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내장의 말들

애가 들어서 맛있다

부산 본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날 부모님과 점심으로 활아귀탕을 먹었다. 뚝배기에 담긴 따끈하고 맑은 국물에 미나리와 콩나물, 아귀 살이 든, 그야말로 “아…… 간밤에 술이라도 마셔둘걸” 싶은 훌륭한 해장음식이었다. 아귀탕을 먹으면 엄마아빠는 꼭 “애가 들어서 맛있다” “나는 애를 풀어 먹는다” “애를 한 입 먹어봐라”라며 다각도로 ‘애’를 강조하는데, 나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이 외글자를 알아듣지 못했다. 내 고향은 ‘경상도’를 ‘갱상도’라 하고 ‘야위었다’를 ‘애빘다’라 하는 식으로 이중모음을 단모음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으며 “할아버지 오셨어요?”를 “할뱅교?”로 줄이는 대담한 압축술을 사용하는 곳이라 틀림없이 표준어 발음이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외’ 정도로 시작하고 한 글자가 아닌 말이. 그런데 아니었다. ‘애’는 생선의 간을 뜻하는 말로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지는 않지만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면 북한어로 ‘명태 따위의 간을 뜻하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내 앞의 활아귀탕에도 아귀의 간인 ‘애’가 한 숟가락 정도 분량으로 들어 있었다. 조금 먹어보니 연두부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입에서 녹는데 잡맛 없이 꽉 찬 담백함과 참기름 같은 고소함, 입안을 감싸는 은은하고 깨끗한 단맛까지 실로 일품이었다. 엄마가 말했다. “이기 ‘바다의 푸아그라’라 안 하나.” 나는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물론 푸아그라는 인간의 세 치 혀를 위해 동물을 잔혹하게 혹사하는 일의 대명사 같은 음식이므로 나는 웬만해선 더이상 그것을 먹지 않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맛을 이미 알고 있다.) 아빠는 말했다. “이거를 요래 국물에 풀어가 먹으면 조미료가 필요 없는 기라.” ‘애’의 위력은 이렇듯 막강한 것이다. 그것에는 바다와 아귀의 생애가 농축되어 들어 있다.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아귀탕을 말끔히 비웠다. 

생선의 간뿐 아니라 옛날에는 인간의 내장도 다 ‘애’라고 불렀다. 사전에는 ‘창자, 쓸개, 간의 옛말’이라고 나와 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긋나니 


유명한 이순신 장군의 시다. 달 밝은 밤, 섬의 망루에 혼자 앉아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해군 수장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때 어디서 들려오는 한 곡조 피리 소리가 그의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데 이때 등장하는 ‘애’가 바로 앞서 말한 ‘애’다. ‘애’는 창자를 말하며, ‘애를 긋나니’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다’는 뜻이다. 이의 어원은 중국의 고사에 있으니 다음과 같다. 

진나라 환온이 촉을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 배에 군사를 태우고 가는데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왔다. 그런데 그 원숭이의 어미가 슬피 울며 그 배를 쫓아 백여 리를 뒤따라오다가 배 위로 뛰어올랐으나 너무 애태우며 달려온 나머지 죽고 말았다. 병사들이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가르자 자식 잃은 슬픔으로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랐고 이를 들은 환온은 새끼 원숭이를 풀어주고 그 원숭이를 잡아왔던 병사를 벌했다. 

여기서 ‘단장斷腸’, 즉 창자가 끊어진다는 표현이 비롯했으며 마음이 몹시 슬픔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웬만큼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슬픈 것이 아니라 죽을 정도로 슬픈 것이다. 마음으로 느끼는 슬픔이 아니라 내장으로 느끼는 슬픔이다. 송가인이 리메이크해서 화제가 되기도 한 <단장의 미아리고개>의 그 단장이다. 1956년, 한국전쟁 휴전 후 발표된 이해연의 노래 <단장의 미아리고개> 가사를 읽어보면 그야말로 창자를 끊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애를 긋는다’는 그런 슬픔을 말한다. 



