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속지 말자 소련 놈, 믿지 말자 미국 놈


하늘처럼 우러러보던 오리지널 CIA의 나라로 난 길은 짙은 새벽안개에 묻혀 있었다. 몇 번은 다녀왔을 법한 나라인데 이번이 초행이었다. 그분이 계속 자리를 지키셨다면 기회가 있었을까.

“지금 제군들이 받는 훈련은 CIA 비밀 특수요원들을 위한 교범 그대로네. 스타 러너 프로젝트. 문자 그대로 별 위를 달리는 경지에 도달한다는 각오로 갈고닦으면 바다 건너에서 부름 받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북한 대남사업부가 아니라 KGB와 맞짱 뜨는 그날이.”

왕의 무덤가에 풀어놓은 토끼들을 눈빛 레이저로 마비시키려 눈알에 잔뜩 힘주고 있던 우리에게 그분이 하신 말씀이었다. 숟가락을 문질러 구부리는 훈련 다음 단계였으리라. KGB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없지만, 그분께서 말씀하신 날이 오늘인지도 모른다. 바다 건너에서 부름 받는 바로 그날.

여권에 찍힌 스탬프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서독, 스웨덴, 프랑스…… 유럽에서도 북한 공관이 있거나 지척인 나라들뿐이었다. 아시아는 당연히 빨갱이들이 제집 드나들듯 하는 일본에 집중되었고. 미국에 못 간 이유는, 아니 갈 필요가 없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발도 들여놓지 못하던 나라, 빨갱이 청정 구역이었기 때문 아닌가. 그 위대했던 나라가 북한 같은 나라도 뭣도 아닌 괴뢰 집단과 수교라니. 목마를 들여놓는 트로이 꼴이 아닐 수 없었다.

비행기가 뜨기는 할까? 무사히 입국할 수는 있을까? 입국하면 어디부터 가야 하나? 혼자 떠나는 길이라 마음도 안개 속이었다.

피셔맨이 그럴 줄은 몰랐다. 아무리 부담스러워도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망정 그분의 존재마저 의심하다니.

“올해로 백 살인가, 백한 살인가? 솔직히 살아 있다는 보장도 없잖나?”

“아직은 두 자리일걸.”

“일부러 한두 해는 넘겨 출생신고를 하던 시절 아닌가?”

“1922년인가, 23년생인가로 들은 기억이 있네만. 개밥인지 돼지죽인지 아침 먹일 때 태어나셨다고. 닭띠는 확실히 아니야.”

미국 대통령의 평양행과 미북 수교라는 핵폭탄급 날벼락 앞에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세워도 모자랄 판에 뭐하는 짓인가, 자괴감이 일었다.

“닭이든 개든 돼지든 고인이 되었어도 이상할 것 없는 연세지. 살아는 있대도 능력이 예전 같을지 미지수고.”

피셔맨은 본심을 속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말의 생략된 주어는 목사가 아니라 라이카임이 틀림없었다. 난데없는 나이 타령 역시 핑계에 불과했다.

재단사도 선뜻 동행의 뜻을 내비치진 않았다.

“혹시 제록스 연락처 아나?”

공중전화 송화구를 손으로 감싸며 내가 재단사에게 물었다.

회사에서 잘린 후로는 외국 나갈 일이 없었다. 마지막 여권조차 만료된 지 이십 년이 다 돼가는데 여권을 새로 만들고 비자 신청까지 하면 감시의 눈에 불 켜고 있을 자들에게 의심받기 십상이었다. 비밀리에 출국할 방법이 필요했다.

제록스는 공작에 필요한 신분증이며 증명서며 온갖 서류를 만들어내던 요원이었다.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카피해서 붙은 코드 네임. 국민학교 시절 전국 경필 쓰기 대회를 휩쓸며 한석봉의 재림이라는 찬사를 듣던 아이. 그런 재능을 그분이 놓칠 리 없었다. 그분에게 선택되지 않았다면 성적표나 조작하며 자라 문서위조범으로 감옥이나 들락거렸을지도. 그 시절 회사에서도 제록스 본인과 관련된 서류만큼은 결재란에 사인이나 도장 대신 지장을 찍게 하지 않았던가.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자네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아서.”

“그 친구는 왜?”

“급전이 필요해서 말이야.”

나는 주위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용건이 용건이다보니 도청 위험을 피하려 지하철역까지 가서 찾아낸 공중전화였다. 발에 차이는 게 공중전화 부스였는데 언제부턴가 일부러 치워버린 듯 씨가 말랐다. 모든 통화를 엿듣겠다는 속셈이 분명했다.

급전은 가짜 여권, 가짜 비자를 가리키는 은어였다. 아니, 가짜 여권이 아니라 위장 여권. 우리가 만들어내던 것에 가짜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진위가 아니라 효과였다. 통하느냐 안 통하느냐.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제록스가 내놓는 것들은 통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다.

“인사동 어느 표구점에서 도장을 파고 있다는 소문은 얼핏 들었네.”

우리 사이에 미국의 미 자도 거론된 적이 없다는 듯 재단사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자네는 어쩔 건가?”

진짜 용건을 그제야 꺼냈지만 재단사는 어느새 전화를 끊은 뒤였다.

아무래도 나 혼자 떠나야 할 것 같았다. 단독 작전이라고 생각하니 도리어 홀가분했다. 배신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잠재적 위험 요소를 떠안은 채 그분에게 갈 수는 없었다. 애당초 그분의 부름을 받은 사람도 나였고.

나는 휴대폰으로 구글에 접속했다. 해킹 염려로 국내 포털은 이용하지 않는다. 이메일 계정도 마찬가지. 예전엔 북한 665부대만 경계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옛 직장도, 심지어 가장 가까웠던 동료조차 잠재적 적이었다.

