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죽은 자들 가운데 살아 계신 분


호랑가시나무숲 교회는 코리아타운 동쪽 끄트머리에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차로 지나치던 맥아더 공원 근처라니. 게다가 피셔맨이 출국 보안검색대에서 압수당한 침 세트를 새로 구입하느라 들른 의료기구상 바로 옆 건물이었다. 교회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건 삼층짜리 상가건물 지하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HOLLYWOOD.

지하로 내려가는 출입구 상단 외벽에 얼기설기 잇대어진 네온등 간판. 백린사 아기 부처상의 영험한 코가 보여준 그대로 엘은 하나였다. 아니, 원래는 둘이었지만 하나에만 불이 들어왔다.

나는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네온 간판을 가리켰다. 피셔맨은 엄지를 세워 보였고 재단사는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혼자 끌어안고 있던 마음의 짐을 깨끗이 잊기엔 미흡했지만, 더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를 감안하면 길에서 허비한 사흘이 천금같이 아까웠다.

경제교류 활성화(맥도날드 북한 1호점은 어디에?), 북한 유학생 유치(북한 학생들도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나?), 떠오르는 관광 코스(칠십여 년이나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냉전의 깜짝 선물 DMZ), 그리고 주한미군 감축(철수를 점치는 전문가도 있었다). 미국 언론은 북한과의 수교로 달라질 미래에 관해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한반도 적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한인 신문 말고 찾아볼 수 없었다.

끔찍한 미래로 탈선하려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어떻게든 되돌려야 했다.

어떻게?

이번만큼은 우리를 부른 그분이 답해줄 차례였다.

어두운 계단 저 밑에서 웅웅거리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요 예배중인가?”

피셔맨이 반색하며 중얼거렸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노랫소리는 찬송가임이 분명해졌다. 저 아래 모인 사람들 중에 그분이 계실 터. 꽉 막혔던 혈이라도 뚫린 듯 온몸에 피가 빠르게 도는 느낌이었다. 오래 누워 있다 갑자기 일어날 때처럼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나는 중심을 잃고 허우적대며 벽을 짚었다.

“김감독, 왜 그러나?”

피셔맨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냄새 안 나나?”

“무슨 냄새?”

“휘발유 냄새.”

“난 모르겠는데?”

피셔맨이 재단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재단사가 뭐라고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기가 증발해버린 듯 숨을 쉴 수 없었다. 간신히 계단을 되올라간 보람도 없이 허겁지겁 삼킨 순두부를 모조리 게워내고 말았다.

“체했나보군.”

피셔맨이 공공칠가방에서 침을 꺼내 손끝에 피를 냈다.

“바깥공기 좀 쐬고 있게.”

“이제 괜찮으니 내려가세.”

내가 허리를 곧추세우며 말했다.

속을 다 비워서인지 손을 딴 효과인지 어지럼증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냄새는 여전했다. 이번에는 무언가 타들어가는 역한 냄새였다. 개를 그슬릴 때 나는 지독한 누린내 같기도 했다.

“이거라도 쓰게나.”

피셔맨이 공공칠가방에서 꺼낸 것은 마스크였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받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코를 단단히 감싼 마스크도 냄새를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코끝으로 파고드는 냄새가 아니라 내 머릿속을 맴도는 냄새인지도 몰랐다. 저 속 편한 찬송가와 달리,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어떤 죄의식처럼.

예배당 안에 있는 모두가 일어나 합창하고 있었다. 우리는 몇 안 남은 뒷자리로 조용히 합류했다. 높다란 층고 때문이었을까. 노랫소리가 머리 위에서 새벽빛처럼 쏟아져 내렸다.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믿는 맘 가지고 가겠네. 믿는 자 위하여 있을 곳, 우리 주 예비해두셨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귓속으로 파고드는 노래가 아니라 네 머릿속을 맴도는 노래. 그것은 내가 아는 유일한 찬송가였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심장에 새겨진 것처럼 익숙한 후렴구. 언제 어디서 들었더라?

그분을 찾는 내 시선은 내내 앞사람들에 가로막혀 있었다. 단상 맨 뒷줄의 성가대원들만 일별할 수 있을 뿐.

흰 성가대 가운을 입은 사람들 중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한 여인이 있었다. 풍성하고 우아한 올림머리, 브이넥이 어울리는 가늘고 긴 목선, 꼿꼿한 자세에서 배어나오는 은은한 기품. 어머니가 거기 서 있었다. 아니, 봉인이 풀린 어떤 악몽 속에 내가 서 있었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던 하모니카, 의문의 하모니카를 두 손에 꼭 움켜쥐고.

