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봄이 되면 온천장에 벚꽃이 많이 핀다고 하였다

영도에서 남포동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성당에 앉아서 미문화원 계단을 떠올리던 것처럼 몇 달 전 그곳에 갔던 것을 생각했다. 사실 이전에도 몇 번 그곳에 들른 적은 있었다. 길을 걷다 오래된 건물이 보였고 고풍스럽고 튼튼해 보이는 그 건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좀더 천천히 그 건물을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부산에서 진행되는 전시에서 옛 미문화원 건물인 부산 근대역사관과 관련한 원고를 의뢰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추천한 사람은 이전에 전시 큐레이터와 작업한 적 있는 소설가와 예술지원 행정기구에서 일하는 친구였다. 큐레이터는 두 사람에게 각각 이러한 원고를 의뢰해야 하는데 적절한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하였고 둘은 모두 나를 추천했다. 그럴 때 그 일이 내게 오지 않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나는 나에게 일을 의뢰하게 된 이유를 부원아파트가 보이는 호텔 로비 카페에서 여름이 끝나갈 무렵 듣게 되었다. 두 친구는 나를 추천한 후 나의 연락처를 그에게 알려줘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좋다고 하였다. 아, 그런데 전시 큐레이터는 덴마크인이고 코펜하겐에서 활동하고 있는가봐. 이번 주말 서울에 갈 일이 있다는데 괜찮으면 만나봐. 정말로 잠시 후 영어로 메시지가 왔다. 큐레이터는 혹시 만날 수 있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만나는 건 좋아. 그런데 나는 이번 주말 부산에 갈 예정인데.

―아 나도 부산에 있다가 토요일에 서울로 가는데. 그럼 토요일에 부산에서 보는 건 어때?

―그래 좋아.


처음 보는 덴마크인 큐레이터와 주말 오후 부산역 근처 호텔 로비에 앉아 부산 미문화원이었던 부산 근대역사관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나는 오랜만에 영어로 말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맞은편에 앉은 이 사람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우리의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가는지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려 했지만 잘되지는 않았고 어떻게든 흘러가겠지 하는 생각 이 일을 하게 되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카페 테이블에 부산 지도를 펼쳐놓고 생각날 때마다 지도를 살폈다. 내가 주로 다니는 곳은 이 근방이야. 부산역 주변으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가 아니 좀더 커도 될 것 같아 좀더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는 시장과 근대역사관이 흥미롭다고 하였다. 그러다 고리원전과 다대포와 영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고리원전은 바닷가에서 보인다고. (뭐라고?) 원자력 발전소가 바닷가에서 보인다고. 네가 바닷가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는 말이야. (아.) 나는 바다를 한 군데 꼽자면 다대포를 좋아해. 그렇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 근방에 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방금 전 그렸던 작은 동그라미를 가리키며 이 근처에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 이야기를 하자, 정말로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는 웃지 않고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너는 서울에 갔다가 다시 코펜하겐에 갔다가 일이 생기면 다시 부산에 오는 거니? 


―어 그런데 괜찮아. 괜찮아. 정말 익숙해졌어. 


왜인지 길에 사람은 적고 품에 안은 도넛은 아직 따뜻했고 따뜻하다고 생각한 동시에 튀긴 밀가루의 풍요로운 냄새가 맡아졌다. 최선생의 사무실에서 최선생과 도넛을 먹으며 지난여름 어느 오후 호텔 로비에 앉아 미문화원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을 말했다. 


―그래서 글은 쓴 거야?

―썼고 쓰고 있어요.

―썼다는 거야 쓸 거라는 거야?

―둘 다예요.


나는 웃고 최선생은 뭐든 약속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거리낌 없이 엄격함을 드러내는 이런 방식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봉래성당에 들른 이야기도 하였는데 그는 검은 고양이는 아주 느긋하다고 말했다. 정글의 사자처럼 아주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니까. 나는 정글의 사자가 정말로 아주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일까 잠시 생각하다 말았다. 이 도나스집도 정말 오래된 곳이야 내가 처음 회사 다닐 때 그때도 있었다니까. 그러니까 진짜 오래된 곳이지. 


