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황금 십자 목걸이


나의 우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꼬박 한나절이 걸린 낙원상가에서의 대대적인 탐문은 말하자면 베이컨식이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철학자는 네 곳에 우상이 있다고 했다.

맨 먼저 극장.

“얼굴을 감싸고 뛰쳐나온 한 명만 기억날 뿐 특이점은 없었네.”

재단사가 나오는 길목까지 지키고 있었지만, 여남은밖에 안 되는 <십계> 관객 중에 그분은 없었다. 다음 입장 관객 중에도.

사층에는 실버영화관 말고도 뮤지컬 공연장과 예술영화관이 있었다.

“말로 하면 될 걸 왜 노래로 하는지 모르겠어.”

뮤지컬이 비효율적인 장르라고 하셨던 그분 말씀이 떠올라 뮤지컬 공연장은 아예 건너뛰었다.

예술영화관에서는 <400번의 구타>라는 작품을 상영하고 있었는데 야만적인 제목부터 그분과는 거리가 멀었다. 광고문구도 노골적이었다. ‘누벨바그, 영화사적 혁명의 신호탄!’ 혁명의 신호탄이라니. 파업의 천국 불란서에서 날아온 빨갱이 영화를 그분이 보고 앉았을 리가. ‘학교보다 거리에서 나는 더 많은 걸 배웠다.’ 불온한 카피 아래 철조망에 갇힌 십대 소년의 반항적 눈빛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던 우리를 데려다 타고난 재능을 꽃피우게 해준 그분이야말로 교육자의 대명사 페스탈로치 같은 존재 아닌가.

내가 아는 모든 걸 나는 그분에게 배웠다. 이것이 나의 카피다.

다음은 시장. 구역을 나눠 건물 이층과 삼층 악기점들을 샅샅이 뒤지고 지하층의 재래시장까지 칸칸이 훑었지만 애당초 그분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분은 어수선한 시장통보다 한적한 공원이나 고즈넉한 서점이 어울리는 분이었다.

그러니 세번째, 종족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복도와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종종거리며 노인들이란 노인들은 낱낱이 심검했다. 술에 취해 구석에 엎어져 있는 노인네까지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지만 어떤 연결점도 찾지 못했다.

마지막은 동굴이었다. 동굴은 은밀한 곳. 행여 그분이 비밀 메시지라도 남겨두었을까봐 신고를 무릅쓰고 여자 화장실 칸막이까지, 양변기 물탱크 안은 물론 천장 패널까지 들춰보았다. 하지만 종이 쪼가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나의 우상은 극장, 시장, 종족, 동굴,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낙원이라는 이름의 공간 어디서도 그분의 자취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귀부인의 초상>이 엉뚱한 곳을 가리킨 걸까? 재단사의 털벙거지 속에서 내가 헛것을 본 건가? 건물 밖으로 나서는 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한나절에 걸친 수색으로 녹초가 되어서만은 아니었다. 미궁 속의 우리를 그분에게로 인도하던 붉은 털실이 뚝 끊어져버린 것 같았다. 발걸음보다 마음이 몇 배 더 무거웠다. 다른 요원들의 실수는 어떻게든 바로잡을 수 있었지만 나, 라이카의 경우엔 달랐다. 내가 번지수를 잘못 짚으면 타깃을 확보할 골든 타임을 놓쳐버리기에. 기억에서 삭제하고 싶은 실패들이 더러 있었다. 사십 년 가까이 살을 맞대고 산 아내 이름은 깜박해도 그런 일들은 뇌리에서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가장 지우고 싶은 작전 중 하나는 동해안 잠수정 사건이었다. 주문진 앞바다에서 북한 소형 잠수정이 발견되었는데 승조원들의 행방이 묘연했다. 헬기 편으로 현장에 급파된 내게 주어진 단서는 달랑 유리병 하나뿐이었다. 오줌이 절반쯤 담긴 일 리터짜리 코카콜라 병. 잠수정에서 볼일을 해결해야 했던 승조원들이 남긴 게 분명했다. 배설물의 혼과 접속하기는 난생처음이었지만 눈을 질끈 감자마자 낯선 정경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해송 대신 동백나무가 바람막이 구실을 하고 있는 바닷가 공장. 주요 산업시설 파괴가 침투 목적인가? 부랴부랴 헬기에 올라 부산의 한 공장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며 무전으로 지역 부대를 출동시키고 윗선에 중간보고도 했다. 오줌이 담긴 병을 한시도 놓지 않은 채.

