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낙원 속 극장


우리에게 미술관은 또다른 일터였다. 해외 공작의 단골 접선지. 미술관만큼 미행을 감지하기 용이한 곳이 없다. 두어 번 특이한 동선으로 감상 경로를 바꿔보면 꼬리가 붙었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보는 눈이 많아 서로 허튼짓을 저지르기도 어려웠다.

<모나리자>처럼 관람객이 너무 많이 몰리는 그림 앞은 곤란했다. 국가 기밀을 소매치기당하는 것만큼 쪽팔리는 경우가 또 있겠는가.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블랙 요원에게 건너갔어야 할 외교행낭을 중간에 털린 것이다. 위조 여권과 위조 비자라 현지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쪽팔림으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 어둠의 경로를 전전하다 북측으로 흘러들어가기라도 하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도 한국 여권은 암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된다고 들었다. 대남 공작이라는 마르지 않는 수요 때문 아니겠는가.

그런 인기 작품 앞에는 감상용 의자가 없는 것도 문제였다. 나란히 앉아 같은 그림에 눈길을 모으고 있으면 둘 사이의 긴장감도 누그러뜨릴 수 있고 안부(의미 있는 정보를 가리키는 은어였다)를 주고받기도 수월했다. 마이크로필름이든 투명 잉크로 쓴 비밀 쪽지든 슬쩍 흘리고 자리를 뜨면 접선 상대가 자연스레 수거하는 식. 안부인사가 바닥에 떨어져 이목을 끄는 위험을 원천봉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접선이란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긴박한 작업이었고 눈앞의 명화들은 문자 그대로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그러니 기억에 남는 거라곤 그림이 아니라 그림 옆에 붙은 화가와 작품명뿐일 수밖에. 유학생 간첩단을 일망타진하러 간 비엔나에서도, 공관에서 암약하는 쥐새끼를 색출해야 했던 파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계미술사에 빛나는 클림트의 <키스>가, 고흐의 <해바라기>가 그런 식으로 내 인생을 코앞에서 비껴가고 말았다.

뒤늦게 세계적 명화들을 접한 곳은 국내 미술관이었다.

“나 아님 당신이 미술관 근처라도 가겠어?”

아내 성화에 마지못해 끌려간 샤갈과 피카소 특별전.

“누구 만나기로 한 사람이라도 있어요?”

연신 두리번거리는 내게 아내는 몇 번이고 물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에만 들어서면 본능적으로 팽팽해지는 긴장의 끈이 좀체 늦춰지지 않았다.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엉덩이를 붙일 흔한 벤치 하나 없었다. 관람객은 또 어찌나 미어터지게 많던지. 접선 포인트로 삼음직한 그림이라곤 단 한 점도 없다. 그것이 샤갈과 피카소를 뒤로하던 나만의 감상이었다.

그뒤로 아내는 미술관의 미음 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국내 작품을 보러 가는 건 처음이었다. 운명의 얄궂은 장난일까. 첫 국내 작품 관람이 하필이면 문제의 그 빨갱이 화가 것이라니. 그분을 궁지에 몰아넣은 족보도 불확실한 그림이라니.

분명 특별전시실에 있다고 들었는데, 문제의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흩어져 정탐해보아도, 복층 이상의 구조물 탐색 매뉴얼(퇴로에 가까워지는 순서로!)대로 삼층부터 일층까지 전시실 구석구석을 크로스체크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물어볼 직원 하나 보이지 않네. 모마에는 전시실마다 도슨트가 있는데.”

피셔맨이 투덜거렸다.

“모마?”

내가 곧바로 물었다. 모르면 물어보아야 한다던 그분의 가르침을 뼈에 새긴 결과였다.

“엠오엠에이. 뉴욕현대미술관.”

피셔맨이 으스대듯 대답했다.

“이놈의 빨갱이 정권은 세금 걷어서 북한에 퍼부어주느라 안내하는 사람 하나 못 두네.”

갑자기 언짢아져 구시렁거렸다.

그러는 사이 재단사는 로비 정중앙에 있는 터치스크린 앞으로 가 있었다.

찾는 내용 없음.

화가 이름을 입력해도 그림명으로 검색해도 화면에 뜨는 결과는 같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재단사가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중얼댔다.

“저 그림 아닌가?”

내가 바로 옆 터치스크린에 떠 있는 홍보 포스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국 대표 회화 특별전.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미술 교과서에 실리는 국민 화가들의 대표작 사이, 우리가 찾던 그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피셔맨이 포스터 하단에 적힌 글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재단사도 나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서울관이 생겼다는 정보야 모를 수 있다 해도 타깃 좌표 파악이 이토록 허술했다는 점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현역 시절이라면 시말서감이었다.

너무 무뎌진 건 아닐까. 완전히 녹슬어버렸나. 구두끈을 고쳐 매야 할 필요가 없었다고, 과녁만 짝사랑하는 총알처럼 언제든 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그분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림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는 척하던 피셔맨도, 작전을 기획한 재단사도 무뎌진 건 마찬가지라는 사실조차 위로가 되지 못했다.

시간이라는 거인의 주먹질에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나쁜 소식은 홀로 오지 않는다더니, 그 그림을 직접 보려면 사십이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시간의 주먹질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여기는 국군서울지구병원이 있던 자리 아닌가.”

