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이래저래 궁상스러운 남궁인 선생님께

지난 편지를 읽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에겐 남궁인보다는 남궁상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다고요. 물론 선생님의 물자절약 습관은 참으로 훌륭하고, 망가진 변기와 보일러를 직접 수리하는 능력도 미덥지만, 6개월 전에 볶아놓은 오징어볶음을 곰팡이만 걷어내고 먹으려 한 시도는…… 너무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제가 선생님께 질문했지요. 혹시 돈을 겁나게 열심히 벌어야만 하는 사정이 있는 거냐고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쉬지 않고 많은 일을 하고 계시기에 여쭤본 것이었습니다. 제가 학자금대출을 상환해야 했던 것처럼, 월셋집을 탈출해야 했던 것처럼, 그리고 집에 쌓인 빚을 청산중인 것처럼, 선생님께도 사정이 있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남궁인 선생님의 직업은 의사 아닙니까. 연봉도 높고 당장 돈이 궁하지도 않을 듯한 분이 왜 그렇게까지 과로하시는지 궁금했는데, 정답은 ‘거절을 못해서’였군요. 강연료가 박한 강연도 안 가리고 다니시고, 버스를 세 번 갈아타며 지방까지 행차하시고, 적은 고료의 원고 청탁도 수락하시는 이유가 거절을 못해서라니…… 놀라웠습니다. 선생님의 검소함도 놀랍고 물렁한 마음도 놀라운데요.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 모든 걸 감당해내는 선생님의 체력입니다. 

 

저는 거절을 잘하는 편입니다. 체력이 모자라기 때문이죠. 불러주시는 곳마다 선생님처럼 다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체력이 약한 사람은 힘을 아껴 써야 합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는데요. 그런 일을 할 때 너무 지쳐 있지 않기 위해 일을 가려서 받습니다. 일을 받을 경우 거래처의 살림 규모에 따라 페이를 상향 조정하기도 합니다. 제게 예산을 더 넉넉히 써주실 수 있냐고 여쭤보는 것은 익숙한 일이에요. 프리랜서 생활 8년 내내 반복해온 일이죠. 한편 돈을 더 달라고 요청하는 남궁인 선생님의 모습은 좀처럼 상상되지 않는군요. 주는 대로 받으실 테니까요.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의사 같은 본업이 따로 없으니 작가로서의 몸값이 곧 생계인데다가,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아주 많은데 체력은 약해서 한 번 일할 때 최대한 많이 받아야 하거든요. 그렇게 받은 돈으로 시간을 벌고는 잘하고 싶은 일에 씁니다. 잘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잘하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어쨌거나 저라는 인력을 아껴가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선생님은 저보다 훨씬 무던하게 일을 받으시는 듯해요. 선생님의 무던함과 저의 까다로움 모두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서로 다른 강연 빈도를 체력 차이 혹은 돈에 대한 집념 차이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말하려는 의지의 차이가 훨씬 더 근본적이겠죠. 강연이란 어쨌거나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일 아니겠습니까? 저는 말을 못하는 편이 아니지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보따리를 자주 풀면 몸이 아픈 느낌이 듭니다. 일방적으로 혼자 떠드는 게 괴로워서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도 때로는 강연이 버거우시겠지만 비교적 거뜬히 하고 계신 것처럼 보입니다. 애초에 저보다 할 얘기가 많은 분일지도 모르겠어요. 온갖 주제로 온갖 기관에서 말을 하시니까요. 의학 지식과 응급실 현장에 대한 강연뿐 아니라, 글쓰기 강연, 노동 인권 강연, 각종 사고 대처 강연, 아동학대 예방 강연 등 종류도 다양하더군요. 심지어 육군본부에서 올바른 육아에 관한 강연도 하셨던데…… 그 기세라면 셀프 도배와 화장실 수리 강연까지 가능하겠습니다. 유튜브에 남궁인을 검색하면 선생님의 강연 영상을 50편 이상 찾아볼 수 있던데요. 이러한 검색 결과에서도 선생님의 무던함을 실감합니다. 저는 강연 영상이 웬만하면 유튜브에 업로드되지 않도록 사전에 엄격하게 합의해두거든요. 과거의 제가 움직이며 말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떠도는 것은 아주 두려운 일이니까요. 그 결과 저의 강연 영상은 10편 미만입니다. 저에 비하면 기록당하는 자로서의 남궁인은 딱히 까다롭지 않은 듯합니다. 

