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남궁 성씨를 빛내는 남궁인 선생님께

혈색이 좋아졌습니다. 거울 속의 저 말입니다. 그야 물론 <일간 이슬아> 연재가 끝났기 때문이겠죠. 2주 전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성은 ‘남궁’인데요. 저는 어처구니없게도 오랫동안 선생님의 성이 ‘남’인 줄 알았습니다. 이름은 ‘궁인’으로 인지했고요. 왜 그랬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 오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 친구 중 한 명은 남궁인 선생님을 독고탁 선생님이라고 부르거든요. 독고탁이라니 도대체…… 친구의 기억회로는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요? 저라도 선생님의 이름을 더이상 착각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나무위키에 ‘남궁’을 검색해봤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남궁은 두 글자로 된 성씨 중 한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복성이라고 합니다. 성의 유래와 표기법 다음으로는 ‘남궁 성을 가진 실존 인물’ 항목이 이어지는데요. 그중 21번째로 선생님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겸 작가’로 말이에요. 남궁 성씨를 빛내는 실존 인물 중 한 사람인 것이죠. 그건 그렇고 스크롤을 좀더 내리면 ‘남궁 성을 가진 가상 인물’ 항목이 나옵니다. 거기엔 반가운 이름이 또 있어요. 바로 ‘남궁란마’입니다. <란마 1/2>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신 적 있나요? 어렸을 때 투니버스 채널에서 주구장창 방영해준 작품이라 저는 지금도 주제가를 외워 부른답니다.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야빠빠 야빠빠 웅~ 묘익천 이곳에 빠지면 아빠 팬더곰 

야빠빠 야빠빠 돈~ 익천 저곳에 빠지면 아기꽃돼지 

여기는 무엇이 될까 란마 란마도 알 수가 없네 

가슴이 두근두근해 

여자도 되고 남자도 되고

나의 모습을 찾아주세요 

 

이 애니메이션의 주연들은 찬물을 뒤집어쓰면 여자가 되고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면 남자가 됩니다. 물 온도에 따라 곰 혹은 아기 돼지가 되는 조연들도 있습니다. 30년도 더 된 작품이라 지금 보면 낡은 부분이 많지만 유년기의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토록 간단히 다른 성별로 변한다는 점이 말이에요. 심지어 성별을 초월해 다른 종으로도 변할 수 있고요. <란마 1/2> 이후로 공중목욕탕에 갈 때마다 모르는 인생을 상상했습니다. 온탕에 몸을 담갔다가 남자의 몸으로 걸어나와서 물기를 닦고 옷을 입고 바나나 우유를 마신 뒤 집에 간다면 뭐가 얼마큼 어떻게 달라질까? 그건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라 모릅니다. 하지만 알고 싶습니다. 

 

저는 이슬아고 선생님은 남궁인이죠. 우리는 태어나서 사회로부터 지정받은 성별에 크게 저항하지 않는 이들로 보입니다. 선생님의 편지를 읽으며 바로 그 성별을 실감하곤 해요. 그러니까 제가 여자고 선생님이 남자라는 것 말이에요. 각별한 우정을 시작한 이들이 대개 그렇듯 저 역시 선생님의 지난 사랑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습니다. 선생님 역시 가졌다가 상실한 사랑의 경험들로 구성된 사람일 테니까요. 지난 편지에서 선생님은 언젠가 “애인에게 야단맞고 벌을 서거나 쫓겨나기도” 했다고 쓰셨지요. 첫번째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의 전 애인은 왜 화가 났을까?’ 두번째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죠. ‘이것은 남자의 글이구나.’ 어떤 과오로 벌어진 해프닝이든 간에 남자로 살아와서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문장을 거리낌없이 쓸 수 있는 건 주로 남자이기 때문이에요. 여자의 글에서 “애인에게 야단맞고 벌을 서거나 쫓겨나기도” 했다는 문장이 나올 경우 농담으로 읽히기 어렵잖아요. 제가 그렇게 썼다면 선생님은 분명 저를 걱정하실 것입니다. 그럴 법하니까요. 

