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새해의 남궁인 선생님께

연초의 맑고 깨끗한 기운을 담아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선생님은 서른아홉 살이 되셨겠군요. 저는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창창한 느낌입니다. 창창하다못해 새파란 것 같습니다. 비록 이른 나이에 과로하여 허리가 휘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벌어야 할 돈과 이뤄야 할 야망과 수습해야 할 문제와 아직 모르는 쾌락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으니 꼭 괜찮고 싶습니다. 오래 살고 싶군요. 선생님께서도 부디 오래 사십시오. 느끼해도 괜찮으니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새파란 제가 생에 대한 집착을 꾹꾹 눌러 담아 당부드립니다.


크리스마스를 응급실에서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에도 응급실에 계셨다고요.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해피뉴이어 인사를 주고받으셨겠지요. 동료들과 환자들께 짧은 새해 덕담을 건네셨을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런 막간의 상냥함이 참으로 소중할 것 같습니다. 힘든 일터일수록 말이에요. 여전히 선생님은 제가 아는 의사 중 가장 친절한 사람입니다. 친절과 이성과 기술을 겸비한 채 코로나 시대 전방에서 의료진으로 일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과 동료분들 덕분에 어떤 안전망이 겨우 붕괴되지 않고 있음을 자주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고 있는 이들에게 유독 감사하고 미안한 시절입니다. 


선생님이라면 그간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봐주실 것 같아 이야기해봅니다. 얼마 전 작은 수술을 했습니다. 팔뚝에 알 수 없는 멍울이 생겨서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 피부과에 갔는데, 피부과에서는 외과로 가라고 했고 외과에서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얼떨떨하게 방문한 종합병원은 코로나 방역과 의료 업무를 동시에 해내느라 아주 분주해 보였습니다. 길고 긴 대기 시간을 견디며 엑스레이를 찍고 초음파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를 본 수부외과 선생님께서 수면마취 후 팔뚝 절개술을 해야 한다며 금식령을 내리셨고요. 심각한 거냐고 여쭤보니 모른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뭔지 모른다는 말씀이신가요?” 

“모릅니다. 꺼내봐야 알죠.”

그렇게 수술 날짜가 잡혔고 선생님이 다음 환자를 부르시는 바람에 저는 서둘러 자리를 비켰습니다. 얼마 후 수술침대 위에 눕게 되었어요. 수술실의 의료진들은 바쁜 와중에도 짬짬이 농담을 주고 받으시더라고요.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습니다. 험한 일터에서도 가끔은 농담할 여유가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마취주사를 꺼내드셨어요. 그분의 마스크와 장갑과 수술복 소매를 보며 문득 남궁인 선생님을 떠올렸지요. 이런 옷 입고 일하시겠지? 선생님도 가끔은 농담을 하시겠지? 하셨으면 좋겠다. 1, 2, 3, 4, 5…… 목구멍이 매워지며 기억이 끊겼습니다.

 

어떤 농담도 도저히 나오지 않는 날들이 선생님께는 잦을 것만 같아 걱정입니다. 요즘은 무엇 때문에 괴로우신지 궁금하면서도 묻기가 조금 두렵습니다. 연말에 잠깐 뵈었을 때 얼굴이 핼쑥하셨는데요. 많이 지친 상태라면 가장 괴로운 이야기는 제게 말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두번째나 세번째로 괴로운 이야기만 해주셔도 감사히 듣겠습니다. 

 

팔뚝 절개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고 합니다. 제가 모르는 사이 일어난 일이니 의료진의 말을 믿을 수밖에요. 간호사 선생님께서 절개술의 결과물을 보여주셨습니다. 투명한 통 안에 커다란 미더덕 같은 것이 들어 있었어요. 도대체 미더덕이 내 팔뚝에서 왜…… 다음날 아침 회진 때 들어보니 그것은 섬유종이라고 하더군요. 수술을 집도한 선생님께 여쭤봤습니다. 

“섬유종이라는 것은 왜 생기는 건가요?” 

하지만 선생님은 이미 다음 환자로 눈을 돌린 뒤였습니다. 저는 그의 가운 자락을 잡고 재차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게 왜 생긴 거죠?” 

그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이유는 저희도 모릅니다.” 