이십 년 동안 잠들었다 깨어난 립 밴 윙클도 이렇게 소리쳤을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 나는 주먹질을 넘어 조롱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주먹질의 흔적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희미해지기 마련이지만 조롱의 상처는 화상 자국처럼 갈수록 또렷해진다.

“궁정동 안가에서 총을 맞은 VIP가 숨이 끊긴 채 실려온 곳 맞네.”

약속 장소인 미술관 일층 카페에 미리 와 있던 피셔맨이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본 듯 말했다. 옆에서는 재단사가 녹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피셔맨의 말대로 거긴 한 시대의 막이 내려진 곳이자 뒤이은 시대의 서막이 열린 현장이었다. 국군서울지구병원은 국군보안사령부 영내에 있었고, 그 덕에 대통령 유고를 뜻하는 코드 제로 첩보를 누구보다 빨리 입수한 당시 사령관이 청와대의 다음 주인이 된 것이다.

“경호실 애들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더니만 총알 한 방 제대로 못 쏘고…… 경호실 애들만 빠릿빠릿했어도 김부장이 그런 판단은 못했을 텐데. 당연히 각하도 무사하셨을 거고.”

내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계룡산 법문사 자광선생께서 각하가 살성殺性이 강한 사주라 기미년 갑목대운을 조심하라 몇 년 전부터 그리 일렀다는데…… 대운이 바뀐 지 사흘 만에 그런 흉사를 당하실 줄이야.”

피셔맨이 장탄식을 내뱉었다. 계룡산 자광선생이라면 VIP에게 올라갈 존안 자료 특이사항란에 한 줄짜리 인물평을 부탁하던 도인이었다. 보안사 애들이 퍼뜨린 마타도어일 확률이 높았지만, 김부장 특이사항란에는 이렇게 적었다는 소문이 10·26 직후 돌았다.

제왕의 관을 짜는 목수.

“목사가 그러더군. 김부장은 눈을 좀 붙였어야 했다고. 상승장군 맥베스를 파멸시킨 것도 수면부족이었지.”

재단사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김부장을 잡은 기무사령관이 회사 넘버원으로 올 때만 해도 다 죽었구나 싶었지. 취임사에서 대역죄라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나. 첫 간부회의에선 해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입에 올렸고.”

피셔맨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골치가 지끈거렸다. 경쟁 관계이던 군 정보기관 수장이 점령군 대장으로 들이닥쳤으니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분위기였다.

“그나마 우린 북한이라는 명백한 위협이 있어서 피바람을 모면한 거야. 국내영업부는 비빌 언덕이 없어 작살이 났지만 해외 영업망은 하루아침에 구축되는 게 아니니까.”

재단사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피셔맨이 비아냥거리듯 물었다.

“고마워하긴. 피차 잘 먹고 잘 자자고 하는 일인데.”

“요샌 자도 잔 것 같지 않아. 밤새 사지가 묶이는 벌을 받고 일어난 느낌이랄까.”

내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계체조를 해보게. 자다가도 몇 번이나 뒤통수에 도끼가 박힌 것처럼 눈이 부릅떠지곤 했는데, 이젠 벽에 이마를 댄 도낏자루처럼 곯아떨어진다네.”

사사로운 이야기를 풀 때조차 재단사는 새로운 진리를 공표하듯 당당했다. 저 도저한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재단사가 말을 이었다.

“선배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을 미시마 유키오가 신랄하게 비판했지. 냉수마찰과 기계체조로 충분히 다스릴 수 있는 우울증이었다. 유약한 것보다 강인한 게 좋다. 아름다움은 강인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적 앞에서 터질 듯 몸집을 부풀리는 두꺼비처럼 재단사가 과장스레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기괴하리만치 홀로 불거진 이두박근의 탄생 비화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헐크로 변신한 팔이 오로지 문장 강화를 위해서라니. 드넓은 광장을 굽어보며 우뚝 선 청동상 같은 자기 확신이 몸부림 같은 노력의 산물이라니. 근육질 팔뚝과 확신 어린 말투 뒤에 감춰진 두려움을 엿본 느낌이었다. 강한 게 좋다고 떠든 그 작가도 유달리 병약한 성장기를 통과하지 않았나.

문제의 그림을 발견한 곳은 제1전시실이었다. 발견이라고 표현할 것도 없이 전시실에 들어서면 바로 마주 보이는 벽면 하나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한 방송국에서 박수무당 찾아갔던 거 기억나나? 실물도 아니고 신문에 실린 그림 사진 걸어놓고 굿까지 하지 않았나? 작두를 타던 박수무당이 애기 목소리로 아부지, 아부지 대성통곡할 때만 해도 사짜다 싶었는데, 지구 반대편에 누워 있던 빨갱이 화가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걸 감지하는 신통력이라니. 게임 끝이구나 싶었지. 자식도 내 아버지라 그러고 아버지도 내 자식이라고 하는 판국이었으니.”

피셔맨이 그림을 응시하며 말했다.

“신통력은 무슨. 오늘내일한다고 이미 뉴스에서 떠들고 있었는데.”

내가 반박했다.

