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결코 만날 수 없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

시장에서 통닭을 포장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조무영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술을 마시자고 하였고 나는 통닭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내가 사는 곳으로 가도 되지만 그와 함께 있을 때 벌어질 일들을 예상하는 것이 정말로 귀찮았고 벌어지지 않을 일들을 예상하는 것도 귀찮았다. 통닭집 앞에서 만난 그는 의외로 얌전히 그렇다면 다음에 보자고 집에 가서 통닭을 드시라고 하였다. 통닭이 정말로 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포장되는 통닭들을 보며) 그러게요 통닭이 되게 많네요.

―통닭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네요. 드시다가 내일 또 드셔야겠어요.


통닭을 기다리며 집이 어디냐고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결국엔 조무영의 집으로 통닭을 들고 가게 되었다. 조무영의 집은 작업실 같은 느낌이었다. 오래된 사무실 건물 옥상에 있는 옥탑이었다. 집은 의외로 넓고 깨끗했고 우리는 카레맛이 나는 프라이드와 양념치킨을 상 위에 두고 맥주를 마셨다. 치킨을 먹다 음악을 듣다 배가 불러 커피를 마셨다. 작은 커피메이커가 혼자서 소리를 내며 열심히 커피를 내렸다. 커피잔을 든 채 조무영과 키스를 하고 그 순간 기분이 좋았지만 뭔가를 더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얼마 전 알게 된 바의 주인 이야기를 했고 그는 자기도 거기가 어딘지 안다고 하였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같이 가도 되겠네요, 하다가 아니 안 될 것 같아요 저 일행이랑 이전에 같이 가서 어색할 것 같아요 말하고 조무영도 자기도 생각해보니 안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나의 집은 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고 먼저 가보겠다고 인사를 하고 잠시 껴안고 있다 나왔다. 조무영은 데려다준다고 옷을 입고 따라왔고 그는 자기 집은 사무실 용도여서 춥지만 넓어서 좋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언덕에서 이제 이만이라고 왜인지 만족스러운 얼굴로 인사를 또 하고 손을 흔들고 집으로 향했다. 뒤를 돌아보니 조무영이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또 웃었다. 좀더 걸으며 집까지 왔는데 조무영이 싫은 것도 아니지만 둘이서 이상한 이야기만 하다가 온 것 같고 아 그냥 다시 안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 그런데 같이 있을 때는 즐거웠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친구의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아직 부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고 혹은 가끔 곧 잊어버릴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러다 정말로 잊어버리는 것이 다행인지 문제인지. 


제네바의 자크는 동료들 동무들 동지들이 이야기할 때 그들 뒤에서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자크를 뒤에서 바라보다 가끔 앙투안을 생각했다. 밤바람을 헤치고 걸으며 그들 각각이 나의 집에서 잠시 쉬고 있는 것을 생각했다. 테이블 한쪽에는 자크가 앉고 다른 쪽에는 앙투안이 앉지만 그들은 연극무대에 선 것처럼 관객들은 둘 다를 보지만 그들 각각은 서로가 안 보이는 것처럼 지친 얼굴로 테이블 위에 엎드려 졸고 있다. 미문화원에 불을 붙인 이들도 자크의 동료들처럼 혁명에 관해 길게 이야기하였을까 신학을 전공하던 대학생들은 제네바의 혁명가들처럼 혁명을 이야기하였을까. 그들이 이야기하던 것은 혁명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제네바의 사람들은 무엇이 시작되기 직전에 자신들이 도착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나는 줄곧 모든 것이 거의 다 끝난 뒤에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뭐라고요? 

다른 생각을 하려 애쓴 것은 아니지만 책 속의 사람들이 각자의 세계에서 고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걷자 어느샌가 조무영과 관련된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그러다 또 뭔가 잊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손에서 나는 카레 냄새를 맡으며 방금 먹은 통닭과 조무영을 다시 생각했다. 손으로 얼굴을 감쌌을 때 얼굴이 뜨거웠고 얼굴이 식을 때까지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집을 지나쳐 앞으로 계속 걸었다. 목욕을 해서 얼굴이 부드러웠고 바닷바람이 불었지만 아주 춥지는 않았다. 연휴가 지나면 2월이 되고 2월은 늘 금세 지나가고 늘 그렇듯 3월이 되어야 새로운 해에 적응이 될 것이다. 발이 아플 정도로 걷다 돌아왔다. 이불 위에는 벗어둔 잠옷이 내 몸의 형태로 정답게 누워 있었다. 

