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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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새우고 독서실에 갔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밤사이 쌓인 눈이 단화 앞코를 덮었다. 독서실이 있는 상가 건물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여는 것은 이발소 아저씨 아니면 나인데 어떨 땐 아저씨가 상가 앞부터 골목 끝까지 다 쓸어두기도 해서 눈이 내린 날이면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곤 했다. 상가 앞에 도착하니 쌓인 눈 위로 아무 발자국도 나 있지 않았다. 나는 복도 불을 켜고 올라갔다. 안내데스크에 총무인 찬미언니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언니, 불도 안 켜고.

또 잠이 오지 않았어요.

어쩌다가요.

모르겠어요.

나는 불을 켤까 하다가 복도 불빛에 의지해 데스크 옆 창고에서 딱딱한 빗자루와 눈삽을 챙겨 나왔다.

눈이 왔나요.

많이요.

언니는 천천히 의자를 밀고 일어나 나를 따라나섰다. 사방이 고요했고 멀리서 비질하는 소리만 이따금 들려왔다. 내가 눈삽으로 눈을 밀면 언니가 빗자루로 얕게 남은 눈들을 정리했다. 하다보면 그냥 골목까지 하게 되는 거였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골목 끝까지 눈을 치웠다. 언니도 다른 말 없이 내 뒤를 따라 걸으며 비질을 계속했다. 땀이 났다. 장갑을 벗어 맨손으로 땀을 닦으며 독서실로 돌아갔다. 상가 맞은편 아파트에서 나온 서너 명의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지금이 아니면 다 쓸어버리니까 그런 걸까요

쓰는 사람은 쓸어야 하니까 쓰는 것일 텐데.

휴게실에서 믹스커피를 좀 마시고 마저 청소를 하기로 했다.

얼마 전에 눈이 엄청 오는 꿈을 꿨는데요.

누렇게 색이 바랜 종이컵에 커피봉지를 뜯어 부으며 언니가 말했다. 나는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떼어내고 외투를 벗었다.

근데 우리 사장님은 어디서 이런 걸 자꾸 가져오는 걸까요. 가져올 땐 분명 새 건데 뜯으면 다 이렇게 노래져 있거든요.

언니는 종이컵을 이리저리 돌려보고는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았다. 단 커피향이 퍼져나갔다.

어디 여행중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이 아니었거든요. 눈은 엄청 오는데 짐을 전부 잃어버렸지 뭐예요. 에이, 뭐 어쩔 수 없네 하면서 시계를 봤더니 아홉시 반. 아주 늦은 시간은 아니니까 일단 먹자, 하고서 어떤 가게에 들어가서는 술이랑 음식을 먹으면서 모르는 사람들하고 즐겁게 이야길 했거든요. 짐을 전부 잃어버려놓고도 즐거웠어요. 그러다 하나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에 나도 밖으로 나왔어요. 그렇게 나와서는 내리는 눈만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생각했어요. 찾을 수 있을까.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휴대전화도 없고 완전히 빈손인 채로.

그러다 깼나요.

. 생각만 하다가 깼어요.

기분은요.

왠지 절망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외투는 있었고요.

있었고요.

호로록, 커피를 마시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는 잃어버릴 것도 없다고, 아니 다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이라고 하기에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십 년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억이 없을 정도인데, 그런 생각을 하며 마저 청소를 했다.

 

평소보다 늦게 독서실에서 나오다가 성규를 만났다. 다른 사람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친구들에게는 비밀로 시작한 공부여서 처음 나를 만났을 때 성규는 하마터면 계단 아래로 구를 뻔했다.

무슨 귀신이라도 보았니.

, 이리 와봐.

성규는 나를 옥상으로 데리고 가 한동안 한숨만 내쉬었다.

아니…… 니가 왜 여기서 나오지?

나는 오전에 청소를 할 뿐, 등록은 찬미 언니가 하기 때문에 나를 여기서 만날 줄 몰랐던 것이다. 성규는 안 그래도 건너, 건너, 건너, 또 건너서 알 수도 있는 사람이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있을까봐 구도심의 오래된 독서실로 왔는데 왜 여기 내가 있느냐고 물었다. 친구 동생의 사촌동생의 친구처럼 먼 사이 같아도 이상하게 뭐만 하면 걸리는 게 이 동네니까 그럴 만도 했다. 이제는 대부분 동네를 떠나 살지만 아이를 몇씩이나 낳고 키우면서도 왜인지 자기 얘기는 안 하면서 남의 얘기만 재밌어하는 동창 한둘이 남아 있어 가능한 얘기였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니가 왜 여기서 나오냐구?

