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라떼’를 엎어버리는 불호령의 왕 이슬아 작가님께

지난 편지에서 작가님의 마지막 조언은 최대한 늦게 죽기 위해 조기축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햇수로 6년간 축구장에 다니면서 생명 연장의 꿈을 품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동안 거리두기가 조금 완화되어 주말에 축구장에 나갔습니다. 비非축구인의 흔한 언어 사용 습관 중 하나는 축구 앞에 ‘조기’를 붙이는 것입니다. 축구인은 아침잠이 없다는 편견일까요. 하지만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기 벅찬 사람들입니다. 팀은 주로 주말 밤에 축구를 합니다. 나리우는 첫눈을 맞으며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축구를 한 적도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운동장을 뛰었습니다. 대략 자정쯤 주변을 둘러보면, 그 시간에 유니폼을 입고 뛰어다니는 스포츠가 얼마나 대중적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문득 새벽 3시에 축구를 하는 행위가 ‘조조기’축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잠은 몰라도 밤잠은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우리 팀에서 ‘축구를 못하는 사람’을 맡고 있습니다. 어릴 때 저는 많은 것을 과외로 배웠습니다. ‘국영수과사’ 종합반을 다녔고, 혹시나 제가 다른 곳에 재능이 있을까봐 걱정한 어머니가 온갖 예체능을 섭렵시켰습니다. 피아노, 테니스, 수영, 붓글씨를 배웠고 서양화를 그리는 화실에 다녔으며 바이올린도 잠깐 배웠고 집에 최신형 컴퓨터를 놓고 프로그래밍도 배웠습니다. 글쓰기는 따로 안 배웠다고 하려고 했지만 논술 학원도 다녔군요. ‘조기’교육은 중요하니까 상기 서술된 과목을 저는 아직도 그럭저럭 잘 합니다. 아니면 적어도 몸이 기억하고 있지요. 하지만 축구만은 따로 안 배웠습니다. 헛발을 차고 쉬는 시간마다 “어머니가 어릴 때 축구를 안 가르쳐서 그렇다”고 한탄합니다. 사실 한탄을 위한 한탄이지요. 축구까지 과외를 받았다면 저는 우울한 나머지 어딘가 비뚤어졌을 것입니다.


제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서른이 넘어서 시작한 일을 잘하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시간 매주 모여서 공을 차도 잘하는 사람은 계속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계속 못합니다. 날아오는 공을 못 받거나 앞에 있는 공을 못 차거나 다리 사이로 공이 흘러가거나 가끔 무릎이나 발목이 접히면 안 되는 방향으로 접힙니다. 결정적으로 제 다리는 너무 짧습니다. 링컨은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다리 길이는 ‘엉덩이부터 바닥까지 오는 길이’라고 농담했다고 합니다. 저는 키 190cm가 넘었던 링컨이 오만한 사람이라고 자주 상상합니다. 그는 다리 짧은 사람의 비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나가는 공에 아무리 다리를 뻗어도 닿지 않는 절망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주중에 사타구니를 열심히 주물러도 다음주에 공은 다시 닿지 않을 예정입니다. 동무들은 유유히 골을 넣고 돌아와 저를 격려합니다. 밤잠은 없지만 예의는 충만한 동무들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뛰고 나면 한 주간은 몸이 부서질 것 같습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때마다 “아이구야” 신음하며, 우리가 잘하지 못하는 모든 일은 항상 우리를 겸허한 자세로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나아지고 달라져야 할 부분이 너무 많지만 새로 태어나야 하는 지경이라 그냥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임해야 하는 겁니다. 저 또한 평생 다른 곳에 재능이 있을까봐 걱정해서 많은 일을 벌였습니다만, 결국은 주말마다 못하는 일에 안정감을 느끼고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과의 서간 또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꾸짖음을 듣고 한 주간 자아 성찰에 시달렸으니까요.


의도야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존재했지만 그 시간의 기억이 서로의 ‘라떼’가 되어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까궁인(까르보나라 남궁인)이 등장해 아련한 과거와 잊혀가는 시간을 서술하고 싶었습니다. 그 근거로 발견한 것이 저보다 생물학적으로 나이 어린 작가님의 과거 회상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급소를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엉뚱한 스텝이라는 말에 반박할 근거는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제가 언급한 것은 그레이트 갓 킹 더 제너럴 엠퍼러 ‘라떼’였던 것입니다.


저는 욕심이 너무 많습니다. 모든 걸 잘하는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열심히 살았습니다. 끝내 저는 친절해 보이고도 싶고 외모도 괜찮아 보이고 싶고 인내심 있게 보이고도 싶고 안 웃기지만 웃기고도 싶고 소탈하지만 의외의 면이 있는 사람이고도 싶고 정중하고 예의바르지만 알고 보면 유쾌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고 신비롭고 유일무이한 존재이고도 싶은 괴물 같은 과욕의 사내가 되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강박입니다. 문득 스물두 살 때 애인이 “당신은 욕심이 너무 많아” 하면서 떠나버렸던 생각이 납니다. 그땐 욕심이 많다기보단 그냥 구려서 차였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럼에도 제가 욕심을 부릴 때마다 마법처럼 떠오르는 말입니다.