“이봐요, 사모님. 우리 목사님 어디 계신지 말씀 좀 해줘요.”

피셔맨이 그림 속 귀부인에게 묻는 시늉을 했다.

“생각보다 사이즈가 작군.”

그것은 내 솔직한 첫인상이었다. 전시벽 하나를 통째 차지할 만한 대작은 아니었다.

“<모나리자>나 <별이 빛나는 밤>도 직접 가서 보니 쪼그만 게 별거 아니더구먼. 모름지기 마스터피스라면 피카소의 <게르니카> 사이즈는 돼야지. 누가 빨갱이 아니랄까봐 붉은 물감으로 떡칠해놓은 것 좀 보게. 김작가, 시대를 뒤흔든 문제작을 처음 대면한 소감이 어떤가?”

“이미 본 적 있네.”

“어디서?”

내가 받아치듯 물었다.

압구정 안가로 말하자면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각계 실력자들을 접견하는 용도라 회사 내부적으로도 과장급 간부 이상만 가능했다.

재단사는 대답 대신 알 듯 모를 듯한 비웃음만 지었다. 설마 그분 자택에서? 부하들 집 부엌에 있는 숟가락 개수까지 훤히 꿰는 상사였지만 정작 본인 개인사는 입 밖에 잘 내지 않는 분이었다. 그런 면을 가장 빼다박은 게 재단사였다. 단 하나의 표정으로 나머지 모든 표정을 감추는 기괴한 얼굴만큼이나 재단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간 1면을 도배하면서도 이름은 실리지 않는 유령 작가로 암약했던 세월 내내. 근황은 고사하고 생사조차 모르던 퇴사 이후의 삶은 완전한 암흑에 묻혀 있었고. 결혼이라는 걸 했는지조차 긴가민가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자기 얘기에 인색한 그분도 슬하에 딸만 셋을 두었고 장녀가 아이비리그에 진학했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데.

청출어람. 비밀주의라는 관점에서만 보자면 재단사는 스승을 뛰어넘은 제자가 아닐 수 없었다. 역시 그분 수제자는 재단사였을까. 유독 재단사에게 엄격한 그분 모습을 볼 때마다 시샘이 일곤 했다. 용맹한 호랑이는 강한 새끼일수록, 자기를 닮은 새끼일수록 더 혹독한 담금질을 겪게 하는 법이니까. 무섭도록 완벽한 대칭을 자랑하던 그분 얼굴 밑에도 실은 재단사처럼 반만 웃는 진짜 얼굴이 감춰져 있던 건 아닐까. 국가안전기획부 최고 설계자. 그 자리는 결국 재단사가 물려받게 되었을까. 캠퍼스도 허물어지고 다들 진짜 유령 같은 존재로 전락했지만 훈련생 시절 지병처럼 나를 괴롭히던 질투심이 되살아나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그럴수록 복잡해지는 물음표 하나. 그런 재단사가 왜 그분을?

카이사르의 등에 비수를 꽂은 브루투스가 떠올랐지만, 더이상의 상상을 떨쳐내며 나는 눈앞의 그림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림은 의외로 평범했다. 그분이 겪어야 했던 고초에 비하면 지나치게 단조로웠다. 그런데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한쪽으로 기운 고개며 새초롬히 내리깐 눈에서 어떤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슬픔이었다. 맑디맑으면서 한없이 우아한 슬픔. 아버지의 폭력이 지나간 뒤의 어머니를 고요히 감싸고 돌던. 풍성한 올림머리, 단아한 눈매, 기름한 목선이 어머니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귀부인의 초상이라는 제목을 달 자격이 충분한 작품이었다. 위작이라는 주장은 그분이 전세를 뒤집기 위해 고안해낸 역정보가 틀림없었다. 진품이 맞았다.

그림이 잊고 있던 기억 하나를 불러냈다. 아버지가 손목시계를 풀 때마다 나는 장롱 안에 웅크려 있곤 했다. 기품 있는 한 세계가 기품 없는 무엇에 유린되는 장면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장롱 안의 어둠으로도 모자라 눈을 질끈 감곤 했다. 그러면 알쏭달쏭한 검은 빛무리가 눈앞에 아롱거렸다. 사물의 혼에 흰 캔버스가 되어주던 검은 바탕화면.

“그림의 혼에 접속하려면 블랙아웃이 필요하네.”

내가 그림에 바투 다가서며 말했다.

“두꺼비집을 내려버릴까.”

피셔맨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급한 대로 이거라도……”

재단사가 민머리에 눌러쓰고 있던 털벙거지를 벗어 건넸다.

길게 늘어뜨려진 양쪽 귀마개 끝에 똑딱단추가 달려 턱까지 감쌀 수 있었다. 게다가 안감 털이 드러나도록 뒤집어 올려붙인 챙을 내리면 얼굴 대부분이 가려졌다.

