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백건우는 이름도 백건우

백건우와 손열음

어제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연주회를 보러 갔다. 주제는 슈만이었다. 백건우 선생님을 눈앞에서 뵙는 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키가 훨씬 크고 손도 커서 거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광택 없이 단정한 검은색 차이나칼라 재킷에 머리는 완연한 백발. 천천히 걸어들어온 그는 자리에 앉아 이윽고 연주를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을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개인적 기억 때문에 슈만은 나에게 특별한 감흥을 일으키는 작곡가이고, 이번 연주회에서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선곡과 연주는 그 특별함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 이야기에 자꾸만 그와 윤정희 배우의 일생이 겹쳐 보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피아노 연습과 연구를 쉬지 않는,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사람. 연주를 듣고 보는 내내 황인찬 시인의 시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이 자꾸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백자도 백건우도 ‘백’자돌림이라서 그랬나, 아니면 저 앞에 있는 이가 아름다운 백발이어서 그랬나, 모르겠다. 거대한 콘서트홀이 그의 연주로 가득 채워지고 환하게 밝아졌다가, 또 그 큰 공간이 연주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사라지고 꺼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울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 나는 함께 간 ‘우리집 클래식 전문가’인 동거인에게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사적인 대화였으므로 거장에게 걸맞은 칭호는 생략했다. 

“하아…… 백건우는 어쩜 이름도 백건우야……?” 

이름에서부터 강건하고 준결하면서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느낌이 드는데, 그것이 그의 옷차림이나 머리, 그의 일생, 그의 음악에 대한 자세며, 엄정하고도 낭만적이었던 이날의 연주가 주는 느낌까지 관통하는 듯해서 탄복하며 한 말이었다. 그러자 우리집 클래식 전문가는 대번에 이렇게 답했다. 

“그건 손열음의 이름이 손열음인 것과 같지 않을까?” 

너무 맞는 말이라 푸하하 웃음이 터졌다. 박력 있고 또렷한 연주를 들려주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이름은 ‘열정적인 음악인’ 같기도 하고 뜨거운 ‘여름’ 같기도 하고 ‘열다’의 명사형 같기도 한 ‘열음’인 것이다. 직접 쓴 책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를 통해 음악에 대한 깊은 사유와 단단한 문장력을 보여준 작가로서, 또 평창 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으로서 그는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의 세계를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손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성이 마침 손씨다. ‘손’과 결합하여 ‘손열음’이라는 이름이 되는 순간, 우리가 아는 그 피아니스트의 느낌을 이보다 더 잘 반영하는 이름은, 아니 단어는 세상에 없을 것만 같다. 손열음이라는 이름의 독특성과 사랑스러움도 그 사람 자체에 정확히 상응하는 듯하다. 맞다, 손열음은 어쩜 이름도 손열음일까. 


노래 같은 이름

말은 뜻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음으로도 이루어진다. 아주 좋은 뜻이지만 어감이 좋지 않아 잘 쓰지 않는 말이 있다. 또는 뜻도 모르면서 그저 발음이 좋아서 되뇌게 되는 말도 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외국 예술가들의 이름을 음악처럼 속으로 불러보곤 한다. 본국에서의 뉘앙스나 뜻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발음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이를테면,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Marguerite Yourcenar’. 벨기에 출신의 프랑스 여성 작가이니 저 이름에 들어가는 네 번의 ‘r’을 목구멍을 긁는 ‘ㅎ’ 비슷하게 발음하는 게 맞겠지만 내게는 저 한글 표기를 따라 읽는 느낌이 참으로 부드럽고 물 흐르는 듯하다. 나는 이 작가의 책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무척 좋아하는데, 읽으면서 이 책의 강물처럼 장중하고도 유려한 호흡이 어쩜 이리도 작가의 이름이 주는 느낌과 같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Pierre Choderlos de Laclos’. 『위험한 관계』를 쓴 프랑스 남성 작가의 이름이다. 『위험한 관계』는나는 이 책도 아주 좋아하는데귀족사회 내의 복잡한 연애놀음 이야기이자, 심리적 권력과 암투와 진실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로 여러 번 만들어진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서도 <스캔들>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작가의 이름에서부터 조금 능글맞으면서 노련하고 눈치 빠르며 우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름을 발음할 때 나는 어감도 가십 험담 등을 쑥덕일 때 나는 소리 그 자체 같기도 하다. 