ESTA, 전자 여행 허가제라는 게 있었다. 미국 가는 데 구십 일 이내 체류는 비자 면제라니,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구십 일이면 충분하려나? 그분 뜻을 받드는 데 그 정도면 충분할까? 일단 접선이 급선무. 그분이라면 체류기간을 연장할 방책이 있을 것이다.

위장 여권이 물건너갔다면 신분을 감추기 위한 변장이라도 할 일이었다. 여권사진을 찍으러 가는 길에 이발소에 먼저 들렀다. 회사에서 잘리고 사진관을 차릴 때만 해도 색안경이나 뿔테 안경만 안 쓰면 됐는데 그사이 규정이 엄청 까다로워졌다. 여권사진은 귀를 훤히 드러내야 한다기에 아예 해병대 스타일로 옆머리를 바짝 밀어버리고 염색도 했다. 뭐니 뭐니 해도 변장의 핵심은 머리색이었다. 오래 방치해둔 머리카락을 새까맣게 물들이고 보니 거울 속에 낯선 사내 하나가 있었다. 빨갱이는 물론 빨갱이 귀신이라도 잡을 것처럼 보이는 게 썩 마음에 들었다.

사진관 주인장이 서비스라며 주름도 몇 가닥 지워줬다. 보안은 역시 혼이 없는 디지털 사진인가. 필름 한 통에 든 서른여섯 컷을 매만지노라면 카메라에 필름을 끼우고 노출을 조절하고 하나, 둘, 셋 외쳤을 장소와 그곳의 정취까지 가보지 못한 내 삶의 일부인 양 다가왔었는데, 수천만 디지털 화소로 조립된 얼굴은 아무 감흥이 없었다. KCIA의 라이카가 아니라 오리지널 CIA의 라이카라도 위치를 추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ESTA 신청도 염려했던 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하나 마나 한 질문에 사실대로 체크하면 그만이었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까?

불법 약물을 소지, 사용한 적이 있습니까?

체포되거나 유죄 선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테러 활동이나 첩보활동에 연루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잠시 멈칫했다.

미국에 취업할 예정이거나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취업한 적이 있습니까?

미국 입국을 거부당한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북한을 여행하거나 체류한 적이 있습니까?

당연히 아니라고 잡아떼는데 배신감이 밀려들었다. 미국 대통령이 평양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문항이었다. 바이러스의 진원지마냥 발만 디딘 적이 있어도 입국을 금지하던 나라와 수교라니. 악의 축, 불량국가, 테러 지원국을 봉쇄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이제껏 우리가 기울인 노력들은 다 뭐란 말인가.

어릴 적 흘려들었던 노래가 새삼 귓전을 맴돌았다.

속지 말자 소련 놈, 믿지 말자 미국 놈.



“김배우, 자네가 여긴 어떻게?”

벌떡 일어서다가 안전벨트에 걸려 도로 주저앉으며 내가 말했다.

피셔맨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활주로의 안개가 걷히고 비행기 탑승도 거의 끝나갈 즈음이었다.

“LA에 분원이나 내볼까 하네.”

피셔맨이 공공칠가방을 선반에 올리며 대꾸했다.

“단골손님들은 어쩌고?”

“내 침만 맞을 수 있다면 지옥 끝까지라도 찾아올 사람들이야.”

“내 비행편이랑 좌석 번호는 어찌 알았나?”

“표 끊었다며 단톡방에 올린 사람이 누구더라? 그나저나 그 민망한 스타일은 뭔가? 우리 나이에 염색이 너무 검으면 없어 보이는 법인데.”

그제야 떠올랐다. 카톡 전송 버튼을 누르고 후회하던 순간이. 하지만 어차피 따라올 사람은 없을 줄 알았고, 있다 해도 피셔맨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나는 의구심과 반가움이 뒤섞인 감정을 숨기며 신문을 읽는 척했다.

“자리 바꿔줄까? 나보다는 자네가 화장실을 더 자주 갈 것 같은데?”

피셔맨이 내 옆자리에 앉으려다 말고 물었다.

“내 방광은 아직 멀쩡해. 달나라까지 가도 끄떡없어.”

하마터면 달에 인류의 위대한 첫발을 내딛던 암스트롱도 우주복 안에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는 말이 나갈 뻔했다.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탄 게 언제였더라? 확실히 기억나는 건 97년 대선 직전 그분을 모시고 간 북경. 막후에서 기획만 하던 그분이 전면에 나서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단군 이래 최초로 나라가 빨갱이들에게 넘어갈 수도 있었다. 친위 쿠데타 빼고는 뭐든 다 해봐야 했다. 선거 사나흘 전 휴전선에서 인민군과의 무력 충돌을 연출하는 공작도 그중 하나였다.

북십자성.

그 중요한 공작에 수행원으로 발탁된 건 돈 가방 때문이었다. 미화 오백만 달러가 든 검정 보스턴백. 착수금 내지 계약금으로 준비한 그 지폐 다발은 일이 성사되는 즉시 스위스 비밀 계좌로 송금될 돈이었다. 그분은 전파 발신기나 식별 잉크보다 내 세번째 눈을 더 믿었다. 내 양복 안주머니에는 보스턴백에서 떼어낸 지퍼 고리 하나가 추적기 대신 들어 있었다. 북측에 전달할 계약금이 엉뚱한 곳으로 새면 안 되었기에.