애와 온도의 상관관계 

이제는 더이상 창자를 ‘애’라고 부르지 않지만 우리말에는 ‘애’가 많이 남아 있다. 몇 가지를 말해보자면, 


애끓다, 애타다: 몹시 답답하거나 안타까워 속이 끓는 듯하다. 

애달프다: 마음이 안타깝거나 쓰라리다. 애처롭고 쓸쓸하다. 

애먹다: 속이 상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다. 


등이 있다. 앞서 ‘애’는 창자뿐 아니라 간이나 쓸개 등에도 쓰이는 말이라고 했다. 그래서 ‘애간장’이라고도 쓴다. 사전에는 ‘‘애’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애를 끓이고, 애를 태우는 것은 음식에 열을 가하는 조리법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애간장은 ‘졸이고’ ‘녹이기’도 한다. 각종 조리법이 다 등장한다. 끓이고 태우고 졸이고 녹이고 먹기까지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밀당’을 잘해서 자신을 연모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은 상대의 애간장을 적절한 가열로 능란하게 요리해서 먹을 만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지면 ‘애’뿐만 아니라 심장에까지 화기가 미친다. ‘심장에 불을 지피다’ ‘심장이 끓어오른다’라는 표현이 있지 않은가. 심장이 훈훈하게 덥혀질 정도면 괜찮은데 심장에 화기가 심하게 미쳐 활활 타오를 정도가 되면 총체적인 ‘가슴앓이’가 시작된다. 열기와 온도의 표현들 중에서 재미있는 것은 ‘냉가슴을 앓다’는 말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만 끙끙대고 걱정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냉冷가슴’은 속은 열이 가득한데 겉으로는 안 그런 척, 말 그대로 쿨cool한 척해야 할 때의 온도차를 절묘하게 표현한다.    

내장기관에 가해지는 이 온도를 적절히 낮추면 해방감이 들고 쾌적한 상태가 된다. ‘속이 시원하다’는 말은 속의 열이 식어 쾌적한 상태가 됨을 뜻한다. 열이 안으로 꽁꽁 뭉쳐 있던 속이 시원해지고 바람이 드나들면 그제야 ‘가슴이 뻥 뚫린다’. 그런데 이 온도가 너무 내려가버리면 또 곤란하다. 간과 쓸개를 합친 말인 ‘간담’이 ‘서늘하다’는 말은 ‘몹시 놀라서 섬뜩하다’는 뜻이다. ‘심장이 차게 식었다’라고 하면 열의가 없어지고 냉담해진다는 뜻이다. 