성규가 약간 흥분해 있기에, 나도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고 말은 못하고 딴 데를 보며 눈알만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내가 아무리 할말이 있대도 지금은 때가 아닌 것쯤은 알았다.

말 안 하면 되잖아.

나 담배도 끊었다구!

.

왜긴! 공부 열심히 하려고 끊었지!

열심히 해, 그럼.

…… 너 진짜…… 니가 왜……

성규와 나는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약간의 간격을 둔 채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 그새 땀이 흘렀다. 성규의 가방은 정말이지 무거워 보였다.

담배 있냐?

없어. 나도 끊었어.

잘했다. 돈도 없으면서 담배까지 피우면 안 된다.

……

아무튼! 약속 꼭 지켜줘. 이 나이에 공부한다고 하면 개새끼들이 존나 무시를 한다구

알겠어.

확실해?

어디 말할 친구도 없어.

성규는 그 부분에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안도하는 것 같았다.

?

나 뭐.

너도 여기서 청소하는 거 비밀로 해줘?

 

나는 지난여름 돌아왔다. 종종 누군가 돌아오면서 시작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어서 와, 해서 오는 경우는 잘 없었다. 오래 떨어져 살던 사람이 돌아오면 무언가 문제가 생긴다. 그래도 마지막엔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끝난다. 보다보면 더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보이곤 했다. 나의 돌아옴은 아무래도 그 반대가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런 예감이 든다. 엄마가 필요해, 라고 말했을 때 어서 와, 해서 왔고 아직까지 같이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나는 그것을 이미 내가 문제를 안고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마지막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서 끝날 수도 있겠다, 하는…… 그런 예감이. 뭐 그렇더라도 그런 생각이 나를 매일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마을버스도 탈 수 있게 되었고 영애 이모네 집에 갈 땐 택시도 탔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었고 지금은 일단 살고 보자는 마음 하나뿐이다.

 

엄마는 나를 열여덟에 낳았다. 그것 말고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아버지가 있었고 무려 큰엄마도 있었던 모양인데 큰엄마도 김밥을 매일 싸먹었다는 얘기를 뜬금없이 듣거나 할 때가 아니라면 가족 관련 서사는 웬만해선 듣기 힘들다.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알 수가 없다. 나는 내가 큰엄마와 고모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어디 가서 말한 적은 없고 언니나 준섭에게만 말했다.

신기하지 않아?

뭐가?

내 나이에 그걸 모른다는 게.

그럴 수 있지.

준섭은 늘 내게 그럴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 자신은 그런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 나도 몰랐어! 나도 내가 큰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어! 언니의 말을 듣고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었다. 나만 그렇게 많은 걸 모르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 기를 쓰고 대학까지 나왔어도 모르는 건 모를 수도 있는 거라는 안도감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언니가 내가 자책하지 않도록 일부러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나에게 가족 간 호칭이란 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게 아니었고 상식도 아니었다. 아버지에 대해서도 아는 게 하나 없으니 할아버지나 할머니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꿈에서도 본 적이 없다. 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데 아직인가보다, 그 정도로 정리했다. 나는 내성적이고 개성이 없는 아이였다.

 

언니와 싸울 때마다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재미있다고 성규가 말한 적이 있었다. , 니네 언니 존나 골 때린다, 하며 낄낄거렸다. 나는 성규의 골을 때리는 언니를 종종 부러워했다.

 

성규와는 반대 차선을 달리던 같은 노선의 버스기사들이 그러듯 손을 들어 간단히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성규는 독서실로 들어가야 하고 나는 나오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성규의 가방은 아직 크고 무거워 보였다. 어떤 공부를 하느냐고 물었을 땐 붙으면 말하고 싶다는 대답을 들었다.

점심은 어떻게 먹어?

라고 물었을 땐

집에 가서 먹고 와

라고 갑자기 활기찬 얼굴로 대답했다.

집까지?

자전거 타면 얼마 안 걸리고 또……

?

낮엔 집에 아무도 없거든.

매일 사먹기도 그렇고 누군가 마주치기도 싫고 돈도 절약되고 잠깐 운동 삼아서 갔다 온다는 말이었다. 이유가 많았다. 어떤 대답에도 이유는 많은가. 이유가 하나거나 아니면 없을 수도 있나. 이유를 말할 수 없을 땐 물어선 안 되려나. 그런 걸 물으면 화를 내려나. 골똘히 생각을 하다보면 성규의 활기찼던 표정이 떠오른다. 날씨 때문에 자전거 타기가 위험할 때는 김밥을 사먹는다고 했다. 김밥이란 정말, 대단한 음식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성규의 자전거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주차장 구석에 놓여 있다. 누구도 시키지 않지만 저곳을 좀 치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언젠가 언니와 같이 짜장면을 사먹고 상가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이야길 했더니

아이고, 그런 걸 왜 하려고 드냐!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냔 말이야!