북측과의 접선 장소였던 자금성 근처의 한 호텔, 객실 한구석에 놓여 있던 대나무 새장이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새하얀 몸뚱이에 금관이라도 쓴 것처럼 우관만 노래서 중국 황제들이 곁에 두었다는 앵무새. 그 호텔 스위트룸의 트레이드마크인 유황앵무 새장은 텅 비어 있었다. 흰 깃털 몇 개만 뒹굴고 있을 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지 않습네까?”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북측 요원이 몸수색을 하며 말했다.

피셔맨의 호의를 받아들였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행기가 공중으로 떠오르자마자 요의가 느껴졌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일으켰다.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기 전에 이동하시면 안 됩니다.”

스튜어디스가 득달같이 달려와 제지하는 서슬에 도로 주저앉아야 했다.

“괜찮겠어? 천궁혈天窮穴에 침 한 방이면 두어 시간은 편안할 텐데. 침 세트는 왜 압수하고 난리야? 침이 사람 죽이는 물건인가? 살리는 물건이지.”

의자 끝에 엉거주춤 엉덩이만 걸친 나를 돌아보며 피셔맨이 구시렁거렸다.

영원 같은 몇 분이 지나고 마침내 안전벨트 사인이 꺼졌다. 볼일을 보고 돌아오니 피셔맨은 위스키를 온더록스로 홀짝이고 있었다.

“자넨 스트레이트로 하게. 몸을 따뜻하게 덥혀야 방광도 가벼워지지.”

피셔맨이 응급 처방이라도 내리듯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눌렀다.

“비행기는 북십자성 이후 처음이라서 말이야.”

잠시 후, 위스키 잔을 받아들며 내가 변명조로 말했다.

“정말? 그 흔한 패키지 여행, 아니 제주도 한 번 안 갔다고?”

“회사에서 잘린 뒤로는 하늘에 그려진 비행운조차 쳐다보기 싫더군. 북경에서의 거래만 성사됐어도…… 그분이 처음 기안한 대로 입찰 금액에 공을 하나 더 그렸어야 했어. 그랬다면 반장들이 마지막 순간 발을 빼는 일은 없었을 거야.”

<수사반장>을 동시에 시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였으리라. 우리가 북측 대남사업부를 반장들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IMF만 안 맞았어도.”

내가 탄식처럼 한마디 덧붙였다. 그랬다. 출국 두 주 전에 터진 외환위기 사태로 북경에 들고 갈 달러도 마른행주까지 쥐어짜 억지로 마련해야 했다.

“온리 머니 때문이었을까? 반장들은 선거를 반반으로 봤던 거야. 반장들이 주판알은 냉철하게 튀기잖나. 하긴, 회사 내부에도 극비리에 보험을 드는 자들이 있었으니. 북십자성 정보마저 상대 캠프로 새나가지 않았나. 빨갱이들한테 정권이 넘어가고도 자리보전한 자들 중 하나였겠지. 뭐 하나 잘하는 것 없이 꾸역꾸역 승진하던 부류들. 생존 본능만 동물적으로 발달한 자들.”

피셔맨이 위스키 잔의 얼음을 오독오독 씹으며 말했다.

얼음조각 부서지는 소리가 기압차로 먹먹해진 귓전에 비현실적으로 울렸다. 굳었던 몸이 술기운에 풀리듯 피셔맨에 대한 의심도 노글노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새소년 말이야……”

나는 위스키 잔을 비운 뒤 얘기하다 만 화제로 되돌아가는 척 말했다. 재단사의 반응으로는 내가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할 무엇인 듯했으니.

“새소년? 그게 뭔데?”

“어릴 적 돌려보던 잡지도 기억 안 나나?”

피셔맨의 해맑은 반응에 안도감과 실망감이 교차했지만, 나는 짐짓 가벼운 톤으로 말했다.

“아! 기억나다마다. 매달 말일 잡지 나오는 날만 오매불망 기다리며 고된 훈련을 견디던 시절을 어떻게 잊나. 비밀 첩보원이 주인공이던 그 연재물 제목이 뭐였더라?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이중첩자를 탈출시키던 에피소드는 얼마나 읽고 또 읽었는지 외울 지경이었는데.”

재단사 앞에서 그 잡지를 입에 올리던 나도 저런 표정이었을까. 피셔맨이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 단어만 들으면 어떤 세계로 들어가도록 최면이라도 걸려 있는 것처럼.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목사가 잉크 냄새도 채 가시지 않은 다음 호를 던져줄 때마다 이상하게 아버지라는 말이 떠올랐어.”

눈동자에 얼비치던 기이한 생기도 잠시, 피셔맨은 버려진 잡지 같은 얼굴이 되어 덧붙였다.

“진짜 아버지는 교과서나 한번 더 펼쳐보라며 그런 잡지 따위 빌리지도 못하게 했겠지. 연탄가스로 돌아가시던 그날도 부지깽이로 두들겨맞은 기억뿐이야.”

“연탄가스로 돌아가셨어?”

“얘기 안 했던가? 어머니, 형, 여동생도 한방에서 자다 같이 죽었네. 나만 어찌어찌 기어나왔는지 의식을 잃고 마루에 쓰러져 있다 병원으로 실려갔지.”

“괜한 말을 꺼냈나보네.”

“자백하자면 화장 가마 앞에 나란히 누워 있던 네 구의 시신 앞에서도 슬프지 않았어. 갈증이 너무 심해서. 목이 타들어가는 것이, 의식이 돌아왔을 때 간호사가 깎아준 배 생각이 간절하더군. 동치미 국물 대신 이거라도 먹으라며 건네준 배 한 조각. 지금도 배 먹을 때마다 그 간호사 얼굴이 생각나.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 보듯 눈물을 글썽거리던 표정이. 눈뜨기 전 저희끼리 수군대던 소리만 안 들었어도.”