도착해보니 그곳은 코카콜라 제조공장이었다. 부산과 경남 지역 유통을 맡고 있던 업체. 타깃은커녕 타깃 비슷한 존재도 있을 리 만무했다. 내가 읽어낸 건 오줌의 혼이 아니라 유리병의 태생지였으니. 그나저나 거기서 만든 코카콜라를 북한 놈들은 어떻게 입수했을까? 하긴 <수사반장>도 실시간으로 보던 자들이니.

추적의 포커스가 엉뚱한 곳에 맞춰진 사이 두 명의 승조원이 휴전선을 넘어 달아나고 말았다. 낙오한 한 명이 인근 농지 볏짚단에 숨어 있다 총격전 끝에 사살되었다는 사실로는 벌충할 수 없는 실패였다. 그 일로 공식적인 징계는 받지 않았지만 한동안 현장에서 은근히 배제된 게 더 뼈아팠다. 그분의 신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삼 개월 정직보다 더 두렵고 고통스러웠다.

“그림이 보여준 곳, 여기 맞나?”

재단사가 미덥지 못한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분명히 여기였는데.”

움츠러든 어깨만큼 작아지는 목소리를 어쩔 수 없었다.

“저거……”

피셔맨이 손가락으로 도로 쪽을 가리켰다. 눈에 익은 검정 세단이 레커차에 끌려가고 있었다.

“김배우 BMW 맞지, 일구육사?”

내가 피셔맨을 돌아보며 말했다.

항공기 엔진 생산업체에서 만들었다는 독일산 세단은 이륙이라도 하려는 듯 앞바퀴가 허공에 들린 채 조금 전 우리가 빠져나온 건물 필로티 기둥 사이로 멀어져갔다.

“딱지 짭새 주제에 감히……”

피셔맨이 보이지도 않는 교통경찰을 향해 욕을 퍼부으며 냅다 차도로 뛰어들었다. 재단사도 나도 뒤따라 레커차를 쫓기 시작했다.

“스탑! 스탑!”

기계체조의 힘일까. 재단사가 피셔맨을 가볍게 추월해 선두로 치고 나가며 외쳤다. 하지만 뒤에서 일제히 울리는 경적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레커차는 이제 건물이 드리운 검은 그늘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몇 발 떼지도 않았는데 그새 숨이 차오르고 무릎이 삐걱거렸다. 재단사는 말할 것도 없고 피셔맨과의 간격마저 점점 벌어졌다. 말을 듣지 않는 몸뚱이에 화가 치밀었다. 한줄기 바람처럼 보이지 않게 나뭇잎을 흔들던 민첩함은 어디로 갔는가. 신들의 풍차를 사흘 밤낮 돌려도 끄떡없던 지구력은 또 어디로 갔는가.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지 못한 유폐의 시간들, 오로지 숨만 쉬어온 무기력한 나날에 참기 힘든 모멸감이 밀어닥쳤다.

그러는 동안에도 꾸역꾸역 발은 놀렸고, 발을 놀렸으므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어서 수평선처럼 닿지 못할 것 같던 건물 아래 터널 아닌 터널로 진입하게 되었다.

“뒈지려면 방구석에서 뒈져!”

터널 안에서는 욕설을 내뱉는 차들의 브레이크 등을 화살표 삼아 달려야 했다. 완만한 커브를 돌자 터널 밖에서 쏟아져 들어온 빛이 시야를 뒤덮었다. 화이트아웃. 모든 게 희붐한 장막 너머로 사라졌다.

살기등등한 욕설의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실신 일보 직전에야 시야가 복원되며 레커차가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레커차는 좌회전 방향등을 깜박이며 교차로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피셔맨이 불가사의한 막판 스퍼트로 재단사를 따라잡더니 여세를 몰아 BMW와의 거리를 맹렬히 좁혀나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괴력의 역주에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피셔맨의 쭉 내민 손끝이 트렁크에 닿을 듯 말 듯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레커차가 꽁지에 불이 붙은 듯 다급한 호를 그리며 종로3가 방면으로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역주의 당사자인 양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몇 정거장은 달려온 줄 알았는데 고작 건물 뒤에서 앞으로 건너왔을 뿐이었다. 오래된 건물의 눈에 익은 전면부. 그러고 보니 내 머릿속 세번째 눈동자에 비친 것도 저 빌딩의 앞모습이었던 것 같다. 낙원의 뒷면이 아니라 낙원의 앞면.

낙원악기상가라는 고딕체 글자 위로 대형 광고판이 붙어 있었다. 세 극장의 래퍼토리를 나란히 홍보하고 있는 광고판. 가운데를 차지한 영화 포스터가 눈에 익었다. 그분, 아니 모세가 갈라진 홍해를 배경으로 십계명 석판을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거친 페인트 질감이 살아 있는 옛날식 간판 그림은 오리지널 포스터 그대로였지만 틀린 그림 찾기처럼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찬찬히 보니 모세의 흰 수염 아래 번쩍이는 목걸이가 거슬렸다. 원그림에 덧칠을 한 것처럼 황금색이 도드라져 보이는 십자 목걸이.

