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준이치와 랑이에게 _슬릭

또둑이의 이름은 제가 지은 것은 아닙니다. 룸메이트가 저와 함께 살기 전부터 키우던 고양이예요. ‘또둑이’라는 이름은 예상하신 대로 도둑과 관련이 있는데요, ‘밥도둑’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밥도둑을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밥또둑’이잖아요. 그래서 또둑이라고 합니다. 룸메이트는 이 이름을 굉장히 부끄러워해요. 그래서 예전엔 동물병원에 가면 종종 이름을 다르게 기재했다고 합니다. 또 한 마리의 고양이 이름은 ‘인생이’인데, 이 이름도 굉장히 부끄러워합니다. 저는 왜 부끄러워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세상에 하나뿐일 것 같지 않나요?

 

제가 이렇게 태연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건, 다행히 또둑이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잃어버린 지 9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제 옷더미 속에서 쿨쿨 잘 자고 있습니다. 생명에 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궁둥이 쪽을 좀 다쳐서, 넥카라를 하고 있어요. 저는 넥카라 한 또둑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참 아파요. 또둑이는 인생이보다 넥카라를 훨씬 더 많이 찼거든요. 인생이는 아직 또둑이한테서 나는 냄새가 싫은지 좀 경계중입니다. 얼른 다시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또둑이가 가출하기 전에는 둘이 엄청 친했거든요.

 

또둑이를 잃어버리고 저와 룸메이트는 바로 고양이 탐정을 불렀습니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탐문 수색해서 찾아주는 전문 탐정인데요. 같이 몇 시간을 한참 열심히 찾고 있는데 옆집 아주머니께서 아침에 또둑이를 보았다고 하셨어요. 아침에 집 앞을 청소하려고 대문을 열었을 때, 옆 화단 쪽에 검은 고양이가 숨어 있더래요. 고양아, 불러봐도 꿈쩍 않길래 그냥 두고 빗자루를 꺼내들었는데, 또둑이는 그 빗자루가 너무 무서웠나봐요.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더랍니다. 고양이 탐정단과 우리는 또둑이가 그 집 지붕에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열심히 뒤졌는데, 그 말을 들으니 집 근처에 있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고양이는 집을 나가면 대부분 집안이나 바로 근처에 숨어 있기 때문에 몇 시간 안에 찾아내는 일이 흔하다는데, 또둑이는 일단 집 근처에서 쫓겨났으니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날부터는 모든 일상을 멈추고 또둑이를 찾는 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해질녘, 자정, 동틀녘. 하루에 세 번 한 시간 정도씩 동네를 뒤졌습니다. 또둑이 이름을 천 번은 부른 것 같아요. 인생이 울음소리도 녹음해서 틀고 다녔습니다. 다묘가정에서는 그렇게 동거고양이 울음소리에 반응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해서요. 또둑이는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주 귀여운 길고양이들이 대답을 참 잘해주더라고요. 덕분에 우리 동네에 어떤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지 빠삭해졌습니다. 또둑이를 만나면 주려고 간식까지 넉넉히 챙기고 다녔으니 저는 길고양이들에게는 인기가 참 많아졌어요.

 

우리집은 아주 낡은 다세대 주택이라 경비원도 없고 CCTV 같은 것도 없습니다. 사실 집 주변에 가로등도 몇 개 없어요. 게다가 재개발 구역이라 빈집도 많고, 고양이가 숨을 곳이 너무 많아서 어디를 어떻게 수색해야 할지 정말 어려웠습니다. 주변 아파트 CCTV에 찍혔을까 몇 번 가서 보기도 하고, 구청에서 관리하는 CCTV에 찍혔는지 문의를 넣기도 했습니다. 또둑이는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더라고요. 하필이면 태풍이 두 번 연속으로 들이닥친 때였어요. 붙여둔 전단지는 다 젖고, 마음은 점점 타들어갔습니다. 고양이 탐정에게 열심히 혼나가며, 계획되어 있던 일정들을 다 미루며 수색을 이어나갔습니다. 탐정님은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하게 우리를 혼내더라고요. 물론 고양이를 잃어버린 것은 우리의 잘못이 맞지만, 당장 고양이를 찾으러 다녀야 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그분에게 혼나는 데 써버리는 것 같아서 두세 배는 더 힘들었습니다.

