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늦었습니다. 죄송해요. 양손에 무언가를 균형 있게 든 준섭이 깨끗하게 쓸린 시멘트 마당을 가로질러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모두가 나긋나긋하게 말하고 단정하게 움직이는 평화로운 장면 속에 내가 있다고 잠깐 생각하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억을 애를 써서 잊으려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땐 이미 대부분을 잊은 뒤였다. 그러면 좋을 줄 알았지? 언젠가 언니가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다 기억해. 그래야 좋다. 그래야 그전에 알아채고 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어. 낌새를 알아채야 싸우든 피하든 할 거 아냐. 내가 이상한 건가? 나는 지난날이 잘 기억이 안 나, 언니. 잊었다기보다는 조금 어두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잊었다고 말하지만 그 자체가 되어버린 사람.

준섭은 조금 쑥스러워하며 들고 있던 것들을 마루 한편에 내려놓았다. 그곳에 사람들의 가방이 모여 있었다. 전에 잘 본 적 없는 표정이라서 유심히 그를 바라보았다. 준섭은 세나와 인사를 나누고 비어 있는 내 옆자리로 와 앉은 다음 고개를 조금씩 숙여가며 다시 차례로 눈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 어린이들이다. , 어떡하죠?

준섭은 괜히 맞은편에 앉은 엄마를 바라보며 대답을 바라고 한 것 같진 않은 질문을 하였다. 엄마는 준섭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뭘 어떡해, 하면서 웃었고

누가 잡아먹나.

이모가 웃으며 덧붙였다.

잡아먹어요?

지수가 말했고 나는 조금 웃었다. 유진씨가 아이들에게 준섭을 소개했다. 준섭과 아이들은 제대로 인사를 나누었다. 준섭은 식사 내내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했는데, 막상 아이들이 먼저 말을 걸거나 하면 또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하고 쑥스러워했다. 좋기는 한데, 라고 준섭이 내 귀에 대고 말했다. 무서워? 아니, 무섭다기보다는. 무섭다기보다는 어떻다는 건지 다음 말을 들을 수는 없었고 우리는 잠시 동안 상 아래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다.

다 맛있다, 다 맛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모가 차린 음식들을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모는 세 집으로 갈 음식을 싸두었다고 하였다. 새것은 아니지만 통은 꼭 돌려달라고 하기에 잠시 전에 살던 집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반찬통은 참 중요하다. 그것은 반찬통이라기보다는, 이라고 생각할 때

아유, 그러실 줄 알고 저는.

준섭이 괜히 구수한 말투를 쓰며 마루 한편에서 케이크 상자를 들고 왔다. 나는 준섭을 도와 케이크를 꺼냈다. 하얗고 높고 동그란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상 위에 오른 케이크와 이모를 번갈아 보며 박자를 맞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나는 입만 조금 뻥긋거리면서 그 풍경을 바라보았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목소리가 다른 것이 새삼스럽게 새삼스러웠다. 촛불은 아이들이 껐다. 촛불을 끄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으나 준섭은 뭔가 할말이 있는 듯하였다.

근데, 이 일을 어쩌죠.

.

이게 얼그레이시폰케이크거든요.

얼 뭐?

이모가 준섭에게 물었다.

얼그레이시폰……이라며 준섭이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유진씨가 웃으며 좋아합니다, 하였다. 이런 것이 백만원도 아니고 천만원도 아니지만 얼 뭐시기 케이크는 처음이라며 이모가 준섭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백만원이면 못 먹어, 엄마.

기하가 말했고

처음 뭘 해보니까 재밌다. 너무 좋다.

이모의 담백한 표현이 나는 좋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알기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이모 생일을 축하한 적이 없었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그러니까 그동안엔 자주 먹지는 못하는 것들, 기하네와 소고기를 먹는다거나 엄마와 오리고기를 먹는다거나 했지만 어떨 때는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아무튼 생일이란 것은 여느 날과 별로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다는 것이었다.

태어나는 데 내가 고생한 것도 없고. 그러니 별생각이 없었거든. 그냥 여럿이서 밥을 먹는 게 좋은 거지. 그런데 축하라니, 그런 건 고생한 사람들이나 받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축하는 고생에 대한 것. 대단한 것. 고생은 대단한 거다.

엄마 고생했지.

안 했는데.

이 정도는 고생이라고 생각 안 하는데 나는.

