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종종 서늘한 물음을 던지는 이슬아 작가님께

거울 속의 저는 시름시름 앓는 사람입니다. 어제 백신을 접종받았기 때문입니다. 오전에 백신을 맞고 라디오 캠페인 녹음과 TV 촬영을 하고 연이어 밤새 당직 근무를 서는 일정이었습니다. 아침의 귀갓길은 어지럽고 신열이 넘실거렸습니다. 돌아와서 뜨끈한 몸으로 정말 죽은듯이 잤습니다. 저보다 먼저 백신을 맞았던 젊은 간호사 선생님들은 모두 수액병을 걸고 근무했습니다. 며칠 전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들의 이마를 하나하나 짚어보고 더이상 해줄 게 없어 10초 정도 가만히 지켜보다 퇴근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백신은 상당히 괴롭습니다. 지금도 전신이 맞은 듯 욱신거립니다. 간신히 삶으로 넘어온 기분으로 작가님을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야지요.


저는 평생 ‘남궁’ 성씨를 지니고 살았습니다. 바꾸거나 저항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작가님은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조금 특별한 이름이기에 그 순간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당시 저는 제 이름을 겨우 발음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렸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가르쳤습니다. “네 성은 ‘남’이 아니라 ‘남궁’이야. 이름이 ‘인’이란다. 너는 남들과는 달라.” 그때 저는 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름의 법칙에서 저만 무엇인가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했습니다. 그리고 타고난 성姓으로 많은 놀림거리가 되었지요.


제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많은 사람들은 저를 ‘궁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년기에는 더욱 심했습니다. 그게 틀린 명명이라는 것을 깨우친 많은 아이들은 일부러 ‘궁인’이라고 놀렸습니다. 복성에 익숙하지 않은 담임 선생님도 처음에는 ‘궁인’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이름과도 별다른 연유 없이 엮였습니다. ‘남궁옥분’은 너무 많이 들어서 신물이 날 정도고, 다른 복성인 ‘독고탁’부터 ‘황보관’ ‘제갈량’ ‘사마의’ 따위도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당연히 성이 ‘남궁’인 남궁란마도 있었습니다.


‘남궁란마’는 한국판 이름입니다. 원작 <란마1/2>의 란마는 ‘남궁’씨와는 어떠한 관련도 없습니다. 하필 번안자는 그의 성에 ‘남궁’을 붙였고, 그는 하필 제 유년기에 ‘남궁’ 문중에서 가장 유명한 가상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저를 ‘남궁란마’나 ‘궁란마’라고 부르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름이 ‘궁란마’라니요.) 개중에는 제게 찬물을 부어보고 진짜 여자가 되었는지 확인하려는 장난꾸러기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어린 시절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혹시 정말 ‘란마’처럼 여성으로 변해버릴까봐 겁이 났습니다. 종종 찬물로 샤워를 한 다음 아랫도리가 허전해진 것 같아 확인해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늘 잘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의도처럼 조금 야릇한 유년기의 에피소드입니다.


요즘도 ‘남’교수님께 원고나 강연을 청탁하는 정중한 메일을 받곤 합니다. 인터넷에도 ‘남’교수가 이리저리 운운했다는 기사가 뜹니다. 가장 인상적인 분은 레지던트 시절 은사님입니다. 그분은 제 성이 복잡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저를 ‘김 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명명이었습니다. 아직도 ‘궁인’이라고 부르는 많은 친구들을 포함해서, 굳이 따지자면 이것들은 전부 성姓희롱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늘 무탈했고, 유년기를 지나자 이름에 초연해졌습니다. 오늘부터 모두가 저를 ‘궁인’이라고 불러도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겪은 성姓희롱을 농담조로 말할 수 있는 것이겠죠. 


사람은 탄생할 때부터 대단히 많은 것이 결정됩니다. 저는 불행한 자아를 가지고 태어나 불행을 늘어놓는 글쓰기를 했지만, 진정으로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둔감하지 않았습니다. 제겐 여자 형제가 없습니다. 두 아들만을 위하는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자연스럽게 여성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낯설었습니다. 점차 많은 여성과 친밀한 사이가 되어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에는 언제나 놀라운 일화가 몇 번씩 등장했습니다. 늦은 밤 자신을 따라왔던 남성, 몰래 자신을 지켜보던 남성, 갑자기 나타나 성기를 노출하거나 성접촉을 시도하던 남성 등등. 경중과 상황은 모두 달랐지만 그런 경험이 없었던 여성은 단연코 없었습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칠까 노심초사하며 살아왔던 저는 그 기괴한 욕망에 우선 놀랐고, 예외 없는 경험담에 더더욱 놀랐습니다. 저는 누가 그런 방식으로 저를 욕망하거나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며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경험조차 없었습니다. 저와 다른 성性별이 살아온 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타고난 성姓씨로 인한 놀림은 그냥 농담거리 수준이었지요.