옷을 걸어두고 씻고 나와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크의 이야기가 아닌, 책벌레 멘델이 나오는 츠바이크의 단편을 읽었다. 책벌레 멘델은 보통의 독서가의 수준으로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책을 읽고 알고 있었다. 그는 늘 카페 글루크에 앉아 자신의 세계에서 책을 만나고 그 세계는 정말로 견고하여 테이블을 두드리는 정도로는 타인의 존재를 알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얼마나 다정하고 예의를 갖추었던가, 전쟁이 그들에게 그러한 덕목을 앗아가기 전까지 말이다. 나는 멘델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슈포르쉴 부인의 손을 내 두 손으로 잡고 거기에 이마를 대고 잠들고 싶었다. 그러면 그 옆에는 앙투안이 앉아 모두의 인생을 걱정하고 앞으로 모두들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알려줄 것이다. 어쩐지 그 세계는 나를 사랑하던 개 두 마리가 살던 곳과 멀지 않을 것 같았다. 


화장실 창을 열고 이를 닦고 있을 때 옆집에서 틀어놓은 신앙 상담 방송이 들려왔고 라디오 진행자와 목사는 청취자가 보내온 사연을 읽고 답해주었다. 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오십대 후반 남성은 자신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돌아보기가 두렵다고 하였다. 왠지 곧 죽게 될 것 같다고,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그에 대한 답으로 나는 교회에 나올 것을 권유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차분한 목소리의 진행자는 일단 먼 곳의 가게로 술을 사러 간다 마음을 먹고, 삼십 분 정도 걸어야 갈 수 있는 가게에 가서 술을 사라고 말을 한 다음 그렇게 일주일을 반복하여 걷는 것에 익숙해지면 병원에 가보라고 권하였다. 목사는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당장이라도 병원에 가시고 마음을 먹고 입원을 하셔서 단주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라고 답하고 성경 구절을 읽어주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지금 대전에서 고민을 보내주신 청취자 님도 본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매일 이 집에서 산다면 나는 이것이 거슬릴 것인지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기다리게 될 것인지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최명환은 한동안 성당에 다니지 않았다고 하였다. 삼사십대의 이십 년가량은 성당에 다니지 않고 주말에도 일을 하고 등산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났다고 하였다. 일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이 교회를 다녀서 교회에 잠시 다닐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때는 또 그때대로 열심히 다녔다고 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겸손한 것이 가정을 꾸리는 것이 낮은 자리에서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뭔가 그런 것이 나와 너무 부딪치고 속이 너무 시끄럽고 답답하고 막 몸이 아플 지경인 거야. 오래 우울했고 진짜로 아프기도 했고 또 그러다 바쁘게 지내다보니까 시간이 그냥 그렇게 지나더라고.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위험했다 싶다. 나는 이제 최명환의 최선생의 목소리를 기억할 수 있다. 그의 목소리는 원하는 때 누르면 재생이 되었다. 최선생의 목소리를 몇 번 듣다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최명환은 이십여 년 만에 다시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것을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그런 이야기들도 재생시키고 싶었다.


새벽에 자다 깨서 나는 이제 운전을 배워야겠다고 갑자기 그런 생각이 계시처럼 들었다. 너는 운전을 하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저녁에는 바에 가기로 했다. 운전을 하게 되면 부산 이곳저곳을 부산 인근을 마구 다닐 수 있겠지? 바에 갈 때도 높은 지대를 오를 때도 편할 것이다. 남자친구로부터 대전에서 곧장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고 연락이 와 있었고 조무영으로부터는 자기가 요즘 이런 걸 저런 걸 하고 있는데 자려다 생각이 나서 연락을 한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나는 최명환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들을 몇 가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김은숙에 대해 묻고 싶었는데 그것을 어떤 식으로 물으면 좋을지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이 나시나요? 그때 그럼 몇 살이었던 거예요? 왜 그때 일을 시작하신 거예요? 그럼 가족들이 돈을 벌어오라고 시킨 건가요? 그런데 묻다보면 당신은 왜 늘 뛰어다닌 거예요? 왜 책을 안고 뛰어다니고 매일 신문을 보고 늦게까지 일을 했는지 묻게 될 것이고 나는 그 이야기가 이미 여러 번 들은 이야기처럼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그가 해주는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그가 감추는 이야기일 것이고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동시에 감추고 있을 것이다. 뒤척이다 다시 잠이 들었고 운전이 아니라 매트리스부터 사야 할까 푹신한 곳이 그립다는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깼다. 등을 두드리다 스트레칭을 하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물을 끓여 티백에 든 현미 녹차를 우려 마셨고 지난 신문을 지난 잡지를 읽듯 다시 읽었다. 우동집 소개는 다시 읽어도 재밌어서 한 줄 한 줄 다시 읽었다. 이런 기사만 계속 읽고 싶었다. 우동집 이야기 삼대가 운영하는 서점과 동네에서 제일 오래 산 할머니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긴장하며 나갔더니 옆집이라고 하였다. 김이 나는 새로 뽑은 가래떡이 보였다. 


