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다른 세계에서 진행되는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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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빌라에서 전세를 살면서 부산의 오래된 아파트 월세 계약을 했다. 옷가게 주인에게 떠밀려 옷을 산 정도와 비교가 안 되게 심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한 달에 한 번 부산으로 가서 글을 써야겠다고 그러면 되는 것이라는 식으로 정리를 하려 했다. 굉장히 비경제적인 결정이라는 생각과 무언가를 해버리고 싶었다는, 그래서 해버렸으니 잘했다는 생각이 뒤엉켜 한동안 머리가 아팠는데 다시 부산에 가려고 짐을 챙길 때쯤에는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어쩔 수 없지 쪽으로 마음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노트북과 입을 옷 말고는 따로 가져온 것도 없었고 이불도 근처 진시장에서 사왔다. 아직 주소도 정확히 못 외우는 그 집의 문을 열면 다른 사람이 살고 있고 아니 그전에 열쇠가 맞지 않아서 문이 열리지도 않고 최명환은 전화를 여러 번 걸어도 받지 않고 나중에는 아예 결번이 되고 부동산의 문은 닫혀 있고…… 그런 것을 상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여러 번 했지만 집은 당연히 그대로였고 테이블 위의 전기 포트도 그대로였다. 서랍을 여니 인스턴트커피도 그대로였고 찬장을 여니 컵 하나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짐도 풀지 않은 채로 커피포트를 닦고 물을 끓였다. 

늦은 시간에 와서 그때는 몰랐으나 며칠 묵어보니 옆집은 낮시간 내내 찬송가를 부르거나 기독교 관련 방송인지 녹음된 설교인지를 틀어두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옆집에서 들려오는 예언 같은 말씀을 들었다. 만약 이곳이 감옥이고 나는 갇혀 있다면 책도 없고 나갈 수도 없고 들리는 것이 오직 저 방송이라면 그리하여 내게 저 음성이 빛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자 옆집에서 들리는 소리가 중요한 예언처럼 들렸다. 심하게 거슬리거나 괴로운 소리로 느껴지지는 않았고 누군가의 예언이라고 어느 정도 인정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구조가 파악이 되지 않는 아파트 한 호수를 차지한 채 앞으로의 나의 미래를 짐작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솟구치는 뭔가 좋은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 어딘가로 들어가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 그러고 보니 어딘가로 들어오기는 하였다. 그리고 찬송가는 이어지고 지금 이 설교를 듣고 계신 여러분의 미래는 천국으로 향하는 길과 맞닿아 있습니다. 창에서 나를 향해 빛이 내려와 내 왼쪽 몸을 비추고 이 빛은 천국으로 향하는 길인가 벽 너머로 예언처럼 들려오는 설교를 들으며 아주 잠시 그대로 믿어버렸다. 벽에 기댄 채로 서울에서 가져온 책을 조금 읽다가 책을 덮고 잠시 잠을 자다 일어나, 쓰려고 하다가 조금 쓰다가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집을 나왔다.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석기시대로 가 오향장육을 먹었다. 사람들은 다들 술을 마시고 있었고 나는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며 오향장육을 먹었다. 맛있었지만 양이 많아 남겼고 아까워서 포장을 해서 일어났다. 언젠가 친구가 오면 오향장육과 군만두를 같이 먹어야지. 남기지 말고 둘 다 먹어야지. 언덕을 내려와 걷다가 백화점 옥상으로 올라가 바다를 보았다. 백화점을 나와 바다를 향해 걸었다. 사람이 드문 길을 바다를 따라 걸으며 바닷바람이 머리를 할퀴지만 아주 춥다고는 할 수 없고 오랜만에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퇴근했니 집이니 저녁은 먹었니라는 질문에 엄마에게 어디에 있다고 말을 못하고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는다고 하였다. 곧 집에 들어갈 거야. 나는 곧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직 나조차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지만 나에게는 부산의 집이 있었다. 