하모니카는 어느 날 집을 나간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물건이었다. 골절된 턱뼈에 당황해 아버지가 어머니 손에 쥐여준 멍청한 선물이기도 했다. 입도 달싹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모니카라니.

아버지가 미친 사람처럼 세간을 마구잡이로 집어던질 때 나는 장롱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하모니카를 두 손에 쥔 채로. 어머니는 어디 있을까? 이 지옥 속에 나만 남겨두고 어디로 갔을까? 원망과 두려움 속에 감긴 두 눈. 암흑의 인화지 위로 어느 건물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아버지 몰래 어머니 손에 이끌려 몇 번쯤 갔던 교회. 어느 낡은 건물 지하에 있던 교회. 내 안의 라이카가 최초로 눈을 뜬 순간이었다.

버스를 탔던가? 택시를 잡아탔던가? 가슴이 터지도록 달렸던가?

불길에 휩싸이는 교회. 연습 도중 유일한 출구가 화마에 봉쇄되어 타 죽은 성가대원들.

나는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어머니에게 악마를 불러들인 건 나였다. 내가 어머니의 천국을 불사르는 불씨가 되었다. 꼬리가 붙은 걸 눈치채지 못한 채. 뒤를 밟는 아버지의 존재를 까맣게 모른 채.

죄인은 교회 출입구에 휘발유를 끼얹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영영 아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활활 타오르던 사내를, 손목시계와 함께 라이터를 몸에서 떨어뜨리는 법이 없는 사내를, 머리를 짓이겨 불을 일으키는 성냥처럼 두려움을 짓이기며 자기파괴의 길로 뛰어들 준비가 된 사내를 거기까지 이끈 나 자신이었다.

그 찬송가는 어머니 장례식 때 들은 노래였던가. 아니, 그날 계단을 내려가던 순간 지하에서 새어나오던 노래였다. 어떤 기억은 필사적인 억압으로도 끝내 봉인되지 않는다. 도리어 오래 봉인된 기억일수록 더 강렬하게 복원되는지도 모른다. 육중한 철문 사이로 흘러나오던 불길한 예언의 노래. 그리고 철문에 붙어 있던 어린이 성경학교 안내 포스터까지.

‘참 잘했어요’ 도장의 주인공들처럼 해맑은 아이들의 얼굴 아래 궁서체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소년들이여, 순결하여라!

실내가 보이지 않는 연기로 가득차 숨을 쉴 수 없었다.

얼마나 웅크리고 있었을까. 장롱 속 아이처럼, 암실 속 눈먼 사진사처럼, 소환된 고통 속에서 얼마나 허우적대고 있었을까.

노랫소리가 멎고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 앉고 나서야 나는 웅크린 몸을 펼 수 있었다. 사람들 머리 위로 모습을 드러낸 한 사람 때문이었다.

아아, 마침내, 그분이었다.



이것은 환영인가 백일몽인가, 아니면 기적인가.

그분이 단상 한가운데 뿔나팔처럼 우뚝 서 있었다. 무대 전면을 비추는 강한 조명 탓에 확실치는 않았지만, 살짝 턱을 내민 도도한 자세만으로도 그분임을 알아차리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설교대 앞에 선 그분이 성경책을 펼치고 말씀을 시작했다.

“나는 너희가 한 일을 알고 있다. 너희가 살아 있다는 말이 있지만 실상 너희는 죽었느니라. 그러니 깨어날지어다. 너희에게 아직 남은 것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힘을 북돋워라. 나는 너희가 하는 일이 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완전하다 여기지 않는다.”

낮게 깔리는 허스키 보이스, 먼 우주에서 도달한 신호음처럼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목소리마저 그분이었다.

적어도 환영은 아니었다. 나처럼 몸을 반쯤 일으킨 채 홀린 듯 단상을 응시하는 피셔맨과 재단사가 없었다면 눈과 귀를 믿지 못했을 테지만.

“요한계시록 3장. 심판의 날을 예언하는 성령이 변질된 교회들을 질책하는 대목일세.”

재단사가 나직이 해설을 덧붙였다.

“진짜 목사가 되셨을 줄이야.”

피셔맨도 한마디 보탰다.

“너희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굳게 지켜라. 너희 잘못을 뉘우쳐라. 만일 너희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너희 앞에 나타나리라. 너희는 내가 어느 때 너희에게 나타날지를 결코 알지 못할지어다.”

