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하지만 나는 힘든 것은 그만하기로 했다. 다시 반복되더라도 당분간 피할 수 있으면 피하자. 그렇게 생각했더니 몇 주 동안 미뤄뒀던 일을 할 수 있었다. 떨어진 단추를 외투에 다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새가 우는 소리를 들었을 뿐,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거리를 걷거나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나는 마음이 좀 편안하다고 느꼈다. 모아둔 돈을 셈해보고 그런 마음이 든 것은 아니었고 그런 마음이 든 뒤에야 모아둔 돈을 셈해보았다.  

어떤 결정이든 마음이 편안할 때 하는 게 좋지요.  

곧 이사를 갈 것 같다고 말하자 주인집 할아버지가 말했다. 골목 끝에 있는 수정슈퍼 앞에서였다. 슈퍼 한편엔 공병을 받는 작은 창고가 딸려 있었고 슈퍼 주인은 그 창고 앞에 종일 노래방 기기를 틀어놓았다. 할아버지는 그 곁에 낚시의자를 두고 앉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소리는 꺼둔 채였지만 유난히 집중할 때도 있어서 방해가 될 것 같아 할말을 못하고 눈인사만 하기도 했다. 어느 날엔 할머니도 같이 앉아 있었고 그날도 그랬다. 

안 그래도 우는 소리가 자주 들리기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술병 잔뜩 내다놓는 거 볼 때마다.

아…… 모아뒀다 내놔서 그런 건데…… 

그래요. 

알았어요.

아가씨가 살고서 집이 더 깨끗해졌잖아. 

아쉬워서 어떡해.

가끔 찾아뵐게요. 

언제든 와요. 

가기 전에 밥 먹으러 와요. 

한 마디를 하면 따뜻한 말 두 마디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이사 전날엔 꽃을 사들고 가서 팽이버섯이 수북이 쌓인 불고기와 고등어조림과 잡채와 바지락을 넣고 끓인 시금치 된장국을 같이 먹었다. 

아이고, 이게 다 뭐예요.  

아유, 난 태어나서 꽃은 처음 받아봐요. 

준비를 돕고 싶었는데 싱크대에 나란히 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미 예전에 돌아가셨다는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너무 오래 못 보고 살아 엄마의 기억에서조차 멀어진 분들이라고 했다. 보고 싶을 때가 있는지 물었을 땐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다.    

주인집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가끔 찾아뵙겠다고 한 말은 반만 진심이고 반은 무심코 나온 말이었는데, 밥을 먹는 동안 완전한 진심이 되어 있었고 어느 순간엔 갑자기 떠나기가 싫을 정도의 마음도 일었다. 

불고기랑 잡채 싸가요.

싸가서 엄마랑 먹어요.

괜찮은데……

얼른 가서 반찬통 가져와요. 

반찬통은 못 줘요.

나는 집으로 내려와 적당한 크기의 반찬통이 있는지 생각해내려 애썼다. 너무 커도 안 될 것 같았고, 너무 작아도 안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이미 이삿짐을 싸둔 상태라서 주방용품을 넣은 박스를 찾아 아래 깔린 반찬통을 찾는 데 약간의 애를 먹었다. 한참 만에야 펼친 손바닥만한 반찬통 두 개를 찾아내 다시 주인집으로 올라갔다.  

꼭 와요. 

오면 자고 가요.

걱정 말고 재밌게 살아요.

네. 

내가 정말로 자고 올 일이 있을까 했지만 그런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좋았다. 생수 한 통과 약간의 쌀과 김치만 들어있던 텅 빈 냉장고에 불고기와 잡채가 든 반찬통 두 개가 담겼다. 

중학생이었던 두 분의 손자가 스물아홉 청년이 되어 결혼해서 그 집을 나갈 때까지 나는 그곳에서 살았다. 몇 년 전 엄마에게 일이 생겨 함께 살았을 때를 제외하고도 십 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손자와 말을 나눠본 적은 몇 번 되지 않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나를 결혼식에 초대했다. 나는 준섭과 결혼식에 참석해 갈비탕을 먹었고 마지막엔 신랑 쪽에 서서 단체사진까지 찍었다. 손자가 나중에 사진을 보면 이 사람들이 여기 왜 있느냐고 하지 않을까. 아니, 안 그럴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난 그럴 것 같은데…… 그런 얘기를 나누었으나 할머니가 힘을 써서 우리를 자리에 세우기에 서고 말았다.   

