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분류의 재미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라는 미국 잡지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한동안 잡지의 한국판을 정기구독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중산층을 위한 교양잡지였다. 건강, 과학, 역사, 예술 등에 관한 짧은 분량의 다양한 에세이들을 엮어놓은 식이었다. 십대 초반인 나에게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잡지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할 만한 이야기를 내게 제공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몰려들게 만든 책은 단연코 음란잡지였다. 영화잡지가 뒤를 이었다. 일본에서 출간된 『스크린』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나는 친구가 가져온 그 책에서 처음으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E.T.>의 이미지들을 접했다. 나는 친구에게서 잡지를 빌려 E.T.의 사진 이미지를 그림으로 옮겼다. 그 방법 외에는 내가 그토록 매혹되었던 E.T.의 이미지를 간직할 길이 없었다. 나는 그때 E.T.를 하도 그려서 지금도 단 몇 초 만에 E.T.를 그릴 수 있을 정도다.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나에게 남겨준 기억은 별로 없다. 나는 에세이보다는 에세이의 마지막 페이지 자투리에 삽입된 짧은 미국식 유머들을 즐겨 읽었다. 미국식 유머는 이런 식이었다. “변호사, 의사, 정치인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다. 그들은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변호사는……” 별반 웃기지는 않았어도 그런 유머들을 읽으면서 미국인들이 변호사를 재수 없는 엘리트로 여긴다는 사실 정도는 알게 됐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은 에세이 중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 편의 글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글의 주제는 ‘던지기의 유형’에 관한 것이었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던지기의 유형

A형: 목표가 있고 그것을 맞힐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맞히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던지기.

예: 투수가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공 던지기.

효과: 이 경우 목표에 적중하면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기에 보람을 느낀다.


B형: 목표가 있고 그것을 맞힐 수 있는 가능성은 현저히 낮지만 그래도 맞히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던지기.

예: 농구장 끝에서 반대편의 골대를 향해 공 던지기.

효과: 이 경우 목표에 적중하면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났기에 매우 행복하다.


C형: 아무 의도 없이 던졌는데 자기가 의식하지 않은 목표에 적중하기.

예: 담장 밖으로 담배꽁초를 던졌는데 우연히 지나가던 청소차의 수거함 속으로 (혹은 행인의 장바구니 속으로) 들어가기. 

효과: 이 경우 목표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기에 그 결과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생각지도 않은 목표에 적중한 걸 알게 되면 의도치 않은 일이 벌어졌기에 무척 황당하다. 결과가 좋으면 자랑스러운 동시에 당황하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하고 결과가 나쁘면 수치스러운 동시에 당황해하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런다.


D형: 의도는 있지만 그 의도가 별 의미가 없는 던지기. 즉 목표에 적중할 것이 100% 확실한 던지기.

예: 바다를 향해 돌 던지기.

효과: 이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예측했던 일이 벌어지므로 그냥 넘어간다. 그리고 이 던지기에 대한 기억도 오래가지 않는다.


E형: 아무 의도도 의미도 없는 던지기.

예: 글을 쓰면서 이로 손톱을 뜯어 주변에 뱉기.

효과: 이 경우 목표도 없고 예측도 없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건 상관없다. 이따금 뒤늦게 벌어진 일을 추슬러야 할 때가 있지만 그조차도 대수롭지 않다. 아주 간혹 묘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고양이가 토한 헤어볼에 본인의 손톱들이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든가.


나는 글을 읽고 생각했다. 정말 쓸데없는 지식이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재미가 있지? 던지기의 유형이라니. 야구를 즐겨하는 나도 던지기에 대해 저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네. 나도 나중에 비슷한 글을 쓰고 싶다. 쓸모도 없고 별 심오한 의미도 없지만 읽는 이를 사로잡는 글을 말이다.

성인이 된 후 소위 분류법이 갖는 의미와 재미를 나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레비스트로스는 과학이란 체계적으로 사물을 분류하는 지식과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이때 분류법이란 대부분 필요에서 기인하지만 (먹을 수 있는 버섯과 먹을 수 없는 버섯의 구별) 때로는 분류 체계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고도 했다. 즉 과학의 기원에는 유희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먹을 수 있는 버섯과 먹을 수 없는 버섯을 나눈 후 버섯 전문가 혹은 애호가는 더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버섯을 나누기 시작한다. 먹을 수 있는 버섯 중에 맛있는 버섯과 맛없는 버섯을 나눈 후, 다시 맛있는 버섯 중에 먹고 나서 지인에게 권하고 싶은 버섯과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버섯을 나누고, 다시 비밀로 간직한 버섯 중에 먹다가 씹기를 멈추고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버섯과 그렇지 않은 버섯을 나눈다. 버섯 전문가는 버섯을 분류하고 분류하다 더 이상 버섯의 종류를 쪼갤 수 없게 되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버섯을 스스로 창조한 후 그것들을 다시금 분류하기 시작한다.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인용한 보르헤스의 동물 유형 나누기도 재미있다. “보르헤스의 텍스트에 인용된 ‘어떤 중국 백과사전’에는 ‘동물이 a)황제에게 속하는 것, b)향기로운 것, c)길들여진 것, d)식용 젖먹이 돼지, e)인어, f)신화에 나오는 것, g)풀려나 싸대는 개, h)지금의 분류에 포함된 것, i)미친듯이 나부대는 것, j)수없이 많은 것, k)아주 가느다란 낙타털 붓으로 그린 것, l)기타, m)방금 항아리를 깨뜨린 것, n)멀리 파리처럼 보이는 것’.”(미셸 푸코, 『말과 사물』, 이규현 옮김, 민음사, 2012, 7쪽). 

나는 이 글을 읽으면 보르헤스의 얼굴에 번지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떠올린다. 무엇보다 보르헤스가 인용했다는 ‘중국의 백과사전’ 자체가 그의 창작물이다. 달리 말하면, 내가 위에 인용한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던지기의 유형”이란 글 자체가 나의 창작물인 식이다. 사실 반은 나의 창작물이기도 하다. 글의 주제만 어렴풋이 기억나기 때문에 세부 내용은 내가 지어내야 했던 것이다. 

모든 종류의 예술 창작은 소우주의 창조이다. 그 소우주는 정보들과 그 정보들에 대한 지각들로 이루어진 분류체계이다. 그 분류체계는 정적이기도 하고 역동적이기도 하고 분명하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하다. 그 분류체계는 세상의 질서를 닮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 혹은 세상의 질서와 아무 상관이 없기에 그것을 의심하게,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그 분류체계를 만드는 사람에게 그러한 쓸모와 의미는 부차적이다. 분류체계를 만드는 일은 정말이지 재미가 있다. 예술 창작이 재밌는 이유는 그 안에 분류체계 만들기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조각들을 나누고 붙이고 쪼개고 겹치면서 전체를 만들어가는 지각 작용의 짜릿함은 가히 중독적이다. 

“참 쉽죠?”로 유명해진 화가 밥 로스가 방송에서 파도를 그리며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는 파도를 그렸는데 그 모양이 조금 이상해졌다고 고백한다. 그러고는 그림이 반드시 현실의 모사일 필요는 없다고, 그러니 파도 모양이 이상하면 어떠냐고 하면서 덧붙여 말한다. “실수는 없어요. 단지 행복한 우연(happy accidents)만 있을 뿐이에요.” 우리는 바다를 그릴 때 거대한 ‘표’ 하나를 만드는 셈이다. 무한한 종류와 개수의 파도라는 ‘칸’들로 이루어진 분류체계, 그것이 우리가 만드는 우리만의 바다인 것이다. 그러니 창조하는 자는 반드시 분류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