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동네 빵집 견문록

나는 빵은 그리 좋아하지 않아도 빵집은 좋아한다. 주말이 되면 아침마다 추리닝 바람으로 동네 빵집에 간다.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규모도 작은 빵집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갓 구운 빵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주방에서 흰 제복을 입은 채 작업에 몰두하는 제빵사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어떤 빵을 먹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이 빵 저 빵을 둘러보고 시식도 하지만 결국엔 늘 먹던 빵을 골라든다. 하지만 빵들은 모양이 다 제각각이어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세상에 똑같은 모양의 바게트, 똑같은 모양의 스콘, 똑같은 모양의 식빵은 없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봉투 안에 담긴 빵이 조금씩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밀가루로 만든 신선한 회라도 되는 것처럼. 집에 돌아와 커피와 함께 빵을 먹을 때, 여전히 생생한 그 폭신폭신하고 바삭바삭한 식감이 참으로 좋다.  

나에겐 동네 빵집에 가서 갓 구운 빵을 골라 집에 와서 먹는 과정 전체가 하나의 의례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맛집 탐방과 다르다. 인터넷 검색을 하기보다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 집 저 집을 시도해보다가 한곳에 정착하는 식이다. 빵도 빵이지만, 빵의 이름, 빵이 진열된 방식, 빵을 만들고 판매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나를 그곳으로 이끈다. 

과장하자면, 빵은 성스럽다. 빵집은 교회이다. 빵은 밀, 불, 물의 삼위일체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빵 신도는 아니지만 빵 신도들은 좋아한다. 자신을 빵돌이, 빵순이라 겸허히 낮춰 부르며 빵의 충복을 자처하는 그들은 빵, 하고 말하면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사랑스러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나도 언젠가는 오븐을 사서 직접 빵을 구워보고 싶다. 나의 빵 신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이 빵 저 빵에 대해 수다를 떨며, 웃음을 빵빵 터뜨리며 그들과 함께 ‘퀄리티 타임’을 갖고 싶다. 

하지만 나는 빵집을 운영하고 싶진 않다. 아니 할 수 없다. 예전에 카페를 하던 후배에게 “나도 음악 틀고 손님 기다리면서 책도 읽고 그렇게 여유 있게 살고 싶다”고 했더니 “형, 그렇게 여유 있다는 건 카페가 망해가고 있다는 증거예요”라는 핀잔을 들었다. 빵집도 결국엔 사업이다. 오븐을 사서 집에서 빵을 구워먹는 것과 빵집을 운영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실력을 갈고닦고, 재료를 준비하고, 기계를 관리하고, 빵의 메뉴를 최적화하고, 손님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삶을 투신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내가 만에 하나 자영업을 한다면 그래도 다른 사업보다는 빵집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이 사실이다. 빵집은 특별하다. 자영업 중에서도 빵집은 매일 무언가 자그마하고 사랑스러운 것을 만들어 동네에 묘한 활력을 불어넣는 것 같다. 물론 뭔가 만드는 것은 식당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식당에서 만드는 요리는 도무지 귀엽지가 않다. 하지만 빵은 얼마나 귀여운가? 귀여움을 결정하는 주요인은 동글동글함과 말랑말랑함이다. 빵은 빵빵한 아기의 볼을 연상시킨다. 닭백숙과 탕수육은 감탄을 자아낼지언정 귀엽다는 느낌은 자아내지 못한다. 아기 볼을 보고 “아, 귀여워, 닭가슴살처럼 탱탱해!”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게 뻔하다. 

다른 한편, 빵집은 동네를 초월하고 나아가 나라를 초월하는 초국적 오라를 가진다. 애초부터 빵은 한국 음식이 아니니까 말이다. 예전에 프랑스 친구랑 오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친구는 프랑스의 거의 모든 집에는 오븐이 있다고 했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국은 용기에 불보다는 물을 담는 편이다. 한국이 찌거나 삶는다면 서양은 주로 굽는다. 빵은 불의 비율이 높고 밥은 물의 비율이 높다. 오븐에 가장 적합한 번역어는 가마이겠으나 이때 한국에서 불을 담는 가마의 용도는 음식이 아니라 도자기 같은 물건을 굽는 쪽에 가깝다. 

프랑스인 친구는 토요일에는 동네 빵집에 가서 주말에 먹을 만큼의 빵을 산다고 했다. 빵집에는 맛있고 다양한 종류의 빵들이 있기 때문이고 또한 주말 음식은 평일과 달리 특별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늦게 가면 줄을 서야 하고 또 빵이 떨어지면 결국 식료품점에 가서 평범한 빵을 사야 하기 때문에 늘 아침부터 서둘러 빵집에 간다고 덧붙였다. 빵이 주식인 그들에게 빵집에 가서 줄을 서서 빵을 산다는 것은 특별한 의례가 아니라 관행적 의례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로 치자면 집에서 쉽게 안 해먹는 ‘밥’을 토요일 아침에 밥 파는 가게에 가서 사오는 격이다.