 

칠일째 되는 날, 평소 다니던 수색경로를 거꾸로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 전날 마지막으로 수색했던 아파트단지에 동이 트면 쓰레기차가 오더라고요. 시끄러운 쓰레기차 때문에 돌아다니던 또둑이도 숨을 것 같아 더 이른 시간에 아파트단지부터 돌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수색에 들어간 지 십분 만에 또둑이를 만났습니다. 손전등으로 여기저기 비추며 옆 아파트 화단을 살펴보는데, 갑자기 짜잔! 하고 또둑이가 나타났어요. 우리가 목놓아 이름을 불러도 대답은 안 하고, 그냥 얌전히 앉아 있더라고요. 저와 룸메이트는 엄청 놀랐지만 침착하게 또둑이 앞에 먹이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또둑이는 우리를 물끄러미 보더니 다시 어둠 속으로 슉 사라졌어요. 막 놀라거나 겁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당황했지만 일단 위치가 파악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 기뻤습니다. 탐정님에게 전화해보니 어차피 그렇게 가버린 고양이는 다시 나오지 않을 거라고, 내일 덫을 놓아 잡아야 한다고 해서 그날은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또둑이가 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집으로 함께 오지 못해서 아쉽고 슬펐어요. 제가 평소에 얼마나 별로인 동거인이었을까요.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보고 싶지도 않았나봐요. 물론 이런 마음도 굉장히 이기적이라는 걸 잘 압니다. 또둑이를 찾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못 먹고 못 잔 대가는 고스란히 멘탈에 치명상으로 오더라고요. 하루에도 몇 번씩 미안함에 눈물이 났다가, 원망스럽다가, 절망스럽다가 오만 가지 감정이 휘몰아쳤습니다.

 

다음날, 탐정님이 덫을 놓았지만 또둑이는 맛있는 밥냄새가 나도 덫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해질녘 다섯시부터 새벽 한시까지 기다렸지만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날 밤이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어요. 이대로 길고양이가 되는 걸까(또둑이는 스트리트 출신입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이 사나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길 바라야 하는 걸까. 탐정님은 또둑이가 바깥 생활을 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는 시점이라 체력적으로 점점 힘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엄청나게 배가 고플 텐데 왜 밥을 먹지 않는 걸까. 걱정과 원망과 슬픔과 후회와 절망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껴안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탐정님도 또둑이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다음날에도 덫을 놓으러 와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이 덫을 놓는 마지막날이 될 거라고, 오늘 또둑이가 덫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내일은 또둑이가 숨어 있는 은신처를 뒤질 거고 그때는 도망가는 또둑이를 강제로 붙잡아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가장 괴로웠습니다. 평소엔 믿지도 않던 모든 신을 소환해 제발 우리 또둑이가 덫으로 들어와주기를 비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기다리기를 약 다섯 시간, 탐정님이 빨리 밖으로 나와보라고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저는 최대한 빨리 나가려다가 신발장 위에 있던 꽃병을 깨뜨렸어요. 헐레벌떡 나가보니 또둑이가 다행히도 덫 안에 잡혀 있더라고요. 온몸에는 습식 사료가 뒤범벅, 그렇지만 그리 놀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마치 ‘왜 이렇게들 요란이지’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또둑이는 9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어요.

 

탐정님은 또둑이가 좀 진정되면 병원에 데려가보라고 했지만, 몸을 살피던 도중 엉덩이에 큰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해버렸습니다. 바로 24시간 동물병원에 데려갔어요. 의사선생님은 진찰하더니 그렇게 응급한 상처는 아니라고, 내일 다니던 동네 병원에 가서 꿰매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병원에 온 김에 몸무게도 재봤는데, 집을 나가기 전이랑 정확히 같은 몸무게였습니다. 분명 손으로 쓰다듬어봤을 땐 야윈 것 같았는데, 미스터리였어요. 다행히 그 외에 생명에 지장을 줄 만한 큰 상처나 병은 없었습니다. 편지를 쓰는 지금은 엉덩이 상처도 잘 꿰맸고 제 옆에서 야무지게 식빵을 굽고 있네요.

 

고양이를 잃어버려보니 깨달은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23(, 방금 우리집 큰고양이가 갑자기 키보드 위로 올라오더니 이런 숫자를 남기고 갔습니다. 뭔가 행운의 숫자인 것 같아 수정 없이 적어놓을게요.) 우선 돈이 없으면 반려동물을 키우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 절절히 공감했습니다. 반려동물이 아플 때 병원비가 없어 비참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낡은 동네의 낡은 집에 사는 것도 고양이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만약 또둑이나 인생이를 이 동네에서 한 번이라도 더 잃어버린다면 그땐 정말로 집으로 다시 데리고 올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진지하게 이사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집에 이사왔을 때는 그저 넓고 싼 집이라 마냥 좋아했는데 말이에요. , 반려동물로 인해 얻는 기쁨이 무한한 만큼, 함께 살며 느끼게 되는 다른 감정들도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커다랗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늘 이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또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이별할 수도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어떤 존재를 너무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제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감당하지 못할 일 같습니다.

 

 

2020 9 25

슬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