목에 붙은 불을 끄려는 듯 피셔맨은 씹던 얼음을 꿀꺽 삼키고 나서 말을 이었다.

“‘저 어린것이 혼자 살겠다고, 차라리……’ 차라리 다음엔 뭐였을까? 화장터에서도 계속 그 생각만 나더군.”

현실이라는 중력이 희박해진 수만 피트 상공이어서였을까. 실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알코올 기운 때문이었을까. 저 밑바닥에서 익숙한 죄책감이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느낌은.

“나도 아네. 측은해하면서도 불행이 옮을까봐 곁은 내주지 않는 그런 사람들.”

‘다른 새소년’이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차마 꺼내지 못했다.

“어느 날 고아원으로 찾아온 목사가 대뜸 그러더군. ‘왕자와 거지’군君, 거지꼴은 겪을 만큼 겪어봤으니 이제 왕자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가족 일은 안됐다, 희망을 잃지 마라 같은 소리는커녕 측은해하는 기색조차 없었어. 그게 도리어 위로가 되더군. 자네도 같은 처지였다고 들었는데.”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나 다름없었지.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감옥에 갔으니.”

“감옥은 왜?”

“그럴 만한 일이 있었네.”

잠시 사이를 둔 나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분이 데리러 왔을 때 나는 소년원에 있었어.”

“소년원?”

“소싯적엔 껌 좀 씹었거든.”

내가 으스대듯 말했다. 자네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고아가 되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말을 끝내 삼키며.



몇 번을 자다 깨다 다시 잠들었을까. 마지막으로 띄운 개인 모니터 속 비행기는 여전히 태평양 상공이었는데 덜컹하는 충격에 눈을 뜨니 LA공항 활주로였다. 직선구간을 내처 달린 비행기는 남은 양력을 완전히 덜어내고서 완만한 호를 그리며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기내방송에서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흘러나왔다. 바다 건너 꿈의 대륙에 도착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마른세수를 하고 보니 피셔맨은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나도 받아둔 입국신고서를 꺼내 서둘러 빈칸을 채워나갔다. 직업란 앞에서 망설이다 피셔맨을 곁눈질했다.

Doctor.

현역 시절 피셔맨과 나는 종합상사 영업직원 행세를 하곤 했다. 위장 직업은 별 인상을 남기지 않는 것이어야 했으니. 내외물산이라는 유령회사 명함은 기본, 바이어에게 보여줄 원단 샘플이며 주의 분산용 비키니 시제품까지 가방에 넣고 다녔다.

“세일즈맨, 노.”

피셔맨이 내 볼펜을 멈춰 세웠다.

“여긴 아메리카, 잡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곳이잖나. 불법 취업하지 않을 것 같은 직업을 고르게. 입국심사 때도 비즈니스라는 단어는 꺼내면 안 돼. 그랬다간 CCTV도 없는 방으로 끌려갈 테니.”

“와츠 유어 잡?”

입국심사관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라이터!”

그것은 고심 끝에 적어넣은 입국신고서의 직업이었다. 충동적이었지만 적고 보니 오래전부터 내 직업이었던 것마냥 마음에 들었다.

“왓 두 유 라이트?”

이렇게까지 상세히 물어올 줄은 몰랐다. 피셔맨에게 무슨 과 의사냐고 묻지는 않았을 텐데.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피셔맨은 그새 심사를 마치고 수화물 찾으러 가는 길목에 서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스토리. 스파이 스토리.”

언젠가 쓰게 될 자서전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분 가르침대로 정직이 최고의 위장 전술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이곳은 체리나무를 제가 베었다고 자백한 것으로 칭송받는 조지 워싱턴의 나라 아닌가.

입국심사관의 무표정하던 얼굴에 아연 활기가 돌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 마개 뽑힌 욕조의 물처럼 소용돌이치며 내 귓구멍으로 몰려들었다. 한참 무슨 말인가를 빠르게 쏟아낸 심사관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대체 뭐라고 물었는지는 몰라도, 만족스러운 답을 듣기 전에는 놔주지 않을 것 같았다. 스파이 스토리야 차고 넘쳤지만 영어라는 장벽이 문제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영어로 자서전 쓰기 강좌를 들었을 텐데.

“아이 앰 어 파트 오브 올 댓 아이 해브 멧……”

오래 궁리해온 자서전의 첫 문장마냥 유창하게 흘러나온 영어는 주사파 넘버 스리가 급히 삼켜 인멸하려 했던 시 「율리시스」였다. 내가 유일하게 암송하는 영시이자 내 자서전의 도입부. 너무 영국식 발음 아닌가 싶었지만 테니슨은 그 나라 사람이니 오히려 안성맞춤이었다. 편의상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았다.


  나는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의 일부. 

  하지만 경험이란 다가갈수록 끝없이 뒤로 사라져가는

  전인미답의 세계를 얼핏 보여주는 아치문일 뿐.

  멈추고, 끝내고, 닦지 않아 녹슬고, 써서 빛내지 않는 

  삶은 얼마나 지루한가.

  숨만 쉬는 삶, 삶 위에 삶을 쌓는 일은 얼마나 하찮은가.

  ……

  이 잿빛 영혼의 간절한 바람은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극한 너머로

  가라앉는 별처럼 지식을 따라가는 것.


“무슨 얘기를 그리 오래했나? 한국말은 아닐 테고.” 

마침내 심사대를 빠져나왔을 때 피셔맨이 입국심사관과 마찬가지로 감탄의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내 작품세계에 관심이 많더라고.”

