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또한 이름이 두 글자인 슬릭에게 _이랑

슬릭님에게, 슬릭씨에게, 슬릭 선생님. 무어라고 쓸지 고민을 하다 슬릭에게라고 시작해보았습니다. 제게 〇〇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관계에서 시작된 유행성 호칭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도 〇〇을 자주 쓰긴 하지만 글자로만 보던 ~’이나 -’를 소리내서 말할 때 돋는 소름의 기운이 살짝 느껴지기에 앞으로의 편지에서 슬릭 뒤에 을 붙이는 걸 지양해볼까 합니다. 반면 〇〇는 제가 〇〇보다 훨씬 자주 쓰는 호칭인데요, 요즘 사회에선 〇〇라고 부르는 게 그닥 긍정적인 뉘앙스로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제가 〇〇라고 불렀을 때 상대방이 ?’ 하고 뜨악해하는 분위기를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〇〇’ ‘〇〇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도 인터넷 유행의 영향이 아닌가 싶은데, 맞나요? 사실 잘 모릅니다. 아무튼 호칭을 고민하다 슬릭에게로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제 프로필에 매번 빼놓지 않고 쓰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랑은 본명이다라는 문장입니다. ‘이랑을 활동명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고, 그래서인지 대부분 저를 처음 만날 때부터 이랑이라고 부릅니다만, 그 소리가 제 귀에는 이랑!!”이라고 들립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혼낼 때마다 격앙된 목소리로 이랑!!”이라고 불렀던 걸 기억하기 때문일까요? 어른들은 화가 나면 꼭 애들 이름을 풀네임으로 부르더군요. 어른들이 왜 그랬던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코미디언 김신영님이 방송에서 경상도 어머니가 아이를 꾸짖는 흉내를 낸 장면이 생각나네요. “김↗신↘영↗ 왜 떡을 찌르지?”)


제 어린 시절 친구들은 활동명이라는 것의 존재도 의미도 몰랐기에 성은 ’, 이름은 인 제 이름을 부를 때 다들 랑아혹은 랑이야하고 불렀습니다. 적은 수의 관객 앞에서 (무료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이십대 중반 이전까지 저는 줄곧 랑아” “랑이야하고 불렸지요. 이후 가수, 작가로 활동해나가기 시작하자 모두들 약속한 듯 저를 이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랑이의 음악은 이랑 1이 되었고, 랑이의 글은 이랑 에세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왜 자연스럽게 풀네임으로 불리게 된 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두 글자 이름=활동명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슬릭의 활동명도 두 글자군요! (왜 두 글자로 지었나요?)


휴학을 최대한 길게 하면서 7년 반 동안 꾸역꾸역 머물던 대학을 졸업하고, 꼼짝없이 사회인이 된 이후 저를 이랑!”으로 부르는 사람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다정하게 랑아” “랑이야라고 부르던 어린 시절 친구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일로 엮인 관계가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이랑!”이라고 불리는 것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들을 때마다 혼나는 기분이 듭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자주 혼나는 것 같은 이 아이러니한 기분을 어쩌면 좋을까요?

 

그러고 보니 슬릭이 첫 편지에서 얘기한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도 이랑!!”이라고 불려 무대로 나갔네요. 일하는 동안은 항상 이랑으로 불렸기에, 그날 그 무대에서 트로피를 경매한 것도 랑이가 아닌 이랑일 겁니다. 이랑이 시상식 무대에 오르기로 한 날 아침, 랑이는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상금이 얼마인지가 무척 기대됐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소득이 불안정한 예술인들이 가끔 상을 타고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까지 되는 상금을 받아와 맛있는 걸 사줄 때 즐겁게 얻어먹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어쩌면 단 한 번의 상금 찬스가 찾아온 게 아닐까 생각하니 두근두근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절대 관객 수가 정해진 한국 인디 신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음악만 하면서 먹고살기란 무척 어렵기에, 어쩌면 인생 단 한 번일지도 모를 상금에 거는 기대가 더욱 컸습니다. 제가 홍대 신에서 막 활동을 시작하며 만났던 주변 인디 뮤지션들과 무한도전 가요제에 나가서 빵- 떠보자는 이야기를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십센치나 장기하와 얼굴들이 무한도전 가요제에 나온 모습을 보며 어쩌면 다음에는 내가 불려갈지도 몰라하며 은근히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여기에 쓰는 게 너무 부끄럽습니다


결국 무한도전 가요제는 없어졌고, 한국대중음악상에는 상금이 없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TV에서 본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은 트로피와 꽃다발을 받고 눈물을 흘렸죠. 수상하지 못한 후보들은 화면에 크게 잡히는 표정에서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내비치지 않기 위해 시종일관 미소를 지었고요.

