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돐을 아십니까

이걸 왜 틀려

얼마 전 ‘사흘’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광복절인 8월 15일이 토요일이라 월요일인 8월 1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사흘’간의 연휴가 생겼다는 보도에, ‘사흘’이 3일을 뜻하는 우리말임을 제대로 몰랐던 사람들이 포털에서 검색을 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이틀을 2틀로, 사흘을 4흘로 알았던 젊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거다. 아직 어린 학생들뿐 아니라 기자가 작성한 언론 기사에도 버젓이 ‘4흘’이라고 쓴 예가 수도 없이 나왔다. 혹시나 해서 짚고 넘어가자면 3일은 사흘, 4일을 뜻하는 말은 나흘이다. 말뜻을 알고 있던 사람들, 그러니까 주로 나이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공교육의 붕괴’를 운운하며 어린 세대의 상식과 독해력이 무너지고 있다고들 개탄했다. 말뜻을 제대로 몰랐던 사람들은 ‘모르면 가르쳐 주면 되지 무식하다고 비난하냐’며 되받아쳤다. 나는 말의 변화가 일어나는 걸 그저 재미있게 관찰하는 편이라 ‘아 요즘은 사흘 나흘이라는 말을 잘 안 쓰는구나!’ 하고 넘어갔을 뿐이다. 

최근 SNS에서 ‘가늘다’와 ‘굵다’를 써야 할 곳에 ‘얇다’와 ‘두껍다’를 쓰는 현상에 대한 지적을 보았다. 요즘 사람들은 ‘얇은 허리’ ‘두꺼운 허벅지’ 등으로 틀리게 쓴다는 것이다. 바른 표현은 ‘가는 허리’, ‘굵은 허벅지’다. 가늘다와 굵다는 기둥 같은 것의 둘레나 사물의 너비, 부피가 작거나 큰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얇다와 두껍다는 종이나 판자처럼 납작한 것을 눕히거나 층지게 쌓았을 때 그 높이가 작거나 큰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 목이나 허리, 팔뚝 같은 부위에는 가늘다와 굵다를 쓰는 게 맞다. 나는 이것을 잘 알고 있으며 정확하게 쓴다. 

그런데 애매한 부분이 있다. 가늘다와 굵다는 글씨의 획의 굵기에 대해서도 쓰는 말이다. 얇다 두껍다는 원칙적으로는 쓰지 않는다. 옛날 사람들은 붓으로 글을 썼으니 가는 글씨에는 가느다란 붓을, 굵은 글씨에는 굵다란 붓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디자이너들은 컴퓨터로 작업을 한다. 모니터 가득 확대한 글씨에서 획을 선택하고 숫자를 쳐 넣어 그 굵기를 조절할 때, 이를테면 100을 95로 바꾸어 5만큼 폭이 깎여나갈 때의 감각은 굵기보다는 두께로 다가온다. 실제로 그것은 픽셀이 쌓인 두께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가는 선’ ‘굵은 선’만큼이나 ‘얇은 선’ ‘두꺼운 선’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인다.

더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택배 박스에 붙이는 폭이 넓은 셀로판테이프를 ‘두꺼운 테이프’라고 하지, ‘굵은 테이프’라고는 하지 않는다. 테이프를 길게 붙이면 그것은 하나의 선이 되는데, 우리는 그 선의 폭을 ‘선의 두께’로 인식하지 ‘선의 굵기’로 인식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0.5cm 폭의 테이프는 ‘얇은 테이프’라고 부른다. ‘가는 테이프’라고는 할지언정 ‘굵은 테이프’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선의 굵기’와 ‘선의 두께’는 아주 헷갈리게 된다. 이런 인식과 배경 위에서 사람들은 선이 가늘게(얇게) 그어지는 펜을 ‘얇은 펜’이라고 부르고 선이 굵게(두껍게) 그어지는 펜을 ‘두꺼운 펜’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것은 펜 자체의 굵기와도 헷갈리게 되며 또 펜은 마침 기둥 형태라 허리나 허벅지와 구조적으로 유사하여 결국 ‘가늘다/굵다’ ‘얇다/두껍다’는 총체적인 혼돈으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요즘 사람들로서는 이게 헷갈릴 만도 한 것 같다. 