 

오늘 아침 확인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애인 혹은 남편에게 살해되거나 살해 시도를 당한 여자가 작년 한 해에만 228명이라고 해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너무 자주 벌어지지요? 응급실에 계신 선생님께서는 분명 더 잘 알고 계실 듯해요. 1.6일마다 한 명이 그런 이유로 죽음에 내몰리는 세상에서는 여자를 대상으로 한 ‘야단’ ‘벌’ ‘쫓겨남’ 같은 말을 글로 쓰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반면 선생님의 문장은 일면 즐거운 엄살로 읽히지요. 독자도 저도 딱히 선생님을 걱정하지 않아요. 아내에게 잡혀 산다는 남편의 말이 특정 남성 집단에서 유머 코드로 통용될 수 있어도, 남편에게 잡혀 산다는 아내의 말은 어느 집단에서나 웃음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먼지만큼 사소한 문장이지만 그것을 읽으며 우리가 가진 젠더 권력이 서로 다르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실 지겹기도 하죠. ‘여자는’ 혹은 ‘남자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뿌리깊은 가부장제와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 말이에요. 이런 얘기 말고 그저 농담을 하고 싶습니다. 누가 누가 더 웃긴지 격주 간격으로 겨루면 좋겠어요. 제가 정말 갈고닦고 싶은 건 농담력이거든요. 하지만 성별에 따라 어떤 농담은 가능해지거나 불가능해집니다. 유머에서 드러나는 불균형한 지형을 파악하는 것도 농담력의 일부겠지요. 동료 작가인 남궁인 선생님과 함께 그 훈련을 해나가고 싶어요. 지금처럼 중요한 일이 빠르게 발생하고 잊히는 시대에 작가들은 특히 민첩해져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글 역시 재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을 텐데요. 새롭게 고치면 좋을 표현을 발견하신다면 꼭 이야기해주세요. 제가 선생님께 공들여 하듯이 말이에요. 

 

오늘은 여성의 날이고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린 여자, 나이든 여자, 아픈 여자, 가난한 여자, 돈이 많은 여자, 장애가 있는 여자, 정치를 하는 여자, 버섯 농사를 짓는 여자, 여자이고 싶지 않은 여자,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 또한 제가 사랑하는 여자 아닌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남자, 나를 키운 남자, 남자인 게 편안한 남자, 택시 운전을 하는 남자, 휠체어를 타는 남자, 택배를 나르는 남자, 응급실에서 일하는 남자,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남자이고 싶지 않은 남자, 그리고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여자 혹은 남자 안에 자신을 욱여넣지 않은 사람들, 그들의 일상과 표정과 목소리를요.


아무도 지정된 성별이나 선택한 성별 때문에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확실한 건 2021년 3월 8일에 아직 그런 세상이 도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비보 속에서 슬픈 마음으로 애니메이션 <란마 1/2>을 다시 떠올립니다. 냉탕이나 온탕으로 간단히 성별을 바꿀 수 있다면, 목숨을 걸지 않고도 여자가 아니게 될 수 있거나 남자가 아니게 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하여 다른 성별의 시선, 다른 종의 시선을 얼렁뚱땅 체득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토론과 싸움 없이 그냥 몸으로 이해해버릴 수 있다면요. 역시 살아보지 않은 세상이라 모릅니다. 하지만 알고 싶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지금과 다른 농담을 하고 있겠죠.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 가능한 한 많은 존재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려 애쓰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축복이겠습니다. 

 

나무위키에서 ‘남궁’을 검색했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남궁 성씨를 빛내는 실존 인물 남궁인 선생님께, 남궁 성씨를 빛내는 가상 인물 남궁란마를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인데 멀리 와버렸네요. 모두 선생님과의 우정 때문에 생겨난 일입니다. 선생님이 제게 해주신 말을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선생님은 제 세계를 확장시킵니다.

 

이 와중에 경운기 지나가는 소리가 창밖에서 들리네요. 밭 가는 소리입니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고구마 농사를 지으시거든요. 몇 주 뒤면 모종을 심으시겠죠. 봄이 오고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계절이에요. 글을 다시 쓰기도 좋은 계절이고요. 어쩌면 우리는 변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계속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에 썼던 표현을 쓰지 않음으로써, 혹은 과거에 없던 표현을 새로 만듦으로써 작가들은 새로워지잖아요. 조만간 같이 산책하면 좋겠습니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 선생님의 휴대폰 속 어린 조카 사진을 봐도 좋겠네요. 선생님과 얼마나 닮았을지 궁금하군요. 저 역시 언젠가 아이를 낳을 예정입니다. 시간이 흘러 그 아이와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면 성별을 선택해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런 세상의 어른이 되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지쳤지만 지혜로운 미중년 삼촌이 되시겠죠. 그때까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살아 계십시오. 저도 좋은 혈색을 유지하며 살아 있겠습니다.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도록요. 

 


2021년 3월 8일

여자를 초월하고 싶은

이슬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