할머니와 나는 그해 겨울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이 땀 흘리며 눈을 쓸다보면 그렇게 되었다. 할머니가 먼저 다 쓸어놓은 날엔 집 앞에 주차된 할머니 딸의 흰색 차와 아랫집에 사는 아저씨의 오토바이에 쌓인 눈을 정리하곤 했다. 일하고 온 사람이 왜 또 일을 하느냐며 한사코 나를 집으로 들여보내려 하고는 했지만 그럴 땐 나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게 하는 일은 힘들지 않은지, 밥은 잘 챙겨먹는지를 묻곤 했다. 그리고 종종 할머니가 나고 자란 마을에 대한 이야기나 의정부에 산다는 자신의 막냇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어떨 땐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마자 빗자루를 들고나와 할머니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할머니와 이야길 하고 들어온 날이면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혼자서 하곤 했다. 막상 엄마는 하도 오래된 일이라 내가 짐작하는 것처럼 그리움이 크지는 않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그리울 땐 어떻게 해.

그 시간을 잘 넘기지. 

잘이 뭔데.

그냥 잘.

나는 그 잘이라는 한 음절짜리 부사에 대한 설명, 그러니까 엄마가 시간을 잘 넘기는 법을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 후로 아무것도 묻지 못하게 되었다.


며칠 동안은 잠을 많이 잤다. 찬미 언니의 잠을 내가 대신 자는 것 같아 깨고 나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월요일에 준섭이 줄 것이 있다며 자전거를 타고 집 앞으로 왔다. 저녁을 먹고 왔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갑자기 또 날이 추워졌다며 자꾸 이러면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얘길 하고 있을 때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어둑한 하늘이었으므로 어디론가 가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와서 술은 마시지 못하고 날도 추우니 카페에 갈까 하다가 같이 집으로 들어왔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나. 

없었던 것 같아요. 

주말엔 날씨 무지 좋았는데.

맞아요.

그래서 잘 다녀왔나.

재미없었어요.

재미있었다는 뜻이다. 준섭은 강릉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동생 준영과 강릉에 다녀온다. 오래전 돌아가신 부모님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고 그런 준섭과 준영을 키워주었다는 부부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강릉에 도착해 부모님을 뵙고 나면 바다를 보았고 그러면 조금씩 허망해졌고 그러면 부부가 운영하는 칼국숫집에 들러 칼국수를 먹고 잤고 다음날에 또 칼국수를 먹고 다시 부모님을 뵙고 돌아왔다. 예전에도 지금만큼 큰 사랑이랄까 아끼는 마음이 있었는가 하면 막상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나 긴 시간을 없이 살아도 왜인지 그런 마음은 깊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고 준섭은 말한 적이 있었다. 아쉽고 또 아쉽다고. 그땐 아무래도 어렸으니까. 어렸으며 또 그것과는 별개로 몰랐으니까. 나는 종종 그 나들이에 함께하곤 했다. 바다를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언제나 준섭과 준영이 있었다. 

준섭은 강릉에서 사온 커피빵을 내려놓았다. 

<전원일기> 보고 계셨네요. 

응. 저녁은?

아직이요.

그렇게 대답하며 부엌으로 가는 것이었다. 엄마와 준섭은 나란히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그 위에 놓인 냄비들의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어머니, 또 카레를 한 솥 하셨어요?  

조금 한다는 게 그렇게 됐잖아.

배춧국도 있네요. 

그건 싱거워. 

에이, 거짓말. 맛있을 거면서.

난 거짓말은 안 해. 아니 못해.

방금 하셨잖아요.

나는 그런 싱거운 대화를 들으면서 두 사람의 등을 한참 바라보았다. 만약 얼굴이었다면 그렇게 보는 것은 실례였을 만큼 빤히, 둘의 등을 보았다. 빗방울이 점점 무거워져 따닥따닥 하면서 창문을 때렸다. 그 소리 뒤로는 끼이익― 하며 이집 저집 창문 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텔레비전 속에서 어린 복길이가 밤에 집 앞에서 엄마를 위로하는 장면을 멍하니 보다가 아차 하며 방으로 들어가 열려 있던 창문을 닫았다. 부엌과 거실 사이를 나누는 이인용 식탁에는 카레와 배춧국이 차례로 놓이고 있었다. 

밥을 다 먹고서 갈 수 있을까 없을까 하던 차에 빗줄기가 쏟아졌고 위험하니 자고 가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자고 가는 일은 거의 없어서 칫솔이 있거나 하지는 않아 새 칫솔을 하나 꺼내주었다. 엄마와 내가 차례로 양치를 했고 마지막에 준섭이 양치를 하는 옆모습을 보았다. 문을 닫고 하라고 했지만 못 들은 것 같았다. 머리 전체를 흔들며 양치를 해서 귀를 덮은 머리칼이 들썩거렸다. 

시원해? 

엄청.

그 정도로 하면 이가 마모되지 않을까.

했더니 엄마가 양치란 것은 본디 시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자 방으로 들어가기 전엔 준섭이 자전거를 처음 배운 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별 이야기는 아니에요. 어머님은 자전거를 탈 줄 아시고 정인이는.