―그때도 짧은 머리였어요?

―짧았던가? 아니다 그때는 길어서 파마하고 다녔다. 진짜 어렸는데 그래도 아주 잘하려고 했다 뭐든.


최선생은 82년 미문화원에 불이 나던 그날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아직 쌀쌀한 봄이었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는데 그래서였는가 그래서 불이 금방 붙었는지 모르겠다. 최선생은 골똘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연기가 주변 건물의 열어놓은 창에 들어올 정도로 엄청나서 문을 닫고 일을 하다가 몇몇은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일이 남은 최선생은 기침을 하며 남은 일을 했다고 하였다. 밤이 되어 돌아가는데 지하도 계단을 내려가다 구두를 신은 채로 넘어졌고 다리는 접질렸고 무릎에선 피가 났다. 위로 올라간 치마를 보고 지나가던 세 명의 남자는 휘파람을 불었고 그중 한 명은 최선생에게 맞으라는 듯이 겨냥하여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지나가다 다시 돌아와 치마 안으로 손을 넣어 다리 사이를 만졌다. 이 모든 일이 십 초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났고 최명환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얼른 치마를 내리고 밝은 곳으로 밝은 곳으로 뛰듯이 다친 다리를 끌며 걸었다. 오천원어치 도넛 세트의 절반을 먹은 나와 최명환은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자세는 자연스럽게 의자에 기대고 있고 하루에 도넛을 네 개쯤 먹으니 몸이 무겁고 졸렸다. 나른한 오후였다. 오늘은 안 가본 곳까지 멀리 가볼까봐. 많이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도넛을 먹는 것은 어떤 전통이라고 해야 할까 습관이 되어 내가 부산에 있을 때면 최명환은 성당에 다녀오는 길에 도넛을 사서 사무실로 불렀고 우리는 도넛을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휴지로 닦아도 기름진 손가락을 한 채로 커피를 마시고 걷고 또 걷는다. 


미문화원 방화 사건 며칠 뒤 최명환은 지하도를 지나기 싫어 길을 돌아가다가 어느 병원 앞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오십대 남자 둘이 빨갱이들은 죽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최명환의 옆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최명환의 코와 미간에 깊은 주름이 순간 생겼다 사라졌다. 그때 최명환은 파마머리였겠지. 다친 다리가 다 안 나아 구두를 신지 못하고 스타킹에 운동화를 신은 발로 걷고 또 걷던 최명환. 최명환은 그 이야기를 듣고 왜 그랬는지 남자 둘이 선 바닥 옆에 소리를 내어 침을 뱉었다고 했다. 도넛은 맛있고 최명환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떨 때 오후의 시간은 영원한 것 같다. 소파에서도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는 최명환은 어디 살펴보면 일기 같은 게 나올지 몰라 하고 말하였다. 죽어도 괜찮다 그 정도가 아니었거든. 아주 심한 말이었겠지? 아주 심한 말이라서 듣고 몸서리가 쳐졌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집에 오자마자 막 뭔가를 썼던 기억이 나거든. 나는 더 심한 말이 뭘까 잡아 뜯어 다 쓸어버리고 찌르고 목을 베고…… 심한 말을 생각하고 무엇이든 그것을 글로 써보면 처음 들었을 때의 생생함은 옅어져서 모든 것이 덜 무서워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창밖에서는 아주 짧게 가늘고 가벼운 비가 내리다 말았고 사무실 창을 열었을 때 비에 젖은 흙냄새가 가볍게 밀려왔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온천장 같은 데 가서 몸을 담그고 온천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을지도 몰라. 창을 잠시 열어둔 채 밀려오는 차가운 바람과 비 냄새를 맡았다. 지금도 나는 누군가 죽어도 좋다는 이야기/ 어떤 사람들은 나라에서 쓸어버려도 좋다는 이야기/ 부족하고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은 흐름에 탈락되어 죽어버려도 좋다는 이야기/ 그런 사람들은 폐를 끼치지 말고 얼른 죽어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어쩌면 매일 내가 듣는 것은 보는 것은 얼른 그것을 행하라는 사인일지 모르겠고 우리가 공평하고 공정하게 두 손에 각각 빵 하나씩을 쥐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누구도 빵을 세 개 쥐어서는 안 되고 손이 없는 자는 손을 내밀 수 없으므로 그것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만드는 것은 낭비이고 새로운 방법을 만드는 동안 실수가 생길지 모르므로 손이 없는 자가 빵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당연한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고 세상 모든 곳에서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커피를 다 마신 최선생은 불을 붙인 학생 중 한 명과 같은 성당에 다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김은숙씨인가요?