입국심사관이 중간에 끊는 바람에 좌우명처럼 되새기는 마지막 구절은 생략할 수밖에 없었지만, 시작부터 자신감이 붙는 기분이었다.

그런 자신감에 끌렸을까. 특별 대접이라면 세관원도 못지않았다. 이민용 캐리어를 끄는 피셔맨은 세관신고서 한 장으로 끝이었지만 내 이십 인치 캐리어는 안감 천과 알루미늄 외피 사이 공간까지 더듬었다. 세관원의 관심을 독차지한 건 약 봉투였다. 두통약, 감기약, 소화제, 설사약 외에도 복용중인 약 한 달 치와 건강보조제는 부피가 꽤 됐다. 전립선약, 혈압약, 유산균, 종합비타민. 그리고 우황청심환. 플라스틱 개별 용기에서 미지의 구체를 꺼내 은박지 포장을 벗겨내는 손놀림은 폭탄 해체를 방불케 했다. 조심스레 냄새까지 맡아보고도 거무스름한 환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버케이션?”

마음속에 인 의구심의 모든 뇌관을 해체한 뒤 세관원이 짤막하게 물었다.

직업을 물었다면 내 자서전의 도입부를 미리, 그것도 작가의 육성으로 맛볼 영광을 누렸을 텐데, 아쉬웠다.

나는 본연의 임무도 잊고 더 넒은 세상을 유람하러 온 라이터가 되어 힘차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압솔루틀리!”

한번 자신감이 붙으니 영어도 술술 나왔다.

“김작가, 왓스 고잉 온?”

검색대에서 캐리어를 집어들고 돌아서던 내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웬 낮도깨비도 아니고 피셔맨 곁에 재단사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안 온다고 한 적 없네만.”

재단사가 태평양 건너편에서처럼 특유의 비웃음을 날리더니 몸을 획 돌려 출구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짐이라곤 캐리어도 없이 달랑 등에 진 백팩 하나뿐이었다.



공항에서 나온 우리는 근처 렌터카 업체부터 들렀다. 렌터카 주차장이 공항 활주 구역만큼 광활했다. 땅덩어리가 넓긴 넓었다.

“웨어 아 유 프롬?”

세단보다 덤프트럭이나 탱크로리 정도는 취급해야 어울릴 거구의 직원이 물었다.

“코리아.”

“사우스 오어 노스?”

“사우스.”

“해브 유 빈 투 평양?”

무심코 대답하던 나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을 방문한 사실만으로도 입국이 금지되는 나라에서 들을 법한 질문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평양’이 아니라 ‘피이앙’이었지만 내가 짐작하는 그 도시가 분명했다. 사무실에 틀어놓은 TV 화면에서도 내달로 잡힌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둘로 나뉜 화면 한쪽에서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하늘로 솟구쳤고, 맞은편에서는 김일성과 카터가 대동강 유람선에서 환담했다.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무산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주선되는 장면이었다.

“네버, 에버.”

내가 정색하며 대꾸했다.

평양행은 내 생애 한 번으로 족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다시는 내 목숨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수교라니. 용기와 신념을 갖춘 레이건 대통령이었다면 철의 장막을 무너뜨렸듯 평양도 힘으로 무릎 꿇렸으리라.

거구가 거대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차는 국제면허증이 있는 피셔맨이 골랐다. 1963년식 링컨 콘티넨털 컨버터블. 캘리포니아에 온 걸 환영하듯 지붕을 접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

피셔맨이 한눈에 찍었기에 조심스레 물어야 했다.

“LA는 서울이 아니야. 최신 모델 세단이 도리어 촌스러운 동네지. 이 녀석은 할리우드 스타들도 즐겨 타는 차라고.”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차이기도 하지.”

재단사가 불길한 한마디를 보탰다.

그러고 보니 길쭉하게 빠진 청회색의 날렵한 차체가 한 마리 청새치를 연상시켰다. 영화 <노인과 바다>에서 앤서니 퀸과 피비린내나는 사투를 벌인 물고기. 결국 상어떼에 뜯겨 뼈만 남게 되는 물고기.

“오즈월드와 상어떼만 조심하면 되겠군.”

피셔맨이 시동을 걸며 중얼거렸다.

피셔맨의 능력에는 시차가 없는 것 같아 안도했다. 여기는 총잡이들의 나라, 주머니에서 빼드는 게 총일지 악수일지 훤히 내다볼 수 있을 테니.

그분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우리가 목적지로 삼은 곳은 필립 말로 탐정 사무소가 아닌 할리우드 사인이었다. 선셋대로에서 벗어나 북쪽으로 달리자 얼마 안 있어 하늘로 솟은 송신탑이 먼저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이 도시의 랜드마크가 눈에 들어왔다. 할리우드힐스. 차가 언덕길을 오를수록 영화에서만 보던 아홉 글자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해졌다.

“직접 보니 떠오르는 게 있나?”

피셔맨이 기대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엘 자가 둘이었나?”

내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뭔가 어색한 게 딱 들어맞는 느낌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게 무슨 소린가?”

피셔맨이 길가에 차를 급히 세우며 따져 물었다.

“엘이 하나였던 것 같기도……”

말끝을 흐렸지만, 내가 본 할리우드 사인은 분명 여덟 글자였다.

“아 유 키딩?”

피셔맨이 라이방을 벗으며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마티스 조에게서 압수한 라이방이었다. 그 호모 놈이 내 사타구니를 넘볼 때부터 일이 꼬였다. 요망한 땡중한테 끝까지 속아넘어간 걸까? 사내아이를 점지해주는 신통력도, 그분이 아기 부처상을 빼앗듯 빌려갔다는 얘기도 거짓이었다면? 하지만 내가 본 것들은 다 뭐란 말인가. 머리 회전은 딱 거기까지였다. 낮과 밤이 뒤바뀌어 몽롱해진 탓일까. 아기 부처상 코의 촉감조차 아득한 것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다시 출발점에 선 기분이었다.