털벙거지로 불빛을 최대한 차단한 채 나는 그림 한복판에 손바닥을 대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아버지가 두렵지 않았다. 아버지의 발작적인 폭력이 극에 달하는 순간조차.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에 아버지는 뭔가 부족했다. 변변한 직업 없이 동네 궂은일을 도맡는 사람이어서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정말이지 궂은일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잡다한 문제들을 들고 아버지를 찾았다. 지붕에 비가 샐 때도, 묵은빚을 받아내야 할 때도, 똥통이 가득찼을 때도, 개를 잡아야 할 때도. 심지어 파투 내야 할 맞선 자리에 성깔 더러운 친척 역으로 불려 나간 적도 있었다. 영화 <대부>에서 이태리 이민자들은 돈 코를레오네에게 존경심이라는 대가를 지불했지만, 아버지에게 돌아온 건 몇 푼 수고비와 절뚝발이라는 멸시뿐이었다.

문제를 해결해줄수록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더 함부로 구는 이유를 훗날 깨우쳐준 건 그분이었다. 존경심은 두려움에서 나오고, 두려움은 기품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아버지에겐 기품이라는 게 없었다.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폭군일 때도 두려움이 아버지의 것일 수 없는 이유였다. 파리를 낚아챈 두꺼비마냥 혀로 연신 입술을 핥는 버릇부터 기품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똑바로 보지 못하고 염탐하듯 곁눈질로만 흘끗대던 비굴한 눈도.

기품이라면 오히려 변변한 저항 없이 일방적으로 두들겨맞던 어머니 쪽에 있었다. 닭장에서 막 꺼내온 달걀로 멍든 부위를 문지를 때조차 몰락한 귀족이 거느릴 법한 비애가 느껴졌다. 외오촌 어른이 독립운동 자금을 대다 가산을 날린 동네 부호였다는 얘기를 들어서만은 아니다. 소설 같은 건 몰락한 명망가 자제들이 쓰는 거라고 누가 그랬던가. 언젠가 책을 내게 된다면 전적으로 어머니 덕이리라. 미안하게도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게 나는 좋았다. 언제나 다른 세계에 가 있는 듯한 어머니였지만, 멍자국이 완전히 가시기 전까지는 어디로도 떠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그랬다. 내 유일한 두려움은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어머니의 빈자리를 발견하는 거였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손찌검의 회오리가 멎으면 아버지는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옷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러면 과분한 아내가 홀연히 날아가버리지 못하리라 믿는 사람처럼.

그런 아버지였지만 왠지 나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두꺼비 사내와 엮인 사연만큼이나 그 사내가 내게 폭력을 쓰지 않는 이유도 수수께끼였다. 실체 없는 숱한 이야기들이 덜 여문 내 머릿속에 들어섰다 더 극적인 버전에 밀려나곤 했다. 후진 기어가 없던 공상은 아버지라는 사람이 친부가 아니라는 데까지 나아갔다. 나라는 존재는 언젠가 몸값과 맞바꾸어야 할 인질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두꺼비로 변할 때마다 나는 장롱에 숨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부를 그려보곤 했다. 눈을 질끈 감고서 기다리면 지직거리는 은막 위로 떠오르던 얼굴들. 그것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 아저씨 역으로 나온 김진규였다가 <5인의 해병>에 나온 최무룡이었다가 <벤허>의 찰턴 헤스턴일 때도 있었다.

“아임 유어 파더!”

나 자신도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다스 베이더 경의 저 대사를 듣던 순간, 다시 유년의 그 장롱 속으로 되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번쩍이는 까만 투구를 벗기면 친부의 얼굴이 거기 있을 것만 같았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누구도 깔보지 못하는 얼굴. 지적이면서 어딘가 모르게 비밀을 품은 듯한 얼굴.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을 팔러 왔던 어떤 얼굴이.

그 시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또 한 가지는 갈기갈기 찢긴 옷이 아버지가 폭행의 속죄 의식처럼 어머니 품에 안긴 물건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제는 모르지 않는다. 아버지는 두려움을 두려워 말고 존경했어야 했다. 그것만이 두려움의 노예가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었다.

“뭐가 보이던가?”

차에 오르기 무섭게 재단사가 물었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시선은 여전했다.

“낙원……”

내가 안전벨트를 당겨 허리에 두르며 말문을 열었다.

“설마……”

피셔맨이 내 말허리를 잘랐다.

“악기들 파는 데 말야.”

<귀부인의 초상>이 어둠을 배경 삼아 내게 그려 보인 건 분명 그 건물이었다. 최초의 주상복합 빌딩 중 하나였으며 모든 악사들의 낙원이자 성지였지만 이제는 탑골공원과 떡집들 사이에 정체성도 불분명한 반백의 얼굴로 서 있는 건물.

“낙원상가?”

재단사가 확인하듯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어느새 미술관 주차장을 빠져나와 삼청로에 들어서 있었다.

“남십자성 공작 기억들 나나?”

피셔맨이 북촌길로 우회전하며 말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남십자성이라는 그 이름을. 1992년 6월, 연말에 치러질 대선을 겨냥해 사상 첫 남북 수뇌부 회담을 물밑 깊숙이 추진하지 않았나. 그런데 악기상이 밀집해 있는 그 건물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번에도 내 머릿속을 읽었는지 피셔맨은 알아서 얘기를 이어갔다.

“북측 대남사업부 부장이 극비리에 내려와 모처에 머물고 있었지. 회사에서 붙인 코드 네임이 뭐였더라?”

“제비였네.”