그랬다. 그분이 언젠가 내 인생에 책갈피처럼 끼어들리라 예감했지만, 소년원 같은 고아원, 아니 고아원 같은 소년원으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아이. 남편 손에 타 죽은 여자의 아들이자 아내를 불태운 남자의 아들. 어머니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길이 없어도,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기 어려웠다. 라이터와 손목시계.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던 두 물건 모두 무의미한 곳에 아버지는 영원히 유폐되었다.

차라리 붙들리길 바랐던가. 도둑이 되어 있으면 그분이 도둑처럼 나타나리라 기대했던가. 오갈 데 없어진 열두 살의 나는 기지촌을 떠돌며 양담배를 훔치곤 했다. 양담배를 소지하기만 해도 십 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던 시절이었다. 길거리에 떨어진 꽁초를 쥐고 눈감으면 어디서 흘러나온 물건인지, 어느 구석에 숨겨져 있던 물건인지 훤히 보였다.

훔친 양담배를 팔아 껌을 박스째 사다 씹었다. 기갈 든 것처럼, 껌 못 씹고 죽은 귀신이 붙은 양, 껌 한 통을 다 까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는 몇 분은 원망과 불안, 두려움과 죄책감, 그 모두가 뒤섞인 검은 감정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었다. 입안을 가득 적시던 단물만이 유일한 구원이던 나날, 진짜 범죄자가 되는 순간에만 죄의식을 잠시나마 떨칠 수 있던 나날이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분이 대뜸 물었다.

“교화 활동으로 원예를 택했더군. 분갈이를 제때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양분이 모자라 잎이 시들고 물이 고여 뿌리가 썩은 채로 서서히 죽어가지. ‘보물섬’군君, 군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어. 어떤 화분에 옮겨 심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꽃을 피울 재능이. 선택은 군의 몫이야. 큰 도둑으로 자랄 화분이냐, 영웅적인 애국자로 자랄 화분이냐.”

그분을 따라 소년원 쇠창살 밖으로 나섰다. 머리에 피도 덜 마른 내게 선택권이 있다고 얘기해주는 어른을 어찌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보물섬이라고 불러주며 보물지도 보듯 하는 분을 어찌 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는 이미 그분의 보물지도였는데. 그분이 찾는 것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보물지도.

그때도 지금처럼 흰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을 들고 내 인생에 처음 나타난 순간은 말할 것도 없고, 기억 속의 그분은 넥타이를 맨 적이 거의 없었다. 목 단추를 끄른 빳빳한 셔츠 깃 사이로 목울대가 복숭아씨처럼 늠름했다. 어서 나이 먹기를 바라게 만들던 성인 남자의 상징.

무대조명의 환한 빛에 눈이 익으니 설교하는 이의 이목구비도 더 또렷해졌다. 눈앞의 형상이 환영이 아니라면 내가 백일몽 속에 있는 걸까. 아니면 무정한 세월이 그분만큼은 비켜 간 걸까. 한 마리 호랑이 같던 젊은 시절 모습 그대로였다.

“사데 교회는 어쩌다 죽은 교회가 되었습니까? 말뿐인 믿음, 실천 없는 신앙은 곧 죽은 신앙인 것입니다.”

죽비 같은 한마디에 객석 전체가 아멘의 바다가 되었다. 그분의 설교는 힘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부름을 받은 목회자였던 것처럼.

“조만간 북녘 하늘이 열릴 것이니, 마지막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이스라엘 백성 하나하나가 승리의 양각 나팔이 되어 지축을 흔들어야 합니다. 공산주의라는 붉은 우상을 집어삼키는 용암으로 들끓어야 합니다. 육백육십육이라는 짐승의 숫자를 지져 없애는 인둣불이 되어야 합니다.”

역시 그분다웠다. 미북 수교를 기회로 여기는 역발상이라니.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또한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였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분이 꺼내든 것은 지폐였다. 액수는 몰라도 미국 달러 지폐가 분명했다.

“몇 달러짜리든 여러분 주머니에서 꺼내 뒷면을 보십시오.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뭐라고요? 인 갓, 위 트러스트.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 맞습니다. 이것은 돈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삼팔선 이북의 마귀떼를 박멸하기엔 헌금함이 너무 가볍습니다. 복음의 최정예 부대가 되기엔 총알이 모자랍니다. 역사적인 선교 사역을 위해선 두 배 세 배 열매를 더 모아야 합니다. 헌금함을 여러분의 성령으로 가득 채워주십시오.”

