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오빠가 그랬다

언젠가 씩씩해서가 아니라 울 수조차 없어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엄마 마음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읽고 오빠가 그랬다.


“네가 병원에 있었던 그 시절에 나는 엄마 아빠가 마음 아픈 것만큼 나도 똑같이 아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내 자식이 생기니까 알겠어. 부모 마음과 오빠 마음은 전혀 다른 거더라. 하연이, 하린이는 내 눈에 넣어도 진짜 안 아플 것 같은데, 솔직히 너는 내 눈에 들어오면 따갑고 아플 것 같아.”


이 말을 웃으며 주고받은 날로부터 몇 달 뒤, 오빠 부부네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제왕절개 수술이라서 삼십분 뒤면 아이가 태어날 거라고 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아무 연락이 없자 약간 초조해졌다. 한참 뒤에야 아기가 잘 태어났다는 짧은 문자를 받고서 안도하던 그날 밤. (박사과정중이라 혼자 미국에 있을 때였다.)


오빠가 “지금 통화 가능해?” 하고 문자를 보내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는 오빠의 울음소리.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오빠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을 울기만 했다.


아기의 몸에 왼쪽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아주 큰 점이 있는데 의사가 ‘선천성 거대 색소 모반증’이라고 했단다. 오빠는 아기의 팔에 있는 점을 확인하자마자 몇 시간 동안 인터넷에서 정보란 정보는 다 찾아봤다고 했다. 태아기 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멜라닌 세포의 발달 이상으로 20센티미터가 넘는 거대한 점이 몸 여기저기에 생기는 건데 이만 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난다고 했다. 이런 피부는 정상적인 피부보다 두껍고 울퉁불퉁하고 털이 길게 자라기도 하고 그중 일부는 악성 종양으로 변하기도 한다는데 피부이식술이나 레이저 박피술 같은 수술적 치료로 제거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유전도, 환경의 영향도 아니라는데 오빠는 자기 때문인 것 같다며 자책했다. 계획했던 임신이 아니어서 임신 소식을 알게 됐을 때 처음에는 당황해서 반기지 못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왠지 아이가 건강하지 않을 것 같아서 9개월 동안 불안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몸의 상처가, 오빠는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회복되었지만 오빠는 회복되어가는 내 모습을 보며 마음의 위로를 얻었을 뿐, 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그냥 덮고 사는 사람처럼 보였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오빠의 삶에 또 일어났다는 게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우리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또 생겨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야속했다.


오빠는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신생아를 데리고 거대 색소 모반증을 수술로 혹은 레이저 시술로 없앨 수 있다는 의사들을 찾아나섰다. 큰 병원, 작은 병원 할 것 없이 여기저기 다니다가 아기의 갑상선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다. 아기가 갑상선 자체를 갖고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발달에 문제가 생기거나 평생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때부터는 팔에 있는 점은 걱정도 아니게 되었다.


가족들이 폭풍우 속에 갇힌 것 같은 시간을 한 달 정도 보냈을까. 방학이 되어 나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만났다. 많은 다이어트 방법 중 최고라는 마음고생 다이어트를 한 오빠는 홀쭉해져 있었다. 내가 지방에서 강연이 있던 어느 날, 운전을 해주겠다고 오빠가 함께 나섰다. 가던 길에 휴게소에 들러 별로 맛이 없던 우동과 라면을 앞에 놓고 오빠는 지난 한 달간 짐작만 했던 마음속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기가 태어난 후 맞은 첫 일요일. 교회에 간 오빠는 터져나오는 울음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가정도 직장도 모두 별일 없이, 그저 다 내가 열심히 하면 잘 굴러가는 인생이라고 여겼기에 꽤 오랫동안 예배 때도 몸만 앉아 있을 뿐, 마음은 없었다. 가족이 모두 교회를 다니니까 어쩔 수 없이 가는 날도 있었고 그래서 졸음이 몰려오면 그대로 졸기도 많이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여기 말고는 기댈 데가 없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임을 깨달았다. 혹시 나의 교만과 자만심 때문에 아이가 아픈 건 아닐까, 그동안 신앙 없이 살며 행했던 삶의 아주 작은 잘못까지 모두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가장 큰 존재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런 오빠의 이야기를 듣자 성경 말씀 하나가 생각났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고린도후서 7장 11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Godly Sorrow을 통해 오빠는 후회가 아닌 회개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라는 변증으로, 사모함과 열심으로 다시 깨끗한 그릇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오빠는 세상 근심으로 머물지 않고, 슬픔을 주님 앞에 가져가서 풀어놓고 다시 새롭게 사는 생명을 얻었다.


오빠가 이런 심경의 변화를 겪는 동안 셋째의 갑상선은 일 년 정도만 약을 먹으면 정상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됐다. 팔에 있는 거대 색소 모반도 몇 차례 피부이식술을 하면 없앨 수 있다고 말하는 좋은 의사도 만나게 되었다.


신앙信仰은 믿고 바라보는 일이다. 인생에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사건이 생겨 우리를 사정없이 흔들기도 하고 꺾기도 하며 우리 삶을 완전히 다르게 변형시키기도 한다. 시간 여행을 해서 생긴 일을 되돌릴 수도 없다. 내가 고른 것도 아닌 인생인데 심지어 반품도 교환도 할 수 없다. 홍역을 한 번 앓고 나면 면역이 생기는 것처럼 인생도 그러면 참 좋을 텐데, 한 번 엄청난 일을 겪었다고 해서 우리 인생에 그런 일이 다시는 안 생긴다는 그런 보장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폭풍 가운데에서도 절대자의 존재를 잠잠히 믿고 바라보는 것이 신앙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 덕에 ‘고해苦海’라고 여길 수도 있는 인생이 때로 기쁨과 감사로 채워지기도 하고, 이정표도 없는 망망대해 같은 인생에서 나침반과 지도가 생기는 신비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셋째 아이 덕에 첫째와 둘째가 건강하게 무탈하게 태어나 자라는 것이 얼마나 기적과 같은 선물인지를 알게 되었고, 작은 것에 크게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에게 생긴 일 덕분에 아빠의 눈은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 아빠인 오빠와 우리 가족에게 다시금 절대자의 마음을 알게 해준 아기의 이름은 ‘하음’으로 지었다.


(하음이는 건강하게 자라 이제 아홉 살 어린이가 되었다. 옛말에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 하음이가 주는 기쁨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화에 이어갑니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