핀잔을 들었다. 하여간 어릴 때부터 그랬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랬나.

고생을 사서 한다.

사서.

고생을.

고생을 사서 하는 어린이란 게 있어? 어린이가 고생을 어떻게 알고 그걸 사기까지 하나.

그런 어린이가 바로 너였다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편하게 좀 살자, ?

그러면서 언니는 어릴 때 소꿉놀이를 했던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꿉놀이를 한 거였는데 넌 지게에 나무를 지고 왔었지. 물론 도끼로 팰 만큼의 나무는 아니었어. 그때 넌 일곱 살인가 여덟 살이었고 지게보다도 몸이 작았을 때였거든. 넌 언니였고, 은혜가 딸이고, 나는 엄마였다. 마당에서 저녁을 지어먹기로 하고 흩어졌는데 네가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거야. 나는 주먹만한 돌들을 쌓아 아궁이를 만들었고 우리가 늘 갖고 놀던 버려진 식기들을 차려놓았고 은혜는 농사가 끝난 밭에 남아 있던 고추며 너무 익어 땅에 떨어진 지 한참이 돼 썩어가던 과일들과 조금씩 자라난 풀들을 뜯어왔는데 넌 안 오는 거야. 정말로 해가 지고 나서야 돌아왔는데, 오긴 왔는데, 여름도 아닌데 얼굴이 새까매져서는 과수원에서 쓰던 지게를 지고 왔다. 지게 아랫부분이 간신히 땅에서 떨어질 만큼의 키로 자란 덕분에, 끄는 게 아니라 지고 오긴 했더라. 버려진 가는 나뭇가지들을 한가득 싣고 말이야. 야무지게 가지들을 묶어온 걸 보았을 때 사실 나는 화가 났었다.

, 언니. 크게 화내면서 다 엎어버렸잖아.

은혜가 하얗고 작은 손으로 풀들을 뜯을 때 넌 왜 얼굴이 새까매져서는 손까지 다 터서 돌아왔느냔 말이야, ? 소꿉놀이 하자고 했지 누가 나무를 해 오랬느냔 말이야

언니, 난 원래 얼굴이 까맸어.

 

그게 싫었어.

원래 까맣던 얼굴을 더 까맣게 만든 너와 내가.

그 순간이 미치도록 싫었다는 게 내 기억의 요지다.

 

그 싫은 마음에 대해 나는 오래 생각했다. 그전까지 싫은 건 싫은 거였거든. 싫으면 그냥 싫어야 했거든. 근데 그날은 아무래도 뭔가 달랐다. 은혜가 너무 착하다는 사실과 어린이 주제에 그 고생을 하고서 내 할일을 했다는 기쁨이 어린 얼굴로 돌아온 너와 놀아주지 못하고 화를 내며 마당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사람이 결국 나였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그 와중에 네가 있는 방향을 피해 아궁이와 식기를 엎어버리고서 방에 들어갔을 땐 왠지 온몸이 가려운 것 같았다. 나는 얼마 뒤에 퇴근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도 못하고 묻지도 못하고 책도 한 권 없는 집이라 책에서 찾아보지도 못하고 혼자서 오랫동안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네가 곤히 잠든 모습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다가 아, 그것은 마음이 아팠다는 거구나! 그런 식으로 깨닫게 되었다. 나는 너를 바라보다가 어른이 된 것 같았고 네가 그 마음을 모르기를 바라면서 너와 함께 자랐다. 하지만 너도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나무를 그렇게 한 짐이나 해온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는 소꿉놀이를 줄여보려 했으나 넌 소꿉놀이를 좋아했고 아무리 다른 역할을 주어도 여전히 나무를 해오고 납작하고 큼지막한 돌들을 주우러 비탈을 내려갔다. 네가 뿌듯해하며 좋아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누가 널 막을 수 있었을까? 누가 널 막는다면 나는 그때도 화를 냈을 것이다.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화가 나는 일이니까. 아무튼 그냥 그런 마음이었다는 거지 장녀라서 동생 걱정까지 하느라 힘들었다는 생색을 내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도록. 언니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경찰차 한 대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 너 잡으러 왔나보다. 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차를 몰고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