“가까이 가서 만져볼 수 있으면 좋겠네만.”

“숙소에 짐부터 풀었으면 좋겠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피셔맨이 내 말은 못 들은 척, 룸 미러 속 재단사를 향해 물었다.

“당신의 빛, 당신의 진실을 길잡이로 보내시어 당신 계신 거룩한 산으로 이끌어주소서. 시편 43장 3절.”

재단사가 읊은 플랜 B의 ‘길잡이’는 어느 한인 신문사였다.

“거기 편집국장이 동생이야.”

한인 커뮤니티 소식통이 가장 빠를 거라는 주장 끄트머리에 말줄임표를 달듯 재단사가 말했다.

“김작가 친동생 말인가?”

피셔맨과 내가 동시에 물었다.

친동생의 존재보다도 재단사가 사적인 얘기를 입 밖에 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안 올 사람처럼 굴다 짠 하고 나타난 것도 동생 때문이었나. 친동생에 신문사 편집국장이라면 에이 급, 아니 알파 급 정보원이었다.

“나도 어바인에 며느리랑 손주들이 있는데 한번 들를 시간이 되려나. 큰손자 놈은 아이비리그가 목표고 둘째는 이번에 명문 사립고에 들어갔어.”

지지 않겠다는 듯 피셔맨이 한마디했다.

“피부과 며느리? 병원은 어떡하고?”

내가 물었다.

“강남 피부과 상담실장으로 잘나갔는데, 애들 뒷바라지 때문에 관둔 지 꽤 됐어.”

“전생에 고려청자를 빚은 것처럼 솜씨가 예술이라며?”

“상담실장 하던 병원 의사 말이야.”

링컨 콘티넨털에 시동을 거는 피셔맨의 옆모습이 조금은 풀이 죽어 보였다.



“여기 맞나?”

내가 피셔맨을 향해 물었다.

흰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어진 외벽, 녹슨 방범 창살 너머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것처럼 굳게 닫힌 나무 창틀. 70년대 서울의 어느 관공서같이 투박한 이층 건물은 왠지 버림받은 분위기를 풍기며 서 있었다.

“지도는 철자 하나, 숫자 하나도 헷갈리는 법이 없다네.”

피셔맨이 재킷 주머니에 꽂힌 지도를 톡톡 치며 대꾸했다. 렌터카 사무실에서 집어온 2절지 사이즈의 한국인 드라이버를 위한 LA 상세 지도. 동선 노출을 막기 위해 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 대신 펼쳐 본 물건이었다.

회색 철문은 열려 있었다. 조심스럽게 건물로 들어선 우리를 맞은 것은 지난 세기를 떠올리게 하는 벽걸이 게시판이었다. 녹색 부직포를 덧댄 기다란 나무판에 각종 안내문이 압정으로 고정된 모습은 어색함을 넘어 향수마저 불러일으켰다.

법률 통역 양성 강좌, 의료 통역 양성 강좌, 자서전 쓰기 강좌까지. 안내문만 보면 신문사라기보다 무슨 문화센터 같았다.

“신문은 일요일 휴간이라 쉬는 날이 아닐 텐데.”

피셔맨이 요일을 따진 이유는 건물 안에 우리 셋뿐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가는 사람도 내다보는 사람도 없었고 복도를 따라 난 방 어디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일자형 복도. 건물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은 복도 양끝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마찬가지. 복도 양편에 방이 나 있었지만 창문으로 비상 탈출하려면 큰길에 면한 좌측 방으로 진입해야 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내부구조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이층부터 시작해볼까?”

내가 수색의 원칙을 상기시켰다. 게다가 편집국장 자리는 이층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층에 올라간 우리는 구역을 삼등분해 수색에 착수했지만 모든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문패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그 옛날 캠퍼스처럼.

물샐틈없는 보안을 추구했던 캠퍼스, 그곳에서는 복도 양편으로 엇갈리며(문을 열고 닫을 때 맞은편 방에 노출되지 않도록) 출입문을 냈는데, 문패는 고사하고 이렇다 할 표식도 없어 어디가 무슨 방인지 구별이 어려웠다. 오각형의 다섯 변이 똑같은 모습인데다 계단에도 방과 똑같은 문을 달아 베테랑 요원조차 엉뚱한 손잡이를 돌리기 십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분의 공간만큼은 잘못 찾을 수 없었다. 미로 같은 구조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강렬한 존재감을 차단하지는 못했기에. 하지만 거기, 시간의 흐름에서 비켜선 공간 어디에서도 그런 자력은 감지되지 않았다.

일층도 마찬가지였다. 복도 저편에서 다가온 재단사도 고개를 저었다.

“동생한테 온다고 연락 안 했나? 안 했으면 지금이라도 해보게.”

피셔맨이 재단사에게 말했다.

“번호 모르네.”

재단사가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동생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쉿! 목소리 낮춰. 누군가 있어.”

“새로운 능력이라도 생겼나보군. 예전 능력과 맞바꿨거나.”

내 경고에 피셔맨이 비아냥거렸다.

“화장실 세면대에 물기가 흥건하더군.”

내가 대답했다. 갑작스런 요의 덕분에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하긴, 아무도 없다면 출입문도 잠겨 있어야겠지.”

재단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구리 한 마리가 문도 걸어 잠근 채 어느 구석에 웅크리고 있나보네.”