어디서 봤더라? 눈에 익었지만 분명 모세의 것은 아니었다.

빵빵대며 달려오던 차가 스치듯 지나갈 때까지 나는 간판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흠칫 몸을 움츠리며 인도 위로 올라서는 순간 기시감의 발원지가 떠올랐다.

“왜 그러나, 김감독?”

어느새 곁에 선 재단사가 내 눈길을 좇으며 물었다.

“모세가 걸치고 있는 목걸이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

내가 새로운 단서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우상은 극장도 시장도 종족도 동굴도 아니고 목걸이에 있는지 몰랐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석판을 내던질 듯 높이 쳐들고 있는 그림 속 목걸이에.

저 영화 간판장이를 만나보아야 했다.



“마티스 조요?”

건물 지하 한 귀퉁이에 우리가 수색 때 놓친 공간이 있을 줄이야. 피셔맨이 맡은 구역이었다. 훑을 만큼 훑었다며 허름한 국숫집에서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부터 불안하더니. 극장 직원에게 물어 찾아간 사무실인지 창고인지 모를 공간에는 꽁지머리 청년 하나가 바닥에 깔린 신문지 위에서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페인트 얼룩투성이 앞치마를 두른 채로.

“마티스?”

피셔맨이 되물었다.

“새채으 야수라나 무어라나.”

꽁지머리가 입안 가득 짜장면을 욱여넣은 채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벽면마다 겹쳐 세워놓은 영화 포스터들. <자이언트> <닥터 지바고> <로마의 휴일>…… 향수를 자극하는 간판 그림들이 같은 사람의 작품이라는 건 분명했다. 제임스 딘도 오마 샤리프도 그레고리 펙도, 크기는 달랐지만 다 같은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모세가, 아니 귀부인이 목에 걸고 있던 황금빛 십자 목걸이. 위작 논란 당시 도트 무늬 블라우스와 함께 판매대에 나오기 무섭게 동이 났던, 이른바 귀부인 목걸이.

“그 야수는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나?”

내가 꽁지머리에게 물었다.

“누구신데요?”

“그런 건 알 거 없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눈앞에서 견인된 차 때문에 독이 오른 피셔맨은 완연한 시비조였다.

“우린 옥외광고 사업을 하고 있네. 화려한 네온이 식상하던 차에 마티스 조의 작품이 계시처럼 눈앞에 나타났다네. 레트로가 너희를 구원에 이르게 하리라.”

미리 준비한 대사처럼 재단사가 자연스레 둘러댔다.

“명함이나 놓고 가시든지.”

꽁지머리가 군만두를 한입 베어 물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명함을 뿌리고 전화나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분도 얼굴 보기 힘들어요. 제가 다 그려놓으면 와서 실눈으로 한참 꼬나보다가 눈동자랑 저 요상한 목걸이나 휘리릭 그려넣는 게 전부거든요. 화룡정점. 그래야 비로소 그림이 살아 숨쉰다나.”

“화룡점정이겠지, 젊은 친구.”

피셔맨이 트집을 잡으며 말했다.

“됐고 마티스 조 명함이나 줘.”

“간판이 명함이라는 분이에요. 한창때는 충무로 제작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왔대요. 남주 코 높이, 여주 속눈썹 길이에 따라 몇십만이 왔다갔다했다면서.”

“남주?”

“남자주인공이요. 여주는 여자주인공. 대박이냐 쪽박이냐는 전적으로 자기 붓끝에 달렸었다나 뭐라나. 개뻥도 적당히 쳐야지, 간판 감상하려고 극장 오는 인간도 있나?”

뒷말을 쏟아내던 꽁지머리가 황급히 입을 닫았을 때 우리의 시선은 일제히 출입문 쪽으로 쏠렸다. 소주병을 쥔 군복 차림의 사내 하나가 들어서고 있었다. 시커먼 라이방으로 두 눈을 가렸어도 우리 또래로 보이는 연식은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심상치 않은 콧잔등.

설마 내 사타구니를 더듬은 그놈? 이런 늙다리가?

“마티스 조?”

내가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

그놈인지는 몰라도 마티스 조인 건 확실했다. 군복이 부리나케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복도로 나갔을 때는 그새 비상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허둥지둥 발을 놀리자니 욕지거리가 입가에 절로 맴돌았다. 두번째 랠리에서도 우리 팀 에이스는 단연 재단사였다. 재단사는 초반부터 맨 앞으로 나섰다. 뒤에서 첫번째는 어김없이 내 차지일 줄 알았는데 레커차 추격 때와는 달리 피셔맨이 영 맥을 못 췄다.