맞춤법

나는 맞춤법과 어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에게서 지적인 매력을 느끼고, 나도 그러려고 노력한다. 아마도 나는 맞춤법을 너무 많이 틀리는 사람과는 결코 사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맞춤법이나 어법은 세상의 진리 같은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기로 하자’는 일종의 게임 규칙 같은 것이다. 말은 생물이어서 계속 변화한다. 맞춤법도 느리지만 시대에 맞게 조금씩 변화해간다. 내가 당연히 알고 있는 말이라 해서 앞으로의 세상에서도 계속 그러리란 법은 없다. 사흘과 나흘을 앞으로도 자주 쓰지 않아 사흘이 4일과 혼돈을 계속 일으킨다면 그 말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3, 4일과 사흘 나흘의 말맛 차이를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가 지금 안 쓰는 옛말들은 너무나도 많다. 

SNS에서 ‘~하길 바라요’라는 말이 너무 어색해서 ‘바랍니다’라고 쓴다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나도 쓰던 관성이 있어 한동안 ‘바라’ ‘바라요’를 쓰기보다는 그냥 ‘바래’ ‘바래요’라고 썼다. 요즘은 딱히 그러지 않는다. 새로 맞춤법을 배우는 세대들은 ‘바라요’라고 배울 테고 그게 당연해질 것이다. 전봇대에 붙은 반려동물 찾는 전단지 같은 데서 ‘사례하겠읍니다’라고 쓰인 것을 보면 그것을 쓴 사람의 나이대가 대충 짐작되어 괜히 더 짠해진다. 나는 내 표기법을 보고 내 나이대를 짐작하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자라오면서 배웠던 맞춤법은 계속 바뀌었고 처음엔 어색해도 결국 적응하게 되었다. ‘할께요’는 ‘할게요’가, ‘설겆이’는 ‘설거지’가 되었다. ‘삭월세朔月貰’라고 버젓이 어원 그대로 잘 쓰이던 말이 ‘사글세’가 되었을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응했고 그 말 자체가 거의 사라지는 것도 보았는데, 요즘은 다시 사글세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도 한다.(역시 말의 쓰임은 세상의 변화를 반영한다.) ‘몇 날 몇 일’에서 ‘몇 날’은 그대로 쓰고 ‘몇 일’만 ‘며칠’로 바뀌었을 때도 황당했지만 이제는 변한 규칙에 잘 적응해 있다. ‘돐잔치’는 ‘돌잔치’가 된 지 오래라 요새는 ‘돐’이라는 글자를 평생 한 번도 못 본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2015년 표준국어대사전 수정으로 ‘너무’가 ‘너무 늦다’ ‘너무 어렵다’처럼 부정적인 표현뿐 아니라 ‘너무 맛있다’ ‘너무 반갑다’처럼 긍정적인 표현으로 쓰여도 어법에 맞는 것으로 바뀌었을 때, 엄청난 찬반 논란이 일어나 시끌시끌했다. 이미 사람들은 ‘너무’를 너무 많이 쓰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옳은 것으로 만들어줄 것까지는 없지 않냐는 쪽과, 이렇게 광범위하게 실제로 쓰이고 있는 말을 반영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바로 이런 표준어 논쟁을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쪽이다. 말은 누가 정해놓는다고 그대로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표준을 정해야 하고 그것은 다수결로 되는 일이 아니다. 많은 연구와 관찰과 해석이 개입되는 일이고 때로는 거대한 반발이 일어나며 그로 인해 재수정되기도 한다. 이런 논쟁 폭발은 맞춤법의 세계에서 슈퍼볼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켜보기에 아주 재미있다. 어떤 말을 표준으로 삼을 것인가, 맞춤법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는 언중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치므로 신중해야 한다, 같은 당연한 말은 굳이 나까지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는 앞서 말했듯 맞춤법을 ‘바름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규칙 정도로 생각하기에 수정에 오히려 더 쉽게 따른다. 다만 규칙을 만들 정도의 전문 인력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말에 대한 생각은 있으므로 동의가 안 될 때면 ‘바보 같은 맞춤법 수정이지만 일단 이것을 기억해둬야겠군’ 정도로 생각하는 편이다. 