제가 교만하고 이중적인 사람임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저는 세상에 무심한 척하지만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기웃거리면서 댓글 개수를 헤아립니다. 자랑하거나 아는 척하고 싶어 술자리에서 몇 마디 던져놓고 집에 돌아와 경솔함을 뉘우치며 이부자리에서 조기교육으로 습득한 헤엄을 치다가 잠이 듭니다. 열아홉 살이나 할 법한 실수를 하면서 작가님에게 꾸지람을 듣고 가끔 애인에게 야단맞고 벌을 서거나 쫓겨나기도 합니다. 저 때문에 화가 난 간호사 선생님 눈치를 보다가 환자를 진료하러 복도를 돌아간 적도 있습니다. 결국 저는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입니다. 다만 억울해하고 때때로 항변하고 가끔 불친절하고 실수하면서 어떻게든 나은 사람이고 싶어 노력은 해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응급실에서나 응급실 밖에서나 나쁜 말을 들으면, 저는 제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조리 인정해버리고 맙니다. 그게 제가 하는 최선의 노력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부족함을 인정해야 하는 축구를 좋아하는지도, 또 이 서간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제가 저라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도망가고 싶은 기분입니다. 아, 하필 지금 출근 시간이 다 되었군요. 병원 다녀오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안녕하세요. 아까보다 기품을 획득했고 대단히 많이 졸린 남궁인입니다.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이 졸린지 모르겠습니다. 과학적으로 인체가 반드시 수면을 취해야 하는 이유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잠을 자지 않은 사람은 기능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하지요. 저는 평생 졸음을 참으며 무엇인가를 해오려던 덕분에 제 일부분을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그것에 명민함 또한 포함되겠지요. 그래서 제가 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언제나 얻음에는 잃어버림이 동반됩니다. 삶 또한 죽음이 동반하듯이요. 모든 것은 명멸합니다.


글쓰기의 세상에서 머리를 쥐어뜯다가 병원에 출근하면 어딘가 부조화스러운 기분을 느낍니다. 당직복을 입고 임상조교수 명찰을 걸고 환자나 보호자와 대화를 나누는 저 스스로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그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말을 건네는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제 발언은 ‘의사’의 말이자 ‘병원’의 말입니다. 그 내용 또한 정확히 검사를 지시하고 의심되는 질환을 설명하며 치료 방침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제 말을 듣는 사람들은 제가 어떤 ‘권위’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명백히 인지합니다. 하지만 불을 꺼둔 제 방에서의 자아는 평범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상한 기분이 들 때마다 환자에게 “그냥 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라고 한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교육받은 의궁인(의사 남궁인)이 “정신 차려”라고 맞서 소리 지릅니다. 그래서 저는 병원에 다녀오면 애써 기품을 획득하고야 맙니다. 가끔 의사처럼 뒷짐도 지고 당황하지만 침착한 것처럼 보이고 가끔 단호하게 선도 긋는 사람이 의궁인입니다. 그 또한 저는 아닌 것 같지만, 제 일부이기는 할 것입니다.


제가 조금 딱하고 부조화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많았습니다. 제가 세상에 남겨놓은 많은 흔적을 조금만 따라다녀보면 쉽게 짠내부터 맡을 수가 있습니다. 저를 긍휼히 여긴 어떤 분께서 이미 제 시력과 정서를 걱정해 작가님이 보내주신 똑같은 디자인의 달을 보냈습니다. 그건 이미 제 방에서 은은한 주광색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괜히 혼날까봐 비밀로 했지만 이전 편지 또한 하나의 달 아래에서 작성된 것입니다. 이제는 쌍달이 되었습니다. 달이 두 개 뜨면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는 말이 있지 않나요? 하지만 고작 제가 방에 달을 두 개 켰다고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습니다. 또한 원래 있던 달은 색깔이 세 가지뿐이지만, 작가님이 보낸 달은 열여섯 가지 색깔입니다. 마흔여덟 가지의 조합에 눈알이 핑글 돕니다. 두 개의 달이 뜬 방에서 사이키 조명처럼 빛을 바꿔가며 다채롭게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과 1뿐인 세계에서 2의 세계로 넘어가게 해주셨습니다. 언제나 작가님은 제 세계를 확장시킵니다.


