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유령과 함께 살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말은 여러 경우에 적용될 수 있겠으나 특히 직업적 상황에 잘 어울린다. 자신을 위해 생일 케이크를 굽는 제빵사와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그 예가 되겠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은 기술적인 어려움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설탕을 싫어하지만 맛을 위해 불가피하게 설탕을 듬뿍 사용해온 제빵사는 자신의 생일 케이크를 만들 때 과연 얼마만큼의 설탕을 첨가해야 할까? 자신의 암이 회복 불가능한 말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의사는 얼마만큼의 항암 치료를 스스로에게 권해야 할까?

나는 사회학 연구를 수십 년 해왔다. 그것도 예술사회학 분야에 종사해왔다. 예술 단체나 문화 정책, 혹은 여타 예술 활동을 하는 아마추어나 전문가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꾸준히 연구를 해왔다. 하지만 정작 동시대 문학 작가에 대한 사회학 연구 작업은 기피해왔던 것이다. 

나는 방금 ‘기피’라는 단어를 썼다. 문학 작가, 특히 시인에 대한 연구를 늘 염두에 두었지만 본격적으로 조사를 하고 자료를 모으고 논문을 작성하는 일은 차일피일 미루어왔다. 시인 연구를 하기 시작한 건 최근 들어서다. 시인들을 인터뷰했고 그렇게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논문을 썼다. 앞으로도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이제야? 

시인은 어쩌다 시를 쓰게 되는가? 시인은 어떻게 시인이 되는가? 시는 다른 종류의 창조적 활동과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또 차이가 있는가? 시와 시인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다양한 학자들이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이미 제시해왔다. 사회학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서구권에서는 시인의 정체성과 커리어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세상에는 나처럼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시인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수행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창조적 활동이나 정체성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나, 혹은 반대로 어떤 즐거움을 겪는지는 모르겠다. 왜 시인 연구를 하지 않았는지, 왜 이제야 그런 연구를 시작하게 됐는지 분명치 않다. 아무도, 나 자신도 내게 “왜 안 해?”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전공 분야가 정치사회학이라면 모를까, 명색이 예술사회학인데, 시인 연구를 하지 않은 이유, 그리고 이제야 연구를 시작한 이유에 대한 자기 성찰은 필요할 것 같다. 이 글은 짧지만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스스로 밝혀보는 첫번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사회학은 환상 깨기의 달인이다. 특히 아름답고 정의롭고 당연하다 여겨지는 현상들이 사회적인 제약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사회학은 냉철하고 가혹하다. 사회학은 결혼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라 ‘계급족내혼’─연애결혼 또한 사회적 배경에 의한 중매결혼이다─이라 주장하고 교육은 평등이 아니라 ‘계급재생산’─결국 교육 또한 부모 지위의 세습이다─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문학에 대해, 시인에 대해서도 사회학의 칼날은 비껴가지 않는다. 내가 사회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문학에, 그것도 시인에 적용하지 못해온 것은 “중이 제 머리를 깎지 못하는” 곤란함 이상의 두려움 탓일 수 있다. 사회학의 칼날은 매우 예리해서 내가 내 머리를 깎다가 피를 볼지도 모른다. 남이 깎아주면 어여쁘고 단정한 머리가 나올 터인데 왜 굳이 내가 깎아서 흉터투성이의 머리를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사랑하는 두 시인의 시인론은 참으로 고전적이고 낭만적이다. 김수영은 “시인은 비극적으로 시인이 되어야 한다” 했고 쉼보르스카는 “철학 교수는 가능하지만 시 교수는 불가능하다” 했다. 사회학은 이 두 시인의 시인론에 냉소적인 시선을 던지며 고개를 가로저을 것만 같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왜 내가 굳이 나서서 그들의 허위의식을 들추어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사회학이 시인에 대해 그토록 냉철하고 가차없는 분석의 칼날을 들이대리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깊지 않은 공부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알게 된다. 예술사회학 분야의 탁월한 성취들은 예술이 갖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성격을 간파한다. 예술은 ‘순수’라는 껍데기 명분으로 자행하는 사회적 배제와 폭력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 예술은 ‘순수’를 가없이 추구하면서 다른 종류의 상품으로 대체할 수 없는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 둘 사이의 비율은 고정돼 있지 않고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늘 변화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시인은 가난하고 배고픈 직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시인이 명예와 수입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복 받은 직업은 전혀 아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배운 사실이 있다면 시인들은 시 쓰는 일을 직업으로 확고히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세나 원고료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잘나가는 시인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시인은 시 쓰는 일을 자신의 정체성의 중심에 두며, 그로부터 생계가 가능한 일들─강의, 산문 쓰기, 출판사 근무 등 다른 종류의 문학적 활동들─을 가지치기해나간다. 시인의 커리어는 시 창작 외의 수많은 일을 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자아 감각을 유지하는 고군분투로 요약될 수 있다. 시인이야말로 이미 오래전부터 요사이 많이 언급되는 ‘N잡러’였던 것이다.  