창 앞에 선 최명환의 짧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쌀쌀하지만 춥지 않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언제부턴가 뜨거운 돌을 입에 물고 있었던 것 같아 창가에 서서 차가운 바람을 맞았다. 나는 서 있는 최명환의 뒤에 서서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파마머리를 고무줄로 묶고 늦게까지 일을 하다 잠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 82년의 최명환을 생각했다. 구두를 신은 채로 뛰다 넘어지고 얼른 치마를 털고 일어나 뛰는 최명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얻어맞은 것도 아니고 돈을 빼앗긴 것도 아니고 모욕을 당한 것은 더더욱 아니고 얼른 뛰어서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창가로 다가갔을 때 다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문을 닫지 않고 작은 물방울이 우리의 소매 걷은 팔과 손등으로 뛰어드는 것을 뛰어들다 사라지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 

가방을 챙기고 일어설 때 최명환은 사무실 캐비닛에서 여러 개의 우산 중 가장 좋은 것을 골라주었다. 고개를 숙이고 손을 흔들고 나갈 때 왠지 나를 이곳에 숨겨주세요 외치고 싶은 기분이 들다 말았다. 사무실은 숨기 좋은 곳 같았다. 서울에서 나쁜 짓을 저지르고 부산으로 도피한다면 이곳이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문을 닫으면서 사진을 찍듯 사무실의 모습과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는 최명환과 스카프를 꺼내어 두르는 동작을 기억해두었다. 손에서는 여전히 맛있는 냄새가 났다. 걷다 멈추다 계속 걷기를 반복하며 진시장까지 걸었다. 튀긴 탄수화물을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될까? 시장에서 호떡을 사 먹고 피곤해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호떡은 정말 맛있었다. 다 먹고 보니 코트에 녹은 설탕이 묻어 있었다. 그걸 떼면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왔을 때 명절이어서인지 평소보다 아파트가 더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씻으러 가기 전 남자친구와 잠시 통화를 했고 씻고 나와서는 티보가의 사람들과 잠시 함께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다. 티보가의 사람들에게 자크에게 앙투안느에게 의지하고 싶었고 실제로 의지하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자크를 보고 있었고 자크도 나를 믿을 것이다. 

내가 부산에서 휴일의 며칠을 보내고 있던 사이 자크는 어느새 제네바로 가 있었고 혁명가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기사를 쓰며 돈을 버는 자크는 제네바의 여름 한낮을 걷는다. 나는 20세기 초의 내리쬐는 햇빛은 지금과 다를 것인지 분명히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계절의 묘사는 어느 때고 생생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을 하자 내일 아침 창으로 쏟아져내릴 햇살이 미리 손에 쥐어진 것 같았다. 자크가 걷는 여름의 제네바가 한밤의 내가 있는 곳으로 순간적으로 머물다 가고 시간이 지난 후 어느 날 나는 제네바의 여름 한낮이 예고 없이 다시 또 나를 찾아오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나는 그 순간들과 함께 누워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생생하게 닥쳐오는 책 속 사람들을 생각했고 그러다보면 그 공기 안에서 잠이 들 수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옷만 대충 걸치고 밖으로 나와 전복죽을 먹었다. 따뜻한 기분이 들었고 걸어서 근대역사관까지 갔다가 벤치에 앉아서 유자차를 마셨다. 82년의 3월, 3월이면 아직 추운 날씨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화물질을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 최명환과 근처 백화점에서 미문화원 건물을 보고 있을 남자를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계속계속 걸어다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명환은 70년대의 끝자락 학생들이 시민들이 독재 타도 유신 철폐를 외치는 것을 사무실에서 집으로 가는 주말 길 위의 어디선가 들었을 것이다. 불을 붙인 이들도 이 거리를 계속 걸어다녔을 것이다 뛰어다녔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79년 부마항쟁과 82년의 일을 당연한 일처럼 연결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82년 미문화원에 불을 붙인 이들은 79년 부산 거리거리를 뛰어다니며 소리 높여 독재 타도 유신 철폐를 외쳤을 것이다. 