그러고선 마치 경보 시합중인 사람처럼 계속해서 다음 회진을 향해 나아갔죠. 회진이란 이런 것인가. 병원은 ‘왜’라는 질문에 응답하기엔 지나치게 바쁜 곳인가. ‘어떻게’를 수행하기만 해도 벅찬 세계인가. 병상에 오도카니 앉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도카니 앉은 사람은 저뿐만이 아니었어요. 옆 침대에는 눈 치우다 미끄러져 팔이 부러진 할머니가 계셨고 앞 침대에는 발가락이 모두 골절된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드문드문 수다를 떨었어요. 어쩌다 다쳤는지, 얼마나 아픈지, 아파서 취소된 일들이 무엇인지…… 아픈 사람들과 함께 병원에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한 가지가 명료해졌습니다. 저에게 행복은 아프거나 괴롭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픈 곳도 괴로운 문제도 없는 날에, 그것이 어마어마한 행복임을 알아보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다 실감했습니다. 선생님은 늘 이런 곳에 계시는구나. 무탈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고통과 폭력과 죽음이 흔한 자리에. 건강도 행복도 기본값이 아닌 세계에. ‘왜’라는 질문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분주한 시간에. 아주 조금 다쳤는데도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패배하고 가끔 승리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시 패배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 그래서 삶은 눈물나는 일이라는 말. 

 

선생님 말대로 계속 이겨내는 수밖에 없겠지요. 이긴다는 게 뭔지 도통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감사하게도 삶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퇴원하자마자 여러 원고 마감이 닥쳐왔습니다. 이 글도 그중 하나죠. 답장을 쓰기 위해 네 달 전 선생님이 쓰신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안쓰럽고 마음 아파서 울 뻔했지만 진짜로 울지는 않았습니다. 감동적인 와중에 여전히 까르보나라적인 부분이 눈에 밟혀서요. 하지만 자꾸 다시 읽다보니 약간 정드는 느낌입니다. 느끼함에도 정이 들다니 큰일이군요. 순두부찌개적인 남궁인이 그리울 때마다 선생님의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듣습니다. 방송을 틀어놓고 운전하곤 합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자분자분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시지요. 다음 방송 때에는 무려 라이브로 피아노를 쳐주시기로 하셨고요. 너무 귀공자 같을 듯하여 벌써 웃음이 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중입니다. 선생님의 서간문보다 라디오 방송을 더 좋아하는 저의 취향은 크게 괘념치 마십시오. 모든 독자들이 저처럼 느끼한 글에 취약하지는 않으니까요. 혹시 마음에 걸리신다면 새해부터는 편지를 덜 느끼하게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정진합시다. 저도 정진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진하고 있는 게 맞겠지요? 계속해서 쓰고 있기는 하니까요. 저나 선생님이나 징그러울 만큼 많이 쓰지 않습니까. 그중에서도 최근에 <에픽>에 기고하신 백 매짜리 원고를 특히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응급실의 여러 노동자들에 대한 르포였지요. 경력 십이 년 차 전문의, 그것도 동료 노동자들과 살갑게 지내온 전문의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병원의 구석구석이 약간씩 환해지는 것 같았어요. 어렵고도 중요한 이야기를 글쓰기로 비춰오신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마감한 모든 글이 맘에 들지는 않으실 겁니다. 때로는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습니까? 우리 각자의 첫 책을 기억해봅시다. 선생님은 2016년에 『만약은 없다』로, 저는 2018년에 『일간 이슬아 수필집』으로 데뷔했지요. 그후로도 둘 다 왕성한 집필 활동을 했고요. 저는 첫 책으로부터 잘 점프하기 위해 제 나름대로 애썼습니다. 선생님도 물론 그러셨을 거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껏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여전히 첫 책입니다. 우리 둘 다 마찬가지죠. 이 사실이 가끔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물론 글의 성취와 판매 부수가 언제나 나란히 가는 건 아니지요. 그래도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데뷔작보다 성장하고 있는 걸까요? 선생님의 글쓰기는 갈수록 나아지고 있습니까? 작가로서 자신을 어떻게 갱신하고 계신가요? 갱신이라는 것은 한 번 했다고 끝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갱갱신’ ‘갱갱갱신’을 계속해야 좋은 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새해가 되자마자 돌덩이 같은 질문을 여러 개 드려 죄송합니다. 중요한 질문이라 여쭤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생각해볼 테니 선생님도 생각해봐주십시오. 

 

메일을 전송하려고 보니 선생님의 이메일 주소가 새삼 눈에 들어오는군요. 아이디가 insiders라니. 제가 생각하는 그 ‘인싸’가 맞나요? 선생님이 학창 시절부터 반장과 회장을 연임하셨고 여러모로 품이 넓은 내부자였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이디를 insiders라고 쓸 정도로…… 인싸였습니까? 아마도 저의 잘못된 추측이겠죠. insiders에 제가 모르는 의미가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참뜻을 알려주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무쪼록 해피뉴이어입니다. 



2021년 1월 17일

새해의 이슬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