작은 술집에 들어가 늦도록 술을 마시곤 했다. 그날 오전엔 독서실 청소를 마치고 주차장에 내려와 있던 차였다. 가져온 청소도구를 잠깐 벽에 세워두고 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빈 의자에 앉아 바람을 쐬던 중이었다. 가죽은 이미 오래전에 다 벗겨지고 없었고 뼈대도 바랠 대로 바래 있었으나 종종 거기 앉아 있는 모자 쓴 노인들을 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전에 살던 집주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떠올리고는 했다. 전화번호는 저장되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전화를 거는 일은 없었다. 그러는 것이 당연하지 싶으면서도 면을 맞대고 살아온 시간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내 쪽에서 전화를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쓰던 방에 지금은 누가 살고 있을까 괜히 궁금해 하고는 잘살았으면, 하고 바라고 나면 과하다, 이것까지는 과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다만 그립다는 것인가, 생각하면서. 그리운 것은 어쩌면 고마운 것과 닮아 있구나 그 정도로 정리하곤 했다.      

주차장의 나란한 의자는 처음에는 하나였으나 어느새 세 개로 늘어난 것이다. 누군가 내다버린 건지 누군가 내다버린 것을 주워다 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구석에 폐자재를 갖다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아무튼 각각 생김새는 다르지만 오래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의자들은 이제는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맨 끝 의자에 앉아 그날따라 유난하게 들려오던 새소리를 듣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처음엔 짹짹, 들려오던 것이 짹짹짹짹, 또 그러다 짹짹짹짹짹짹짹 겹쳐 들려오는 걸 보면 여러 마리가 대화라도 하는 듯했는데 어디서 맑은 종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는 처음에 그마저 새소리인 줄 알고 있다가 성규가 자전거 벨을 울리며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성규의 자전거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속도를 줄이며 내는 소리에 마음이 고요해졌다. 성규 역시 차분한 얼굴로 자전거에서 내려왔다. 

여기 있었네.

안녕.

참…… 안녕이란 말이 참 새삼스럽네. 

성규가 한 칸 건너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무거워 보이는 검은색 가방은 우리 사이 의자에 두었다. 성규는 주차장 맞은편 건물의 담벼락에 시선을 두고 왜인지 안녕이라는 말은 오랜만에 들어봤다며 안녕 안녕 하였다. 건물 옆으로는 사층 건물보다 더 높이 자란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왜 여기 있었어.

나 여기 청소하려구.

여길 왜 니가. 니 땅이냐.

푸핫. 

청소하는 게 좋냐.

지금은.

얼마나 걸리는데. 

그건 잘 모르겠는데.

점심 같이 먹을래.

그래. 

한시에 여기로 올게. 

그래.

너무 늦니. 

아니야. 좋아. 

성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가방을 멨다. 

전화번호.

하면서 성규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나는 거기에 내 전화번호를 입력했고 성규는 통화 버튼을 누르며 독서실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내 휴대전화에서 성규의 전화번호가 떠 있다가 사라지는 것과 성규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어떤 생각도 없이 바라보았다. 

자판기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아래를 쓸었다. 자판기 옆엔 모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머리 둘레를 조절할 수 있는 플라스틱 스트랩을 고무줄로 고정시켜놓은 모자였다. 주인이 있을까 싶어 모자를 주워 빈 의자에 올려두었다. 나는 천천히 팔을 움직여가며 비질을 하였다. 간간이 사람들이 오갔으나 들어오는 차는 없었다. 사람들은 무리가 아니었고 한 명이나 두 명씩이었고 조용조용한 말소리들이 다가왔다가 멀어져갔다. 새들은 여전히 지저귀고 있었다. 마지막 쓰레기봉투의 입구를 묶어내자 언제부터인지 맨 구석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차만 한 대 있었다. 나는 상가로 돌아가 청소도구들을 제자리에 놓고 손을 씻었다. 

고생했네요. 

찬미 언니가 말했다. 피곤해 보였고 그래서 오늘도 잠을 잘 못 잤느냐고 물었더니 그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엇을 좋아하나요.

오늘은 아무것도요. 

언니 밥은 먹었나요.

아니요.

무엇을 먹겠나요.

꽈배기. 

나는 꽈배기 가게에서 설탕을 묻힌 꽈배기를 사서 근처 영애 이모의 가게에 들러 한 봉지를 갖다준 다음 독서실로 갔다. 가는 길에 신도시 모델하우스에서 나온 사람들이 사은품이 든 종이가방을 여러 개씩 들고 정류장에 선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종이가방을 쥐여주며 사모님, 여기 진짜 마지막 기회예요 하기에 저는 못 사요, 하고 계속 걸었다. 데스크에는 언니가 없었고 꽈배기가 든 봉지만 올려두고 나왔다. 성규와 약속한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있었다. 더 걸을까 하다가 새벽부터 청소를 오래 했더니 더 걸을 힘은 없는 듯해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빈 의자 세 개는 나란히 있었고 올려두었던 모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