―이사오셨나봐요?

―네. 안녕하세요.


나보다 어려 보이는 그렇지만 보이는 것으로 늘 짐작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했고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접시에 김이 나는 가래떡을 들고 서 있었다. 매일 찬송가를 트는 분이 이분인가 맞을 수도 아니면 이분의 가족일 수도. 아무튼 김이 나는 가래떡은 정말로 당장 먹고 싶었기 때문에 인사를 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명절 잘 보내시라는 말을 하고 바로 문을 닫았다. 이전에 사둔 꿀을 꺼내 떡을 먹으려는 순간 아주 잠깐 이렇게 누가 주는지도 모르는 것을 부주의하게 받아서 사건이 펼쳐지는 그런 추리소설이 있을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일단 떡부터 입에 넣으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반면에 옆집에서 나를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들르고 이삿짐을 옮기지도 않고 뭘 하는지도 짐작이 안 가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누군가 이사를 왔는데 이삿짐을 옮기지 않는 것은 정말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떡은 맛있었고 추리소설이라면 보통은 떡이 아니라 일단 떡이 있는 나라는 적으니까 홍차 같은 데 뭔가를 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정말 아까 그분이 매일 성경을 낭독하는 걸까, 떡을 먹고 다시 이불 위에 누우니 오늘은 찬송가를 트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부르시는 건지 피아노 소리와 함께 부르는 찬송가가 들렸다. 중간중간 목소리 두 개가 세 개가 되었다. 가족들이 모여 찬송가를 함께 부르는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장면이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맞은편 통로의 어딘가에 있는 호스텔의 사람들은 명절에 누군가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걸까 잠시 생각했다. 삼십 년 사십 년 된 집은 너무 낡고 오래된 집인 것일까 아니면 아직 당연히 현역인 것일까 생각하다가 물을 끓여 인스턴트커피를 준비하며 남은 떡을 먹었다.


옷을 챙겨 입고 옆집에서 준 접시를 싱크대에 두고 운동화를 신은 채로 나와 주차장에서부터 걸어올라갔다. 경비 아저씨는 멀리서부터 나를 보고 인사를 하고 나는 이제 정말로 주민이니 거리낄 것 없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옆을 보면 옆 통로에 계단이 보였다. 몇 개의 상사 건물을 지나고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는 명절이어서인지 주차장에 차가 적었다. 아파트 안에 무역상사 사무실이 있고 중구어르신협회 같은 협회 사무실이 있고 세계가정평화단 같은 단체 사무실도 있고 호스텔이 있고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있었다. 벽쪽 계단의 통로에서 왼쪽을 보면 무척 젊은 토요코인 간판이 정확히 파란색의 간판이 보였다. 나는 들어갈 수 없는 호스텔 내부의 구조를 상상하며 계단에 서서 토요코인 건물을 바라보았다. 날씨는 맑아 건물은 선명하고 그로부터 삼십 초 뒤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호스텔에 사는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P씨를 알게 된다. P씨는 자신이 사는 부원아파트 설계도를 어렵게 구해 책상 위에 펼쳐두고 틈이 날 때마다 건물 안을 걸으며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는 올라가는 계단 내려오는 계단의 손잡이가 교차하는 V자 사이로 보이는 토요코인 건물을 바라보며 종이컵에 든 인스턴트커피를 마셨다. 


―안녕하세요.

―아 네.

―토요코인을 보고 계신 거예요?

―네. 


P씨와 나는 한동안 나란히 서서 토요코인 건물을 봤다. 그렇게 그와 나는 처음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가 내가 부산에서 알게 된 세번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나를 초대했다. 명절이어서인지 다들 일하러 나갈 시간이어서인지 그의 방에 갈 때까지 마주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아파트 전체 내부 구조도와 각 세대별 내부 구조도를 보여주며 설명해주었고 그러나 각 세대는 오래된 만큼 내부 수리를 했기 때문에 이 상태는 아닐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옥상에 이 아파트의 파노라마를 설치하고 통로별로 사람들이 실제로 오가는 것이 그것을 통해 보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럴 때 배경은 일단 하늘인데 중간에 토요코인이 보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옥상에 서서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구조를 몸을 조금 옮기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데요? 그런데 아파트가 파노라마로 봐야 할 만큼 스펙터클한가요. 

