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너와 나의 암호말


수어로 된 시

홈사인home sign이라는 게 있다. 요즘 청각장애와 농聾문화에 대한 책을 여럿 읽던 중에 알게 된 개념인데, 수어手語나 구화口話를 습득하지 못한 농인이 가족 안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쓰는 몸짓 언어를 뜻한다. 정기적으로 쓰이므로 그저 말이 서로 안 통하는 외국인들끼리 의사소통을 위해 일회성으로 쓰는 몸짓보다 일관성이 있고, 그를 바탕으로 더 복잡하게 발전한다. 하지만 집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며 대를 이어 전수되기도 힘들다. 그러니 홈사인은 가족끼리의 손짓 암호라고 볼 수 있겠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라는 실로 반짝이는 영화를 만든 다큐멘터리 감독 이길보라는 코다CODA다. 코다는 Child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 부모에게서 자란 청인 자녀를 뜻한다. 코다는 농인 문화와 청인 문화 양쪽 모두에 걸쳐서 살게 된다. 본인 가족의 이야기를 카메라로 담은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는 이길보라 감독의 이름에 각각의 성을 준 부모 이상국 길경희 씨가 나온다. 두 사람은 1960년대생 농인으로 거침없이 수어를 사용하며 딸인 이길보라나 다른 농인들과 자연스럽고 활기차게 대화를 나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는 두 사람의 다채로운 표정인데, 기본적으로 밝고 환한 얼굴로 수어를 쓰면서 찡그렸다 폈다 하는 표정과 함께(수어에는 표정이 포함된다) 기쁨, 놀람, 상심, 기대, 설렘 등을 어찌나 실감나게 전달하는지 청인인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수어 ‘달변가’들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상국 길경희 씨는 어린 시절 오랫동안 언어 없이 지냈다고 한다. 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집안에 수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충청도 출신인 두 사람은 특수학교인 대전 원명학교에 입학했는데, 그곳에서도 선생님이 수어를 가르쳐준 것은 아니었다. 당시 특수학교 교사들은 수어를 할 줄 몰랐고, 본인의 입모양을 보고 의미를 파악하게끔 만드는 구화 교수법을 썼다.(농인들에게 구화법을 가르칠 것이냐 수어를 가르칠 것이냐 사이에는 세계적으로 첨예한 논쟁이 있어왔고 구화와 수어는 매우 다른 세계이므로 구화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수어는 금지되기도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서로 수어를 주고받으며 급속도로 익혀나갔다. 책으로도 나온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학교와 사회에서는 그것을 비공식적인 언어라고 규정했지만 그들에게 수어는 세세하고 내밀한 감정, 더 나아가 추상적인 개념까지 설명할 수 있는 완전한 언어였다.” 

‘비공식적인 언어’였던 수어는 학교에서 한동안 학생들만의 암호였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암호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그것은 발전한다. 수어 또한 자연발생적인 언어인 ‘자연어’지만 옛날의 농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연결되어 큰 언어 집단을 이루기 어려웠다. 특수학교 등으로 농인들이 모이게 되자 수어는 크게 발전하였고 언어 습득 시기에 자연스럽게 수어를 접해 수어를 모어로 삼는 세대들이 출현했다. 3차원의 공간을 사용하는 수어는 종종 음성언어보다 효율적이고 드라마틱하다. 세상에는 수어로 된 시詩가 있고 그것에는 음성이나 문자언어가 도저히 번역해내기 힘든 공간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수어 통역사’로도 불리는 앰버 갤러웨이 갤러고는 켄드릭 라마, 스눕 독 등의 랩을 무대에서 미국 수어인 ASL(American Sign Language)로 통역하는데, 리듬을 타며 빠르게 이어지는 그의 수어를 보고 있으면 넘치는 스웨그에 넋을 놓게 된다. 



너와 나의 암호말

자연어인 수어와 암호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몇몇 사람이 개발하고 보급할 당시의 수어는 ‘자기들끼리 만들어서 쓰는 언어’로서 암호 같았을 것이다. 앤드루 솔로몬의 책 『부모와 다른 아이들』에 따르면 어릴 때 수어를 배운 사람은 수어 능력이 거의 대부분 두뇌의 언어 영역에서 비롯되지만, 어른이 되어 수어를 배운 사람은 두뇌의 시각 영역을 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두뇌에서 언어가 아닌 시각적 도구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라 한계가 생긴다.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고 수어가 완전히 자연어로 자리잡기 전까지 수어는 목적성을 띠고 습득하는 ‘너와 나의 암호말’이었다. 

양준일의 노래 <가나다라마바사>의 가사를 보자. 


가나다라마바사 너와 나의 암호말 (…) 

사랑을 한단 말을 하고 있지만 

그대와 나만 알아듣는 말 아무도 몰라 

가나다라마바사 사랑한단 뜻이야


연인들의 다정하고 달콤한 말을 꿀 밀蜜 자를 써서 밀어蜜語라고 한다. 그런데 연인들의 밀어는 필연적으로 비밀스러운 언어인 밀어密語이기도 하다. 연인 사이에는 애칭이 생기고 그들만의 역사가 쌓인다. 세상이 사물이나 사건에 부여한 가치와 별개로 그들 내부의 고유한 중요도에 따라 가치가 재편된다. 별것 아닌 단어나 물건이 연인 사이에서는 성스러운 지위에 오르고 타인들은 그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배타적인 맥락이 생긴다. ‘사랑한단 뜻이야’를 담은 그들만의 수많은 표현들이 생겨난다. 