구르는 말들

‘굉장히 작다’라고 말하면 바로 어색함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클 굉宏 자에 장할 장壯 자를 써서 ‘굉장히’라고 하면 원래는 ‘아주 크고 훌륭하게’라는 뜻이므로 그 뒤에 ‘작다’가 붙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좀 이상하다. 하지만 ‘굉장히’는 ‘아주’ 정도의 중립적인 뜻으로 바뀌어 크거나 훌륭한 것 이외의 대상에도 광범하게 쓰이고 있다. 앞서 말한 ‘너무’의 변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말은 계속해서 변한다. 원래의 뜻에서 달라지기도 하고, 필요가 있는 곳에 새로운 말이 생겨나며, 생겨난 말이 입에 잘 붙으면 급속도로 퍼졌다가도, 어느새 흘러간 말이 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장마’는 원래 ‘여름철에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를 뜻한다. 그런데 요즘은 ‘마른장마’라는 이율배반적인 말을 쓴다. 장마는 축축하고 꿉꿉한 것인데, 마른장마는 그럼 젖은 것인가 마른 것인가? 마른장마는 시기적으로는 장마철인데 비가 오지 않거나 강수량이 적은 것을 뜻하는 용어다. 만약 기후가 점점 바뀌어 마른장마가 아주 오랜 세월 계속된다면 장마와 마른장마라는 개념 자체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메로나’는 원래 멜론맛 아이스크림을 의미하는 직관적인 이름이었다. 그런데 ‘메로나’는 이제 그런 형식의 막대 아이스크림을 뜻하는 말로 변해서, 메로나 바나나맛, 메로나 망고맛, 메로나 복숭아맛, 메로나 딸기맛…… 등등이 나와 있다. 내겐 여전히 메로나라는 이름과 멜론 아닌 과일맛이 서로 부딪치는 느낌이 있다. 마치 ‘마른장마’처럼. 귤맛 아이스크림 이름으로 너무 잘 지었다 싶었던 ‘생귤탱귤’에서 갑자기 ‘생귤탱귤 파인(애플)맛’이 나왔을 때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생귤탱귤 자몽맛까지는 그래도 귤 비슷한 종류로 생각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레깅스는 신축성이 좋은 타이츠 모양의 바지다. 보통 발목 길이지만 아예 양말처럼 발까지 달린 레깅스가 나왔을 때 생겨난 말이 ‘유발 레깅스’다. 있을 유有 자를 써서 발 달린 레깅스를 줄여 부르는 이름으로 이제는 그 상품군을 뜻하는 공식 용어처럼 쓰인다. 그러자 유발 레깅스와 대비해 원래처럼 발 없는 레깅스를 칭하는 말로 자연스레 ‘무발 레깅스’라는 말이 생겨났다. 비슷한 예로 소비자 커뮤니티에서 품평을 할 때 가격이 싼 제품을 ‘저렴이’라고 부르자 그와 대비해서 고가의 제품을 일컫는 ‘고렴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을 들 수 있다. 원래 저렴이라는 말은 검소할 렴廉 자를 쓰지만 지금은 ‘-렴이’가 저렴이와 고렴이의 친족관계를 뜻하는 일종의 돌림자로 바뀌어 쓰이게 된 셈이다. 이런 식으로 생겨난 말 중에 국어사전에 등재된 것도 있다. ‘가짜나 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 ‘짝퉁’에 대비되어 생겨난 말인 ‘진퉁’(참 진眞 자를 쓴다)이 짝퉁과 나란히 사전에 올라 있는 것이다. 나는 진퉁까지 사전에 나오는 말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이해가 잘 안 되지만 나의 이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말은 생겨나고 입에 붙고 퍼져나가고 뜻이 바뀌고 사라지고 또 돌아오기도 한다. 마치 어느 숲에 씨앗들이 사방으로 구르고 날아다니는 것처럼. 어떤 것은 싹트다 말고, 어떤 것은 크게 자란다. 맞춤법이란 것은 이 숲의 크기에 비하면 한참이나 작은 도구다. 내가 기억하는 숲이 낫다고 하기보다는 이 숲에서 또 어떤 것이 피어나고 변해가는지를 지켜보는 게, 나는 훨씬 더 재미있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