백화점이 생기기 전의 이 근방 어딘가를 헤매다 여러 개의 점집과 오래된 횟집을 보았다. 점집에는 점집임을 알리는 낡은 깃발이 바닷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낡고 엉성하게 지은 집들은 서로서로 의지하며 잘 붙어 있었다. 나는 전어회를 먹고 있었고 맞은편 할아버지들은 심지어 한국전쟁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정말로 한국전쟁을 생생하게 기억하나요 그렇다면 나이가…… 그렇게 바다를 따라 조금 걷다가 바닷바람을 묻히고 집으로 돌아오자 설교도 찬송가도 들리지 않았고 나는 보일러를 틀고 보일러 소리가 징 하고 잠시 들렸다. 그 소리는 예정된 신호 같았다. 지금 이 설교를 듣고 계신 여러분의 영광된 미래는 천국으로 향하는 길과 맞닿아 있습니다. 나는 설교를 들으며 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와 얇은 이불 위에 누워 잠이 들었고 자다가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꿈을 꿨고 나는 겁에 질렸으나 도망가지 못했고 그러다 어떻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했다가 다시 긴장이 되기 시작했고 그것을 반복하는 가위에 눌렸다. 새벽에 깨어나 다시 잠들려 애쓰다보니 잠들 수 있었다. 언젠가의 꿈에서는 나는 두 마리의 개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았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서 어제 쓰다 만 부분을 읽어보았다. 배가 고팠고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웠다. 12월 초였고 서울에 비하면 따뜻했다. 그래도 두꺼운 이불을 하나 더 사야 할지 가습기를 사야 할지 어제는 손빨래한 속옷을 널어둔 것으로 가습기를 대신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옷을 입고 씻고 나와 걸었다. 용두산아파트 앞을 지날 때는 얼마 전 나는 저 안으로 들어갔었지 생각했지만 이곳을 아는 것 같다는 혹은 익숙하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들어가보기 전보다 모르는 것 같은 낯선 느낌이었다. 여전히 매점 너머 경비 아저씨가 보였고 그는 나를 보고 있었고 주민인 척 올라갈 수 없을 것이다. 부산 미문화원으로 향했는데 건물 앞 벤치에 햇빛이 드리워져 있었고 바람은 불었지만 해가 드는 그럭저럭 괜찮은 날씨였다. 

부산 미문화원은 이제는 부산 근대역사관이라는 이름이고 한때는 부산 아메리칸센터라는 이름이었다. 이 건물이 1999년 미국 정부에서 한국 정부로 반환되었을 때의 이름이 부산 아메리칸센터였다고 한다. 반환 운동을 보도하는 기사 사진을 보면 미국의 해당 건물 무상 점거에 대한 비판과 SOFA 조약에 대한 반대와 함께 일제에 의한 역사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피켓도 같이 보이는데 그것은 이 건물의 시작이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 지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은 1920년 건립된 서양식 건물로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 지점으로 사용되다가 해방 이후 부산에 진주한 미군 숙소로 사용되다 1949년부터 1999년까지 미문화원으로 사용되었다. 1999년은 옛날이라고 느껴지는지 얼마 전이라고 느껴지는지 자기 자신을 축으로 생각하면 어떤 시기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1999년 이전 이 건물에서 오래도록 근무한 사람이라면 다르게 느낄지 모르겠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부산의 근대 역사와 미문화원 건물의 역사를 따라가며 걸었다. 1969년 이곳에서는 미국의 달 착륙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회가 열렸다. 나는 그 전시를 갔을 사람들, 이곳에서 책을 보고 책을 빌리고 미국 유학을 문의하던 사람들을 그려보고 그들이 제시하는 미래라는 것이 있다면 그 손짓 그대로 따라가보고 싶었다. 

부산 근대역사관 건물 계단을 내려갈 때면 작은 창으로 옆에 서 있는 건물의 간판이 보였다. 이층에서 일층으로 내려갈 때 점집이 보였고 그 너머로 인삼 가게 간판이 보였다.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잘 관리된 곳이었고 이곳이 이전에는 도서관과 상영관과 또 어떤 시기에는 대사관 업무를 겸한 곳이었다는 것이 잘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이곳을 오갔을 미국이라는 곳을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을 학생들을 떠올리고 그들이 어디로 흩어졌을까 생각하고 그러다 이곳에 불을 붙인 이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물으며 미문화원에 불을 붙였다. 직접 불을 붙인 네 명의 젊은 여성 중 한 명은 후에 작가가 되고 몇 권의 책도 번역하였다. 나는 그가 번역한 『밥 딜런 평전』을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은 적이 있다. 그전까지는 밥 딜런에게 별다른 관심도 없었고 좋아한 것은 닐 영이나 레너드 코언이었고 단지 옮긴이의 말을 보기 위해 빌린 것이었으나 읽다보니 의외로 밥 딜런의 여러 면모들이 흥미로워서 끝까지 다 읽게 되었다. 