그들에게는 상금이 있었을까?

상금이 없어도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일까?

명예라는 걸 얻게 되면 저렇게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벅찰까?

트로피는 그 자체로 명예를 상징하는 걸까?

명예는 앞으로 내가 먹고사는 데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자로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날부터 수상 여부는 모르지만 시상식에 갈지 말지 정해서 대답해야 하는 날까지 질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상금이 없는 상을 받기 위해 어떤 마음으로 시상식에 가는지, 무엇을 입을 것이며(옷을 사? 말아?) 시상식장 위치는 어디고 거기에 갈 때 뭘 타고 가야 하는지(버스? 전철? 역에서 가깝나?), 상을 못 받으면 그날 내가 날린 기회비용은 어쩔 것이며(그날 벌 수 있는 다른 소득이 뭐가 있을까?) 상을 받게 되면 어떤 말을 할지, 사실 상금을 무척 기대했다는 것을 말할지 말지, 고민과 질문은 늘어만 갔습니다. 상금 얘기를 꺼내면 넌 왜 돈 얘기만 하느냐는 말을 또 들을 것 같아, 내가 왜 돈 얘기를 또 하는지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저런 모든 생각의 과정 끝에 슬릭이 그날 객석에서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라고 생각한 이랑의 퍼포먼스가 완성되었네요. 생각해보니 힙합 뮤지션 중에는 돈 얘기를(주로 돈 자랑이지만) 하는 분들도 많네요. 저는 앞으로 힙합 뮤지션이 돼서 돈 얘기를 하면 좋을까요?

 

요즘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 가운데, 편지 쓰는 일을 가장 좋아합니다. 편지의 특성일까요. 일이면서 일이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져 글을 편하게 쓸 수 있습니다. 편지를 쓸 때는 랑이와 이랑이 뒤섞여 글을 쓰게 됩니다. 일하지 않을 때 랑이는 수첩에다 일기를 씁니다. 일하는 날이 너무 많아 일기를 자주 쓰지는 못하지만, 일기를 쓸 때만은 이랑은 어딘가로 사라집니다. 랑이의 일기 내용은 괴롭다, 슬프다, 외롭다, 죽고 싶다가 대부분이고, 같은 내용을 수년간 반복해서 쓰고 있습니다. 반면 이랑의 글은 시기마다 주제도 바뀌고, 문체도 바뀝니다.


대재난 시대에 살고 있는 두 여성 예술가가 앞으로 어떤 편지를 주고받을지 무척 기대됩니다. 직접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신기한 일이네요. 요즘 저는 종일 작업실에서 이런저런 업무를 보다 집에 돌아가 매일 재난영화를 한 편씩 찾아봅니다. 슬릭이 편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국 인재인 기후위기와 재난을 다루는 영화는 차고 넘치게 많더군요.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재난영화가 꾸준히 이야기하는 주제는 이 모든 재난은 인간 때문에 벌어진 것이고, 지금이야말로 무언가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며칠 전 메일함에서 안 읽은 메일들을 정리만 해도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메일 송수신에 상당한 전력 소비가 따르고, 메일을 저장하는 데이터센터 클라우드에서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더군요. 컴퓨터는 자동차처럼 연기를 내뿜지 않기에 뭔가를 태워 움직인다는 걸 깨닫기 어려울 뿐이라고요. 하루에도 수십 번 메일함을 들여다보고, 매일 아침에 자동으로 배달되는 뉴스레터들을 몇 종류나 구독하고 있는 저의 머리를 때리는 글이었어요. 자기 전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충전하고, 일어나 작업실에 가서 노트북과 모니터, 에어컨과 선풍기, 종이분쇄기와 마사지 의자에까지 전기를 끌어다 쓰고 있는 제가 오늘 기후위기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슬릭의 비건 생활에 대해서도 찬찬히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2020828

이랑 드림

다음주 성탄절에는 연재를 쉬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