마티스 조는 순대 냄새가 코를 찌르는 비좁고 혼잡한 노포 골목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급회전이 잦아 무릎에 무리가 가는 코스만 아니었어도…… 행인 한 명 한 명 피할 때마다 서너 걸음씩 간격이 벌어졌다.

마티스 조가 탑골공원 돌담을 끼고 저만치 멀어졌을 때, 재단사가 갑자기 몸을 돌려 레커차를 쫓던 도로로 진로를 바꿨다. 돌담을 빙 돌아나간 마티스 조가 큰길에서 종로3가 방면이 아닌 탑골공원 정문 쪽으로 향한다면 덜미를 낚아채겠다는 계산 같았다. 나도 길목을 지키는 편을 택했다. 뒤쫓는 건 피셔맨 하나로 충분했다. 몰이꾼보다 매복조에 힘을 보태는 게 유리하리라는 판단이었다.

매복 포인트에 도착했을 때 재단사는 이미 공원 담장에 바짝 붙은 채 사냥감이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물을 펼치듯 나는 보도블록 가장자리 가로수 뒤에 몸을 숨겼다.

손차양을 하고 마티스 조의 예상 도주로 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저만치서 국방색 실루엣이 힘겹게 뛰다 걷다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야전野戰을 위한 보호색이 추적 신호인 양 두드러져 시야에서 놓치는 건 불가능했다. 뒤는 피셔맨이 달라붙고 있을 터. 우리가 할 일은 사냥감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타이밍을 잘 잡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도심 한복판에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너무 많았다. 공원 정문에서 난데없이 군복 차림의 노인 한 무더기가 쏟아져나올 줄이야. 손에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노인들이 인도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푸른 다윗의 별, 이스라엘 국기도, 심지어 일장기도 눈에 띄었다. 만국기 휘날리던 그 옛날 운동회 때처럼 활기와 적개심이 뒤섞인 집단적 흥분이 대열을 휘감고 있었다.

군복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1차로를 점령하더니 파라오의 압제를 떨치고 일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유를 부르짖으며 종각역 방면으로 행진했다.

“좌파 독재 타도하자!”

“빨갱이들은 이북으로!”

우리의 사냥감은 거대한 진녹색 물결 속으로 감쪽같이 스며들고 없었다.

시위대를 뒤따라가며 살폈지만, 무성한 풀숲에서 메뚜기 한 마리 찾는 격이었다. 죄다 희끗한 스포츠머리인데다 시커먼 라이방은 또 어찌나 많은지.

“자유민주주의 수호하자!”

피셔맨은 그 와중에도 구호를 열렬히 따라 외쳤지만 나는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런 티나는 차림새로 노인 격리구역에 모여 만날 떠들어본들 무슨 효과가 있을까. 지나가는 사람들도 거들떠보기는커녕 피하기 바쁜데. 열심히 행렬을 살필 뿐 구호를 복창하지 않는 재단사도 나와 같은 생각인 걸까. 좀더 교묘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 아군을 늘리려 정체마저 숨기는, 빨갱이들의 통일전선전술처럼.

“마티스 조! 코는 어쩌다 그리되셨나?”

행렬 중간쯤에서 콧잔등의 반창고를 발견한 건 나였다.

사내가 무심코 내 쪽을 돌아보았다. 움찔하는 기색, 켕기는 자가 풍기게 마련인 시큼한 불안의 냄새. 시원찮은 무릎으로 한바탕 줄달음치게 만든 장본인이 비역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는 데 멀쩡한 어금니를 다 걸 수도 있었다.

“조용히 얘기 좀 할까?”

팔을 낚아채며 말을 걸었지만, 마티스 조는 내 정중한 제안에 응할 뜻이 없는 듯했다. 응하기는커녕 야수라는 별명답게 내 손을 거칠게 뿌리치더니 시위대의 어깨와 어깨를 헤집으며 앞쪽으로 나아갔다.

“빨갱이 잡아라!”

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무슨 소린가 하고 몇몇이 힐끗거릴 뿐, 내 외침에 호응하는 복창 소리만 어설픈 4·3조에서 입에 착 붙는 4·4조로 진화하며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빨갱이를 잡아라!”

“빨갱이를 때려잡자!”

절박함이었을까, 응어리진 분노 때문이었을까. 내 입에서 뜻밖의 구호가 터져나왔다.

“호모 새끼 잡아라!”