내가 가늘게 뜬 눈으로 복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구리를 굴에서 끌어내려면 연기를 피워야지.”

어느새 재단사는 걸어온 길을 휘적휘적 되짚고 있었다. 재단사가 복도 끝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벽면을 더듬었다.

때르릉, 때르르릉, 때르르릉.

요란한 벨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재단사가 건드린 것은 파이어 알람 버튼이었다. 건물 전체가 떠나가라 울리는 소리에 온몸이 굳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했다.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를 듯 말 듯 몇 번 입질하던 그것이 도로 가라앉은 건 내 바로 옆 방문이 벌컥 열린 순간이었다.

방안에서 너구리, 아니 사람 하나가 튀어나왔다.

“왓 더 헬……”

적으면 오십대 후반, 많아야 육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양인 사내가 뿔테 안경 너머 두 눈을 치뜨며 소리쳤다. 두툼한 노트북을 가슴에 꼭 안은 채였다.

“돈 워리. 노 파이어. 안에 있으면 대꾸를 해야지.”

피셔맨이 사내의 등뒤로 몸을 날려 출입문을 확보하며 말했다.

“후 아 유? 당신들 뭐야?”

사위를 두리번거리던 뿔테 안경이 한낮에 출몰한 유령이라도 목도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김국장 그만둔 지 십 년도 다 돼가요.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다 몇 달 전에 모두 정리하고 귀국한 걸로 알고 있는데.”

자신이 편집국장이라고 밝힌 것도 모자라 교포 1.5세대라고 묻지도 않은 정체성까지 털어놓은 뿔테 안경은 우리말에 능숙했다. 취조 전문 통역사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피셔맨을 쳐다보았다. 인간 거짓말탐지기가 눈을 한 번만 깜박였다. 거짓이 아니라는 판정. 십 년 넘도록 기별 한 번 없는 형제라면 친형제는 맞는 걸까? 정작 재단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놀람도 실망도 없이 비웃듯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였다. 정보원이 연락도 없이 사라졌대도 그토록 무덤덤하지는 못할 텐데. 어쩌면 격조했던 세월이 훨씬 더 긴지도 몰랐다.

“아는 동생이 할리우드라는 간판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내가 뿔테 안경에게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업종이 뭔데요?”

“오래전에 스치듯 들은 얘기라……”

“이 동넨 순두붓집부터 가발 가게까지 죄다 할리우드라 한양 가서 김서방 찾는 격이에요.”

“그럼, 엘이 하나, 홀리우드는?”

“그런 간판도 종종 있어요. 할리우드 스펠을 그렇게 알고 있는 무식한 사람들이 많아서……”

다시 한 번 벽에 부딪힌 기분. 맥이 빠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미친듯 졸음이 몰려왔다.

“이건 다 뭐요?”

사무실 안을 여기저기 살피던 피셔맨의 낮고 굵직한 목소리였다.

“아, 리스트 업하고 있던 소설 원고예요. 신춘문예 응모작.”

뿔테 안경의 대답에 나는 억지로 눈을 떴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A4 사이즈 출력물.

“여기도 신춘문예가 있소?”

입말도 설고 글말도 선 이곳에서 신춘문예라니 기분이 묘했다. 열두 시간을 날아왔는데 한국보다 더 한국 같은 곳에 떨어진 느낌이랄까.

“여기도라니. 열기는 한국보다 핫한데.”

뿔테 안경이 안경알 너머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당선작 나온 지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올해 응모작을 미리 보내오는 거요. 그때그때 정리해두지 않으면 연말에 깔려죽어요. 신춘문예 아니었으면 신문사 간판 벌써 내렸을지도 모르지.”

뿔테 안경은 하던 작업을 이어가려는 듯 노트북을 펴고 자판을 몇 번 두드렸다.

“한 글자도 더 손볼 데가 없다는 건가? 대단한 자신감이네.”

“심사위원들이야 어떨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 절반 이상은 소설이 아니라 그냥 일기, 자서전이에요.”

뿔테 안경이 노트북 화면을 피셔맨과 내 쪽으로 돌려주며 말했다.

파란만장 내 인생, 羅城日記, 태평양을 건너는 시간, 호랑가시나무숲 연대기…… 아닌 게 아니라, 액셀 표 첫 칸을 장식하고 있는 제목들은 하나같이 경험이라는 심지에 침도 안 묻히고 눌러쓴 느낌이었다.

“자서전은 진실된 기록이에요. 제대로 된 자서전을 쓰시려면 내 인생은 열 권짜리 소설이라는 착각부터 깨끗이 접으세요.”

구립도서관 자서전 쓰기 강좌 첫 시간에 들은 얘기가 새삼 떠올랐다. 소설가라던 강사는 자서전 운운하기엔 새파란 감이 없지 않았다. 성씨가 두 개인 점도 거슬렸다. 부계, 모계 성씨를 병기하는 건 문자 그대로 공산共産주의적 발상 아닌가.

진실된 기록? 평양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수사반장>을 나란히 시청했다면, 평양의 어둠을 가르던 절체절명의 순간 뮤즈가 죽음의 키스처럼 찾아왔다면 독자들이 믿어줄까? 직접 겪지 않았다면 나 자신조차 소설 쓰고 앉았다고 코웃음칠 일들을?

문득 어떤 깨달음 하나가 머릿속을 밝혔다. 내가 자서전이라고 써도 사람들은 소설로 읽을 공산이 컸다. 가면을 써야 소설, 벗으면 자서전이 상식이라면, 나는 가면 뒤로 숨어야 자서전을 쓸 수 있다. 맨얼굴을 보여주면 소설이 된다. 이 고독한 모순이 바로 나, 라이카의 인생이다. 가면 속의 얼굴. 소설 뺨치는 자서전, 아니 소설이라는 허울로 위장할 수밖에 없는 자서전 제목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다른 기자들은 다 어디 갔소?”