설교가 끝나기 무섭게 헌금함을 든 사람들이 좌중을 돌아다녔다. 헌금함에는 신용카드, 계좌이체도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 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옷 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성가대가 찬송가를 부르는 가운데 헌금을 마친 사람들이 줄지어 단상으로 올라갔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분 앞에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분이 성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와이셔츠 앞섶에 채워진 핀 마이크를 통해 그분의 음성이 허공에 새겨지듯 울려퍼졌다. 뒤미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분이 성도의 머리에 얹은 손을 천천히 들어올리자 무릎 꿇은 이의 접힌 다리가 스르르 펴지더니 똑바로 선 자세가 되었다. 줄이 당겨진 관절 인형처럼. 아니, 햇빛을 향해 줄기를 뻗는 화분처럼. 아니, 아니, 성령의 입김으로 곧추서는 불기둥처럼.

그 사람만이 아니었다. 남녀노소 어느 하나 예외 없이 그분 앞에 무릎 꿇고 불기둥으로 거듭났다. 예배당 안이 성령의 용광로가 되어 두려울 것 없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어머니의 마지막에도 성령이 함께했을까. 아아 나의 어머니, 내가 죽음의 골짜기로 끌어들인 어머니는 화마도 넘보지 못하는 믿음의 불기둥이 되어 두려움 없이 타올랐을까.

가슴 깊숙한 곳이 저릿했다. 그것은 감히 한 번도 그려보지 못한 그림이었지만, 상상만으로도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어느새 나는 마스크를 벗고 줄 맨 끄트머리에 서 있었다.

“양지 팀, 음지 팀 나눠 축구 했던 거 기억나나?”

피셔맨이 내 뒤에 서며 말했다.

“왕의 무덤 뒤에 있던 축구장, 맨발로 뛰어도 될 만큼 보드랍던 잔디를 어떻게 잊나. 자넨 지루한 얼굴로 골문을 지키곤 했지. 슈팅 방향을 다 예상하면서.”

“한번은 공격수와 일대일로 맞서다 고환을 걷어차였는데 자고 일어나도 통증이 가시질 않는 거야. 엉덩이를 뒤로 쑥 빼고 어기적어기적 걷는데 목사가 불러 세웠어.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대뜸 이러는 거야. ‘빤스 내려보게.’ 무슨 소린가 눈만 껌벅거리고 있으니 ‘왕자와 거지군君은 나를 믿지 못하나?’ 이래. 어떡해, 눈 딱 감고 빤스를 내렸지. 목사가 고환을 쥐더니 두어 번 조물거리지 뭐야. 손안에 든 호두알 굴리듯. 창피고 뭐고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었어. 진짜 믿지 못할 일은 그뒤에 일어났지. 빤스를 추켜올리자마자 통증이 씻은듯 사라진 거야. 놀라서 쳐다보니까 목사가 그러더군.”

“모든 유기체는 일종의 에테르 장場이다.”

재단사와 내가 입을 모아 말했다.

삼팔선 이북에서 역사하라는 말씀 뒤에 숨은 진짜 계획은 뭘까. 흉중 깊숙이 품은 큰 그림을 섣불리 내비치지 않는 분이니. 우리에게 나눠주던 것도 퍼즐의 한 조각뿐. 그 전모는 오직 그분 자신만 알았다. 재단사가 짜는 게 플랜 A라면 그분이 그려내는 건 계획 중의 계획, 다 이루어진 뒤에야 겨우 윤곽이 가늠되는 신묘한 계획, 플랜 X인 셈이었다.

저 뜨겁디뜨거운 행진가 같은 설교 이면에는 얼마나 차갑고 정밀한 설계도가 그려져 있을까. 단상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종교적 광휘로 달뜬 사람들 속에서 반석처럼 서늘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분에게 배운 대로였다.

“인간의 정상체온은 36.5도. 0.1도씩 끌어내릴 때마다 실수는 십 퍼센트씩 줄어들지. 제군들은 뱀처럼 차가워져라. 뱀에게 왜 다리가 없는지 아나? 이브를 유혹한 죄? 성경은 그 자체로 암호첩이어서 행간을 읽어야 해.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지표면에 깔리지 않나. 피를 차갑게 유지하기 위함이라네.”

탁월한 언변만 빼면 목사라는 호칭이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던 사람.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은 가면임이 틀림없었다. 청교도들이 세운 이 나라에서 목사만한 위장 신분이 어디 있으랴.

주머니를 털어 헌금을 내고 마침내 단상에 올랐다. 영원과도 같은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그분과 마주한 순간 더이상 뱀의 냉정함을 견지할 수 없었다. 환영도 백일몽도 아니었다. 그분이 살아 숨쉬는 육신으로 눈앞에 서 있었다.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 카탈로그를 펼쳐 보이던 첫 모습 그대로. 나이를 거꾸로 먹은 저 팽팽한 얼굴도 가면일까. 늙은 피를 젊은 피로 갈아치운 듯한 저 탄탄한 몸도 위장 신분의 일환일까. 김일성도 실패한 일을 기어이 이루어낸 걸까. 그러니까 이것은 기적인가?