아직도 한국인에게 밥은 주식이다. 하지만 빵은 밥 다음의 지위는 충분히 확보했다. 빵 먹는 일을 대단치 않게 여긴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삶이 서구화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동네 차원에서 한국의 서구화는 빵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리 제과, 뉴욕 제과, 덴마크 제과, 독일 제과(왜 독일은 베를린 제과가 아니라 독일 제과일까?) 등등. 아마도 프랑스어를 가장 많이 쓰는 자영업이 바로 빵집일 것이다. 유명 빵집 중에는 ‘나폴레옹 빵집’이 있다. 나폴레옹이 빵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건 마치 파리에 ‘이성계 떡집’이 있는 것과 같다. 이상하지 않은가? 더 이상한 것은 정작 프랑스어로 이름을 지은 빵집에 바게트와 크루아상뿐만 아니라 카스텔라, 소보루, 찹쌀빵, 팥빵 등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빵집은 서양과 동양이 잘 어우러져, 혹은 뒤죽박죽 버무려져 토착화된 동네 자영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국내 빵집 중 프랜차이즈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크고 동네 빵집의 생존율은 지극히 낮다. 자영업자의 절반이 이 년을 버티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업종을 바꿔가며 가게를 연다. 자영업자에게 성공이란 무엇보다 오래 버티는 것이다. 한번은 ‘Since 2018’을 내건 가게를 보고 고개를 갸웃한 적이 있었다. 향후 오십 년을 내다보는 거창한 야망을 표현한 건지, 삼 년이나 생존했다는 소박한 만족감을 표현한 건지 헷갈렸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빵집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빵집은 뭐니뭐니해도 동네 빵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어디 한데 모여 있기보다 주거지에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음식점이 바로 빵집이다. 홍대 앞에 가면 커피집이, 연희동에 가면 중국집이, 신당동에 가면 떡볶이집이, 번화가에 가면 술집과 치킨집과 고기집이 다닥다닥 모여 있다. 웬만한 피자 가게는 다 체인점이다. 모름지기 빵집은 걸어가야 제맛이다. 만약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빵집이 없다면, 혹은 있더라도 프랜차이즈 빵집이라면 나는 크게 낙담할 것 같다. 왜 우리 동네에는 빵집이 없는 거야! 나는 아직도 어릴 적 내가 태어나 자라던 동네의 빵집 이름을 기억한다. 거북 제과. 거북이가 빵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거북이처럼 오래 살아남으라고 거북 제과라고 이름을 지은 것인가?   

그러니 동네 빵집이 문을 닫는다면 그때의 소회는 남다를 것이다. 과거에 빵집은 ‘당(堂)’이라는 한자를 썼는데, 그 말은 성황당이나 교회당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중요한 집’을 지칭했다. 병원이나 학원의 ‘원(院)’에 비하면 덜 공식적이고,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의 ‘장(場)’에 비하면 더 소박하고, 상점이나 백화점의 ‘점(店)’에 비하면 좀 더 머물 수 있는, 말 그대로 사람과 공간을 품는 집의 느낌을 빵집의 ‘당’은 갖고 있다. ‘○○당’은 ‘○○제과’ ‘○○베이커리’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빵집은 “집”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동네 빵집이 문을 닫는다면 누군가의 집, 그것도 매우 중요한 집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곳의 향기, 그곳에 일하는 전문가들, 그곳의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빵들, 그 주변에 모여드는 동네 사람들...... 동네 빵집이 사라지는 것은 ‘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그 빵집’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이번 주말에도 동네 빵집에 갈 것이다. 내가 즐겨 찾는 그 빵집은 메뉴가 다양하지도 않고 풍성하지도 않지만 간혹 새로이 추가되는 빵들이 있다. 그래서 아직도 뭔가를 열심히 연구하고 시도하는 모습을 엿보게 된다. 그곳은 연구소나 실험실 같기도 하다. 시식을 위해 마련된 빵 조각들은 계산대 바로 옆에 놓여 있어서 손님은 바로바로 피드백을 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쑥스러움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지만 그래도 한두 점은 먹는다. 빵 조각들은 꽤나 큼직해서 시식만으로 포만감이 들 정도다. 

무엇보다 내가 그 빵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계산대 바깥쪽보다 안쪽이 더 분주하고 시끄럽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계속 대화를 나눈다. 맘 같아선 하루종일 머물며 그곳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다. 도대체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오로지 빵의 관점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빵집에 가면 나는 흥분한다. ‘오오, 지금 여기서 뭔가 신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군!’ 빵은 하나의 사물로서 그 신나는 일의 일면을 살짝 드러낼 뿐이다. 그 전모를 알 수 없기에, 그러나 그 전모가 궁금하기에 나는 매주 거르지 않고 동네 빵집에 가는 것이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