이번에는 효과가 없지 않았다. 거칠 것 없이 도주하던 마티스 조가 누군가의 발에 걸렸는지 홍해에 가라앉은 파라오의 군대처럼 처참하게 고꾸라졌다.



“저기가 좋겠군.”

사위를 둘러보던 피셔맨이 마티스 조와 긴한 대화를 나눌 장소로 지목한 곳은 보신각이었다.

“괜찮을까? 거긴 만남의 장소 아닌가.”

내가 손차양을 하며 말했다.

보신각은 희뿌연 햇살 속에 거무스름하게 서 있었다.

“제야의 종을 왜 서른세 번 치는지 아나?”

아는 척 병이 도졌는지 재단사가 퀴즈 내듯 물었다.

“불교의 삼십삼천天에서 온 거 아닌가. 서른세 개의 하늘 세계가 존재한다는.”

내가 신중히 대답했다.

“맞네. 새벽이 밝으니 성문을 연다는 파루종을 서른세 번 쳤어. 종소리가 도성 곳곳에 미쳐 한 명의 백성이라도 새로운 하루를 놓치지 않도록. 일종의 시계였지. 이제는 새로운 하루가 아니라 새로운 한 해를 깨우니, 그때 말고는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지.

재단사 말대로 새해가 밝는 순간만 이목이 쏠리는 장소가 된 걸까. 도심 한복판인데도 비현실적으로 적막한 공기가 몇 걸음 만에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건너온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보신각 앞에서 보자던 오래전 약속들은 다 무엇이었는지, 그 사람들은 누구였는지 아득하기만 했다.

난간을 넘어 종만 덩그러니 놓인 누각에 오르니 마티스 조의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대체 왜 죽자사자 달아난 거야?”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 모를 대화의 테이프를 끊은 건 자백 기술자, 피셔맨이었다.

“잘못했습니다.”

갑자기 마티스 조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극장에서 벌인 망측한 짓 때문으로 오해한 게 분명했지만, 내버려두면 더 나올 게 있을 것도 같았다.

“뭘 잘못했다는 거야?”

피셔맨이 요것 봐라, 하는 얼굴로 물었다.

마티스 조는 입술만 실룩일 뿐 아무 대꾸도 없었다.

“말문이 닫히셨다. 그럼 오픈을 도와드려야지.”

피셔맨이 공공칠가방을 열더니 케이블 타이를 꺼내 재단사와 나에게 넘겼다. 재단사는 마티스 조의 발목을, 나는 손목을 결박했다.

피셔맨의 가방 안에 눈에 익은 장비가 보였다. 소침, 대침, 장침 등 다양한 길이와 굵기의 침들이 가지런히 담긴 스테인리스 케이스.

“자리를 좀 비켜주겠나?”

피셔맨이 목소리를 낮게 깔아 말했다.

“같이 하면 안 되나? 물어볼 것도 있고.”

나도 심문을 지켜보고 싶었다. 나만 아는 망측한 일도 있고.

“누군가 망을 봐야 하지 않나.”

“보초야 한 사람이면 충분할 텐데. 여기야말로 보조가 필요할 수 있잖은가?”

“다이다이, 내 작업 스타일 몰라? 침술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 고독한 행위예술이라니까. 오늘 처음 본 사이도 아니고 왜 이래?”

피셔맨이 대뜸 언성을 높였다.

굳이 둘 다 내려보내려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잘못했다고 무릎 꿇었으니 절반은 자백받은 셈 아닌가. 색채의 야수는 개뿔, 조금만 으르면 술술 불 것 같은 겁쟁이 호모 새끼라 침까지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천국의 지하실을 여는 과정도 녹화해서 다 같이 봐놓고…… 혼자만 들어야 할 뭐라도 있는 건가?

재단사가 내 팔을 잡아끄는 바람에 계단을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를 오가는 행인 중 이쪽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곳은 등잔 밑처럼 어둡고 등잔 기름처럼 조용했다. 담배를 꺼내 한 개비 권했지만 재단사는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재떨이가 비어 있는 법이 없던 골초가 별일이었다.

“내가 담배 끊은 거 모르나?”

재단사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나는 지포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급히 한 모금 빨았다. 정신이 은단처럼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시작한 담배를 은단 덕분에 끊었다는 얘기가 뒤미처 떠올랐다.

“마티스 조가 그쪽으로 올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나?”

내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담뱃불을 나누는 사람과는 적이 되거나 친구가 되거나 둘 중 하나라던 아버지 말이 떠올랐다. 담뱃불이 쓸모없어진 이 사내는 내게 무엇인가.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라면 대체 어떤 의미일까. 친구이기도 하고 적이기도 한 자? 친구인 줄 알았으나 아무도 몰래 적으로 돌아선 자?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목사의 열두 제자. 같은 담배 필터에서 나와 형체도 없이 흩어져버리는 저 연기처럼. 유일한 연결고리였던 그분이 사라진 지금은 더더욱.