“실장님! 저희가 부름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나는 큰절을 올리며 부르짖었다.

청송교도소 앞에서 인사드린 지 어언 스무 해 만이었다. 체온이 너무 높아진 걸까. 눈앞이 희붐해졌다.

“혹시 아버님을 찾아오셨나요?”

뜻밖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들이라니. 그분에겐 딸만 셋이었는데. 간절히 소원을 비는 젊은 여인, 아장아장 걸음마하는 사내아이. 아기 부처상을 만지며 내가 본 것들이 다 사실이란 말인가.

나는 성령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일어섰다. 피가 좀 차가워지니 아까는 놓쳤던 다른 구석도 눈에 들어왔다. 얼굴형이며 턱선이 아버지보다 기름한 느낌이었다.

“목사, 아니 김기왕 실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내 뒤에서 피셔맨이 물었다.

“주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젊은 목사가 핀 마이크를 와이셔츠 앞섶에서 떼어내며 대답했다.



그분이 돌아가셨다니!

언젠가 우리를 찾겠다던 기약은, 일간지에 부고를 가장해 실은 암호문은, 길을 잘못 드는 순간마다 신호등이 되어주던 메시지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할리우드 사인이 검은 연기에 사흘간이나 뒤덮였던 작년 카운티 북부 산불 때 화를 입었다는 소리를 선뜻 믿을 수 없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손에 남은 화약내로 총기와 탄환의 정체를 가늠하는 분이었다. 장작 타는 냄새만으로도 수종을 알아맞히는 분이었다. 땅속에 숨은 불씨 냄새도 놓치지 않을 분이었다. 그런 분이 캠핑장 오두막이 잿더미가 되도록 빠져나오지 못했다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아버님은 어디에 계시오?”

내가 다시금 물었다.

“로즈데일에 누워 계십니다.”

로즈데일은 코리아타운 남단에서 두 블록 거리에 있는 묘지공원이었다.

“지금은 문을 닫아서 내일 아침 아홉시 이후에나 입장할 수 있습니다.”

젊은 목사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직접 안내하겠다고 나섰지만 우리끼리 찾아가겠다는 뜻을 꺾지는 못했다.

“엘 자 하나가 불이 안 들어오네요?”

젊은 목사와 악수를 나눈 뒤 교회 간판을 곁눈으로 올려다보며 내가 물었다.

“아버님 뜻입니다. 처음부터 전선을 연결하지 않았지요. 낮의 빛 아래서는 호랑가시나무숲이 되고, 밤의 어둠 아래서는 신성한 숲이 된다는 의미로.”

신성한 숲. 어둠이라는 시약을 발라야 떠오르는 투명 글자라. 음지에서, 어둠의 장막에서 오히려 진가가 드러나는 분다운 발상이었다.

가르침 하나가 새삼 떠올랐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다만 조종할 뿐이다.

젊은 목사는 룸 미러 속에서 검은 한 점이 될 때까지 우리를 배웅했다.

“살아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건만.”

피셔맨이 숙소로 차를 몰며 말했다. 허탈한 건지 홀가분한 건지 모를 말투였다.

“목사는 죽으면 안 돼.”

재단사가 씹어뱉듯 말했다. 받아내야 할 무언가라도 있는 것처럼.

“그분은 안 돌아가셨네.”

내가 곧게 타오르는 불꽃만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를 이곳까지 자석처럼 끌어당긴 힘. 그것만큼 확실한 근거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해. 미로 같던 펜타곤에서 단 한 번도 엉뚱한 방을 노크하지 않게 만들던 그 거스를 수 없는 인력이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느껴지네. 살아 계시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말이야.”

내가 쐐기를 박듯 덧붙였다.

피셔맨도 재단사도 각자의 저울에 내 말을 올려놓고 있는 걸까. 차 안에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한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에 잠길 때 찾아드는 침묵.

“그 여자 닮지 않았나?”

침묵을 깬 건 피셔맨이었다.

“그 여자라니?”

“귀부인의 초상.”

젊은 목사의 얼굴에 그분과 함께 겹쳐지던 누군가의 존재를 나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김작가, 뭐 아는 거 없나?”

피셔맨이 재단사를 흘끗 보며 물었다.

“헤소시타 산즌니 진카쿠 나시.”

재단사가 별 관심 없다는 듯 무미건조하게 뇌까렸다.