‘에스페란자 스폴딩Esperanza Spalding’은 그 이름을 들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어느 밤 우연히 미국 TV쇼에 등장한 여성 뮤지션을 보았다. 어마어마하게 부풀린 아프로 헤어스타일에 마른 체격의 여성이 육중한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있었는데 그 노래와 연주 실력이 굉장했다. 속주인데다 음의 진행도 무척 특이하고 매력적이어서 나는 한참 동안 눈과 귀를 떼지 못했다. 이윽고 이름이 자막으로 나오며 그가 자기소개를 했다. ‘에스페란자 스폴딩’. 나는 그 순간 사랑에 빠졌다. ‘에스페란자(스페인어 발음은 에스페란사)’는 스페인어로 ‘희망’이라는 뜻이고 스페인어권에서는 요즘 잘 안 쓰는 옛날식 이름 같지만 어쨌든, 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그 어감이 더블베이스를 속주로 연주하는 여성 재즈 뮤지션에게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오마라 포르투온도’ ‘카에타누 벨로주’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훌리오 코르타사르’ ‘라울 뒤퓌’ ‘오즈 야스지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올가 토카르추크’…… 등등이 내가 노래처럼 그저 중얼거려보기 좋아하는 이름들이다. 이렇게 늘어놓으니 무슨 주문 같다.  

일본의 여성 작가 오카노 레이코의 만화 『음양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음양사 ‘세이메이’가 친구인 ‘히로마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히로마사, 세상에서 가장 짧은 주(呪)는 뭘까?”

“……?”

“이름이야.” 

여기서 ‘주’란 ‘주문, 주술’ 같은 말에 쓰이는 빌 주(呪) 자다. 백건우가 백건우이고 손열음이 손열음인 것은, 평생 가장 많이 듣는 말인 이름에 영향을 받아서는 아닐까? (물론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동명이인들이 많으니 이 이론은 바로 폐기처분될 것이다……)



오물자의 출현 

며칠 전 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강화길 작가가 출연했다. 신작 소설집 『화이트 호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거기 수록된 「오물자의 출현」이라는 단편의 제목 이야기가 나왔다. 강화길 작가가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TV를 보는데, 귀여운 아이들이 나오자 어머니가 ‘아유 저 오물자들~ 꼭 오물자 같네’라고 하셨다는 거다. 애들에게 ‘오물’이 붙은 말을 쓰다니, 강화길 작가가 놀라서 ‘애들한테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아니, 쟤들 꼭 오물자 같잖아’라는 말을 반복하셨다고 했다. 알고 보니 ‘오물자’는 전라도 사투리로 인형을 뜻하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인형처럼 예쁘고 깜찍하다는 칭찬의 뜻으로 쓰신 말인데, 그 말을 몰랐던 강화길 작가에게는 그 어감이 정반대로 좋지 않게 들렸던 것이다. 

의미와 어감의 차이. 그 이중적인 느낌에서부터 시작된 소설이 「오물자의 출현」이다. 그 소설 속에는 김미진이라는 여성 연예인이 나온다.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김미진의 삶과 죽음은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계속 재구성된다. 미디어, 소문, 평판, 험담 속에서 끊임없이 뒤집히고 다시 쓰이는 김미진의 삶은 그야말로 ‘오물자’ 같다. 때로는 인형 같고 때로는 오물로 더럽혀진 자 같은 것이다. 진실은 알 수가 없다. 이 단편을 흥미롭게 읽은 나는 그토록 절묘한 단어를 제때 툭 던져주신 소설가의 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의미와 어감의 충돌, 하면 나는 아무래도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를 떠올리게 된다. 1955년 우리 기술로 생산한 지프형의 6인승 · 2도어 차량의 이름은 ‘첫출발’이라는 뜻의 始發이었다. ‘시발’…… 산뜻한 뜻과 그리 산뜻하지 못한 어감의 만남이라 하겠다. 당시에는 이런 광고 노래까지 있었다고 한다. 

“시발, 시발, 우리의 시-발 자동차를 타고 삼천리를 달리자” 

당시의 어감은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를 수도 있겠다. 전쟁이 끝난 지도 얼마 안 된 가난한 나라에서 기술을 발전시켜 무려 자동차를 만들어내었다니, 그 성과물에 ‘첫출발’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이며 얼마나 뭉클하고 뿌듯했을까? 이 나라의 산업이 점차 발달해서 국산 자동차가 잘 닦인 도로를 활개치고 다닐 먼 미래, 우리 국민이 잘살게 될 어느 날을 꿈꾸었을 그때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시발이라는 이름을 마냥 놀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도로가 방방곡곡 잘 닦이고 국산 자동차가 활개치고 다니는 요즘, 우리 국민이 잘살게 되었다는 요즘, 저 노래의 가사를 읽어보면 주인공은 영락없이 시발, 내일이 없는 세상을 질주하는 사람들 같다. 그것이 실제 요즘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더욱 묘한 느낌이 든다. 

말에는 뜻뿐만 아니라 음이 있다. 때로는 뜻을 몰라서 그 음을 더 즐길 수 있고, 때로는 뜻과 음의 차이 때문에 ‘뜻밖의’ 효과가 생겨나기도 한다. 하려던 말은, 나는 백건우 선생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 모르나 그가 저 근사한 이름에 걸맞은 사람임은 알겠다는 말이다. 그가 하는 말이 아니라 들려준 음을 통해 나는 그것을 알았다. 누군가가 ‘이름까지 어쩜 저럴까’라고 느껴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던데, 앞으로 한동안은 <백건우와 슈만> 공연의 여운에서 헤어나오기 힘들 것 같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