―저는 여기 아직 진짜 잘 모르겠어요. 사는 사람들도 잘 모르지 않을까요.

―그건 그래요.

―건축을 연구하시는데 이 아파트가 스펙터클하지 않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아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매일 보는 곳이니까 보는 사람들도 중요하게 생각할까 싶은 거예요.


아파트를 파노라마로 본다면 아파트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만 스펙터클해질 것이다. P씨는 잠시 후 일을 하러 가보아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누군가를 마주치지 않으려 조심하며 그의 방에서 나왔다. 왜 어디서 어떤 사람은 멈춰 서고 또다른 사람도 멈춰 서고 그리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 것일까? P씨는 손은 흔들지만 V자로 교차하는 계단 손잡이 앞에 서서 토요코인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옆집에 접시를 가져다주며 무얼 함께 건네야 할까 생각하며 아파트를 나왔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느끼며 큰길을 향해 걸었다. 떡을 받았는데 다시 떡을 주면 안 되겠지 나는 케이크나 쿠키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제시장까지 걸었고 명절이어서 사람들이 역시나 많았고 나는 떡을 먹고 나와서 시장에서 파는 떡을 또 사 먹었다. 길에 앉아서 팥죽을 사 먹었다. 제과점에서 틈틈이 먹을 빵과 옆집에 드릴 쿠키를 샀다. 자갈치시장까지 걸으며 덩치가 큰 고양이들을 보게 될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최선생은 그 무렵 고양이들에게 우유를 주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최명환은 그때 가끔 마주치는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얼룩 고양이에게 우유를 주었는데 우유를 고양이에게 주다니 아깝다고 사람들은 말했고. 미문화원이 불타고 며칠 뒤 그는 회사 뒤 골목에서 연기 때문에 흰색 털이 회색이 된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는 자기 털을 핥고 또 핥고 그런데 아직 원래 색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고생하는 고양이를 보며 우유를 주고 그런데 말야, 요즘 안 건데 고양이한테 사람이 먹는 우유 주면 안 좋다고 하던데? 나는 아 맞아요 고양이 우유가 있어요 대답하고 성당의 흑표범들은 우유 같은 것은 안 먹을 것 같았다. 쥐를 잡아먹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라 성당의 누군가가 챙겨주는 것이겠지. 