시인은 일종의 ‘반직업적 직업 정체성’을 품고 있다. 많은 시인들이 문학을 전공했고 그중 다수는 석사나 박사 학위를 취득했음에도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내밀한 개인적 정체성의 일부로 여긴다. 직업을 인격적 정체성의 일부로 두는 사람은 많다. 특히 전문직들은 직업과 자아 성취를 분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에는 전문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요소가 존재한다. 시를 쓰는 데 필요한 표준화된 기예란 없다. 시를 요구하는 고정된 고객도 없다. 시인은 어딘가에 소속되고 계약되어 제작 주문을 받아 시를 쓰지 않는다. 시인은 말 그대로 ‘시 쓰는 사람’이다. ‘변호사’의 ‘사(士)’나 ‘건축가’의 ‘가(家)’처럼 어떤 집단의 일원으로 표상되지 않는다. 흰 종이와 모니터를 마주하고 있을 때, 시인은 철저하게 혼자이다. 

종종 언급해왔지만 해외 입출국 때 시인은 직업란에 ‘시인’이라고 쓰지 않는 편이다(소설가들은 ‘소설가’라고 쓴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독자와 출판사는 시와 시인을 원한다. 시는 돈만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상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이상한 시스템에 기대어 오랜 시절 존속해왔다. 이 세상의 경제 시스템에는 상품 같지 않은 상품과 직업인 같지 않은 직업인을 위한 세계가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시와 시인의 세계이다.  

내가 인터뷰한 시인들은 대체로 전통적인 시인의 풍모를 내세우지 않았다. 시는 너무나 특별하고 자신은 시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자랑할 것은 없다고 했다. 그들은 시인 신화의 바탕이었던 전위주의와 낭만주의를 의식적으로 거부했고, 혹은 최소한 이제 그런 식의 시인 이미지는 세상에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쓰고 싶고, 계속 쓰고 싶고, 가능하면 잘 쓰고 싶은 욕망에 충실했다. 인정이라는 것도 결국 그러한 욕망의 일부였다. 내가 들은 말은 이런 식이었다. “다행이에요. 내가 쓴 게 그래도 시가 맞는다고 하네요. 앞으로 계속 써도 되겠네요.”

나는 시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 자신의 기억을 소환했다. 등단하면서 ‘당선 소감’을 쓸 때의 난감함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시를 쓰는데 왜 굳이 세상 사람들에게 시인으로서 나서야 하지? 그때 나는 골방의 문턱을 넘는다고 했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스스로를 충분히 설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유는 단순했다. 나에게는 확인이 필요했다. 내가 좋아서 쓰는 시의 가치를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때는 그 누군가의 정체가 신년 1월 1일에 신춘문예 소식을 접하는 누군가, 그중에서도 시를 좋아하는 누군가, 그리고 나중에 시집을 내면 그 시집을 사서 읽을 누군가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골방의 문턱 너머에는 독자들, 동료 작가들, 평론가들로 이루어진 유구하고도 거대한 세계가 있었다. 

그 세계는 ‘위대함’과 ‘새로움’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문학을 만들고 판매하고 향유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 세계를 지탱하는 위대함과 새로움이라는 가치는 온전히 내면화하기에는 너무나 불확실하다. 그것은 마치 문학이라는 세계의 밤 골목을 떠도는 유령 같다. 모두들 그 유령을 봤다고, 그 유령의 영향력이 너무나 막강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그 정체를 확언하지 못한다. 무엇이 위대하고 무엇이 새로운가? 누가 그 세계의 천사인가? 누가 그 세계의 악마인가? 문학상과 판매량이 그 유령의 윤곽을 잠시 뚜렷하게 그려주는 것 같지만 불과 한 계절만 지나면 또 다시 희미해지는 것이 그 유령의 실체이다. 불확실성의 다른 표현은 바로 희미함이다. 문학이라는 세계는 희미함을 자원으로 삼아 굴러간다. 작품을 만드는 것만큼 작품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하고 왈가왈부하고 쑥덕쑥덕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하는 세계이다.  

시인들은, 특히 젊은 시인들은 이 불확실성을 감내하며 쓰고 또 쓴다. 내가 수행하는 시인들과 문학 작가들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의 키워드는 불확실성이다. 나는 이제야 받아들이게 되었다. 위대함과 새로움이라는 가치의 허구성을 까밝히는 것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것은 시인들이 어떻게 그 허구와 공존하며 시인으로 살아가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시인들은 쓰는 시간만큼, 쓰지 않는 시간의 자아를, 그 공허와 불안을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쓰지 않을 때는 뭐하세요? 그때도 본인이 시인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이 질문이 시인들에게 아프게 다가간다는 사실을 안다. 그 질문은 진실을 말하라는 채근인 동시에 “어떻게 해? 응? 우리 어떻게 해야 하냐고?”라는 염려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