“달아나는 자는 오른쪽으로 돌기 마련이지.”

“그런가?”

“지구가 왼쪽으로 자전하니까.”

역정보를 섞어 혼란에 빠뜨리는 기만전술이 입에 밴 탓일까. 재단사의 말은 어디까지가 농담이고 어디까지가 진담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흥미로운 가설이군.”

“자네가 들려준 얘기잖나.”

“내가?”

“훈련생 시절에.”

그럴 리가. 오늘 처음 듣는 얘기를 그 시절 내가 해줬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내 능력을 의심하는 재단사에게 기억력마저 의심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필터까지 타들어오는 담배를 계속 물고 있었다.

“새소년이라고, 기억 안 나나?”

재단사는 허점을 파고드는 사냥꾼처럼 숨쉴 틈을 주지 않았다. 예스나 노로만 대답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담배를 끌지 말지 망설이는 내 손끝의 떨림을 재단사도 느꼈을까. 새 소년인지 세 소년인지는 모르겠고, 연기할 때 감정 표현보다 두 손 처리가 더 까다롭다던 어느 배우의 인터뷰만 떠올랐다.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펴 드는 브이를 보라. 심문 때도 가장 많은 걸 실토하는 게 바로 손이었다.

취조실 탁자 밑에 설치된 소형 카메라로 우리는 피심문자의 손놀림을 유심히 관찰했다. 깍지 낀 손, 움켜쥔 손, 마주 비비는 손, 허벅지를 꼬집는 손, 무릎을 연신 두드리는 손. 손가락은 갈비뼈 밖으로 삐져나온 열 개의 심장마냥 진실과 거짓의 군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입이 꾸며대는 거짓이 들통나기 바라는 또다른 자아처럼 손은 부산스레 움직였다.

“거짓말은 몸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주네. 정교한 거짓말은 말할 것도 없지. 빈틈이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그 스트레스는 어떤 형태든 비언어적 생체 신호를 남긴다네. 자백을 거부한답시고 혀를 깨무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인간의 몸뚱이는 혀투성이니까. 나라면 취조가 시작되자마자 허를 찌르듯 적당한 진실을 던져주겠어. 진실이야말로 활용하기에 따라 가장 교묘한 거짓이 되기도 하니까. 진실들 사이에 거짓 하나를 끼워넣는 거지. 빵과 빵 사이에 있는 햄처럼. 이것은 빵인가, 햄인가? 샌드위치지. 정확히는 햄 샌드위치. 빵은 어디로 갔나? 진실은 인식의 맹점 속으로 빨려들어가버리는 거야.”

좀체 판단이 서지 않는 문제일수록 그분은 단순하게 결정하곤 했다. 앞뒷면이 똑같은 동전을 던져 올리듯.

나는 담배를 구둣발로 비벼 끄며 입을 열었다.

“요원 중에 새소년이라는 코드 네임이 있었던가? 나는 기억에 없네만.”

내게 꽂히는 재단사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재단사가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를 드러내는 섬뜩한 미소. 이내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특유의 반쪽짜리 웃음이 아니라 박쥐 영웅의 맞수 조커처럼 완전하면서 발작적인 웃음. 발작적이라서 완전해진 것일까. 완전해서 더 기괴한 웃음을 바라보며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뭔지는 몰라도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느낌이었다.

“이제껏 자네에게 들은 얘기 중에서 유일하게 재미있었네. 보답으로 잃어버린 필름 하나 채워주겠네, 라이카. 새소년이라는 이름의 잡지가 있었어. 혹독한 훈련으로 진이 빠진 자네들이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던 월간지. 맞아, 우리가 아니라 자네들. 기성 문인들도 기고하던 『학원』조차 내겐 유치했으니까. 지구 자전 운운은 자네가 『새소년』을 보고 들려준 얘기야.”

그제야 생각났다. 다음 호를 기다리며 너덜너덜해지도록 읽고 또 읽던 모험과 추리와 공상과학 이야기들.

“과학으로 풀어보는 세계의 불가사의!”

내가 기억을 더듬어 출처를 댔다. 보물창고 같던 그 잡지에서도 가장 먼저 펼쳐보던 코너였다.

“진짜 기억 못하는 줄 알았잖나. 그럼 새소년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아나?”

“1964년 창간된 거 아닌가? 없어진 한국 최초의 잡지 『소년』을 새롭게 이어간다는 뜻으로?”

“잡지 말고 다른 새소년.”