몇 년 전 우연히 일본에서 텐트 연극을 보게 되었을 때, 텐트 연극을 하는 사쿠라이 다이조는 82년 3월 부산 미문화원이 불타던 날 서울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광주로 가기 전 들른 서울에서 그는 서울대의 활동가들과 술을 마시고는 통금 때문에 함께 여관에 들어갔는데, 다음날 아침에 여관을 나오니 호외가 돌았고 호외를 본 활동가들은 여관을 나와 말없이 다급하게 흩어졌고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 체포당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언젠가 그의 공연을 보고 난 후 밥을 먹으며 들었다.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흩어졌고 순식간에 흩어졌다는 것을 설명할 때 손의 제스처. 그에게 왜 서울에 왔느냐고 묻자 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뉴스로 보고 광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82년이 되어서야 실현되었다고 하였다. 그들이 술을 마시기 전 서울의 운동가들은 그를 붙잡고 묻는다. 너는 광주를 보았지? 뉴스로 광주를 보았지? 그는 보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보았느냐고 그를 둘러싸고 묻는다. 다음날 사람들은 흩어지고 그는 광주로 향했다. 1982년의 광주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80년 5월을 뉴스로 본 광주를 아는 일본인이 무언가를 보고자 광주로 간다면, 반대로 대학에서 선배들이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할 때 그건 선동이라고 광주 사람들이 빨갱이들이라고 군인이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할 리가 없다고 다 거짓말이라고 믿는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관철하기 위해 1982년 광주로 간다면. 1980년이 아닌 1982년의 광주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는가. 그렇다면 광주는 그들에게 무엇을 보이고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가/ 혹은 광주가 무엇인가를 증명해야 하는가? 내가 보았던 사쿠라이 다이조의 연극 중에는 ‘미래 기억’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연극이 있었다. 일본어로 진행되는 공연이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나는 그 제목을 가끔 떠올렸다. 그러니까 다른 시간을 살 수 있었다. 미래를 살고 와야 할 것을 살아낸다면 미래를 기억이 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을 미래를 기억이 되도록 살아가고 있을 때 어느 날 그것이 보인다면 그럼에도 그것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미래로 우리 앞에 벌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유자차를 다 마시니 추웠는데 아까는 따뜻했던 종이컵이 이제는 식어 있었다.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젖히고 무엇이 보이는지 반대로 어디서 어디에서 나를 볼 수 있는지 내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벤치에 앉아 고개를 젖히고 있는 사람이 어디에서까지 보이는지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여기서 뭐하세요?

―어? 여기서 뭐하세요? 저는 그냥 있어요. 그냥 놀러왔어요.


조무영씨를 보기 전까지 나는 최명환을 제외하고 부산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조무영씨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나는 이전 직장에서 그를 일 때문에 만난 적이 있었다. 나도 그에게 뭐하느냐고 묻자 그는 자기는 이 근처에 산다고 하였다. 


―명절인데 어디 안 가세요?

―다 부산 살아서 뭐 똑같습니다. 점심은 드셨어요?

―아뇨, 드셨어요?

―같이 드실래요?