저는 제가 온실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자각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저는 응급실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찾아온 사람들을 보자, 제가 살아온 환경은 온실이 아니라 아예 무균실이었구나 깨달았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병원은 서울 외곽과 수도권 중소도시 유흥가 앞에 있었습니다. 매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엄청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폭력에 대해 배웠습니다. 근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의 희생자를 제 앞에 데려다놓고, 직접 비명을 들으며 상처를 하나하나 모두 벌려 보게 만든 것이지요. 굳이 그렇게 야만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폭력이 나쁘다는 명제는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뼈가 깨지고 살이 튀고 목숨이 끊어지는 일을 매일 목격하는 사람이 폭력을 그냥 ‘나쁘다’고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거의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폭력을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으깨는 많은 일도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폭력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도 다양하겠지요. 어떤 폭력은 사회가 행합니다. 그에게 가해진 차별이, 그를 궁지로 내몰았던 경제적 사정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질환이, 정돈되지 않은 노동 환경이 그를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고는 하지요. 아니면 단순한 충동 조절 장애나 알코올, 문화적인 갈등이 그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저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나 가정폭력에 대해서 완전히 새로 배웠습니다. 여성에게 그토록 무참한 폭력을 가할 수 있다는, 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일어나서는 안 될 것 같은 일들을 직접 목격하고 난 뒤의 일입니다. 저는 평생 누군가를 때려본 적조차 없습니다. 누군가가 여성의 신체에 폭행을 가해 그 형태를 일그러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미친 세상 같았습니다.


눈가가 깨지고 두피가 찢어지고 손발이 부서져서 그들은 찾아왔습니다. 맨주먹에, 술병에, 화분에, 식칼에, 그냥 그때그때 잡히는 물체에 여성의 몸은 상했습니다. 폭행의 피해자는 여성뿐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아무리 평등하다 해도 남성의 완력은 대개 여성보다 강합니다. 대상을 불문하고 인체에 참혹한 손상을 가하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입니다.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 닥치면 조금 더 무력한 쪽은 어쩔 수 없이 여성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무력감과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리 마주해도 저는 알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의처증에 시달리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든 살 할머니의 몸은 작고 연약해 보였습니다. 어른으로서도 노약자로서도 여성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존중받아야 하는 할머니였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육체를 손에 잡히는 물체로 내리쳤습니다. 저는 피를 뒤집어쓴 할머니의 얼굴과 두개골이 깨져 푹 들어가버린 두피를 바라보았습니다. 절망적이었습니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생명에 지장은 없었습니다. 대신 두피를 집어올려 한땀 한땀 맞추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저는 처치실 조명 아래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도저히 성별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폭력이었습니다. 완력의 차이나 문화적 갈등을 다 떠나서 반대의 성별로는 도저히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누구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배웠습니다.


얼마 전에는 복부를 칼에 찔려서 온 여성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중환 구역에 넣고 상처를 확인했습니다. 칼이 복부를 뚫은 흔적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진술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찔렀다고 했습니다. 두번째에는 다투다가 자신이 찔렀다고 했습니다. 세번째에는 경황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배에 칼을 맞았음에도 누가 찔렀는지 모를 수가 있을까요. 저는 일단 외과에 연락하고 상태를 살폈습니다. CT를 보니 수술하면 안정적으로 목숨을 구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환자에게 가서 다시 물었습니다. 폭행은 반의사불벌죄라서 처벌 의지가 없으면 처벌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처벌할 의지가 있으면 얼마든지 돕겠다고 했습니다. 환자는 끝내 대답하지 않더군요. 저는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그냥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의료진에게 신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동학대뿐입니다. 가정폭력이나 노인학대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라 신고하지 않아도 의료진을 처벌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스스로 신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간주되니까요. 하지만 이 일은 그녀의 능력과 의지를 떠나, 일단 누구든 신고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배 안에 칼을 넣는 행위는 적어도 살인미수입니다. 완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약자에게 가해진 무참한 범죄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회복되었고, 그 이후의 사정은 저는 모릅니다. 제 일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세상의 폭력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바랐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는 정의로운 의사 리외가 나옵니다. 그는 페스트와 맞서 싸우다가 아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는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는 끝내 신과 세상을 저주하고 맙니다.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의사는, 인간은, 죄가 없는 사람이 죽어가는 일을 견디기 어려워해야 합니다. 당연한 인간의 도리이자 본성입니다. 그리고 저는 ‘약함’과 ‘다름’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죄가 있다면 그 반대의 사람들이 짊어져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약자의 주리를 틀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 반대의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통틀어도 그런 세상은 없었습니다. 과연 그런 세상을 우리가 만들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벌써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삶’으로 돌리고자 노력한 사람입니다. 제 성姓이 남들과 ‘다르’지만 실제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누구도 아프거나 죽지 않은 것처럼, 성별이 여성이거나 다수와 ‘다른’ 성적 지향이 있어도, 그 때문에 어떤 차별도 없고 누구도 아프거나 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믿는 단 하나의 가치 때문에 저는 그렇게 주장합니다. 제가 주어진 성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앞으로도 사람들은 많은 것이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고 약자가 약자라는 이유로 안위가 위협받아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의 ‘삶’을 바라는 위치에서,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야 합니다. 제 몸에는 아직도 신열이 감돌고 있습니다. 조만간 이 열감은 가라앉고 저는 바이러스에 대해 면역을 얻을 것입니다. 젊고 면역에 민감할수록 백신의 이상 반응은 더 강력합니다. 대신 항체도 더욱 잘 형성됩니다. 이 대화도 그런 과정의 일부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예방주사를 맞지 않고는 이겨낼 수 없는 질병이 많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접종을 마치면 누구도 그 때문에 죽거나 아프지 않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이 격렬한 진통과 상실의 슬픔 뒤에 찾아오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어봅니다. 그때는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새싹이 돋는 풍경을 보며 벤치에 나란히 앉아 농담을 나누어봅시다. 작가님은 저를 얼마든지 놀려도 상관없습니다. 그 때문에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2021년 3월 15일 

누가 누가 웃긴지 겨루면

패배할 것이 분명한

남궁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