피셔맨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맥아더 파크 인근에서 열리는 애국 동포 궐기대회에 갔죠. 수교가 웬 말이오? 그것도 공화당 대통령이. 각하께서 만든 당과 같은 이름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북한 빨갱이들이 취업하겠다고 몰려와서 물 흐릴 걸 생각하면 잠이 안 와, 잠이. 92년 흑인 폭동 이후로 일등 시민으로 이미지 업하느라 얼마나 애썼는데.”

뿔테 안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브라보! 기자들이 다 갔으니 대문짝만하게 실리겠네.”

“요즘 누가 취재해서 기사 씁니까? SNS 훑어보고 대충 짜깁기하면 되는데. 머릿수 채우러 갔죠. 그림이 그럴듯하게 나와야 하니까.”

“시간 내줘서 고맙소.”

내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재단사가 갑자기 대화를 삭둑 자르며 일어섰다.

“그런데 김국장과는 어떻게 된다고 했죠?”

뿔테 안경이 따라 일으서며 재단사에게 물었다.

“고종사촌이오.”

재단사는 태연히 말을 바꾸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더부룩한 속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국물을 찾아 나선 건 미국에 온 지 사흘 만이었다. 우리가 그간 입에 댄 음식은 햄버거와 샌드위치, 테이크아웃 중국 음식뿐이었다. 재단사는 주구장창 샐러드였고. 불만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실낱같은 단서조차 찾지 못하는 나날, 목을 조여오는 초조함에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LA에 왔으면 갈비가 필수 코스인데, 김작가가 절간 음식만 먹으니 순두붓집으로 가자고.”

피셔맨이 차에 시동을 걸며 선심 쓰듯 말했다.

코리아타운까지 가는 내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할리우드라는 간판을 육안으로 하나하나 탐문한 칠십이 시간이었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할리우드사우나, 할리우드당구장, 할리우드뷰티숍, 할리우드치과, 할리우드경양식, 할리우드부동산, 심지어 할리우드한의원까지. 뿔테 안경 말이 과장은 아니었다. 한양에서 김아무개 찾기.

그러고 보니 우리 셋, 아니 그분마저 ‘킴’이었다. 스타벅스에서 주문받는 직원이 이름을 묻기에 성만 댔더니 컵 세 개 모두 Kim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뒤로는 코리아타운 커피숍만 갔다. 똑같은 패밀리 네임 때문만은 아니었다. 종이컵 하단에 암호처럼 그려놓은 캐리커처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완전히 발을 끊지는 않았으리라.




첫번째가 나였음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다. 염색한 보람이 있었다. 나머지 둘이야 누가 봐도 피셔맨과 재단사.

“김감독처럼 우리도 변장이 필요하겠어. 이렇게 즉석에서 몽타주가 나와서는 곤란해.”

스타벅스에서 나오기 무섭게 피셔맨이 말했다.

할리우드뷰티숍행의 목적이 탐문만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재단사는 스포츠머리 가발을 구입했다. 피셔맨은 남은 머리를 최대한 살리겠다며 헤어라인에만 흑채를 뿌리더니, 거울을 보고는 구레나룻까지 붙였다. 그렇게 완벽한 변신을 마치고도 우리는 문제의 스타벅스 매장에는 얼씬도 안 했다.

할리우드다방은 메뉴판도 한글이고 주문도 우리말로 할 수 있어 더없이 편했다. 음료 가격 옆에 원도 아니고 환이라는 옛 화폐단위가 적힌 탓이었을까. 70년대식 아케이드 건물에 나란히 입점한 전파사와 전당포 때문이었을까. 서울에서도 접하기 힘든 지난 시대의 공기가 우리를 좋았던 시절로 데려가는 듯했다. 거기 푹신한 의자(요즘 카페 의자는 어찌나 딱딱한지)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문 채 신문을 읽고 있노라면 그분이 출입문을 밀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또 안 받나?”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굳은 얼굴로 주차장에서 걸어나오는 피셔맨에게 내가 물었다. 짬이 날 때마다 며느리에게 전화를 거는 눈치였지만, 통화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간판이 희한하네.”

피셔맨이 딴소리를 했다.

아리랑토푸. 고개를 올려보니 출입문 위로 한글 다섯 글자가 빨갛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토푸?”

“두부도 몰라?”

“근데 뭐가 희한하다는 건가?”

“한글 간판이니 ‘두부’가 자연스럽지. 토푸라면 아예 알파벳으로 쓰든가.”

순간, 놓치고 있던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다.

“할리우드. 우드는 숲인데…… 할리는 뭐지?”

“호랑가시나무. 예전부터 이 지역에 그 나무가 많았다고 들었네. 할리우드는 호랑가시나무숲이지.”

재단사가 무심히 대답했다.

왜 진작 떠올리지 못했을까. 신춘문예 투고작 리스트에도 있었는데, 호랑가시나무숲이라는 단어가.

나는 식당 안으로 뛰어들어가 카운터 직원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호랑가시나무숲이라는 간판을 본 적 있소?”

“호가숲 교회가 있긴 한데……”

“호가숲?”

“호랑가시나무숲 교회를 줄여서 그렇게 불러요.”

직원이 금전등록기에 지폐를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 아기 부처상이 내 기도에 제대로 응답했다. 그분은 여기, 천사들의 도시에 있었다. 악마보다 고요한 그분이 천사만큼 시끄러운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