배꼽 아래 세 치에는 인격이 없다는 뜻의 일본말. 미인계를 쓸 때마다 그분이 주문처럼 되뇌던 말이기도 했다. 그분의 배꼽 아래 일 또한 우리가 감히 왈가왈부할 영역이 아니었다.

“귓불이 두툼하고 늘어진 게 영락없이 부처님 귀였어. 아기 부처의 환생인지도 모르지.”

피셔맨이 무언가를 주워 담듯 중얼거렸다.

“목사도 부디 환생, 아니 부활하셨기를.”

좀전의 침묵은 나의 확신에 대한 무언의 긍정이었던 걸까. 아니면 열리지 않은 무덤 앞에서 한시라도 빨리 나를 단념시키려는 계산인 걸까. 피셔맨이 재단사와 나를 인도한 곳은 숙소가 아니라 밤의 공동묘지였다.

로즈데일 공동묘지는 블록 하나를 통째로 차지할 만큼 규모가 컸고, 가장자리를 따라 철책이 둘러쳐져 있었다. 키 큰 종려나무들이 가로등처럼 줄줄이 심긴 드넓은 풀밭에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묘석들이 빼곡했다. 젊은 목사 말대로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올까? 소주라도 사갈 겸.”

피셔맨이 철책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미터는 넘어 보이는 높이였다.

“훈련생 때 절반 높이도 안 되는구만.”

재단사가 어느새 도로에서 동떨어진 동쪽 철망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오가는 차도 뜸했고 이쪽을 주시하는 눈도 없었다.

“피라미드 납골당, 성모상 묘비, 유칼립투스나무……”

손전등으로 연신 약도를 확인하며 앞장서던 피셔맨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지면 높이로 매립된 스케치북 크기의 화강암 묘석 앞이었다.


Ki Wang Kim
Mar. 1920 ~ Feb. 2019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막상 차가운 돌에 새겨진 익숙한 이름을 접하자 확신이 흔들렸다. 인생이라는 재판정의 최종 판결처럼 각인된 생몰 연월이 더이상의 유예는 없다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여기가 정녕 내가 아는 세상의 끝이란 말인가. 해 저무는 그곳, 천궁을 가로지른 서녘 별들이 몸 씻는 곳 너머란 말인가. 삶을 마지막 찌끼까지 들이켜기 위해 죽도록 물살을 가른 항해의 종착점이란 말인가.

나는 묘석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목사 생일은 추석 다음날 아닌가? 생일 떡이 항상 송편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피셔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인틴, 트웬티. 트웬티, 나인틴. 생몰 연도가 영어식으로 읽으면 대칭이군.”

“거울에 비친 숫자는?”

“하나하나 더하라.”

“일에 아홉을 더하고 거기에 이와 영을 또 더하면 열둘.”

“페뷰어리는 둘이니 중복이고 마치는 셋이니 열다섯.”

피셔맨과 재단사가 주거니 받거니 밀고 나간 추론은 결코 말장난이 아니었다. 묘석 자체가 암호문임이 틀림없었다.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피셔맨이 암호문을 해독기에 입력하듯 묘비명을 천천히 읽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시고는 숨을 거두셨다. 누가복음 23장 46절. 그 장은 56절까지니 열다섯 절 다음이면 24장 5절……”

누가복음 24장은 예수의 부활에 관한 대목이었다. 예수 죽음 사흘 만에 무덤은 텅 비어 있었고, 눈부신 옷을 입은 존재 둘이 홀연히 나타났다.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두 천사의 말이 내 입에서 울려 나왔다.

역시나 죽음은 연막작전이었다. 그분은 죽음으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텅 빈 무덤으로 건재를 보여주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을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세계에서 죽음만큼 완벽한 가면이 어디 있을까. 전율이 일었다. 그분은 과연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 걸까? 존재를 감쪽같이 지워버리면서까지 무엇을 도모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까지 연막을 친 걸 보면 개나 잡아먹자고 부르는 건 아닌가보네.”

피셔맨이 어둠에 묻힌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거기 어딘가에 그분이 숨어 계시기라도 한 듯.



나는 묘석 위로 손을 가져갔다. 한낮의 볕을 기억하듯, 아니 부활하신 그분의 광휘가 드리운 듯 온기가 느껴졌다. 그분이 수의壽衣까지 동원해 몸을 감춘 곳이 어디인지 일러줄 단서가 바로 이 묘석이라면? 성령의 기운이 눈꺼풀을 쓸어내리는 것처럼 이번에는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사물의 혼이 전에 없이 강하게 느껴졌다. 눈꺼풀 안쪽으로 생생하게 떠오르는 선과 면. 돌에 스민 그분의 에테르 장이 암흑을 시약 삼아 또렷한 이미지들을 인화해냈다.

