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세련되고 진보적인 케이팝 아방가르드, NCT

<일곱번째 감각>을 처음 들었던 2016년의 그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음악 평론을 업으로 삼아온 사람에게 새롭거나 신선한 음악이라는 건 그다지 흔한 경험은 아니다. 구태의연한, 그러니까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 곡들은 음악 평론이라는 일을 제법 지루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일곱번째 감각>은 달랐다. 다소 불길하게 떠도는 오프닝과 이내 터져 나오는 태용의 서늘한 래핑은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이것이 기존의 아이돌 음악에서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무엇이라는 걸 즉각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루프를 중심으로 태용-텐-마크의 랩이 곡의 사뭇 차가운 온도감을 설정하는 동안, 도영과 재현이 유려한 보컬로 “We'll take it slow”와 “Open your eyes”를 읊어대며 영상 속 그들의 우아한 몸동작처럼 마치 물속을 떠다니는 것 같은 그루브를 선사한다. 전형적인 기승전결식의 구성이 결여된 세련되고 건조한 그 비트는 케이팝이라는 말로는 뭔가 부족하고, 마치 현대 미술의 어느 작품에서나 보았을 법한 패턴이 소리로 표현된 것과 같은 기분마저 들게 한다. ‘안무’로서의 춤이 아닌 그 자체로 예술적인 가치를 가진 이 곡의 퍼포먼스는 현대적인 댄스 크루들의 그것을 연상시켰다. <일곱번째 감각>은 이제는 ‘덕후’들끼리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케이팝의 숨은 클래식이 되었으며, NCT의 모던한 정체성 그 자체를 또렷이 각인시킨 작품이다. 


첫선을 보인 지 4년이 넘은 프로젝트이지만, NCT는 대중에게, 심지어 아이돌 팬들에게도 조금은 낯선 존재로 남아 있다. 차트의 흔한 히트곡들과는 그 성격이 다른 제법 난해한 사운드, 어지간한 관심이 없이는 쉬이 파악되지 않는 많은 멤버 수와 다양한 조합, 하지만 무엇보다도 NCT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정체성이 대중의 입장에서 간명하게 파악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NCT는 ‘네오 컬처 테크놀로지Neo Culture Technology’의 약자로, SM이 2016년 이래로 회사의 모든 역량과 노하우를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통상 ‘보이그룹’으로 분류되고는 있으나 단일 그룹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가변적 시스템이라 말할 수 있는 NCT의 핵심적인 지향은 유연한 ‘개별화’와 ‘현지화(지역화)’다. 많은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했지만, 케이팝이 90년대 말부터 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 이래 현지화는 마치 정해진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는 지난 20여 년의 세월을 거쳐 단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 1단계가 보아처럼 한국 아티스트를 현지 아티스트로서 전환시키는 방식이며, 그다음은 재미교포, 외국인 멤버 등을 하나의 매개체로 활용해 해외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현지 멤버들, 그러니까 해당 국가 및 문화권의 멤버들로만 이루어진 그룹을 현지 회사와의 합작, 그러니까 조인트-벤처 식으로 선보이는 것이 그 마지막 목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케이팝 기획사들에 의해 서로 다른 식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SM에서는 이를 “문화 기술”이라 부르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NCT는 이중에서 2단계와 3단계의 전략을 취하고 있는 그룹이다. NCT는 하나의 커다란 인재풀을 공유하며, 음악과 콘셉트, 그리고 지역에 맞추어 U, 127, Dream, 그리고 중국 현지 그룹인 WayV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우리만치 많은 인원수, 라이트한 리스너로서는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그룹의 다양한 형태와 활동도 모두 이 같은 NCT의 기본적인 정체성에서 빚어지는 결과다.


NCT라는 세계관을 구성하는 각각의 그룹들은 비슷한 듯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다. ‘NCT United’의 약자인 NCT U는 NCT라는 브랜드 안에서 곡의 콘셉트에 맞추어 다양하게 변형을 가할 수 있는 일종의 전방위 크로스 유닛에 가깝다. 실험적이면서 유려한 음악을 주로 선보이는 127 이 한편에 존재하고, 또다른 한편에는 틴 팝teen pop과 팝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경쾌하고 청량한 성장형 보이밴드의 모범을 제시하는 Dream이 있다. 비록 NCT라는 브랜드를 직접 사용하고 있진 않지만, 범중화권 유닛으로 보다 고전적이며 차가운 SM 특유의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추구하는 WayV는 완전한 지역형 모델로 NCT를 통해 선보이고자 하는 SM의 최종적 지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꿈을 통한 공감(empathy/resonance)이라는 테마 아래 하나로 연결되며, 최종적으로는 SM이 가진 보이그룹의 브랜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강화해준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들은 SM이 품은 ‘현지화를 통한 세계화’의 미션에 있어서 서로 다른 방향성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서로 다른 플랫폼인 셈이다. 