어젠 출근하니 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근무를 시작하기 정확히 3분 전이었습니다. 저는 3분 일찍 출근했으니 정확히 누군가의 죽음과 함께 근무를 시작한 셈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예사롭지 않은 통곡이 울려퍼졌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치매가 심한 분이었습니다. 병원을 자주 오가는 분이라 안정적인 혈관 확보가 필요했습니다. 며칠 전 병원에서 할아버지의 몸에 굵은 관을 넣고 의료용 테이프로 잘 붙여두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게 답답했습니다. 피부에 테이프가 붙어 있는 느낌이 좋지 않았고, 굵은 관이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 또한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손으로 테이프를 떼어냈습니다. 피가 났습니다. 병원에서는 더욱 꼼꼼하게 테이프를 붙였습니다.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이번에는 더듬거리면서 가위로 테이프를 잘랐습니다. 하지만 그 가윗날은 테이프만 자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이 끝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극도로 테이프를 답답해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진정으로 답답했던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가위 손잡이를 더듬으며 혹시 죽음을 떠올리지는 않았을지, 또한 이제 영영 아무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죽음만이 분명했습니다. 사람은 몸에 들어 있는 관 하나에 죽어버리는 존재입니다. 보호자는 피로 물든 이부자리와 창백한 할아버지를 발견했습니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근무하기 전에 죽었으므로 제 책임은 없었던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근무했습니다. 하루 동안 또하나의 죽음과 두 개의 뇌출혈과 두 개의 심근경색과 한 차례의 성폭력과 세 번의 자살 시도와 다섯 개의 폭행 사건과 함께 수십 개의 팔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이 조합에서 늘 개수만이 달라지는 근무입니다. 그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돌아와 편지를 마무리짓고 있습니다.


저는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죽고 싶은 욕망까지 느낍니다. “부족한 자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라고 일기장에 쓴 날도 있었습니다. 온전한 정신으로 침대에 누우면 자주 관자놀이를 뻥 뚫어버리는 상상을 합니다. 살기 위해 강박적인 성격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음은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욕망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의궁인은 소멸하는 타인의 생명을 보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이를 악물고 피를 뒤집어쓰고 제발 살아 있으면 안 되겠냐고 소리칩니다. 모두 진정으로 하는 행동입니다. 병원에서 돌아와도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들이 죽으면 제가 부족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지도 모릅니다. 이기적인 욕심의 말로가 타인의 생멸에 분노하는 것일까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제 생명 따위는 그다지 존귀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손쉬운, 관 하나로 연결된 죽음 따위를 상기합니다.


작가님은 유독 죽음을 많이 언급하지 않는 작가입니다. 그것은 저희 둘을 이질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느낄 법한 차이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작가님의 삶 이야기가 참 좋습니다. 저는 집에 TV가 없어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볼 수 없지만, 저 또한 쉬는 날에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밥을 차려 먹는 겁니다. 휴일을 맞은 집에 누군가가 있다면 저는 그 사람을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하고 아침이나 이른 점심을 차려 먹입니다. 오전의 서늘한 공기에 막 차린 집밥 냄새가 퍼져나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숟가락을 떠서 배를 채우고 제법 먹을 만하다고 말해주는 순간이 정말 소중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존재의 이유를 느낍니다. 평생 요리만 해서 모든 것을 다 먹여주고 싶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시간은 유한하고 강력합니다. 서로를 끌어안던 시간들은 그날 이후로 다 죽어버렸습니다. 저는 혼자서 눈을 뜨고 끼니를 거릅니다. 그리고 ‘라떼’의 치욕조차 사라지는 일을 생각하며 글을 적습니다.


하지만 죽음 뒤에는 명멸하는 삶 또한 있습니다. 3월의 병원은 많은 것이 생동하는 시기입니다. 긴장과 피로감이 역력한 표정의 신규 인턴과 레지던트 선생님이 병원에 돌아다닙니다. 저는 12년 전 울면서 짐을 챙겨 병원에 들어오던 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정말 사랑하는, 돌도 지나지 않은 조카의 사진을 훔쳐봅니다. 사랑하는 남동생의 어린 딸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자주 보러 가지 못해 아직 삼촌을 보고 웁니다. 아이는 삼촌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조카를 안고 있는 사진 속 둘은 닮았지만 제 얼굴에는 어마어마한 세월의 더께가 덮여 있습니다. 가끔 옛날 사진을 뒤지다 발견하는 ‘당시에도 나이가 많이 들었던’ 삼촌의 전형적인 지치고 풍파에 시달린 얼굴입니다. 하지만 정수리에서 풍겨오는 아이의 냄새를 떠올리며, 한 팔에 안을 수 있는 작은 몸을 기억하며, 모든 것을 다 먹여주며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미중년 남궁인의 시대는 그다지 꿈꾸지도 바라지도 않습니다. 지치고 평범하고 약간 지혜로운 삼촌이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살아 있어야겠습니다.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도록, 작은 아이가 커서 삼촌의 부끄러운 투쟁을 엿볼 수 있도록요.


다음주에도 조조기축구에 가서 몸이 부서지도록 공을 차야겠습니다. 안 용맹하고 골도 못 넣지만요.



2021년 2월 28일

이제는 정말 좀 자야 하는

남궁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