그분이 멀지 않은 하늘 밑에 있었다.

천둥과 번개를 부르는 벼락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아, 새벽처럼, 새벽빛을 앞지른 최후의 어둠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촘촘히 늘어선 옥수숫대, 새하얀 원형 천막, 천막 안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너무 선명해서 손에 잡힐 것 같은 영상들.

갑자기 영상들이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빨라져 검은 소용돌이처럼 모든 걸 집어삼켰다. 암흑 속에서 어렴풋이 주지승의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백린송 밑동이 불그스름해지는 건 삼라만상이 크게 뒤집힐 징조이지요.”

그분의 무덤을 봉인한 석판이 쪼개진 것은 큰 지진 때문이었다. 번개처럼 빛나고 눈처럼 흰 옷을 걸친 천사가 갈라진 석판 위로 내려와 말했다.

“무서워 마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찾고 있으나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는다. 어서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죽었다 살아나셨고 당신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터이니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오’ 하고 일러라.”

두려운 기쁨에 떨며 소식을 전하러 뛰어가는 길에 그분께서 홀연히 나타나 물으셨다.

“평안하더냐?”

“아버지!”

그분의 두 발을 붙잡고 엎드려 절하였다. 천사의 발, 성령의 발. 늠름하고 다정한 발이 갑자기 뾰족해지더니 굽이 갈라지고 새까만 털로 뒤덮었다. 개의 발, 짐승의 발, 아아, 그것은 악마의 발이었다.

소스라치며 눈을 떴을 때 나는 피셔맨과 재단사의 부축을 받으며 죽은 자들의 세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정신이 드나? 목사의 빈 무덤에 자넬 대신 묻어야 되나 싶었네.”

피셔맨이 손전등을 내 얼굴에 비추며 말했다.

“불빛 좀 치우게.”

손으로 빛을 가리며 소리쳤다.

“어찌된 건가?”

질질 끌려가다시피 하던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다 타버린 장작처럼 묘석 위로 맥없이 허물어졌는데 기억 안 나나?”

피셔맨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대꾸했다.

그런 장면은 기억에 없었다. 다만 악몽으로 덧칠된 예수 부활의 성경 대목뿐.    

“목사는 어디 있나?”

재단사가 물었다.

“갈릴리에서 기다리고 계시네.”

나도 모르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던 악몽 속 지명이 튀어나왔다.

“이젠 중동으로 가야 하나? 약속의 땅으로?”

피셔맨이 힙 플라스크를 꺼내 한 모금 홀짝이고 내게 건넸다. 그 순간만큼 위스키가 절실한 때가 앞으로 있을까 싶었다. 무덤에 갇혔다 빠져나온 사람처럼 나는 생생한 맛과 향을 온 감각으로 받아들였다. 그것만이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묘석이 뭘 보여주던가?”

재단사가 질문을 바꿨다.

“옥수수밭, 원형 천막, 뛰어노는 아이들.”

나는 본 대로 대답했다.

“천막이나 아이들은 모르겠고 옥수수밭이라……”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옥수수밭이었네.”

“구글에 물어봐야겠군.”

피셔맨이 휴대폰을 터치했다.

“미국 옥수수밭 실종. 미국 옥수수밭 시체. 미국 옥수수밭 자살. 미국 옥수수밭 미로…… 어째 월하의 공동묘지보다 으스스하네.”

“이번엔 뭐 빠뜨린 거 없나? 불이 안 들어오는 엘 자라든가.”

재단사가 내게 물었다.

“악마.”

필름이 끊기기 전 마지막으로 비친 이미지가 있긴 했다. 악마와 싸우고 계시기라도 한 걸까. 그분이 계실 곳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분명 섬뜩한 악마의 이미지였다.

“악마? 어떻게 생겼는데?”

“날카로운 뿔에 이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몬산토, 악마 기업에서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피셔맨이 여전히 휴대폰에 시선을 붙들린 채 웅얼거렸다.

“여기 한번 그려보게.”

재단사가 건넨 것은 호텔 로고가 인쇄된 메모지와 볼펜이었다. 뇌리를 스친 이미지를 쓱쓱 그려보았다.




“아이들만 잡아가는 옥수수밭의 허수아비 악령이 있다는구먼.”

피셔맨이 숙소 입구로 차를 천천히 진입시키며 중얼거렸다. 한 손으로는 휴대폰 검색 화면을 띄운 채.