gut feeling 

오래전 ‘것 필링gut feeling’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gut은 영어로 ‘소화관, 내장’이라는 뜻이다. ‘것 필링’이라고 하면 ‘직관’ ‘육감’ 등을 뜻하는데, ‘감정이 머리로 미치기도 전에 뱃속으로 쑥 들어오는 듯한 직접적인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싶어서 무릎을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왠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리라고 느낄 때,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상한 공포감이나 소위 ‘쎄함’이 엄습할 때, 그것들은 뇌가 아닌 장 속으로 바로 파고드는 것 같다. 어릴 적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을 들었을 때 내가 느꼈던 것도 기억난다. 무슨 그런 졸렬하고 못난 마음이 속담으로까지 정착되어 있나 싶었다. 어쨌든 아마도 머리로는 축하하고 싶지만 배로 느끼는 질투심과 부러움은 못 속인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는 장과 뇌의 밀접한 상관관계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장뇌축Gut-Brain Axis’은 소화기관과 중추신경계 사이에 일어나는 생화학적 신호를 뜻한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이것은 하나의 가설이었으나 최근에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장신경계Enteric Nervous System는 체내에서 놀라운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식도부터 대장까지의 위장관을 ‘제2의 뇌’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에 사는 미생물이 만드는 물질은 혈액에 흡수되어 뇌에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장내 미생물을 이용해 우울증, 자폐, 조현병 등 뇌에서 일으키는 심리적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사이코바이오틱스’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장내미생물이 뇌에게 말을 건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내장이 하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옛 인류는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라는 부제를 단 줄리언 제인스의 1976년작 『의식의 기원』은 인류의 원시 의식과 그 발달과정에 대한 도전적 가설을 언어에 대한 연구로 증명하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그는 인간의 ‘정신’이라는 게 완전히 발달하기 전의 시대에는 감정을 특정한 내장기관과 그 사이의 작용으로 파악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어로 쓰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는 ‘프레네스, 크라디, 에토르’ 등의 단어가 나온다. 줄리언 제인스의 주장에 따르면 이중 ‘프레네스phrenes’는 복수로 쓰이며 허파를 뜻한다. 감정을 프레네스의 호흡기적 반응들-숨을 죽이거나 숨을 몰아쉬거나 하하 웃거나 하는-로 인지하는데, 예를 들어 ‘아가멤논의 검은 프레네스는 분노로 가득 채워진다’라고 하면 분노로 깊게 숨을 쉬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크라디kradie’는 심장이다. 『일리아스』에서 비겁한 자는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그의 크라디가 큰 소리로 박동하는 자’다. ‘에토르Etor’는 위장관을 뜻한다. ‘아킬레우스가 리카온의 살려달라는 애원을 조롱할 때, 풀려나간 것은 리카온의 에토르였다’라고 하면 명치끝에서 가라앉는 느낌을 뜻한다고 추정한다. 요컨대 옛사람은 감정을 장기의 문제로 인지했다는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내장기관을 이용한 표현은 수없이 많다. 영어로 “Have a heart”는 ‘심장을 가져라’라는 말인데 ‘인정을 베풀어달라’ ‘좀 봐주세요’라는 뜻으로 쓰인다. 우리말로 ‘간이 크다’라고 하면 겁이 없고 매우 대담하다는 뜻이다. 그에 대한 반대말을 내장으로 표현하자면 ‘심장이 약하다’ 정도가 될 것이다. 뇌가 비대해진 우리는 어쩌면 내장의 말들을 너무 무시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라는 말의 의미를 가만히 곱씹어본다. 

‘내장과 말들’이라는 분야가 있다면 내가 최고로 꼽을 것은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사랑의 역사』(한은경 옮김, 민음사, 2006)에 나오는 문장들이다. 최근 새로운 번역서가 나왔으나 옛날에 내가 읽고 너무 좋아서 쓰러진 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문장과는 달라서 이전 책의 번역을 발췌해서 옮긴다. 팔십대 남성 노인인 레오 거스키가 자신의 심장은 약해서 무리가 가므로 감정을 다른 장기가 처리하도록 유도한다는 부분이다.

 

“거울을 지나치다가 내 모습을 얼핏 보거나 버스 정거장에 서 있는데 아이들이 내 뒤에 와서 ‘어디에서 이런 고약한 냄새가 나지?’ 하고 말할 때가 있다. 이런 매일매일의 작은 모욕감은 주로 간으로 받아들인다. (…) 췌장은 사라진 것에 대한 충격을 받아들이려고 남겨둔 부분이다. (…) 스스로에 대한 실망은 오른쪽 신장이 맡는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느끼는 실망은 왼쪽 신장이다. 개인적인 실패는 창자의 몫이다. (…) 마음의 준비가 되기 전에 날이 어두워지면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손목으로 느낀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손가락 마디가 뻣뻣하면 거의 언제나 어린 시절에 대한 꿈을 꾸었다는 뜻이다. (…) 어제 한 남자가 개를 발로 찼는데 난 그것을 눈 뒤로 느꼈다. 눈물이 나오기 전의 그 앞부분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망각의 고통은, 등뼈다. 기억의 고통도 등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를 만든 사람들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산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이건 내 무릎의 몫이다. (…) 누가 내 옆에서 자고 있다고 믿는 실수를 저지르던 그 모든 시절, 그 모든 시간은, 치핵이 맡는다. 외로움, 그것을 전부 받아들일 만한 내장은 없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나는 도저히 뭐라 말할 수 없는 것을 느낀다. 어차피 말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내가 처음 이 문장을 읽었던 십오 년 전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역시 내장이 들어가는 두 글자 줄임말로 감상을 표현해볼까 한다. 


심쿵.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