 

한편 기록하는 남궁인이 강박적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빠르게 많은 글을 써내는 것으로는 저도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데, 남궁인 선생님 앞에서는 살짝 후달리는 느낌이 들어요. 선생님은 말뿐 아니라 글에서도 할 얘기가 늘 많으시죠. 우리의 서간문만 봐도 그렇습니다. 방금 전 출판사에 연락하여 확인해보니 지금까지의 연재 결과 저는 250매를, 선생님은 350매를 쓰셨더라고요. 번갈아가면서 편지를 한 통씩 써왔는데 분량이 100매나 차이 난다니…… 아니 도대체 편지를 왜 이렇게 길게 쓰신 겁니까? 2주에 한 번씩 마감 고생을 한 건 똑같은데 선생님께 100매가량의 원고료가 추가로 입금된다고 생각하면 약간 울화통이 터지는군요. 앞으로는 짧고 굵은 편지를 쓰시기를 바랍니다. 

 

몸을 사려가며 일을 받는 저도 가끔씩은 강연을 합니다. 강연을 하는 날에는 글을 못 써요.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이 강연에서 다 소진되기 때문이에요. 종일 말을 아꼈다가 강연장에 가서 싱싱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노력합니다. 누가 듣고 있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강연이 좋은 강연이라고 생각해요. 서간문 연재에도 비슷한 구석이 있죠. 화자가 청자와 부드럽게 상호작용하면 특별한 에너지가 만들어지잖아요. 그게 잘 되지 않아서 고역인 강연도 있지만 아주 잘 돼서 집에 돌아가는 길까지 마음이 뜨끈한 강연도 있어요. 


최근에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강연을 했는데요. 그날따라 저의 아주 좋은 것을 바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대에 오르자마자 서른 명의 독자분들께 말씀드렸어요. 오늘 이 시간을 아주 좋은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것이라 독자님들이 조금 도와주셔야 한다고. 저를 도와주고 싶으실 독자님들을 위해 도움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드렸습니다. 마스크를 쓴 시대인 만큼 눈빛과 눈썹을 최대한 활용하여 커다란 애정을 전해주실 것. 입으로만 웃으면 보이지 않으니 꼭 소리내어 웃어주실 것. 이야기를 듣다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참지 않고 물어봐주실 것. 그날의 독자님들은 이 세 가지를 온몸으로 이행해주셨어요. 

 

그러자 저는 다른 강연에서 하지 않은 이야기를 즐겁게 꺼내놓게 되었습니다. 사실 백화점 문화센터는 제가 20대 초반에 셀 수 없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거든요. 그때는 누드모델로 일했으니까요. 전국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각종 크로키 수업, 유화 수업에 섭외되어 매주 모델로 섰습니다. 돈이 없어서 식비를 열심히 아껴가며 출퇴근했어요. 문화센터에서 모델 일이 끝나면 어느 백화점에나 있는 지하 2층 푸드코트에 앉아 북적이는 인파와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값싼 저녁을 먹었죠. 사실 푸드코트는 지하뿐 아니라 지상 8층에도 하나 더 있는데요. 그쪽 푸드코트의 식당들은 모든 메뉴가 지하보다 비쌉니다. 지하 푸드코트에서만 밥을 먹었던 건 그래서였어요. 일이 유독 힘들고 서러웠던 날에는 백화점 화장실에 들어가 울기도 했습니다. 백화점 화장실은 쾌적해서 울 맛이 난다고, 더러운 화장실에서라면 결코 울지 않았을 거라고, 스물두 살의  제가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무렵엔 글쓰기로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글쓰기가 저의 중요한 부분을 수호해줬던 것만은 분명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그날의 독자님들 앞에서 회상하면서 고난을 고난으로만 두지 않게 하는 속성이 글쓰기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경험은 글로 쓰면 견딜 만해지니까요. 