나는 몇 번 타보았지만 못 타고.

그래.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 이야기해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마 금방 배울 거야.

엄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가 올 때 자전거를 타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는데요, 중학교 때 수련회에 가서 자전거를 타던 날이요. 꼭 수련회나 소풍을 가는 날이면 비가 오곤 했는데요, 그 기억은 저를 수련회 전날로 인도합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가 마지막에 떠올리는 장면은 수련회 날은 아니고요, 그 전날. 저는 자전거를 늦게 배운 편이거든요. 중학생 때니까 아무래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자전거를 배운 시기보다는 늦은 편이라 할 수 있지요. 물론 아주 어릴 때 세발자전거를 탄 적은 있었어요. 하나뿐이어서 준영이랑 서로 타겠다고 다퉜을 것 같지만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서로 양보를…… 흠흠. 아무튼요. 중학교 일학년 때인가 이학년 때 학교에서 수련회를 갔거든요. 그런데 프로그램 중에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까지 갔다 오는 게 있었어요. 한 반이 먼저 다녀오면 다음 반이 그 자전거를 바통 터치 하듯이 넘겨받아 또 달려나가는 거예요. 계속 계속 바통 터치. 근데 저는 자전거를 못 탔거든요. 저 말고도 못 타는 친구들이 몇 있어서 그 애들은 빠졌어요. 아주 강압은 아니어서 그렇게 빠지는 것도 가능했지만 저는 수련회 전날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가르쳐달라고 말했어요. 바퀴가 아주 가늘고 커다란 자전거였던 기억이 납니다. 또 녹이 슬고 낡은 자전거였다고 기억을 하는데 그 자전거가 실제로 낡았었던 건지 제 기억 속에서 낡아버린 건지는 자신이 없고요. 

응.

응.

아버지는 키가 작고 아주 마른 사람이었어요. 평소에도 거의 말이 없었던 사람이었고 그날도 올라가, 앞을 봐, 페달, 손에 힘 빼, 브레이크, 같은 몇 마디와 쓰러질 것 같으면 몸과 핸들을 쓰러지는 쪽으로 돌리라는 것 말곤 별다른 말은 없었던 기억인데요, 어떻게 된 건지 하늘이 깜깜해졌을 무렵 오른쪽 페달을 밟았을 땐 바퀴가 끄응 하는가 싶더니 앞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겠어요. 물론 불안정한 자세였지만 저는 축구 골대를 향해 계속해서 페달을 밟았어요. 

아까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면서 페달을 밟았더니 문득 그날이 조금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많이는 아니고 조금. 조금만 떠올랐습니다. 조금. 그러니까 조금이었고 또 짧았고요. 영화처럼 길게는 아니었고 사진같이 한 장면뿐인…… 골대를 돌아 교문 쪽에 서 있는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 운동장을 비추던 불빛 아래에서 아버지가 가만히 한 손을 들어올리던 장면이었습니다. 

이쪽이라고

이리로 오면 된다고 하는 목소리를 들은 듯한 기분이었는데 실제로는 키가 작아서 보이지 않을까봐 그랬다고 하셨습니다.

준섭의 말이 끝나자 엄마는 앉은 채로 한 손을 가만히 들어올렸다. 

이렇게? 

네. 맞아요. 

나는 엄마를 따라 한 손을 들어올렸고 

그렇게 기준! 하는 것처럼 귀에 딱 붙이지 않았고 대충.

대충 이렇게. 

준섭이 시범을 보였고 나는 꼿꼿이 세웠던 팔을 풀어 대충 들었다. 

이제 졸린 사람 손 내릴까요.

손을 들었던 순서대로 내려놓은 뒤에는 깔고 앉아 있던 납작한 방석을 차례로 쌓아 탁자 아래에 넣었다. 탁자 위에는 귤이 담긴 바구니와 리모컨, 메모지와 목에 걸 수 있는 끈이 달린 볼펜, 준섭이 꺼내놓은 지갑과 휴대폰이 있었고 귤을 한 개 먹고 싶은데 양치를 해서 아무래도 먹을 수가 없겠다는 얘길 했다.  

엄마와 나는 방으로 들어와 나란히 누웠다. 이모는 어떤지 물었더니 세나가 언제 또 아플지 몰라 영애 이모네서 좀 지낼까 했는데 그러면 혹시 세나가 불편할까 싶어 어쩌지 못하고 일단 집으로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도 이모가 갑자기 들어와 이제부터 같이 살 거다 그러면 편치는 않지 않겠니. 그러면서 이모네 가게가 점점 한가해지는 것이 지금은 다행인가 싶기도 하더라고 했다. 지나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이제는 많이들 떠나고 거의 없으니까. 나는 누운 채로 고개를 끄덕였고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아침 출근길을 미리 걱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