최명환은 명절에는 깡통시장에서 일제 담배를 한 보루 사서 가끔 집에서 피웠다. 담배와 같이 산 UCC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회색 털의 고양이를 생각하다가 고양이는 늘 재빨리 움직이고 여기저기 도망을 잘 가는데 방화 사건이 일어난 날은 어땠을까. 어디로 여기저기로 피해도 연기가 따라왔을까. 참 무섭고 이상하다고 얼마나 놀랐을까 생각하다가 예전에 누가 그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자갈치시장의 고양이들은 진짜 통통해. 쥐를 잡지 시장 고양이들은. 쥐를 잡고 생선을 훔쳐먹거나 가끔 상인들에게 얻어먹는 진짜 크고 통통한 고양이들. 최명환은 고양이를 크게 호랑이처럼 키워 타고 다니고 집까지 타고 다니면…… 귀에서 맴도는 불안하게 뛰어다니는 구두굽 소리를 생각하다가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다다다다닷 다니는 고양이를 생각했다. 오늘이나 내일 서울에 가기 전 최명환을 다시 만나게 되려나. 최명환을 만나게 되면 고양이 이야기를 일단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오늘 마주친 고양이는 두 마리였는데 배가 흰 치즈 두 마리였다. 크고 매서운 눈빛을 하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자갈치시장에는 생생하고 싱싱한 비린 냄새 물냄새가 났고 횟집을 한참 지나고 곱창과 대창을 파는 가게들을 몇 개나 지났다. 팥이 든 떡에 팥죽을 먹어서인지 이상하게 힘이 솟았다. 단것은 힘을 준다. 자갈치시장에서 보수동까지 씩씩하게 걸었고 계단을 올라 중부교회로 갔다. 늘 멀리서 보고 지나쳤던 곳이었는데 오늘은 들어가보았다. 예배 시간이 아니어서 이층 예배실은 비어 있었다. 얼마 전에는 성당 두 곳을 갔다. 성당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있고 햇빛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여 여러 색의 그림자를 만든다. 성당에서는 오르간 소리가 들리고 성상이 있고 교회에는 밝고 흰 조명과 벽이 있었다. 기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죄를 고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누가 뭔가를 물어보면 그것은 이런 것이라고 부담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교회를 나와 언덕을 오르고 좀더 오르고 내리고 좀더 걷다 다시 보수동으로 돌아와 책을 구경했다. 일본에서 나온 오래된 뜨개질 책과 역시 일본에서 나온 평범한 옷을 어떻게 멋지게 입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을 서서 넘겼다. 옷들이 예뻤고 모델들이 무척 예뻤고 나는 처음 보는 이 사람들이 이미 사라진 사람처럼 여겨져 순간적으로 무척 그리워졌다. 책장을 넘기다 문득 나와 마지막으로 대화한 사람이 오늘 처음 만난 P씨라는 것이 생각났다. 만약 내가 어딘가로 사라져 예를 들어 망명을 하여 영영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의 마지막을 P씨가 증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일생을 증언하기에 P씨가 적합한 인물인가. 그는 나와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었고 그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나도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아파트를 어떻게 보았는지 아파트를 왜 파노라마로 구현하고자 했는지 말할 것이다. 그것으로 나라는 사람이 설명되고 이해되는 것에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아파트를 파노라마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점일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서는 접시를 닦아 쿠키와 함께 옆집에 돌려드렸다. 문을 연 사람은 나에게 떡을 준 사람이 아닌 오십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다. 그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언제 이사왔느냐는 말만 물었다. 나는 오전에 사온 빵을 커피와 먹다가 다시 『티보가의 사람들』을 폈다. 오전에 들었던 상담과 그에 대한 답, 술을 삼십 분 정도 걸어야 갈 수 있는 가게에 가서 산다고 마음을 먹고 집밖으로 나와서 걸으십시오. 술 생각만 나고 조급해져도 일단 걸으십시오. 

책을 읽다 멈추고 오전에 P씨의 방에서 본 아파트 내부도를 떠올렸는데 아니 내부도를 떠올리지 않아도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방을 오른쪽 화장실을 물을 끓이는 주방을 직접 가보면 될 것이다. 잠을 자는 방을 제외하고는 이사온 날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그런데 왼쪽 작은방에 무얼 둘 것인가. 한두 벌의 옷과 속옷 정도? 책과 화분 정도일까. 이곳에 두기에 가장 어울리는 물건은 잠옷인데 입고 있는 잠옷과 여분의 잠옷이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방으로는 해가 잘 들어왔고 햇빛은 테이블을 지나 옷걸이에 걸린 잠옷으로 나아갔다. 나는 햇빛이 들어오는 길에 누운 채로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바닥에 누우면 먼 곳의 소리들이 들렸는데 옆집의 찬송가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고 이곳은 비교적 차도와 가까웠지만 의외로 차가 지나는 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았다. 아파트 안을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모두 계단으로 오가기 때문에 같은 통로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발소리가 들렸다. 그 발소리도 자주 들리지는 않았다. 여객 터미널에 갔을 때는 배의 소리가 영화나 만화에서처럼 뚜우― 하고 크고 낮게 울리던 것이 기억이 났다. 기차역에서 열차를 탈 때는 방송 소리와 사람들 목소리가 크게 들렸고 그에 비해 의외로 열차 소리는 확연하게 큰 소리로 들리지는 않는다. 옛날 기차는 그렇지 않았는데, 옛날 기차들은 기차가 지나는 동안 사람들의 소리는 묻히고 귀가 먹먹해졌다. 그것은 열차의 종류 때문이겠지 생각하다가 미문화원에 불을 붙인 이들이 조사를 받던 곳이 부산역 인근이었던 것이 기억났다. 


대공분실은 ‘내외문화사’라는 출판사 간판을 달고 있었다. 그곳은 출판사가 아니지만 출판사였어도 늘 기차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어떻게 원고를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무 집도 사무실도 건물도 가게도 없는 곳에 출판사가 있고 그곳이 정말로 출판사라면 출판사의 직원들은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기 때문에 기차 소리를 참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말이다. 내외문화사라는 그곳에서 부림사건 관련자들과 미문화원 방화 사건 관련자들을 비롯한 부산 지역의 민주화 운동 관련 인사들이 조사를 받았다고 하는데 조사를 받았다는 것은 고문을 당했다는 뜻이 된다. 기차 소리는 고문을 하는 소리와 고문을 당하는 소리를 지운다. 