재단사가 피셔맨의 기억의 빈칸을 메워주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날아든 철새. 행운의 박씨를 물고 오는 길조. 코드 네임만으로도 회사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제비와의 접선에 목사가 단독 수행원으로 나를 차출했지. 휴대용 거짓말탐지기가 필요한 자리였으니까. 정말로 성사시킬 마음이 있는지, 대가로 뭘 요구할지. 빨갱이들 시커먼 속을 누가 알겠는가. 여기부터는 자네들도 모르는 얘기일세. 성공한 공작은 역사로 남지만 무산된 공작은 아예 없던 일이 되니까.”

피셔맨이 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공한 공작에도 우리 이름을 위한 자리는 없지. 처음부터 끝까지 드러나서는 안 되는 존재, 아무도 아닌 자들이니까.”

내가 덧붙였다.

차는 정독도서관을 지나 헌법재판소 앞으로 방향을 꺾었다.

“제비는 접선 장소를 십오 분 간격으로 바꿨어. 남산타워였다, 창경궁이었다, 갑자기 남대문시장이 되었지. 뺑뺑이가 따로 없었네.”

피셔맨은 다시금 변경된 통보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외국 관광객 필수 코스를 훤히 꿰고 있었군. 우리는 너희에 관해 모르는 게 없다. 뭐 이런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니었을까. 기선을 제압하려고 말야.”

“기선제압이든, 관광객 코스프레든 접선지에 다 가서 차를 홱홱 돌리려니 뚜껑이 열릴 지경이더군.  평양도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똥개 꼴이라니. 남산타워, 남대문시장, 창경궁 순이었다면 그나마 덜 빡쳤을까. 무전기에 총구멍을 내기 전엔 끝날 것 같지 않던 뺑뺑이에도 다행히 종착역은 있었지.”

노란 신호가 속도를 늦추고 대기하라는데도 피셔맨은 가속페달을 밟아 안국역 사거리를 쏜살같이 관통했다. 사방에서 빵빵댔지만 우리의 침술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로 저 건물에 있는 극장이었어.”

이제 차는 삼일대로를 달려 운현궁을 지나치고 있었고 피셔맨은 턱짓으로 전면 창 너머를 가리켰다. 정면 시야의 끝에는 가장 오래된 필로티 구조 건축물들 중 하나가 버티고 서 있었다.

“극장? CIA도 육성을 따기는 녹록지 않았겠군.”

재단사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내가 아는 바는 공작 실패에 대한 문책으로 그분이 삼 개월 감봉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는 대목까지였다. 협상 결렬의 책임은 미군 철수라는 받을 수 없는 카드를 들이민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었다. 징계를 결정한 사람들조차 부당한 처분임을 부인하지 못했지만 그분은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보다못한 몇몇이 십시일반 돈 봉투를 만들어 찾아갔을 때 그분은 불같이 화를 냈다.

“입때껏 내가 헛짓을 했군.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라고 가르쳤건만.”

그때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는데 이 나이가 되니 알 것도 같다. 조국의 적화를 막는다는 자존심 빼면 허깨비나 다름없는 우리 아닌가. 값싼 동정은 그분에게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을 터. 내 목숨을 앗아간 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자존심에 흠집을 내면 그 죄를 삼대까지 물을지어니.

“깜짝 놀랄 일은 아니었어. 우리도 제비에 대해 알아볼 만큼 알아봤거든. 후계자의 심복이었지. 서방세계에도 널리 알려졌다시피, 당시의 대동강 2호는 영화 마니아였잖나. 애간장을 녹이려고 그랬는지 정말로 영화를 보러 온 사람처럼 굴더라고. 스크린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시작하고서야 제비가 그날 처음으로 입을 뗐어. ‘미 제국주의자들이야말로 저 금발 요부와 같은 존재 아닙네까, 김선생? 천생연분 북남이었더랬는데 고저 불여우처럼 남측을 꼬드겨 연인의 이마에 총부리를 겨누게 하지 않았소.’”

“무슨 영화였나?”

내가 물었다.

“불후의 명작, <원초적 본능>이었네.”

“지금까지 남아 있을까, 그 극장?”

뒷좌석에 앉은 재단사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머리를 쑥 내밀며 중얼거렸다.

나라를 보위하던 정보기관 본부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묘지의 일부가 되었고, 암살된 대통령 시신이 실려갔던 육군 병원에는 그림 나부랭이들이 걸려 있으니, 설령 역사를 바꿀 뻔했대도 일개 극장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랴. 과거에 대한 존경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야만의 시대에.



극장은 남아 있다고 하기도 없어졌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낙원삘딍’이라는 북한스러운 간판, 인적 없는 악기점들을 지나 찾아간 사층에 실버영화관이라는 수상쩍은 이름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날의 프로그램이 <십계>만 아니었어도 곧장 돌아나왔을 텐데.

“뭔가 짚이는 게 있나?”

재단사가 나를 평가하는 듯한 눈빛으로 물었다.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사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영화잖나. 누가 알아, 제비와 담판을 짓던 맨 뒷자리 중앙에 떡하니 앉아 있을지? 셋이라야 만원도 안 되네. 삼 분 전에 시작했으니 아직은 대한뉴스가 나올 테고.”