밥 딜런은 1962년 초 봄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을 썼고 그는 초연을 하기 전 “지금 부를 이 곡은 저항곡이 아니며 그런 식의 무엇도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저항곡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누군가를 위해서,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것을 쓸 뿐이다”라고 소개했다.* 이후 딜런은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응하여 <폭우가 쏟아지네A Hard Rain’s A-Gonna Fall>를 쓴다. 이후 해당 곡의 초연을 듣기 위해 카네기홀에 모인 청중 모두 <폭우가 쏟아지네>가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노래라고 생각했다. 카네기홀의 청중은 딜런의 새 노래에 감동받았고, 몇 주 후 실제로 미사일이 발견되자 그들은 경악했다.**

 이 부분을 읽다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와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금에서 그것을 지치지 않고 찾아내는 사람들은 이미 미래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와야 할 것들에 몰두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와야 할 것이라 믿는 것들을 이미 연습을 통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어떤 시간들은 뭉쳐지고 합해지고 늘어나고 누워 있고 미래는 꼭 다음에 일어날 것이 아니고 과거는 꼭 지난 시간은 아니에요. 나는 이 책의 번역자는 광주라는 사건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그 이후 시간의 의미를 묻고 답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80년 5월에 그들 자신이 광주에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였음을 역시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반복한 것은 그때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면이 아니라 그때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미국이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미래를 연습하였을지는 알 수 없었다. 불을 붙인 이후의 시간을 미래라 생각하였을지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그런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인지 그가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믿고 살아내어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겨 반복하여왔을 것이라는 짐작은 계속되었다. 


밥 딜런은 누구에게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를 들었을까. 그것은 필연적으로 보이고 알게 되고 귀에 들리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을 들리는 것을 받아 적었다.

 

미문화원을 방화한 이들이 그날 부산 시내에 뿌린 성명서는 다음과 같았다.


―미국은 더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해방 후 지금까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경제수탈을 위한 것으로 일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소위 우방이라는 명목하에, 국내독점자본과 결탁하여 매판 문화를 형성함으로써,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그들의 지배논리에 순응하도록 강요해왔다. 우리 민중의 염원인 민주화·사회개혁·통일을 실질적으로 거부하는 파쇼 군부정권을 지원하여 민족분단을 고정화시켰다. 

이제 우리 민족의 장래는 우리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 땅에 판치는 미국세력의 완전한 배제를 위한 반미투쟁을 끊임없이 전개하자. 먼저 미국문화의 상징인 부산  미국문화원을 불태움으로써 반미투쟁의 횃불을 들어 부산시민에게 민족적 자각을 호소한다.


1982. 3. 18***



그와 함께 이런 문서도 있었다.****



1. 민주주의를 원하는 광주시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전두환 파쇼정권을 타도하자.

2. 최후발악으로 전두환 군부정권은 무기를 사들여 북침준비를 이미 완료하고 다시 동족상잔을 꿈꾸고 있다.

3. 진정한 통일을 원하는 민주시민들을 탄압 구속한 채, 허울 좋은 통일정책으로 더이상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

4. 한일경제협력 등 한국경제를 일본에 예속시키는 일체의 경제협상을 즉각 중단하라.

5. 88올림픽은 한국경제를 완전히 파탄 나게 할 것이므로 그 준비를 즉각 중단하라.

6. 노동자, 농민, 시민들은 더이상 비참한 가난 속에서 시달릴 수 없다.

7. 미국과 일본은 더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나라.

8. 전두환 파쇼정권에 아부하는 관제언론 어용지식인들은 자폭하라.

9. 졸업정원제, 교수추천제 등으로 학원을 통제하고 있는 5·30교육정책을 즉각 철폐하라.