여객 터미널로 향하며 부산역 인근을 걷고 또 걷다보면 거기에는 유람선이 보였고 정박된 요트가 보였고 항만공사가 있고 의외로 오피스텔, 원룸 건물과 함께 식당이 몇 군데 있었고 공장 건물을 개조한 카페가 있었다. 바다를 따라 걷고 또 걷고 초량역을 지나 부산진역을 지나고 오른쪽에 있는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보면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미군 물자를 보관 운반 역할을 하는 미군 보급창이 나왔다. 이곳의 역사는 미문화원과 동일했다. 일제 수탈기구로 만들고 미군이 이어받은 곳이었다. 그런데 지도에서 보면 영도를 사이에 둔 이 바다에 부두의 이름이 몇 개나 보였다. 부산항 제5부두 제8부두 실제로 걷는다면 버스를 탄다면 컨테이너 박스들이 오르고 내리고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런데 저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컨테이너 박스는 너무 많고 끝없이 이어졌다. 

이 집에 뭐가 필요할지 생각해봤는데 일단 냄비와 프라이팬과 그릇일 것 같다. 짐을 늘리지 않는 선에서 음식을 만들 것들을 사와야겠다고 결정했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롯데백화점에서 그릇과 냄비 프라이팬 주전자 구경을 하고 적당해 보이는 그릇이 세일중이어서 한 개만 샀다. 시장에서 양 손잡이가 달린 빨간 냄비를 샀고 숟가락 젓가락은 나무로 된 것 하나 쇠로 된 것 하나를 사고 주걱도 샀다. 돌아오는 길에 본 마트에서 쌀 일 킬로그램과 계란과 간장을 샀다. 다음에는 서울에서 가져와야지 생각하고, 부산으로 가는 가방에 쌀을 넣어오는 사람은 없겠지 생각했다. 김치도 가져와야겠는데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냄비에 밥을 지었고 다 된 밥에 계란을 올려 전자레인지에 돌려 간장을 뿌려 먹었다. 그렇다면 세제와 수세미가 필요하다. 그리고 집에서 필요한 옷은 잠옷 위에 입을 후드 집업이다. 목을 가려주면 왠지 좀더 안심이 되고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뭔가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밥을 다 먹고 씻고 옷을 입고 나와 걷다 커피를 마셨다. 이제 높은 곳에 있는 바에 가서 술을 마실 것이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밤 언덕을 오르며 부산 리스본 리스본 부산 중얼거렸다. 얼마 전에 뉴스에서 계단이 길인 줄 알고 운전을 하다 사고가 났다는 음주운전자 이야기를 보았다. 부산에서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생각했는데 실제로 부산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부산 리스본 부산 리스본 리스본 리스본 부산 리스본. 언덕을 오르니 춥지 않았고 흰 김이 어둠 속에서 피었다 사라졌다. 언덕의 집들을 보고 부모님은 북에서 왔습니다. 전쟁 때 다 살 곳이 없어서 산에다 집을 지어서 이렇지요라고 말하던 택시 운전사의 말이 떠올랐다. 문득 최선생의 차를 타고 이곳을 오르던 날이 떠오르고 그것은 한 달도 안 된 일이지만 재작년 봄처럼 여겨졌다. 봄이 되면 이곳에 벚꽃이 많이 핀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봄이 되면 또 올 것이고 마음만 먹는다면 벚꽃을 오래오래 볼 수 있다. 바에 도착해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니 나가려는 손님이 있어 중간에 다시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그들은 나오자마자 담배를 피웠다. 어두운 곳에서 주인을 보니 약간 어색했고 그러나 그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걸어오셨어요? 

―네. 아파트 지나서 왔는데 그 길이 좋더라고요.

―봄이 되면 벚꽃이 펴서 더 좋아요.

―그때 또 오려고요.


물을 마시고 이곳이 지하라는 것을 잠시 생각하고 무척 높은 곳에 있는 지하 언덕을, 오르고 오른 곳에 있는 건물의 지하라는 것을 생각하고 내년에 학위를 따는 것이 목표라는 P씨를 잠시 생각했다. 


―좋은 시간에 오셨어요. 한 시간 뒤부터 오신다는 분들이 많거든요.

―아 그래요? 잘 맞춰서 왔네요.