“어젯밤 묵은 데잖나?”

재단사가 지적하고서야 뒤미처 깨달았다. 보안을 위해 매일 숙소를 옮겨온 우리였다. 오늘 저녁에 짐을 푼 곳은 차이나타운 근처의 한 비즈니스호텔이었다.

“내 정신 좀 보게. 여기서 차이나타운으로 가려면……”

피셔맨이 실내등을 켜고 LA 지도를 꺼내 펼치며 중얼거렸다.

이제 보니 뒷면도 지도였다. 각 주의 특색이 일러스트로 표현된 미국 지도. 플로리다주는 청새치, 뉴욕주는 마천루, 메인주는 단풍나무, 그리고 옥수수는……

“아이오와!”

지도를 뺏어 들며 내가 소리쳤다.

“아이오와, 원주민 말로 ‘아름다운 땅’ 또는 ‘바로 여기’라는 뜻!”

주 이름 밑에 달린 자그마한 글자도 소리 내어 읽었다.

“바다 같은 호수 왼편의 기름진 땅. 미국의 갈릴리는 거기였군.”

재단사가 어느새 몸을 앞으로 빼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이오와는 콘 스테이트로 불릴 만큼 대표적인 옥수수 산지이다. 남한의 1.4배 면적 중 옥수수밭이 차지하는…… 콘 벨트 옥수수밭이 남한보다 넓다는데?”

피셔맨이 여전히 휴대폰에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차 안 공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서늘해졌다. 남한 면적의 1.4배라니. 이놈의 나라는 불필요하게 컸다.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주를 뚫어져라 노려보았지만, 더이상의 단서는 떠오르지 않았다. 호텔 메모지에 그린 그림을 다시 뜯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름다운 땅과 악마 사이에 연결점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갑자기 차 안이 내 머릿속만큼 컴컴해졌다. 피셔맨이 실내등을 끄고 차를 출발시켰다.

“허수아비 악령은 잡아간 아이들을 악마의 제단에……”

몇 시간 전 나왔던 호텔 로비로 들어서면서도 피셔맨은 휴대폰 속 인터넷의 바다를 표류하고 있었다.

“김작가, 안 타고 뭐하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찰나 내가 급히 열림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재단사는 정신이 팔린 사람처럼 맞은편 벽 상단에 걸린 TV만 올려다봤다. 두 개의 화면에는 이 도시를 연고로 한 프로 농구팀과 프로 미식축구팀 경기가 나란히 펼쳐지고 있었다. 레이커스와 램스. 미식축구팀 마스코트는 산양이었다. 하이라이트 영상 사이로 둥글게 말린 뿔이 도드라지게 표현된 엠블럼이 스쳐갔다.

“김감독, 그 메모지 좀 줘보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재단사에게 메모지를 건넸다.

재단사가 메모지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악마가 아니라 독수리였어.”

“독수리?”

나는 메모지를 낚아챘다.

“세로 말고 가로.”

재단사 말대로 메모지를 눕히자 완전히 다른 그림이 나타났다.

“독수리가 아니라 호크, 매야!” 

피셔맨이 인터넷의 심해에서 낚아올린 새 한 마리를 보여주며 외쳤다. 




호크아이스. 내가 묘석 위로 쓰러지며 본 마지막 단서는 매의 눈이라는 이름의 아이오와대학교 미식축구팀 엠블럼이었다. 그 대학교는 미국 옥수수 생산량의 이십 퍼센트를 차지하는 아이오와주의 옛 주도에 위치했다. 아이오와시티. 아름다운 땅, 바로 여기라는 뜻을 가진 도시. 적어도 이름만큼은 무덤에서 부활하신 분이 가 계시기에 어색함이 없었다. 이미 갈릴리로 향하는 몸과 마음은 이륙하는 비행기에 올라탄 듯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있었다.

“웨어 아 유 프롬?”

언제 탔는지 호텔 직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차이나.”

내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남이냐 북이냐, 쓸데없는 질문을 원천봉쇄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다 왔다 싶을 때가 가장 위험한 법. 이 직원은 우리 셋을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기억하게 되리라. 그것은 굳이 차이나타운 인근에 숙소를 잡은 목적이기도 했다.

“나인틴 식스티 스리, 링컨 콘티넨털 컨버터블!”

조금 전 피셔맨이 주차시킨 차를 호텔 직원은 차종은 물론 연식까지 정확히 꿰고 있었다. 만면의 미소 속에 눈빛만큼은 매의 눈처럼 날카로웠다.

나는 한순간 굳은 얼굴이 되어 피셔맨을 돌아보았다.

피셔맨이 미국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