다른 새소년이라니.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무언가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기분이었다. 어쩌면 비껴간 게 아니라 더 깊은 덫으로 이끄는 미끼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섣불리 입을 떼지 못했다. 지뢰 위에서는 발끝도 까닥하면 안 된다.

어느새 재단사의 얼굴은 반쪽짜리 조커로 돌아가 있었다. 앞뒷면이 똑같은 동전을 쥐고 위태롭게 서 있는 나를 비웃는 표정으로.

“젠틀맨!”

때마침 누각 난간 너머에서 피셔맨이 흥분을 가누지 못하는 얼굴로 소리쳤다. 올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마티스 조, 좀전에 내게 털어놓은 얘기를 다시 해보게.”

피셔맨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무언가 의미심장한 정보를 캐냈을 때 짓던 표정이었다.

“한국 대표 회화 특별전에 걸린 <귀부인의 초상>은 내 새끼요.”

마티스 조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정수리부터 귀밑까지 침이 잔뜩 꽂힌 채로.

“위작이라고? 실력자들을 접견하던 곳에 걸려 있던 그림이?”

목걸이가 모종의 연결고리일 거라 짐작했지만, 나라를 들었다 놨다 했던 그림이 영화 간판장이 솜씨였다니. 황당한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위작이 아니라 이 몸이, 마티스 조가 그린 진품이라고.”

마티스 조는 케이블 타이에 묶인 두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뽐내듯 말했다.

“이런 사쿠라 같은 놈 말을 믿나?”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 침을 의심하는 건가?”

피셔맨이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 작품활동을 했을 뿐이야. 원하는 화가만 대면 같은 스타일로 그려줬지만 똑같이 베낀 적은 없소. 이런 작품은 위작이 아니라 모작이라고 하는 거요. 하늘 아래 모방에서 자유로운 작품이 어디 있어? 다른 작품을 모방하든 자연을 모방하든.”

누가 사기꾼 아니랄까봐 마티스 조는 헛소리를 잘도 지껄었다.

“빨갱이 화가가 제 입으로 제 새끼라 하지 않았나?”

나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려 애쓰며 물었다.

“노화가가 취리히 사건의 복수를 했군. 목사를 엿 먹이려고.”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로 재단사가 중얼거렸다. 아무 상관 없는 체스판을 지켜보는 사람처럼.

“그 그림 하나로 온 세상이 야단법석일 땐 왜 입다물고 있었나?”

내가 다시 물었다.

“기자들 만나서 얘기했소. 내가 그린 그림이다, 내 새끼다, 내가 친부다.”

마티스 조는 여전히 히죽대는 표정이었다. 한눈에 봐도 진실을 얘기하는 것 같던 자백 영상의 주인공들과는 사뭇 달랐다. 될 대로 되라는 듯 아무 소리나 내뱉는 느낌이랄까. 피셔맨이 들으면 노발대발할 소리지만 천국의 지하실을 제대로 연 걸까.

“그런데?”

“모델이 누군지만 캐묻더군. 이름깨나 알려진 여자들 사진을 쭉 펼쳐놓고서. 한 일간지 기자는 녹음기를 끄며 내 얘기가 사실인 것 같다더니 기사에는 아예 소설을 썼지. 위작 경력 이십삼 년 차 베테랑 A씨는 진품일 가능성이 99.9퍼센트라고 확언하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진품은 위작 전문가가 제일 잘 알아봅니다. 진품만 보고 그리는 사람들 아닙니까?”

“하이에나 새끼들!”

광기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던 몇 달 간의 여론 몰이가 떠올라 새삼 치가 떨렸다.

“모델은 누구였나?”

재단사가 무덤덤하게 물었다.

“당구장에서 나오는데 새까만 양복 차림 사내들이 잠깐 갈 데가 있다며 다짜고짜 새까만 차에 밀어넣지 않았겠소. 머리에 복면을 씌워서 어디였는지는 모르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려는 건가? 죽일 거면 굳이 복면을 씌울 필요 없지 않나? 뭐하는 자들이지? 전에 그린 그림이 잘못됐나? 오만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치는데 복면이 걷히니 캔버스가 눈앞에 있고 그 너머에는 머리를 한껏 부풀려 틀어올린 여인이 다리를 꼰 자세로 앉아 있지 뭐요. 그림을 그려달라는 시추에이션이구나. 그제야 거실 창 너머로 한강이 눈에 들어오는데 왈칵 눈물이 솟구치는 거요. 진짜 죽었다 살아난 것처럼.”

“그래서 모델이 누구였다는 건가?”

재단사가 재우쳐 물었다.