알아서 세 잔을 달라고 주문을 하고 내 앞에 놓인 술에 대해 잠깐 설명을 듣고 음악을 들으며 어떻게 최선생을 알게 되었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자주 오시는 손님이라고 말했다. 저도 손님이에요. 아 그렇죠. 바 주인과 나는 동시에 잠시 웃었다. 음악은 어울렸고 맛있는 술을 세 잔 이어서 마시고 누군가가 나갈 때 들어오는 손님이 있어 봤더니 최선생이었다. 우리는 눈으로 웃고 순간적으로 이미 서로를 이해해버린 눈빛을 나누었다. 무얼 알까 무얼 안다고 그런데 그 순간은 물을 물에 섞듯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와 한 잔을 더 마시고 곧 또 보자고 말을 하고 나왔다. 최선생은 잠시 밖으로 나와 나를 배웅해주었다. 우리는 가볍게 포옹을 하고 손을 흔들었다. 외국 사람들 같았다. 흔들거리며 걷는 기분은 좋았고 우연인 것인지 옆집 사람은 매일 색소폰 연습을 하는 것인지 내가 내려가기 시작하는 동시에 색소폰 소리가 들렸다. 기분좋게 흔들거리며 그러나 삼십 초에 한 번씩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라고 중얼거리며 웃으며 흔들흔들 걸었다. 등을 맞대고 있는 언덕의 집들과 불빛들을 그립고 반가운 마음으로 바라보았고 멀리 있지만 아주 멀지는 않은 곳에 있을 정겨운 바다를 생각했다. 흔들거리는 기분은 영원할 것 같고 멀지 않은 저 너머에 바다가 있고 바다의 냄새는 비린 듯 시원하고 나는 이곳에 있지만 어딘가로……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흔들거리는 어깨를 붙잡고 그 소리는 흔들흔들 걷고 있는 것이 착각이라고 그 기분은 큰 착각이라고 내게 말했다. 순간 술이 깨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큰길까지 내려가며 그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너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알고 있지라는 목소리와 아니야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야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오갔다. 큰길로 내려오니 이미 술은 다 깼고 나는 바나나 우유를 사 마시며 숨을 골랐다. 누군가 나를 쫓아오는 것 같아 여러 번 뒤를 돌아보았다. 집 앞 마트의 환한 불빛이 보이자 조금 차분해졌고 그대로 마트로 들어가 식용유와 라면과 김치와 참치 캔을 샀다. 마트를 나오자 치즈 고양이 다섯 마리가 공사장 여기저기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고 이들이 가족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 닮았고 크고 작았다. 씻고 누웠을 때 내일은 부산타워에 올라야지 생각했고 부산타워 꼭대기 층 아니 모든 타워의 꼭대기 층 그러니까 전망대는 파노라마에 가까운 것 아닌가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서울로 갈 짐을 싸고 버릴 쓰레기를 내놓고 씻고 나와 잠시 쉬다 볶음밥을 만들었다. 아침을 먹으며 그간 부산에서 많은 것을 먹었다는 생각 나와 최선생은 둥근 테이블에 함께 있고 우리 앞으로 많은 음식들이 놓이고 또 놓이는 것이 어느 날인가 우연히 눈앞에 영상처럼 보였다 사라졌던 것을 생각했다. 김치볶음밥은 맛있고 머리에선 기름냄새가 났다. 설거지를 하고 씻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부산타워에는 야경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겠지 그렇다면 이른 시간에 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아침 공기는 상쾌했고 어젯밤 나는 술을 마시러 언덕을 올랐고 입에서 나온 하얀 김을 보았는데 아침에는 언덕을 내려가며 입에서 나오는 김을 보고 있다. 오전부터 용두산공원으로 향하는 사람은 드물었고 공원에 도착하자 근처를 산책하는 사람들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몇 명 되지는 않았다. 밤에는 야경을 보러 타워로 향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주말에는 줄을 서야 할 정도였는데 오전에 오니 아무도 없었다. 나는 티켓을 사서 타워의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빠른 속도로 지상과 멀어지며 부산의 바다는 햇빛에 반짝이고 아파트와 건물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대교가 보였다. 나는 이 엘리베이터를 열 번쯤 오르내리고 싶었다. 점점 멀어지는 건물들과 점점 넓어지는 전망들을 반복해서 보고 싶었다. 