우리집에서는 고양이를 부르는 고유한 표현이 있다. 허벅지나 소파, 침대 등을 손으로 일정하게 두드리는 것인데, 내가 어릴 적부터 그렇게 불러 간식을 줘온 첫째 고양이는 그 소리를 들으면 어디서든 달려온다. 그런데 그것을 따로 교육하지 않은 동생 고양이도 언니를 보고 배워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면 내게로 와 몸을 대고 눕는다. 이것은 고양이들과 나 사이의 암호, 또는 아주 초보적인 일종의 ‘홈사인’일지도 모르겠다. 

암호와 암호 아닌 말의 가장 큰 차이는 닫힘과 열림에 있을 것이다. 야구선수, 코치들의 몸짓 사인은 모두가 볼 수 있지만 그 뜻은 알 수 없도록 은밀히 작전을 주고받기 위해 만들어진 암호다. 그것의 의미는 내부에서만 공유하며, 모두가 그 뜻을 알게 된다면 용도를 잃게 된다. ‘자기들끼리만’ 쓰는 말이 더 많은 사람에게 열릴수록, 대를 이어 쓰일수록 언어는 발전한다. 홈사인은 가족 안에 머물지만 수어는 많은 농인과 청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다. 현재 한국 수어는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으로 공포된 법정 공용어다. 



말은 세상을 떠난다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전시에서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감독 레이몽 르파르동과 사운드 엔지니어 클로딘 누가레가 만든 영상 <그들의 소리를 들으라HEAR THEM SPEAK>(2008)를 보았다. 여러 나라의 유목민, 농부, 원주민 들을 만나 그들 자신의 언어와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찍은 작품이다. 세계화와 개발, 인구 멸종 등으로 삶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그 땅에 뿌리내린’ 모국어로 분노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이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 열 명밖에 남지 않은 소수민족의 유일한 여성,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여인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죽으면 누가 말을 하고 사물의 이름을 지을까요…… 누가 저 강의 이름을 불러줄까요.” 사라져가는 언어가 흐르는 담담한 영상이 시 같았다. 

그 영상이 내게 남긴 강렬하고 쓸쓸한 인상과는 별개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 여인의 말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강물은 인간이 이름을 부르든 그러지 않든 흐른다. 그 강물 옆에서 흥망성쇠를 이루고 대를 이어 살던 인간들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강물은 계속 흐를 것이다. 물론 개발로 오랜 터전을 잃는 이들의 이야기였기에 그 언어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고, 인간들의 난개발이 이어진다면 강물조차 말라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강물을 존중하며 공존하기보다는 내가 그 이름을 부르는 것에 의미를 두는 인간중심주의가 난개발의 가장 기저에 있는 철학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21세기 말이 되면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6000여 가지의 언어 중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사어死語. 말은 죽는다. 많은 사람이 사용하지 않으면 말은 늙고, 쪼그라들고, 죽어 사라진다. 소수민족이 쓰는 말은 점점 그들만의 암호가 되고 죽어간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한국어는 남한어와 북한어를 합쳤을 때 사용 인구가 세계 15위 정도 된다. 영어는 사용 인구로만 따지면 중국어, 스페인어에 이어 세계 3위지만 세계 곳곳 아주 광범위한 지역에서 쓰이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메이저 언어가 되어 있다. 지구상 많은 곳에서 한국어는 암호 같을 테지만 영어는 비교적 친숙할 것이다. 그러나 영어라고 해서 결코 사어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수가 쓰는 영어나 중국어, 스페인어는 절대로 죽지 않을까? 

잠깐 시선을 지구 위가 아닌 지구 밖으로 돌려보자. 우주에는 1천7백억 개가 넘는 은하가 있고 각 은하에는 또 1천억 개가 넘는 별들이 있다. 우주 변방에 있는 우리 은하 중에서도 중심이 아니라 나선팔 어디쯤에 위치한 태양계의 세번째 행성인 이 작은 별 지구. 지구에 사는 수많은 동식물종 중의 하나인 인간종 중에서 제아무리 보편적으로 쓰이는 언어라 해도, 지구의 다른 종과 의사소통할 수조차 없고, 인간종이 강물과 함께 사라지면 그 모든 언어 또한 함께 소멸할 뿐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에는 티끌만큼의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소수 민족이고 영어조차 홈사인에 불과하다. 

1977년 지구에서 쏘아올린 두 척의 보이저 탐사선이 태양계를 넘어 지금도 우주를 항해하고 있다. 두 보이저호에는 구리에 금박을 입힌 레코드판, 일명 ‘골든 레코드’가 실려 있는데, 거기에는 지구를 소개하는 118장의 사진과 55개의 인사말(‘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도 수록되었다), 고래의 노랫소리, 바흐의 음악 등이 담겨 있다. 이 골든 레코드를 기획하고 제작한 사람은 『코스모스』로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다. 지구 대표로서 끝없이 별들을 향해 날아갈 보이저호를 통해 시도한 ‘우주에게 말 걸기’인 것이다. 티끌보다도 훨씬 작은 확률이지만 혹시라도 외계의 문명이 그 레코드를 발견한다면 광막한 우주의 어딘가로부터 자기를 소개하려 애쓰는 어떤 존재의 암호 같은 흔적을 인지할 것이다. 그 암호들은 우리가 결코 짐작하지 못할 어떤 아름다운 대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