사건 직후 불을 붙인 학생 몇몇의 출신 학교인 고신대학교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서


고신대학 36년간 역사의 흐름속에서 하나님께서 저희 고신인들을 사랑하셨음을 확신합니다.


금번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우리 학생 몇몇이 관련되었다는 보도는 가슴을 찢는 듯한 통증을 안겨다 주었읍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이 일에 전혀 관계가 없으며 우리의 떳떳한 입장을 분명히 하여야 겠읍니다. 


이 시점에 있어서 우리 고신인들은 겸손한 마음과 담대함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겠으며 이번 교훈을 통하여 조금의 동요도 없이 학문과 신앙에 더욱 매진하여야겠읍니다. 


1982.3.30. 

고신대학 총학생회장*****



우리 민족의 장래는 우리 스스로 결단하기 위해 사람들이 반복한 미래는, 겸손한 마음과 담대함으로 반복하는 천국의 미래와 기도의 시간은. 두 미래는 다른 곳에 존재하며 사람들은 두 세계를 오갈 수 없다. 하지만 천국의 미래를 그리는 자들이기에 민족의 장래를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미래를 연습하는 훈련을 거치겠다는 것과 아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미래를 누구보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각오일 것이다. 그들이 손으로 만지고 반복한 미래는 어떤 것이었을지 다시 생각하다가 그것을 묻고 되묻고 답하고 다시 묻는다면 끌어온 미래도 이미 일어난 과거로 혹은 지금 살아가는 현재로 믿을 수 있는가. 


―88올림픽은 한국경제를 완전히 파탄 나게 할 것이므로 그 준비를 즉각 중단하라. 


82년에 반복하여 그려본 88년도와 88올림픽을 생각했다.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는 올림픽 같은 것이 아니다. 올림픽은 사람들이 사는 곳을 헐고 부술 것이고 가난한 이들에게 가야 할 돈이 경기장에 도로에, 속이고 은폐하고 꾸미고 가리는 곳에 쓰이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88올림픽을 생각하면 그것은 참으로 성공적인 올림픽이었습니다. <상계동 올림픽>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지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무척 성공한 올림픽이었습니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한국은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고 냉전의 시대를 지나 평화를 상징하는 모범적인 올림픽이 되었습니다. 화합과 전진Harmony and progress 사람들은 모두 손뼉을 쳤고 지금도 치고 있고 호돌이는 웃고 있고 굴렁쇠는 굴러가고 그 뒤로 비둘기는 날아가는데.

82년에 미문화원을 방화한 이들이 반복한 88올림픽을 떠올려보니 모두가 아는 성공적인 88올림픽은 실제로 모두가 보고 겪은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다른 누군가가 반복해서 만들어낸 다른 세계의 미래처럼 여겨졌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고 미문화원을 방화한 이들이 반복한 88올림픽이 우리에게 당면한 현실이자 미래였고 모두가 아는 올림픽은 ‘88 서울올림픽’이라는 게임 같았다. 누군가는 중간에 실패하고 지고 선수들이 우는 엔딩을 보았겠지만 누군가는 제대로 된 플레이로 비둘기가 날아가는 성공적인 엔딩을 보았겠지 그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기념주화도 만들고 호돌이가 그려진 티셔츠도 맞춰 입고 그랬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게임의 역사에서 짧게 소개된 것으로 본 적이 있다.