전망대에 도착하자 아무도 없었고 직원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주문하고 창가를 바라보았다. 82년 미문화원 방화 사건이 벌어진 날 기사 사진에는 연기에 휩싸인 미문화원 뒤로 부산타워가 보인다. 부산타워에서도 미문화원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망원경으로 미문화원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누가 오가고 무슨 일이 안에서 벌어졌는지 알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것이 중요한가 커피가 나와서 커피를 받아왔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건물들을 내려다보았다. 높은 곳에서 추적하듯 그곳을 살피는 것으로 무언가를 알아내는 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 그곳에 서서 무엇을 보는지 무엇이 보이는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다가 아니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생각하다가 그런데 연기에 휩싸인 미문화원과 그 뒤의 부산타워가 찍힌 사진을 신문에서든 어디서든 본 사람들은 매일 같이 지나다니던 혹은 용두산공원 근처의 미문화원이 불에 탔고 학생들이 그곳에 불을 질렀고 연기에 휩싸였고…… 그러한 것들을 나와는 다른 생생함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P씨에게, 그럼 건축가가 되시는 건가요? 건축가가 되시는 것이 장래 이루어져야 할 그런 골, 목표 이런 것인가요? 물었을 때 그는 그렇긴 한데 외국에서 공부를 좀더 하고 싶다고 말했고 뛰어난 분들 아래서 같이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부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물로 부산타워와 해운대에 새로 생긴 미술관과 예술대학교 공연장과 미문화원을 꼽았었다. 그들이 각각 어떤 공통점을 가지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P씨와 나눈 대화를 생각하니 부산의 전경이 삼백육십 도로 육박해오는 장소에 서 있었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 층계에 서서 토요코인 건물을 보고 있는 기분이 순간 들다 말았다. 


―토요코인을 보고 계신 건가요?

―네.

―왜 보고 계세요?

―글쎄요. 여기 서서 보면 혼자 다르게 보이고 왜 혼자 다르게 보일까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는 것이 좋아서요.


나는 여기서도 토요코인이 보이는지 서서히 걷다보면 왔던 곳으로 되돌아오겠지 생각하며 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내가 무얼 보려 했는지 잊은 채, 눈에 들어오는 것을 집중해서 보다가 그러고는 멍하게 보다가 앉아서 남은 커피를 마시다 또 걷고 처음 보는 건물들 그리고 그곳에는 누군가 들어갈 것이다 그는 아마도 나와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와 비슷하고 나와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결코 만날 수 없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발길을 돌릴 때 건물에서 나와 나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등을 맞대고 있는 건물들을 보다가 바다와 정박해 있는 배들을 보다가 타워를 내려왔다. 토요코인은 찾지 못했는데 토요코인은 원래 어디에나 있으므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타워에서 내려와 팔각정에서 잠시 쉬다 집으로 향했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아파트에서 내려오고 있는 P씨를 마주쳤다. 부산타워를 보고 왔다고 말했더니 어? 보통 야경을 보러 가지 않나요? 그런데 이 시간에 가는 게 더 좋죠. 내려오는 P씨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P씨와 함께 점심으로 석기시대에서 오향장육을 먹었다. 춥지 않은 날이었고 점심에 어울리는 메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내일부터는 출근이라는 것이 떠오르고 다음번에 왜 부산타워가 좋은지 설명해주세요라고 말하려다 문득 다음번은 언제일까. 앞으로의 모든 일을 정해진 것처럼 생각하고 그대로 따르고 싶어졌다. 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을 생각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뺏길 것이다. 다음은 정해졌고 나는 다음에 익숙해져 있으며 그것을 그대로 따른다. 


―정신을 차리세요.

―네. 그래야죠.

―왜 멍하게 계세요?

―조금 피곤한가봐요. 모르겠어요.


나는 목욕탕 이야기를 했다. P씨는 한 번도 아파트 안에 있는 목욕탕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고 그는 일 년에 두어 번 온천장에 있는 목욕탕에 간다고 말했다. 어제 바에 가는 길에 목욕탕 굴뚝을 봤던 것이 떠올랐고 다음에는 거기에 가자. 그렇게 정하고 따르자. 오향장육은 작은 것을 시켜도 혼자 시키면 남기는데 같은 것을 둘이서 먹으면 다 먹는다는 사실이 가게를 나설 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언덕길에서 손을 흔들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덜 읽은 책들을 가방에 챙기고 그러나 『티보가의 사람들』은 테이블 위에 두었다. 청소를 좀더 하고 쉬다가 기차역으로 향했다. 연휴는 어제로 끝났지만 역 안은 붐볐고 사람들은 짐을 들고 여기저기로 실려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웃는 표정으로 보이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로 돌아간다는 것은 웃게 되는 일인가봐 생각하며 나 역시 어서 서울로 실려가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