빛은 바랬어도 특별한 인생의 한 페이지가 뜯기지 않고 남아 있어 감개무량했던 걸까. 피셔맨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확인해보니 가격표에 오십오 세 이상은 경로우대 할인가 이천원이라고 적혀 있기는 했다.

역시 빨갱이들은 영리했다. 실버영화관 인근에 즐비한 콜라텍이며 스크린골프장들을 보라. 노인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뒷골목 후미진 곳에 몰아놓겠다는 음험한 계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뒤미처 표를 끊는 사람 중 제값을 낼 것 같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파리 잡는 끈끈이에 스리에스만한 게 있겠는가.

스포츠, 스크린, 섹스.

빨갱이들은 왜 예의라는 걸 모를까. 타인의 창작물을 베꼈으면 로열티를, 하다못해 술이라도 한잔 사야 도리 아닌가. 지금에야 밝히는 얘기지만, 스리에스 정책은 회사의 지적 재산, 정확히는 그분 머리에서 나온 스테디셀러였다.

“일본 자민당이 장기집권하는 비결이 뭘까?”

잉어들에게 말린 새우를 던져주던 그분이 불쑥 물었다.

그분의 말이 의문부호로 끝날 때마다 나는 시험지를 받아든 수험생처럼 가슴이 콩닥거리곤 했다. 그분 앞이라면 들이쉬고 내쉬는 숨조차 시험으로 느껴질 만큼 혹독했던 훈련의 시간을 통과한 여파였다.

“고도 경제성장…… 아닌가요?”

신중하다못해 기어들어가다시피 하는 투로 내가 대답했다.

“잉어들은 제 비늘이 무슨 빛깔인지 몰라. 그런데 황금색 놈들에게만 주던 말린 새우를 다른 놈들에게 주면 헤엄치는 자태부터 달라져. 물살을 헤친다기보다는 유유히 거느리는 식으로. 진짜 황금 잉어들처럼.”

해가 중천에 떠 있어 중앙 정원 어디에도 없던 그늘이 내 얼굴에 드리웠을 것이다. 뜬금없는 잉어 얘기는 내 답이 빗나갔다는 그분만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그것은 산파술의 대가가 깨달음이라는 산도産道 저 안쪽에 끼어 있는 정답을 향해 내미는 마중의 손길이기도 했다. 친절한 힌트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 톱니바퀴들은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기는커녕 서로 헛손질, 헛발질만 주고받기 일쑤였다. 그러다 결국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은 채 그분이 스스로 답하기만 기다리게 되었고.

그분이 큰 그림을 구상할 때마다 머물던 장소라서였을까. 광주 사태 진압 일 주년을 앞두고 긴장감이 감도는 회사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그날만큼은 어쩐지 남다른 인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 건.

“국화와 칼인가요?”

나는 재일교포 간첩단 공작 무렵 찾아 읽은 책 제목을 댔다.

“계속해보게.”

정답 여부와 상관없이 그분의 관심을 끌어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뛸듯이 기뻤다.

“국화는 복종이고 칼은 두려움 아닙니까.”

“일본인들에게 야구는 국화인가, 칼인가?”

“야구요?”

그분과의 대화는 늘 그런 식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려 결승 테이프가 눈앞이다 싶은데 다시금 출발선이었다.

“베이스볼 몰라?”

“칼 아닌가요? 사무라이가 목을 베듯 배트로 공을 후려치더라고요.”

그분이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또 헛다리짚었다는 신호였다.

“야구라는 공놀이는 여러모로 흥미롭지. 투수가 일 구 일 구 던질 때마다, 타자가 배트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더그아웃의 코치가 지시를 내릴 수 있어. 경기의 매 순간 명령체계가 작동되는 유일한 구기종목이야. 멋모르는 관중들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일희일비함으로써 코치의 보이지 않는 지배력을 내면화하지.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날마다 야구경기를 즐길 때가 됐어. 안방마다 컬러텔레비전이 들어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적기야.”

그분이 붉은 빛의 한 무리 잉어들에게 말린 새우를 던져주며 말했다.

“우리도 프로야구 리그가 생기는 겁니까?”

“서울, 충청, 경북, 경남, 호남에 한 팀씩 만들 계획이네. 경기·인천·강원을 하나로 묶어 총 여섯 팀.”

“왜 영남만 두 팀입니까?”

“다섯 개면 한 팀은 놀아야 하지 않나. 자금력이 되는 연고 기업도 그쪽이 많고.”

“팀명도 정해졌습니까?”

“생각나는 이름이라도 있나?”

“슈퍼맨은 어떨까요?”

나는 그분을, 내 현실세계의 슈퍼맨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팀명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슈퍼맨이 배트를 들고 있는 슈퍼스타즈 심벌마크를 접한 순간 나는 감격에 겨워 울 뻔했다. 그분에게 인정받은 기분이었으니까. 연고를 무시하면서까지 열렬히 응원했지만, 자부심이 산산조각나는 데는 첫 몇 경기면 충분했다. 상대 팀마다 크립토나이트 공을 던지는 것 같았다. 슈퍼맨의 방망이는 허공을 가르기 일쑤였다. 1할 8푼 8리라는 기네스북에 오를 시즌 승률이 그 결과였다. 그분을 욕보이는 것 같아 면목이 없었다. 네 시즌 만에 슈퍼맨이 리그에서 사라졌을 때 나는 차라리 안도했다.