“길 가다 스치면 한 번은 돌아볼 미인이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소. 왠지 분위기가 살림할 것 같지는 않았지. 옆에 아는 얼굴이 있기는 했소. 나중에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고 알게 되었지만. 그 사람이 뭔가 허전하다며 목걸이를 가져와 걸어줬지.”

“그 사람?”

“안기부 양반 있잖소. 아파트 몇 채 해먹고 감옥 갔던. 귀부인처럼 그려달라고, 귀부인의 초상처럼 그려달라고 그 화가 도록까지 보여줍디다.”

그 여자는 누구였을까? 거실 창 너머로 한강이 보였다면 압구정 안가? 그림쟁이를 거기까지 데려와 그릴 정도면 보통 사람은 아닐 터. 높으신 분의 여자였을까? 우리도 모르는 공작의 일부였을까? 확실한 한 가지는 위작이라던 그분의 주장이 진실이었다는 점이다. 그분은 그런 분이었다. 진실 앞에서는 자신의 유불리조차 따지지 않는.

“그림마다 목걸이는 왜 그려넣었나?”

내가 물었다.

“낙관을 찍는 심정으로 그런 거지. 세기의 작품을 내가 그렸다, 그 유명한 <귀부인의 초상>을 그린 사람이 나다. 기자들이 안 써주니 그렇게라도 증거를 남겨야지 않겠소. 대단한 물건이라고도 들었고.”

“대단한 물건?”

“사명대사라고 아시죠? 임진왜란 때 날렸다는.”

“스님이 웬 십자 목걸이?”

“임진왜란 직후 사신으로 일본에 파견된 사명대사가 거기서 포르투갈 신부를 만났소. 조총을 실은 상선 편으로 일본에 온 인물인데 그가 지니고 있던 게 바로 목걸이에 달린 그 황금 십자가였소. 사명대사의 도력에 감복한 나머지 물푸레나무 염주와 맞바꿨다지.”

“왜군들이 공을 인정받으려 베어간 조선인 귀 무덤 앞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섰을 때였네. 내 마음이 바뀌면 당신 손목이 잘릴 테지만 당신 마음이 바뀌면 내 목을 쳐야 할 것이다. 사명대사가 염주와 맞바꾼 십자가에 삼으로 줄을 달아 목에 걸며 말했어. 십자가 네 귀퉁이의 칠보 장식이 특징이지. 십자가 위쪽에 INRI,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구절의 라틴어 첫 글자들이 새겨져 있고. 그림이 아니라 목걸이가 국보급이었군. 물론 진품일 때 얘기지만.”

그림 속 목걸이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던 걸까? 아는 얘기가 나오면 참지 못하는 재단사가 상세히 덧붙였다. 자신이 쓴 대본을, 보기 좋게 성공시킨 공작의 뒷얘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진품 맞을 걸세.”

내가 단언했다. 그분을 뵌 꿈에 난데없이 사명대사가 등장한 곡절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어디에 있나, 사명대사의 목걸이?”

내가 마티스 조에게 물었다.

“원래 있던 곳으로 갔다고 들었소.”

“원래 있던 곳?”

“나머지는 우리끼리 목 좀 축이며 얘기하는 게 어떤가? 갈증으로 목이 쩍쩍 갈라질 지경이네만.”

피셔맨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몸을 획 돌려 앞장서기 시작했다.

피셔맨이 눈을 반짝이며 들어간 곳은 근처 호프집이었다.

“목걸이가 어디 있다는 건가?”

술이 나오자마자 능숙한 손놀림으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붓는 피셔맨에게 내가 물었다.

“혹시 백린사에 있나?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는?”

내게도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피셔맨이 폭탄주 한 잔을 단숨에 비우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피로의 기색이 가득하던 얼굴에 아연 생기가 돌았다. 소주 반잔에 얼굴이 새빨개지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정작 술고래인 재단사는 물만 홀짝이고 있었다.

“백린사에서 보관중이던 물건이 어떻게……”

“그거야 아이 돈 케어고,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자 실낱같은 단서인 그 목걸이가 현재 백린사 소장이라는 점은 확실하지.”

피셔맨이 내 말을 자르며 호기롭게 대답했다.

“마티스 조, 아니 조춘범이라고 했나? 그놈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나는 여전히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만일을 대비해 볼모를 데려왔지.”

피셔맨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선글라스였다. 마티스 조가 쓰고 있던 라이방. 

피셔맨이 라이방을 쓰고서 말을 이었다.

“이렇게 일러주었네. 이제부터 우리는 당신의 눈이 되어 귀하가 어디 짱박혀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습니다. 언더스탠드?”

말을 마치기 무섭게 피셔맨은 남은 소주를 병째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