집에는 어제 먹고 남은 오향장육이 남았다. 그것을 먹어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먹으려고 군만두를 포장해 갔다. 부산에는 아는 사람이 없지만 길에서 노래하는 사람 중 둘을 알았다. 한 명은 카메라 가게 앞에서 기타를 치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 명은 주로 샹송을 부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둘을 알지만 그 둘이 기타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모습만을 알았고 그들이 무얼 하며 밥을 먹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랐고 그 둘은 당연히 나를 알 리 없었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끝내고 기타와 마이크를 챙기고 걸어서 혹은 버스를 타거나 차를 몰아 자신의 집으로, 혼자 사는 집은 어둡고 혹은 가족들은 그들을 기다리고 그들은 어디로 돌아갈까. 나 혼자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앙동 인근을 걷다보면 가끔 노래하는 그들을 마주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데 오늘은 둘 다 마주치지 못하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서울로 가기 전에 성당을 몇 군데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고신대학교도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같은 가게를 매일 간다면 같은 거리를 매일 지나간다면 언젠가 나도 그 사람을 알고 그 사람도 나를 아는 그런 일이 생기겠지? 나는 일단 아는 사람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용 샴푸와 비누로 샤워를 하고는 몸을 닦고 머리를 말렸다. 만두와 오향장육을 먹었다. 배부르고 맛있었다. 내일 눈뜨면 남은 만두를 먹어야겠다. 많이 걸어 피곤해서인지 자다 깨지 않고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일어났을 때는 왜인지 춥다고 생각하며 잠에서 깼다. 아침 일곱시였고 다시 잠이 들지 않아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이번에 가져온 책은 로베르토 볼라뇨의 단편집이었다. 읽다보니 문득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가 이 책의 번역자와 친구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미국의 볼라뇨 번역자와 일본의 볼라뇨 번역자, 이탈리아와 독일 그리고 한국의 볼라뇨 번역자가 한곳에서 만난다면 그들은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일단은 영어로 처음에 인사를 하게 될까. 『2666』의 번역자들처럼 그들은 우정을 나누고 비밀을 나눌 수 있게 될까. 남은 군만두를 데워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나자 정말로 잠에서 깬 기분이 들었다. 내 생각에 설교는 점심시간이 지나야 시작될 것 같았다. 나는 설교가 들리는 것이 괴롭지는 않았지만 다른 주민들이라고 같을 리는 없었고 그렇다면 이른 오전부터 시작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찬송가는 시작되었고 그와 함께 나는 오늘도 나를 비추는 빛을 보았다. 죄 많은 인간을 축복하고 천국의 미래를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옆집 사는 사람은 무자비한 데가 있거나 이 아파트의 사람들은 무심한 편인가보다. 왜인지 두번째 이유일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복도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마주친 적이 없었고 발소리도 드물게 들렸다. 아직까지는 그러나 천국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서울의 집에서였다면 달랐을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나는 그것을 다른 세계에서 진행되는 라디오처럼 여겼다. 다시 잠들 수 없겠지 책을 읽다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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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한 번 바뀌고 윤미 언니는 할머니와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수미는 성당에서 잠이 들어도 되는지가 궁금했다. 아무도 없는 방 무릎으로 서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쥐고 기도를 하는 흉내를 냈다. 눈을 감고 성당에 있다고 생각하자 무언가 말해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해, 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고 수미는 눈을 감고 가지고 싶은 것들을 생각했다. 원하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 한참을 원하는 것을 중얼거리다가 아, 하고 기도하던 손을 풀고 누웠다. 선풍기를 켜고 누운 채로 교복을 벗었다. 나의 몸은 다 큰 몸일까 나는 이 몸으로 무얼 할 수 있나. 손으로 가슴을 모아 만지다가 팔을 양쪽으로 뻗었다. 팔에는 작게 소름이 돋아 있었다. 주말에는 도서관에 가서 정승이와 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언니는 성당에 가고 책도 조금씩 읽기 시작하였다. 가끔 열린 방문으로 책을 읽는 모습을 볼 때가 있었다. 이전에는 늘 누워 있어서 흰 발바닥이 얼굴처럼 보였었다. 크고 흰 윤미 언니의 발. 수미는 언니의 방으로 가 언니의 책상에 놓인 노트를 펴서 읽었다. 가는 줄의 노트에 푸른 펜으로 많은 것들이 쓰여 있었다. 가장 최근에 쓴 것은 이런 것이었다.


―나를 둘러싼 어른들이 올바르고 불의를 외면하지 않는 어른들이기를 바랐다. 이제는 스스로 그러한 어른이 되는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숨을 잃은 이에게 참회하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 가족의 아픔을 나누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들을 위해 매일 기도를 드린다.