―아…… 같이 먹을까요?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간짜장을 먹었다. 중국집으로 들어가 왜인지 고민 없이 마치 이전부터 먹고 싶었던 것처럼 둘 다 간짜장을 시켰다. 빠르게 나온 두 그릇의 간짜장을 조용히 말없이 맛있고 빠르게 먹는 두 사람.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같이 술을 마시기로 하고 그런데 정말 마시게 될까? 일단은 커피를 마셨다. 보수동 헌책방들 사이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별로 춥지 않은 날씨였고 지나는 사람들은 명절이어서인지 어딘가 들뜬 얼굴이었다. 시장에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요즘은 무얼 하시냐고 물었는데 그는 무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왜 무얼 하는지 모르세요? 묻자 그는 갑자기 내 눈을 똑바로 보며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 시간이 난다면 내일 밤에 보기로 하고 헌책방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내가 사는 자세야말로, 무얼 하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하지만 자꾸 물어보면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하는 뭐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나? 일단은 쓰고 있는 것을 열심히 쓰겠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걸어 다시 미문화원 앞 벤치에 앉았다. 사람들은 지나가고 가끔 긴 파마머리를 고무줄로 묶고 블라우스에 팔 토시를 한 최명환이 이곳을 멀리서 보고 있다고 옷에서 나는 탄냄새를 맡으며 한밤중 불이 났던 건물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이미 여러 번 읽은 부산 근대역사관의 과거를 읽었다. 전시된 사진 속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의 키는 시원하게 컸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창을 통해 보이는 옆 건물의 간판을 한참 바라보다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온천장으로 가 근처에 보이는 목욕탕에 갔다. 오래되었지만 깨끗한 목욕탕 건물이었다. 입구에서 샴푸를 사고 돈을 내고 수건을 받아왔다. 명절이었지만 의외로 사람이 별로 없었고 샤워를 하고 온탕에 들어가 아직 배가 부르다고 생각했고 최명환과 처음 만난 곳은 목욕탕이었고 우리는 온탕에서 서로를 처음 보았고 나는 최명환이 부산에서 처음 알게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오늘 이전에 알고 지내던 조무영을 만났고 그런데 그는 서울에서 만났으니 부산에서 처음 알게 된 사람은 최명환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 안에 몸을 담근 채 미문화원 건물의 계단과 작은 창과 그 창에서 보이는 간판들과 이십대 후반의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은 최명환이 검게 그을린 창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제 최명환의 옆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들었고 최명환의 옆얼굴로 바람이 흐르고 흔들리는 머리카락에서 그의 얼굴로 흐르는 바람이 보였다. 그는 거의 미친 여자 취급을 받았는데 나이가 들었으나 결혼을 하지 않았고 혼자 살았고 가족에게 돈을 다 주지 않고 자기 돈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왜 불이 났을까 흔들리는 바람과 불안하게 흔들리는 나뭇잎과 간판을 보는 그는 어두운 거리를 뛰면서 집으로 향하고 책을 빌리러 향했던 미문화원 도서관을 떠올리고 책들은 금방 타버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잿더미가 된 책들 이미 책이 아닌 잿더미를 생각하고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일본어를 공부했다. 어떻게 돈을 모을지 불릴지 생각하고 회사에서 가져온 신문을 읽고 또 읽었다. 탄냄새가 나는 블라우스와 치마를 화장실에 걸어놓고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나면 화장실을 채운 더운 김이 더러운 것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국제시장에서 사온 헌옷들에 모두 뜨거운 김을 쐬었다. 헌옷에는 뭐가 붙어 있을지 모르니까 뜨거운 김을 쐐야 해. 헌 신발을 함부로 사면 안 된다고 식당 아주머니가 최명환에게 말했다. 신발에 뭐가 붙어 있을지 모른다. 최명환은 헌 신발을 신고 또다른 헌 신발을 신으면 좋은 것 나쁜 것이 서로 싸우지 않을까 좋은 것이 결국 이기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생각하며 헤쳐나갔다. 나는 온탕에 몸을 담근 채 최명환의 화장실을 채운 김과 밤의 남포동을 뛰어가는 최명환의 뒷모습을 보았다.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고 그는 내 몸이 좌우가 다르다고 했고 다리를 꼬고 앉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나는 몸을 뒤집고 옆으로 눕고 다 끝이 나곤 돈을 드리고 다시 온탕에 몸을 담그다 샤워를 하고 목욕탕을 나왔다.

봄이 되면 온천장에 벚꽃이 많이 핀다고 하였다. 봄은 금방이고 나에게는 부산에 잘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