이모의 말에 내년엔 어디 바다라도 갈까 기하가 말했더니 이런 날은 오늘 한번이면 족하다고, 다 된 거라고 이모가 말했다. 하지만 막상 축하라는 걸 하니 좋은데요. 내가 불쑥 말하였다.

가자면 그냥 갈 줄도 아시지 않고.

내년에 얘기하고.

간다는 건지 안 간다는 건지 은근하면서도 팽팽하게 오가는 대화를 듣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기하가 작은방에서 찾아온 하모니카로 생일 축하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고 지아와 지수는 준섭을 잡아먹겠다며 그의 팔이며 어깨를 살짝 친 다음 마당으로 도망다니고 있었다.

호락호락하지 않네요.

마당으로 아이들을 따라나선 준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고 아이들이 호락호락 호락호락, 하면서 웃었다.

호락호락이 무슨 뜻이게?

유진씨가 묻자 호랑이…… 아이 몰라 몰라, 하고 대답하였다. 아이들은 한 번도 잡히지 않았고 얼마 후에 작은 방에서 낮잠에 빠져들었다. 세나가 느릿한 걸음으로 아이들을 따라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사진이 몇 장 없었다고, 하나뿐이라는 앨범을 넘겨보며 기하가 말했다. 자주색 천으로 싸인 두꺼운 앨범의 삼분의 일 정도에만 사진들이 채워져 있었다. 그마나 이 정도라도 남아 있는 게 어딘가 싶고. 기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유진씨와 준섭과 함께 아저씨의 옛 모습을 보았다. 군인 시절과 체크셔츠를 입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장면과 공장 사람들과 야유회를 갔던 장면과 어린 기하를 안은 채 자개장을 등지고 앉은 모습이었다. 기하는 이중에 실제로 내가 본 모습은 없네, 혼잣말처럼 작게 말한 뒤 자리를 고쳐 앉았다.

본 것 같지만, 없네요.

사진을 자꾸 보면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누가 찍어줬을까요.

?

우리집엔 카메라가 없었거든요.

기하는 또 한 장의 사진을 꺼내들고는 이때는, 하고 골똘히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 배경에 있는 풀들이 바삭해 보였는데 빛이 바래서인지 여름이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꼭 뜨거운 태양 아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긴팔을 입고 계시지만 여름이었네요.

사진을 쥐고 있던 엄지손가락을 치우자 사진을 찍은 날짜가 나타났다.

야유회는 좀 싫으셨고 당신을 안고 있을 땐 좋으셨나봐.

유진씨가 기하에게 넘겨받은 사진을 보며 말했다.

, 보세요.

유진씨가 사진 두 장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닌 게 아니라 야유회 사진 속의 아저씨는 한창 인상을 찌푸린 채였고 기하를 안고 있는 사진 속에선 눈가의 주름이 선명하도록 웃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 기하가 어릴 때부터 눈가 주름이 선명했던 건 아저씨를 닮았던 거였다. 지난 시간들은 이미 지나갔으므로 과거일 뿐이지만 가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엔 그것이 꽤나 마음 아픈 일이지만 돌아보고 싶을 땐 그래도 되지 않나, 나는 생각하였다. 앞만 보고 사는 것도 얼마나 지치는 일인데 뒤까지 보느냐고, 언니라면 말할 테지만 나는 몰래라도 돌아볼 것이다. 나는 뒤를 보며 언니는 앞을 보며 엄마는 지금을 보며, 겉으로 보기엔 셋이서 하나인 듯 속으론 묘하게 다른 생각만 하고 살았던 듯도 하네,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고 있었다. 한참 후에 기하는 아저씨와 비슷한 표정이 되었고 마침 마루 안쪽까지 오후 햇살이 기울었다.

 

돌아오는 길에 계수나무와 은행나무 들이 나란히 서 있는 지점에 당도하였다. 한 명씩 차례로 앉아 별다른 말 없이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눈앞에 선명한데도 오래된 사진 속 풍경처럼 느껴졌다. 이맘때면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한데 막상 이렇게 앉아 느껴보질 않고 그냥 살아온 건 왜인지 모르겠다고 엄마가 말했다.

나도 몇 번, 다른 데서 살아보려고 했었거든.

어디요?

서울.

서울이요.

. 또 제주도.

또요.

강원도.

강원도요.

. 또 해남인가?

갑자기 해남까지.