“와서 경배하라. 내가 너희를 종살이하던 집에서 빼내준 하느님이다.”

빨갱이 정권의 술책에 놀아날 수 없다는 말을 혀 위에 굴리고 있는 참에 피셔맨이 두 팔을 벌리며 채근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이 설령 지금 이곳에 없더라도 영화에서 실마리를 찾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십계>라니. 더는 길이 없다며 주저앉고 싶어질 때마다 분연히 나아가 몸소 길이 된 분의 교본 같은 영화 아닌가.

아메리칸 스타일로 각자 표를 끊자고 제안할 새도 없이 피셔맨이 어느새 만원권 지폐를 발권 구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영화는 이미 상영중이었고 우리는 아무 자리에나 가서 앉았다. 빈자리가 많아서 어둠 속에서 좌석 숫자를 읽어내는 수고를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예상대로 피셔맨은 맨 뒷줄 정중앙, 남십자성 공작 때 그분이 제비와 담판을 벌였다는 자리를 택했고, 재단사는 피셔맨과 같은 줄 가장자리에 착석했다. 나는 자막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더듬더듬 계단을 내려갔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엉덩이를 붙이고서 헤아려보니 앞에서 세번째 줄이었다. 스크린에서는 갓 태어난 모세가 고리버들 광주리에 담겨 강물에 둥둥 떠내려오고 있었지만 영화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극장에 온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했다.

아버지는 수틀리는 일이 있을 때마다 책을 끼고 살던 내게 전등을 다 꺼버리는 벌을 내렸지만, 내가 등화관제 훈련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 옆얼굴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좋아하는 아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으리라. 아버지 얼굴이 지워진 자리를 근사한 영화배우들이 차지한다는 것도.

녹내장이라는 쥐새끼가 내 시야를 야금야금 갉아먹어 들어올 줄 상상도 못하던 시절 얘기였다. 극장 같은 어두컴컴한 공간과 멀어진 건 노환인 줄만 알았던 녹내장이 마흔도 안 돼 찾아온 뒤부터였다.

“뭐하시는 분인데 벌써 이렇게 됐을까? 어두운 데서 장기간 작업이라도 하셨나요?”

의사가 딱하다는 투로 말했다.

만성폐쇄각녹내장. 그것은 일종의 직업병, 아니 업무수행으로 입은 산업재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사물들의 혼과 불철주야 교감을 나눈 대가였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본 <십계>는 그분 얼굴을 수시로 덧대지 않고선 볼 수 없는 영화였다. 동포의 자유를 위해 일신의 안위를 초개같이 내던진 선지자, 어제의 형제였던 파라오에게 핍박받는 모세의 모습 위로 그분이 어른거렸다. 이상하리만치 눈이 멀쩡했다. 흐릿하지도 침침하지도 뻐근하지도 않았다.

모세의 기도에 홍해가 둘로 나뉘는, 영화사의 명장면에서 내가 손수건을 꺼내든 이유도 녹내장과 아무 상관 없었다. 하루아침에 영어의 몸이 되어야 했던 그분의 운명이 떠올라서였다. 보상은커녕 배반으로 돌아온 헌신이 가엾고 억울해 가슴이 미어졌다. 그분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산을 옮기고 바다를 주름잡던 시간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워 숨을 쉴 수 없었다.

고개를 떨군 채 숨죽여 흐느끼느라 다시 합쳐진 홍해가 파라오의 군대를 집어삼키는 통쾌한 모습마저 놓치고 있었다. 봇물이 터진 듯 뜨거운 눈물이 연신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팔걸이를 거머쥔 손에 옆 사람 손이 닿은 것은. 명장면은 명장면인 모양이었다. 이 손길의 주인은 또 누굴 사무치게 그리고 있는가. 벅차오르는 감정에 그 손을 포개듯 감싸쥐었다. 하지만 실수였음을 깨달은 건 주저하던 손길이 무릎으로 옮겨왔다가 허벅지로 미끄러져 들어올 때쯤이었다. 백짓장처럼 새하얘져버린 머리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온전히 파악할 수 없었다. 언제든 내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손길은 이제 사타구니 근처까지 육박해 들어왔다. 전신마취가 덜 풀린 것마냥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거부의 기미가 없자 손길은 마지막 용기를 그러모아 곧장 그곳을 노렸다.

염병할 기저귀!

잠자리에서만 의지하는 물건이 어째서…… 돌돌 말아 종량제 쓰레기봉투 깊숙이 인멸하지 않았나. 우주가 멈춰버린 듯한 찰나, 나는 오늘 아침 일과를 톺아보고 있었다. 늘 그랬듯 일어나자마자 샤워한 건 지금 이 순간 기저귀라는 복병을 만나 우왕좌왕하는 손길의 존재만큼이나 확실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그 물건을 다시 착용하는 장면은 없었다.