언니는 어떤 어른을 생각하고 있는지 여태까지 어떤 어른들을 만난 것인지 생각했다. 수미가 아는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수미가 아는 어른들은 고작 스무 명이 넘는 정도일 것이다. 방금 전까지 수미는 그들에게 어떤 실망도 기대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담임의 얼굴을 떠올리자 문득 사실은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겁주려 하고 그것이 그들을 우습게 하고 그러나 나에게 친절하려는 사람들이 있고 모두들 집에 가면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모르는 어른들을, 내가 모르고 내가 정체를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사람들을 수미는 만나고 싶었다. 멋있는 사람들을 새로운 어른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언니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를 알고 싶고 언니와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다 알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수미는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고 언니의 많은 것들이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언니의 방을 나와 책 구경을 하러 동네 서점에 갔다. 문제집을 둘러보고 새로 나온 잡지를 보고 눈치를 보며 만화를 보고 집에 돌아왔다. 성당에 다녀온 언니와 할머니가 도넛을 사와서 같이 먹었다. 크로켓과 도넛과 꽈배기가 있었고 할머니의 방에서 상을 펴고 동생과 언니와 셋이서 먹었다. 할머니는 한 개만 먹고 목욕탕에 간다고 나갔다. 동생은 만화를 보고.


―성당에서 잠들면 어떻게 하는데?

―응, 뭐라고?

―갑자기 사람들이랑 있는데 잠이 올 수도 있잖아?

―조는 사람들 있다. 조나보다 한다. 근데……

―근데?

―뒤에서 잔다고 뭐라고 할까. 잠을 못 잤나보다 하지 않을까. 저 사람은 피곤하다 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잠을 잔다 하겠지.

―좋은데? 학교랑 다르네.

―다르다. 진짜 다르다.


팥이 들어간 찹쌀도넛은 먹으면 기분이 좋다. 달고 맛있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줘.

―한다, 하지.

―뭐라고 하는데?

―바르고 이웃을 생각하는 어른이 되게 도와달라고 한다.

―더 멋있는 거 없나?

―그리고 어.

―뭔데?

―많은 것을 배우는 어른이 되게 도움을 달라고 한다.

―그래. 그거 괜찮네.


언니는 웃었고 동생은 나는 나는 하고 뒤돌아 달려와 안겼다. 앞니가 없네. 잇몸에 앞니가 흰 앞니가 아주 조금 드러나 있었다. 밤이 되면 이가 아프다고 우는 동생의 머리에서 인절미 냄새 땅콩냄새가 났다. 나는 어른이 될 것이다. 많은 것을 배우고 배를 타고 먼 곳으로 갈 것이다. 수미는 웃고 떠들면서도 그런 다짐을 반복하였고 그 순간은 가슴이 뜨겁고 출렁거렸다. 

엄마는 돌아와 저녁을 먹자고 하였고 수미와 동생은 도넛을 그렇게 먹었던 것을 까먹은 듯이 엄마가 끓인 수제비를 마구 먹었다. 멸치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엄마는 하루종일 밀가루 먹는다고 말했고 수미는 그건 그거고 수제비는 수제비라고 대답했다. 호박과 양파가 든 수제비를 무김치와 먹고 먹다 빗소리가 들려 문을 여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엄마는 그래서 수제비가 만들고 싶었나 중얼거리고 비가 내리면 수미는 먼 곳에서 누군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는 누군가가 편지를 보내올 것이라고 막연하지만 확실한 예감이 들었고 라디오에서는 얼마 전 극장에서 상영하기 시작한 영화를 소개하였다. 먼 도시에서 사람들이 만나는 서로가 서로의 운명인 두 사람이 야경을 걷고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혹은 서로의 모자람이나 오해 때문에 헤어지지만 결국 다시 만나고 마는 이야기가 좋았다. 그것은 꼭 자신에게 벌어질 일 같았다. 씻고 공부를 하다가 라디오를 들었고 그러고 보니 이것이 장마의 시작인가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그 이듬해 언니는 복학을 했고 아버지는 다시 취직이 되었다. 수미의 가족은 다시 울산으로 이사를 갔다. 수미는 이제 많은 것들을 잊지 않고 모조리 기억하겠다는 생각을 점점 하지 않게 되었다. 수미는 눈앞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것을 뚜렷하게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사간 곳에서는 정승이처럼 가깝게 지내는 친구는 없었다. 수미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독서실에 다녔다. 먼 곳에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만은 변함이 없었다. 밤에 라디오를 듣는 것 말고는 달리 하는 일 없이 학교와 독서실 집을 오가며 지냈다.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었고 자기 전에 종종 울었다. 윤미 언니의 소식은 가끔 들려왔다. 언니는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