음악적인 면에만 집중해보자면 NCT는 다소 복잡한 형태의 포맷과 새로운 방식의 그룹 운영만큼이나 미래적이고 인더스트리얼한 사운드, 그리고 기존의 케이팝 그룹에서 쉬이 들을 수 없거나 금기시되는 다소 전위적인 성격의 음악들을 그 주된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SM 보이그룹 계보에서 샤이니가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 엑소가 조금 더 알앤비 스타일에 특화된 풍성한 화음과 보컬 능력을 앞세운 그룹이었다면, NCT의 음악들은 이 같은 장점을 적절히 계승하면서 마크와 태용 같은 래퍼들이 전면에서 리드하는 힙합의 예리한 내러티브를 한층 더 도드라지게 부각시킨 그룹이다. SM의 계보에서 힙합을 음악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삼은 흔치 않은 그룹이라는 점은 이들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퍽 중요한 부분인데, 그 덕분에 이들의 레퍼토리에는 메시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진솔한 랩으로 표현해온 곡들이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SM의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듣기 어려운, 일상의 단상들이 비교적 직설적인 단어들에 담겨 표현되는 <My Van>이나 회고적인 정서를 짙게 내비치는 <Yestoday>가 그 대표적인 예다. 최근작인 《Resonance》 앨범에서는 복고적인 올드-스쿨 비트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힙합 퍼포먼스가 돋보이는데, 클래식한 록 비트와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래핑의 조화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Misfit>, 간명하면서 단출한 힙합 비트가 서정적인 알앤비와 조우하는 <백열등Light Bulb>은 최근 몇 년간 아이돌 음악에서 중요한 스토리텔링의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는 랩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곡들이다. 


힙합, 어반, 그리고 일렉트로닉과 알앤비가 교차하는 풍성한 사운드의 배열은 SM엔터테인먼트가 지난 수년간 쌓아온 카탈로그 중에서도 유독 실험적인 레퍼토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령 NCT 127의 <소방차>는 사이렌 소리에서 모티프를 따온 아주 직관적이며 미니멀한 비트와 구조를 바탕으로 그와 대비되는 뒤틀린 소음이 통쾌함을 선사하는 곡으로, 케이팝의 기본적인 작법이나 제도권 대중음악의 보편적인 경향에 비추어본다면 차라리 ‘아방가르드’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곡이다. 이런 면모는 이들의 이름을 따서 ‘네오neo’한, 그러니까 좋은 의미에서 생소하면서 동시에 미래적인 특성으로 간주된다. SM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유럽 및 서구권 작곡가들과 본격적으로 작업을 늘려가면서 샤이니, 에프엑스 등의 아이돌 그룹을 통해 어느 정도는 의도적인 전위적 미학을 담은 음악들을 발표해왔고, 이제 NCT를 통해 장르나 스타일은 다르지만 하나의 일관적인 방향성을 갖고 진화하고 있다. 


이 ‘네오’함을 대표하는 또다른 곡으로 NCT 127의 <Cherry Bomb>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파이어크래커firecracker’로도 불리는 폭죽의 이미지를 빌려 자신감과 스왜거를 표현한 이 곡은 <일곱번째 감각> <소방차> 등과 함께 NCT의 실험적인 면모를 상징하는 곡임과 동시에 그 자체로 NCT의 디스코그래피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비정격非正格적인 진행을 자랑하는 곡이다. 통상적인 가요 작법과는 그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마치 주문처럼 시작되는 인트로와 스피커가 터져나갈 듯 우퍼를 울리는 베이스음에 얹은 후렴, 그리고 멜로디와 래핑을 오가며 혹 지루할 수도 있는 묵직한 비트의 연타를 독창적인 구성과 다양한 요소들의 배치로 해소한 것이 이 곡이 가진 독특한 면모다. 그 가운데 백미는 곡의 후반부에 태일과 도영의 브리지 파트 이후 분위기를 일신하는 마크의 세련된 래핑으로, 바로 이 랩 파트로의 전환, 그리고 마크의 랩 이후에 이어지는 1분여의 퍼포먼스 피날레는 케이팝의 역사에서 가장 예술적인 시퀀스 중 하나라 평가하고 싶다. 세계적인 안무가인 토니 테스타Tony Testa가 연출한 이 곡의 퍼포먼스 역시 매우 창의적이고 묘사적인 동작들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반복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동작들을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케이팝 안무 스타일의 틀을 깬 사례다. 


최근에 발매된 앨범 《Resonance pt.1》과 타이틀 곡 <Make a Wish>를 들어보면 NCT가 <일곱번째 감각> <소방차> <체리 밤> 등 커리어 내내 선보여왔던 세련되면서 현대적인, 동시에 좋은 의미로 낯선 전위적 아름다움이 변화된 스타일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케 된다. 비트가 품은 복고적인 그루브는 장난스러우면서도 건조하고 차가우며, 중동 지역풍의 이국적인 멜로디를 가미한 반복되는 리프와 휘슬 사운드는 곡에 미묘한 신비로움을 부여한다. 메인 섹션 소개를 마치면 NCT 음악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뒤틀린 톤의 보컬이 등장해 리듬을 경주해나가지만, 이는 다시 “I can do this all day”라는 짧은 훅을 통해 간결한 비트의 뼈대로 다시 돌아가면서 곡의 ‘쿨’하고 모던한 바이브를 유지해나간다. 이 곡은 이 단순명료한 비트의 그루브를 강조하기 위해 구석구석 재미있는 들을 거리들을, 때로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단절적으로, 배치하고 있어 흥미롭다. NCT의 음악에 자주 활용되는 알앤비 보컬 그룹풍의 하모니라든지 후반부에 분위기를 확 바꾸어 우아하고 여유로운 보컬로 곡의 모멘텀을 변화시키는 방식은 마치 패스티시pastiche 스타일의 미술품을 연상시키듯 유쾌한 혼종성이 깃들어 있다. 바로 NCT를 듣는 이유를 납득시키는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