혹시 샤워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온몸이 싸늘해졌다. 뼛속까지 얼리는 한기. 그것은 분노라기보다 수치심에 가까웠다. 살의를 부르는 수치심. 분노 때문이라고 착각할 때조차 인간은 수치심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분노는 눈이 어두워 애먼 대상으로 튈 수 있지만 수치심은 눈이 밝아 장본인이 제거되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는다. 수치심은 그것을 안겨준 자가 자신도 모른 채 맡아두고 있는 저당물 같은 것.

몇십 년 만에 찾은 영화관에서, 그분을 기리는 신성한 순간에, 상상도 못할 더러운 짓이라니. 내가 그리 호락호락해 보였나. 다시 합쳐지며 소용돌이치는 홍해처럼 수치심은 무서운 속도로 불어났다.

이웃의 성기를 탐내던 손목을 한 손으로 낚아챈 채 나는 주머니 속 하모니카를 꽉 쥔 나머지 한 손으로 허공에 날카로운 반원을 그렸다. 코뼈 부러지는 불쾌한 감각이 손날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더러운 호모 새끼. 내 손에 베레타가 아니라 하모니카가 쥐어진 걸 천운으로 여겨야 하리. 감히 <십계> 앞에서 신성모독이라니. 여자와 자듯 남자와 한자리에 들면 안 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 코가 몇 주 주저앉는 선에서 일단락되는 기적에 담긴 성경의 경고를 깊이 새겨야 하리.

하지만 감사의 인사는 없었다. 왱왱거리던 파리가 한순간 짜부라진 자리처럼 적막한 가운데 큭인지 컥인지 신음 같은 외마디뿐. 이윽고 호모 새끼가 급히 자리를 뜨는 기척이 느껴졌다.

하느님은 시나이산 석판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앞에 한 문장을 빠뜨렸다.

수치심, 나의 이름을 너희는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지어다.

유감스럽게도,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는 대목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없었다. 비록 그 열 계명을 등대로 삼아온 인생은 아닐지라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내라; 안식일에도 야근을 밥먹듯 했나이다.

부모를 공경하라; 하루에도 몇 번이고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거짓 증거를 만들지 마라; 빨갱이들은 존재 자체가 증거 아닌가요?


등대는커녕 돌멩이를 던져 깨뜨리기를 일삼은 유리창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스크린을 뒤로하고 출입문을 밀었다.

“김감독, 왜 벌써 나오나?”

나는 화들짝 놀랐다. 재단사가 문밖에 버티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엉덩이가 무겁기론 우리 중 으뜸인 재단사가. 동그래졌던 눈이 점점 가늘어질 수밖에. 피셔맨이야 추억의 자리였다지만 좋은 자리 다 놔두고 하필 출입구 바로 앞자리를 택한 것부터 이상했다. 중간에 슬쩍 나와야 할 용무라도 있었을까.

“자네야말로 여기서 뭐하고 있나?”

내가 가자미눈으로 되물었다.

“목사와 엇갈릴 수도 있으니까.”

재단사가 무심히 대꾸했다. 왠지 궁색한 변명처럼 들렸지만 더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난 볼일이 급해서.”

“그건 뭔가?”

재단사가 내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불끈 쥔 오른손에 들린 하모니카를.

“마침 여기 온 김에 수선이나 받을까 하고. 소리가 예전 같지 않아서 말이야.”

“그런 취미가 있는 줄 몰랐는데.”

“굳이 떠들 필요가 없는 일도 있지 않나.”

나는 그쯤에서 대화를 끊고 화장실로 향했다.

기저귀부터 처리한 다음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오줌도 찔끔 누었다. 화장실을 나와 극장 안으로 돌아가는 대신 계단을 내려갔다. 영화를 마저 볼 마음이 싹 가신 김에, 재단사한테 둘러댄 대로 하모니카라는 수수께끼의 실낱같은 단서라도 찾아볼 요량이었다.

아래층에는 상호만 다른, 고만고만해 보이는 악기점이 즐비했다. 한 종류만 전문으로 취급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예닐곱 평 남짓한 가게마다 온갖 악기들이 백화점식으로 망라되어 있었다.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던 사내에게 수수께끼의 하모니카를 건네면서도 별다른 기대를 품기 힘든 이유였다. 등받이 의자 끄트머리에 아슬아슬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 폼이 주인이 잠깐 비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단골손님 같기도 했고.

“이게 아직도 남아 있네?”

하모니카를 이리저리 뜯어보며 사내가 중얼거렸다.

“보시다시피 겉은 멀쩡한데……”

“리드도 망가졌네. 소리가 전혀 안 나. 똥 하모니카예요. 빈티지 숍에나 넘기면 모를까. 약줏값은 드릴 테니 놓고 가세요. 여기 아니면 사겠다는 데도 없을 거예요.”

몇 번 부는 시늉 끝에 사내가 경매 망치를 두드리듯 단언했다.

“팔려고 가져온 거 아니오.”

나는 하모니카를 획 낚아챘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는 극장에 도로 앉아, 나는 하모니카를 손에 쥔 채 눈을 감아보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떠오르는 이미지는 없었다.

글자 한 획 없었다.

그 무언가의 조각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불길하도록 완전한 암흑.

모세의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 명하기 전의 세상 같았다.

하모니카는 끝내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극장에는 하느님의 첫 음성이 실현되어 있었다.

돌아온 빛이 보기에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