. 여기저기서 살아보고 싶었는데.

.

혼자서는 좀 무섭잖아. 나는 그런 강한 사람은 못 되거든. 생각만 했었지. 생각을 하면 생각을 하는 동안 기분이 좋고, 들뜨고.

일단 거기로 여행을 갈까.

그럼 좋지.

당장 갈까.

또 여행이란 걸 가서 돈을 쓸 생각을 하면 아깝고.

그것까지 아까운가.

. 돈이란 것은.

.

돈이란 것은 쓰기가 아깝고. 난 돈을 모으고 죽는 것이 꿈이거든.

죽으면 돈을 쓸 수가 없는데 모으고 죽는 것이 꿈이에요?

준섭이 물었고

. 돈을 모으고서.

라고 엄마가 대답하였다. 이곳에 돌아오고서 엄마와 많이 걸었다. 나는 괜히 엄마의 출근길을 함께 걸었고 퇴근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가곤 했다. 오래된 동네 구석구석도 걸었는데 특별한 말 없이 오늘은 날씨가 좋네, 나쁘네, 대단하다 저 집이 아직도 있네, 방귀가 마렵네, 하면서 걸었다. 개발 문제로 시끄럽다는 건 알았어도 우리랑 상관도 없고 상관 있었던 적도 없었으므로 다른 건 알아도 개발은 뭔지를 몰라 우리끼리 할말은 없었고 지름길에 들어서 공원묘지를 내려다볼 때엔 그저 담담하게 이모나 기하 얘기를 종종 하였다. 아저씨에 대해선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정인이 네가 없을 때엔, 혼자 걸었거든. 혼자니까 아무 말도 없이. 하찮은 말들이래도, 한마디도 할 수가 없거든. 말이란 건 누가 들어줬으면 해서 하는 건데 말이야. 아무리 하찮은 말이래도. 그렇지 않니? 어느 겨울 가로등 아래에서 엄마가 말했고, 하지만 말이야. 또 너무 사이가 좋은 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가끔 싸우기도 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필요는 없지만 하고 싶을 땐 하고 살자. 싸우더라도 화해하면 되니까.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돌아왔다고 생각했을 때 엄마에게 그런 얘길 들었다.

만져봐.

우리의 허리쯤 오는 나무들 앞으로 다가선 엄마가 새로 난 잎들을 살살 만져보았다. 준섭과 나는 엄마를 따라 한두 개의 동그란 잎을 살살 만져보았다. 아래쪽 잎들은 두껍고 색이 진했는데 연둣빛의 새로 난 잎들은 연하고 부드러워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 그런데 또 다른 건요.

다른 거 뭐?

또 하고 싶은 건요.

준섭의 물음에 엄마는 바로 없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으나 곧바로 생각났다는 듯이 아, 탈색, 이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 놀라 탈색? 하고 되물었다.

머리카락 다 끊어진다고 영애 이모가 탈색은 못해준다고 해서 몰래 다른 미용실을 두어 번 가봤는데 다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요?

못하고 있는데 죽기 전엔 해봐도 되지 않나 싶어. 머리카락이 다 끊어져도 한두 개는 남지 않겠나.

엄마, 그런데 한두 개만 남으면 탈색을 왜 해.

푸핫.

갑자기 웃는 법은 잘 없는 준섭이 웃음을 터트렸다.

가자.

엄마가 몸을 틀어 걷기 시작하였다. , 그 정도로 하고 싶단 말씀이시구나. 준섭이 뒤를 따라가며 말했고 정말 다 타버리지는 않을 것 같지 않아? 준섭을 돌아보며 엄마가 말했다. 아뇨, 제가 한때 탈색을 많이 해봤는데요, 정말 다 끊어져버릴 수도 있어요. 그래? 길이 좁아 한데서 걷지는 못하고 일렬로 걸었다. 저 오늘 기분이 좋은데 집에 가서 우리끼리 술 한잔 할까요? 준섭이 물었더니 엄마가 니들이 먹고 싶으면 그러자고 하였다. 나는 맨 뒤에서 계수나무향을 맡으며 걷다가 준섭이 몇 걸음을 뛰어가 엄마에게 저 사실 탈색해드릴 수 있는데,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익숙한 트로트 노랫소리가 점점 가까워져왔고 카세트테이프를 허리에 두른 운동복 차림의 두 사람이 춤을 추며 우리를 지나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