하지만 어떤 경험은 글로 쓰면 쓸수록 비참해집니다. 그 경험을 잘 다룰 깜냥이 아직 없어서겠죠. 혹은 써야 할 이야기와 쓰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분간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요. 제가 누드모델로 일하던 나이와 남궁인 선생님이 싸이월드에 “사랑은 말해버린 죄조차도 너무 아름다우니” 같은 문장을 쓰던 나이는 얼추 비슷합니다. 이제는 저런 문장을 쓰지 않으시겠죠. 사랑을 말한 사례 중 아름답지 않은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아시잖아요. “치욕을 예견하면서도 용기를 내서 사랑에 대해 적을 때 우리의 손끝에서는 무엇인가 굉장한 존재가 탄생”한다는 선생님의 문장에는 일면 동의하지만, 저는 너무 커다란 치욕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치욕은…… 그야말로 치욕스러우니까요. 특히 연애 얘기를 후지게 한 대가로 얻는 치욕은 더욱 괴롭잖습니까.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도 사랑은 작성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선생님의 양어깨를 붙들며 외치고 싶네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가면서까지 사랑을 작성할 필요는 없다고요. 연인에 관해 끊임없이 쓸 필요도 당연히 없고요. 그것은 또다른 궁상입니다. 제가 저에게 하는 소리이기도 해요. 우리와 우리의 연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니까요. 

 

저는 남궁인과 함께 남궁인의 문장을 부정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연인에게 좋은 일이라고는 없다고 단언하셨는데요. 어떤 작가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으나 저는 작가의 연인에게 좋은 일이 아주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면서 겪은 최고의 연애는 작가와의 연애이기 때문입니다. 쌍방으로 작가의 연인이 되자 서로 엄청나게 신중해지고 정교해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기록하는 자와 기록당하는 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겪어서겠지요. 작가들끼리 사랑을 해도 서로를 오해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창작물로 옮겨적을 때 가장 나은 버전의 왜곡, 가장 나은 버전의 대상화가 무엇일지에 관해 두 사람의 지혜가 모아진다는 점에서 둘 중 한 명만 작가인 경우보다 발전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절대로 쓰지 않을지에 대한 감수성도 훨씬 예민해지고요. 만약 선생님이 선생님만큼이나 강박적으로 연인을 기록하는 자를 연인으로 두신 적이 있다면 알고 계실 겁니다. ‘닥침’의 미덕을요. 기록하지 않고 기록되지 않는 아름다움을요. 징그러울 만큼 능수능란하게 기록할 수 있는 자들이 기록을 멈출 때 보존되는 충만함을 기억해봅시다. 작성하지 않아도 사랑은 우리의 강박을 부숩니다. 우리는 닥침으로써 어떤 전쟁은 막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난 연인에게 “당신이라는 역사의 지극한 사서”가 되겠다고 맹세하셨는데요. 저는 한때 사서가 꿈이었지만 어떤 연인에게도 “당신이라는 역사의 지극한 사서”가 되겠다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저라는 역사의 사서를 자청한다면 “네가 뭔데 감히”라고 말하며 웃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라는 역사의 사서 되기에도 실패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역사는 아주 여러 사람이 기록해야 그나마 왜곡이 덜합니다. 편찬자들은 다양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장력만큼이나 갈고닦아야 하는 건 ‘닥침력’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우리보다 더 훌륭하게 편찬할 사람들이 또 있을 테니까요. 

 


2021년 4월 5일 

남궁인이라는 역사의 수백 명 사서 중 하나인 

이슬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